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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법 지금도 유효한가

‘국가 역할’ 관점 따라 미묘한 시각차이
2006/1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하는 상황에선 진흥정책이 유효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발전단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면 국가주도형 진흥이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아진다. 시대흐름과 기득권·관행이 충돌하는 지점에 ‘진흥’이 존재한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일률적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사안별로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일상적인 관리기능과 진흥·개발로 나눌 수 있다. 진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과거 방식 진흥인가 새로운 방식 진흥인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기초예술연대, 문화연대,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문예진흥기금 민간자금화 반대 및 예술재원 대책 촉구 범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양계탁기자

기초예술연대, 문화연대,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문예진흥기금 민간자금화 반대 및 예술재원 대책 촉구 범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식민지 시기 ‘조선농촌진흥운동’부터 정부가 내놓은 각종 진흥법은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각종 진흥법과 진흥정책이 ‘하향식 근대국가 만들기’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도 분명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진흥법이라는 정책방향을 재검토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진흥법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진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옥석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면서도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는 다분히 역사적인 경험을 반영한다. 행정부의 부처이기주의와 국회의 한건주의 입법관행, 진흥법에 기생하는 일부 이익단체들이 맞물리면서 많은 경우 진흥법은 취지를 스스로 훼손했다. 입법 동기 자체가 불순한 진흥법도 적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각종 진흥법이 말하는 진흥은 결국 미숙한 시민사회를 이끌고 가르치겠다는 엘리트주의 발상을 담고 있다”며 “이제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각종 진흥법 정비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진흥이란 결국 관변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진흥은 대중들한테서 올라오는 운동이 아니라 국가나 엘리트들이 특정한 사안을 강제하고 동원할 때 쓰는 용어다.

김성남 변호사(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진흥이란 말 속에는 ‘국민은 어리석고 방종하고 더럽고 속이기 좋아한다고 비하하는 사고’가 깔려있다”며 “그런 정신은 사실 한국 법제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흥이란 게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를 어리고 유치한 것으로 상정하고 지도하고 선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식민지 잔재”라고 비판했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학과 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도 “용어 자체가 국가가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며 국가주의와 엘리트주의 성격을 주목한다.

“어떤 진흥인가”가 기준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국가가 특정 목적을 위해 진흥책을 펴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진흥법 자체가 아니라 운영과정을 봐야 한다는 것. 최근 번역출간된 ‘국가의 역할’에서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강조하는 ‘선별적 산업정책’도 넓은 의미에서 산업진흥정책으로 볼 수 있다. 장 교수는 진보개혁진영이 일반적으로 ‘관치경제’를 비판하며 “국가 역할 최소화”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선별적 산업정책’이라는 주장을 통해 적극적인 국가역할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문제는 “어떤 진흥인가”이다.

한 교수는 “공공영역 육성하는 게 자칫 시민자치영역이 관료적 통제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권한을 정부에 주기가 눈치 보이니까 각종 위원회를 만들지만 위원회가 관료에 포섭되면 결국 다를 게 없다”며 “참여민주주의가 전문가위원회와 관료위원회로 변질되는 경우에서 보듯 각종 진흥법은 부처이기주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구분된다고 보면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에 맡길 영역은 맡기는 게 낫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만 시장에 맡기기만 해서는 안되는 공공성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 경우에도 신중한 토론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어설픈 진흥은 병폐만 키운다”며 “진흥이라는 접근법 자체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진흥이라는 공익적 수사로 포장하지 말고 정말로 국가적 차원에서 진흥할 것은 엄격하고 오랜 기간 토론과 합의를 통해 시행해야 한다”며 “국가주의적 공익론의 반민주성과 반시민성을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2월 1일 오후 16시 2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8호 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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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 부실진흥법안이 판친다

예산검토부족, 지역구ㆍ이익단체 챙기기 우려 높아
계류중인 진흥법 제정안 41건
2006/1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국회에 계류중인 각종 진흥법제정안은 모두 41건(11월 15일 기준)이다. 상임위별로는 문화관광위원회가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교육위가 7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전통주와 전통무예 등 전통문화와 관련한 법안이 4건이나 되고 스포츠 관련 법안 2건, 효도 관련도 2건이다.

이들 법안 가운데 상당수가 특정 사안마다 법안을 내놓아 ‘진흥법 인플레이션’을 초래함으로써 ‘법 안정성’을 입법부 스스로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밖에도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길 우려 △지역구 챙기기 △예산검토부족 △특정 이익단체 챙기기 등을 우려한다. 게다가 일부는 “도덕까지 법으로 규제하려 하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도 못하다.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대표발의한 내륙컨테이너기지주변지원법안은 대표적인 지역구 챙기기 사례다. 현재 운영중인 내륙컨테이너기지는 경기도 의왕과 경남 양산시에 있다. 특히 23만평 부지에 연간 196만TEU(약6미터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는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는 수도권 컨테이너 화물의 45%를 처리하는 국내최대 컨테이너기지다. 이로 인해 주변지역 주민이 입는 손실은 연간 200억원이 넘는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정부는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매년 40억원 이상을 교부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건교부 검토보고서는 “특별법 형태로 국가가 직접 재정지원을 한 입법례가 없으며 만약 특별법을 제정할 경우 유사한 기피시설에 대해 특별법 제정에 의한 재정지원요구가 분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상수 의원의 지역구는 경기도 과천·의왕이다.

법안을 발의할 때 예산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안을 제정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드는데도 예산확보방안을 제대로 고민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제정안에 조세지출을 명시했음에도 예산추계서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안민석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스포츠산업진흥법안은 필요한 예산을 320억원으로 계산했는데 이 가운데 300억원이 진흥원 설립운영 비용이었다. 진흥을 위한 법인지 진흥원을 만들기 위한 법인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남북사회문화교류진흥법안(최성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발의)과 사립학교지원특례법안(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발의)는 소요예산을 각각 5년간 1470억원과 2천억원으로 계산했지만 검토보고서는 “사실상 소요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각종 특례와 특혜를 인정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길 우려 뿐 아니라 법적 안정성을 스스로 해칠 수 있다.

서해5도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은 자칫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길 뿐 아니라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박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로 이렇게 밝혔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낙후된 접경지역에 대한 개발과 피해보상 등의 근거는 현행 접경지역지원법에도 규정돼 있으나 서해5도 지역에 대한 실제 지원은 매우 미비한 실정이므로 … 개발을 위한 사업지원 및 각종 특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원법을 마련해 해당 지역주민의 생활안정 및 복지증진을 도모하려는 것.”

특혜를 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현행법상 접경지역은 접경지역지원법에 따라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될 경우 접경지역마다 비슷한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

영어교육진흥법안(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은 법안에 “초중등교육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별도조항을 두었다. 심지어 영어교육담당교원 임용기준을 정하는 대통령령에 “초중등교육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영어교육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자도 임용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둘 수 있다”고 명시했다. 대통령령이 상위법을 어길 수 있다는 ‘위법’을 명시한 셈이다.

레저스포츠진흥법안(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발의)은 법안 발의 당시부터 특정 이익단체만 ‘진흥’하는 법안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완 문화연대 활동가는 레저스포츠특구 등 지원(11조) 조항을 예로 들며 “현실적으로 레저스포츠특구로 지정되는 거의 모든 곳은 골프장”이라며 “결과적으로 골프장만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2월 1일 오후 16시 3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8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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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수 모두 다원화 절실

조희연 교수 “진보와 보수 비적대적 경쟁을”
2006/10/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국민의정부부터 참여정부에 이르는 민주정부 위기는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먹고 살게 하는 모델’을 창출하는데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희연 한국사회포럼 집행위원장.
<시민의신문DB자료사진> 양계탁기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9~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여성개발원·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가 공동주최한 ‘한국사회의 새로운 갈등구조와 국민통합’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모델 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집권세력까지 포함하는 반독재 진보 내부에서 자유주의적 진보와 급진진보세력 사이에 폭넓은 분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목했다.

조 교수는 이와 함께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에 비적대적 공존을 위한 생산적 경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 갈등은 ‘정치권력의 분점과 정치세력들의 비적대적 공존’이라는 병목지점에 있으며 진보와 보수 모두 상이한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현실적인 경제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생산적인 경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생각하는 대안모델은 “시민사회, 노동 등 민중부문의 역동성을 전제로 개발독재 경험을 성찰하면서 한국의 현실을 기초로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대안경제모델과 국가모델을 만드는 과정”이다.

비적대적 공존을 위한 핵심 과제로 조 교수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다원성 증대, 보수와 진보의 내적 다원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먼저 보수는 수구적 보수와 자유주의적 보수 사이에 분화를 촉진하고 보수 내부에서 자유주의적 보수가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조 교수는 “보수 내부에서 반북주의 정체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이를 위해 이른바 ‘전향파 보수’들이 ‘보수의 진보화’를 촉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치열한 정치쟁점인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조 교수는 “과거청산 과정은 보수에게는 시대가 요구하는 ‘강요된 자기정화’ 과정일 수 있고 진보는 자신의 핵심 의제를 잃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진보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다원화라는 도전이 나온다. 조 교수가 보기에 진보세력은 자유주의 진보와 급진진보가 분화되지 못하면서 ‘저항의 미덕’과 구별되는 ‘통치의 미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에게 필요한 정책 ‘실현가능성’ 혹은 현실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권력을 갖고도 조중동 탓만 하는 것은 알리바이일 뿐”이라며 참여정부를 비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비판이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더 나아가 진보와 보수 사이에 비적대적 공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각축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기 위한 경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극심한 양극화를 완화해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을 낮추는 것이 기업과 자본의 ‘거시적 합리성’에도 부응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경제문제를 둘러싸고도 비적대적 공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보수에게는 단순히 박정희 모델을 부활시키는 퇴행적인 모델이 아니라 달라진 조건을 반영하는 ‘박정희 모델의 혁신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진보세력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당위론에 그쳤고 정책으로 구현하지도 못했다. 참여정부는 박정희 모델에 반대한다고 천명했지만 관료적 작동방식은 예전과 똑같았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주의가 투명성과 민주성은 높였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계급사회’를 출현시켰다는 게 조 교수 설명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24일 오전 11시 4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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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최초 헬기조종사가 말하는 군대내 여군현실

피 중령이 증언하는 군대내 여군현실
2006/10/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국방내 안에 다시 담으로 둘러쳐 있는 여군훈련소에 입소할 때부터 여군은 문을 두 번 지나가야 한다. 군대라는 첫 번째 문과 여군이라는 두 번째 문이었다.”

피 중령은 자신이 겪은 30년 군생활을 수기로 정리해 책으로 내려고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다. 이 수기에서 묘사한 여군들의 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피 중령은 “아직도 군에서는 말로만 성평등을 외칠 뿐 여군을 상징적인 역할만 하는 존재로 강제하고 있다”며 군대내 여군인권현실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이정민기자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피 중령은 1979년 제27기 여군사관후보생으로 군에 입대했다. 모집공고를 우연히 보는 순간 당당한 전문직이자 열정을 바쳐 볼 만하다는 느낌이 가슴에 꽂혔다고 한다. 국가가 주관하는 군대니까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줄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면접장에서 치마를 입지 않았다고 면박을 당할 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여군후보생들은 일과시간에는 치마를 입어야 했고 내무반 밖에서는 항상 화장을 해야 했다.

육군항공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당시 신체검사를 받으면서 겪은 일은 두고두고 피 중령에게 응어리를 남겼다. 항공조종사는 심전도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검사를 위해서는 웃옷을 벗어야 한다. 그와 동료 두 명은 얼결에 웃옷을 모두 벗고 남자 사병한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간호장교가 검사를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못했다.

“검사를 마치고 우리 뒤에 들어간 남자동료들이 병사들에게 ‘세 명 가운데 누구 가슴이 제일 크더냐’고 물으며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는 것을 들었습니다. 눈물겨웠지요. 우리 모두 누구한테 얘기도 못하고 이상한 시선을 버텨야 했습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지요.” 이 때 경험은 피 중령에게 ‘여성성은 군생활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군대에서는 모든 문화가 남성 중심이다 보니 남성들이 언제 어디서나 여성에게 성적인 부분을 갖고 얘길 많이 합니다. 일상적으로 그렇지요. 술자리에서도 여군은 항상 상급자 옆에 앉혀서 술시중을 시켜요. 음흉한 눈길과 손길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으니까 미리 얘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대에서 항상 인상이 굳어 있었지요.”

화장실도 군생활 내내 여군을 괴롭힌다. 보통 여자화장실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 남자화장실 안쪽에 임시 칸막이를 설치한다.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남자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고 혹시라도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것도 곤욕이었다.

“95년에 야외에서 9박10일 훈련을 한 적이 있어요. 직책을 수행하라는 이유로 소대원과 같은 텐트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곳이 없더라구요. 여자가 둘밖에 없으니까 여자화장실도 따로 없어요. 조종복은 원피스로 돼 있어 용변을 보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하기 때문에 훈련기간 내내 용변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작년에 논산병원에 갔을 때 논산병원도 그렇더라요. 여성 화장실이 수술실 옆에 있으니까 수술 있으면 화장실을 못가요.”

‘남군’이라는 말이 ‘남근’이라는 말과 닮아서 그런 것일까. 군대는 남성성만 강조하는 곳이다. 군대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건 항상 비하 아니면 욕이었다. 피 중령은 “군 생활 내내 가는 곳마다 여군은 거의 나 혼자였다”며 “홀로 버텨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회상했다. 피 중령은 “여성단체에서도 여군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며 여성단체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24일 오전 11시 4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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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보다 업무추진비가 많은 정부출연기관?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업무추진비 복마전
배일도 의원 “법인카드로 김치냉장고,아기용품 구매”
2006/10/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보직자인 A씨는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주말, 공휴일, 거주지 주변에서 240번 넘게 5천40만원을 사용했다. 간부 직원 6명은 한 음식점에서 1~2분 사이에 각각 49만원씩 연속해서 결재했다. 일부 직원은 법인카드로 김치냉장고, 양주, 골프 장갑, 아기 장난감을 구입했다.”

정부출연기관인 산업기술평가원(이하 산기평)이 전직원 차원에서 법인카드를 방만하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 사용 △특정 유흥업소와 고급음식점 출입 △카드깡 △카드세탁의혹 등 탈법과 편법 사용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배일도의원.
여의도통신 한승호기자
한나라당 배일도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배 의원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연구개발예산을 정상적으로 선정하고 집행하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아울러 정부가 시행하는 산하기관 경영실적 평가와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기평은 약 1조7000억원에 이르는 산업기술 관련 연구개발비를 심사하고 평가해 지원하는 곳이다. 이처럼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산기평은 “클린카드 사용 차원에서 전체 직원 162명이 모두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 제15조에 의한 정부산하기관예산관리기준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50만원 이상을 집행했을 때 상대방의 소속과 성명 등을 증빙서류에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 규정도 위반하고 카드 사용 실태에 대해 자체 검증이나 전반적인 실태조사도 없다는 데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산기평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은 복마전 그 자체다.

배 의원이 실태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해 업무추진비 사용액만 14억6천만원(5629건)에 이르고 올해는 7월 현재 9억9936만원(5389건)을 썼다. 올해 산기평 인건비가 약 8억원임을 고려하면 인건비보다 두 배나 많은 업무추진비를 사용한다는 얘기가 된다. 2003년부터 올해 7월까지 법인카드 사용액은 약 38억원. 이 가운데 배 의원 측에서 부적절 의심사례로 지목하는 것만 3184건(전체 대비 20.2%)이고 액수로는 18.9%에 이르는 약7억 7천만원에 달한다.

산기평 인근 단란주점, 양주바, 노래방, 유흥업소 등 특정업소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서 연속해서 나타난다는 것도 의혹을 부채질한다. 배 의원 측은 “해당업소 주인과 결탁해 현금 교환을 목적으로 한 일명 ‘카드깡’을 한다는 증언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거래제한업종으로 규정된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액수가 1억4천만원에 이르고 같은 곳에서 같은 날짜에 1명이 두 번 이상 결재한 경우도 1천4만원이 넘는다. 같은 곳에서 같은 날짜에 여러 명이 결재한 경우는 4천498만원에 달한다. 개인물품을 구매했다는 의혹을 사는 경우도 약 580만원이다. 특히 공유일과 주말에 사용한 내역 526건(1억3천8백여만원) 대부분이 골프장, 노래방, 주점 등 거래제한업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거주지 인근에서 사용한 액수도 지난해 전체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배 의원측은 “사정이 이런데도 내부감사나 산업자원부 감사 등에서 업무추진비 사용이 지적받은 사례가 거의 없어 사실상 산기평과 산자부가 이를 방조하거나 공모하고 있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산기평 업무추진비 일부는 정부종합청사 후생관에서 산자부 부서 경비대납(일명 외상장부 정리)으로 정기적으로 집행했고 산자부 주변 지역에서 산자부 직원에게 접대 향응 제공, 산자부 직원이 자주 출입하는 음식점 외상장부 대리결제 의혹 등에 대한 증언도 계속 이어지는 실정이다. 배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산자부 공무원 접대성이거나 경비대납 의혹이 있는 법인카드 사용액은 2억원이 넘는다.

이에 대해 산기평은 지난 24일 해명자료를 내고 배 의원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상일 산기평 경영본부장은 전화인터뷰에서 “2004년 국정감사 당시 조승수 전 의원이 같은 문제제기를 했고 그 이후 제도개선도 하고 클린카드제를 도입했다”며 “그 이후로는 배일도 의원이 제기한 부분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 의원 측에서 “클린카드 도입 이전과 이후를 묶어서 얘기를 해서 오류가 생긴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배 의원측 주장은 부실한 근거자료에, 자료검토도 제대로 않고 과장해서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배 의원측은 보도자료에서 산기평 인건비가 8억원이라고 했지만 실제 산기평 전체 직원 임직원은 101억원”이라는 점을 자신의 근거로 제시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24일 오전 11시 3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3호 19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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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전역 위기 몰린 '여성성'

[인터뷰]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행정소송이라도 낼 것…명예롭게 전역하고 싶다”
2006/10/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처음엔 완치된 유방암 때문에 전역을 해야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부당하게 전역당할 위기에 처한 ‘여군 최초 헬기 조종사’를 돕기 위해 움직이던 시민단체 간사는 기자에게 전후 사정을 제보하면서 “꽉 막히고 마초적인 국군이 유능한 군인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간사를 통해 지난달 26일 <시민의신문> 회의실에서 만난 피우진 중령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난 9월 14일 전역심사위원회에서 전역결정이 나와서 현재는 전역대기중이다. 지난달 20일 통보를 받은 그는 국방부에 인사소청을 냈다. 소청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그는 다음달 원치 않는 전역을 해야 한다. 피 중령은 인사소청이 기각되면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이정민기자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민간인 복장으로 나타났지만 말투에서 벌써 군인 티를 숨길 수는 없었던 피 중령과 세 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여성성’과 ‘군인’이라는 신분이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임에도 피 중령이 들려주는 한국군은 여성성이 군복무에 걸림돌이 되는 구조였다. 피 중령은 “우리는 꽃이 되고 싶지 않다”고 절규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또 하나 충격이었던 것은 군대에서 여군들의 인권실태가 충격적일 만큼 열악하다는 점이었다.

피 중령은 현재 전역대기중이다. ‘군인’으로 남기 위해 ‘여성’을 버렸지만 국군은 ‘여성’을 버렸다는 이유를 들어 피 중령에게 ‘군인’ 제복을 벗으라고 강요한다. 물론 그건 명분이고 실제로는 누구에게나 원칙대로 대하는 것이 상급자들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성을 단지 장식품으로만 생각하는 군대. 이런 군대에 희망이 있을까.

군대에선 ‘여성성’이 걸림돌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을 안 것은 2002년 8월이었다. 목욕을 하다가 혹이 잡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유방암 1기라고 했다. 고민 끝에 그해 10월 민간병원에서 유방절제수술을 받았다. “의사에게 혹이 없는 유방도 제거해 달라고 했어요. 의사는 전이될 위험이 거의 없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옆에 있던 인턴의들은 미친 여자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구요.” ‘유방’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피 중령은 이를 스스로 지워 버렸다. “직업상 가슴은 백해무익하다”는 게 이유였다.

피 중령에 따르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군에는 여군을 위한 의료시스템과 환경이 전혀 없다. 산부인과를 담당하는 의사도 국군수도병원 등 큰 병원에만 한 두명 있을 뿐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을 당시 피 중령은 육군항공학교에 근무했는데 군의관 두 명은 내과와 치과 전공이었다. 인근 논산병원에도 산부인과는 없었다. 거기다 모두 남자 의사다.

당연히 군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는 것을 꺼리게 된다. 남자 군의관에게 가슴을 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군 의료기술이 미덥지도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군 규정상 암이라고 판정만 되면 치료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전역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결국 피 중령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30년 가까이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가슴’은 피 중령에게 가장 불편한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군 생활에서 ‘가슴’은 언제나 걸림돌이었다고 말한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거나 헬기를 조종할 때처럼 활동이 많을 때는 압박붕대로 가슴을 동여매곤 했다. 항상 “이 놈의 가슴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도 피 중령은 한 번도 양쪽 가슴을 모두 없앤 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여성’을 지우고 ‘군인’으로 남고 싶은 결단임이었지만 군인으로 설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은 지나친 역설이었다.

"괘씸죄에 걸리다"

이정민기자

수술을 받고 나서도 군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피 중령도 굳이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2003년 신체검사 당시 가슴에 있는 흉터를 보고 간호장교들이 군의관에게 보고했다. 피 중령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당시 군의관은 “신체검사를 합격할 수는 없다”며 “다른 지장은 없겠지만 진급에 영향을 주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중 자격 불합격, 일반장교 합격’으로 판정을 받았다.
 
그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부대에선 문제 삼지 않았다. 2004년에는 육군항공학교 학생대대장으로 발령 받아 1년 동안 학생대도 지휘했다. “여성 신체 특징이 조종사 업무수행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건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주위시선과 환경이 문제인 셈이지요.”

학생대장으로 1년쯤 근무한 지난해 5월경 문제가 생겼다. 2005년에도 2004년과 똑같은 신체검사 판정을 받았는데도 “불합격이니까 9월 28일 공중자격심사위원회에 회부 하겠다”는 구두연락이 왔다. 직속상관은 그 전해에는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다. 피 중령은 “근무에 지장을 준 것도 없고 치료받은 사실을 모르지도 않았는데도 그런 연락이 온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피 중령은 “한마디로 ‘괘씸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 항공학교장에게 ‘찍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제 비행스케줄을 상부에서 빼버리곤 했습니다. 당시 항공학교장(현 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의 의지로 위원회 회부돼서 조종사 자격해임을 당했지요. 통상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그 사유로 입원을 시키든 통원치료를 하든 절차를 밟은 다음에 심신장애로 판단되면 조종사 자격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멀쩡한 사람을 조종사 자격 해임을 먼저 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아픈 곳 없이 병원신세

신체검사 결과 불합격을 받았고 사유가 암 병력이니까 병원에서 심신장애여부를 판단하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피 중령은 항공학교장 인사명령으로 졸지에 해임당하고 논산병원에 지난해 10월 19일 입원했다. 이·취임식도 못하고 후임자도 없이 병원에 가게 된 것. 부하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사무실도 그대로 두고 왔다. 물론 짐을 챙기지도 못했다.  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병력을 조사해서 등급을 매기는 과정이었다. 일주일 동안 하는 일 없이 있다가 올해 3월까지 집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논산병원에서 의무검사를 받은 후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장애등급 1~7급은 자동전역이었다. 장애판정이 나오자 육군본부 중앙전공상심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런 와중에 한겨레에 기사가 났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한테 연락이 와서 자초지종을 묻길래 복직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방부에 얘길 했고 이후 군에서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3월 16일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리기로 돼 있었다. 일단 심사보류판정을 받았고 다시 입원 명령이 내려왔다.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결국 4월 23일부터 8월 9일까지 입원해 있었다. 6월 1일까지는 논산병원에 있었고 그 다음은 대전병원에 있었는데 “대전병원은 여성병실이 따로 있고 시설도 더 좋아 지내기가 편했다”고 한다. 8월 9일 의무조사를 다시 했는데 이번에도 심신장애 2급을 받았다.

전역심사를 위해 상해등급 판단을 위한 전공상심사도 다시 했는데 피 중령 상해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왔다. 근무 여부를 결정짓는 장애등급은 2급이라 전역대상인데 막상 연금액수가 걸린 상해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온 것이다. 상해등급은 상이연금 지급과 직결된다. 당시 군의관은 “심신등급 기준과 상이등급 기준은 별개”라며 “피 중령은 보조인도 필요 없고 생활에 지장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퇴원 후 피 중령은 다시 전역대기가 됐다. 의무조사를 하면 국군본부에 보고서를 보내고 그쪽에서 한달에 한번씩 월말에 전공상심의를 한다. 보고서가 육군본부에 올라간 건 8월 17일이었는데 그 전에 이미 전공상심사를 해 놨다고 한다. 원칙대로 하면 9월 전공상심의에 내 경우가 올라가고 전역심사는 10월에 해야 한다. 그럼에도 8월에 전공상심사를 하고 9월에 전역심사를 했다. 결국 피 중령은 9월 14일 전역판정이 나왔다.

명예롭게 전역하고 싶다

인사규정대로 자연스럽게 전역한다 해도 피 중령에게 남은 군 생활은 앞으로 3년 뿐이다. 피 중령은 “내 소원은 오로지 3년간 현역으로 근무하다 명예롭게 전역하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얼핏 피 중령은 여전히 ‘여성’이 아니라 ‘군인’이길 소망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밝힌 “군에 있고 싶은 이유”도 ‘군인’으로서 소명감이다. “군입대는 의무입니다. 원하지 않는 젊은이도 군대에 들어옵니다. 그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장교는 그러라고 있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근무해왔고 그래서 내가 군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 중령의 소망이 이뤄지더라도 3년 후에는 ‘중령’이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30년 가까이 ‘여성’을 걸림돌로 여기고 여성성을 없애도록 강요받는 삶을 살았던 피우진씨가 언제가 사회에 나가서는 온전한 ‘자신’을 되찾기를 희망해 본다.

피 중령은 오는 30일 전남 해남에 있는 땅끝마을을 찾는다. 거기서 시작해 걸어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대략 한 달 동안 걷고 또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24일 오전 11시 4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3호 11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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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일본 우경화는 위험수위&quot;

[한일시민사회포럼] 강혜정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일본이 패전 후 이룩한 ‘전후 민주주의’는 전쟁과 파괴를 반성하면서 이룩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이 위험해 보인다.”

강혜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
강국진기자

강혜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

강혜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은 최근 일본 움직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한국 시민사회도 당사자같은 느낌으로 일본 움직임을 대하게 되기 때문”에 우려는 더 크게 다가온다.

강 위원은 “과거사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쟁점은 없다”며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교과서를 둘러싼 환경, 교육을 둘러싼 환경,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본 내 가치관 등에서 퇴보하는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전쟁 금지와 군대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를 예로 들며 “평화헌법 9조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는 내용이고 선언”이라며 “그것이 흔들린다는 것은 일본사회가 지나온 길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외적으로 표명하느냐와 깊게 관련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강 위원이 주목하는 또다른 문제는 교육기본법이다. 그는 “교육기본법은 과거 전쟁시기 공권력이 교육내용을 좌지우지했던 걸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평화헌법과 한 짝을 이룬다”며 “아베 신조 총리가 내세운 ‘교육재생’이란 공약에서 핵심이 바로 교육기본법 개정이라는 점에서 교과서와 교육을 둘러싼 개악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시민사회가 우경화 흐름을 막아내는데 힘이 부치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 시민사회가 위기감을 크게 느끼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동시에 좌절감도 크게 느낀다”며 “일본 시민운동가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전쟁기념관인 류슈칸 건물 앞에 있는 '특공용사상'. 2차대전 당시 가미가제를 기리는 조각상이다.
강국진기자

전쟁기념관인 류슈칸 건물 앞에 있는 '특공용사상'. 2차대전 당시 가미가제를 기리는 조각상이다.

부분적으로 이런 상황은 고질적인 분열상에서 기인한다. “단체간 분열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진보정당 약화, 노동운동 우경화 등으로 보호막은 갈가리 찢어졌는데 과거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같이 하지 못할 정도로 달라 보이지도 않는데 여전히 분열이 계속되지요. 그런 분열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지요. 통큰 단결이 안되니까 전국차원에서 효과적으로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강 위원은 “일본은 풀뿌리 차원에선 나름대로 효과적이고 영향력있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과 연계가 잘 안된다”며 “우리 단체에서 일본에 있는 여러 지역 단체를 초대하면 일본 국내에서 자기들끼리는 만날 일이 없는 시민운동가들이 우리 단체 주선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제가 느끼는 위기감은 변화방향의 화살표가 어디를 향하느냐에서 나오는 위기감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국정교과서 체계이지만 검정으로 바뀌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요. 지금은 불충분하지만 노력을 통해 변하는 것은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경우가 다르지요. 일본은 국정교과서가 없는 진일보한 체계이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강 위원은 “동북아평화라고 할 때 일본의 변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 변화가 일본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일본 우경화는 일본 시민사회만 관심가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 시민사회도 일본 시민사회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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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방문기, 성찰없는 평화는 공허하다

[한일시민사회포럼] 야스쿠니신사 인상기
야스쿠니에서 느낀 ‘역겨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입구에 육중하게 서 있는 ‘도리’에 들어서서 나올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돈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역겨움’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거부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야스쿠니에서 느끼는 역겨움은 ‘성찰 없는 평화’가 보여주는 섬뜩한 전쟁찬미와 ‘남성성만 내세우는 마초 성향’에서 오는 균형감각 상실 때문이었다.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강국진기자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어머니’ 조각상, 그러나 여성은 없다

류슈칸 앞에는 전쟁에 동원됐다 죽어간 군견과 군마, 심지어 비둘기까지 기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소년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동상도 서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더 사로잡은 것은 ‘어머니’이라 제목을 단 조각상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기모노를 입은 어머니가 서 있다. 오른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다. 어머니 양 옆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 옆에는 일본 군함 모형을 조각한 조형물이 있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파손되거나 침몰한 군함 현황을 표시한 지도가 그 아래 있다. 거기서 류슈칸 입구 쪽으로 가보면 소년 카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조각상이 있다.

국가는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잘 키우라고 강조한다. 잘 키운 아들은 군인이 돼서 군함과 함께 죽거나 카미가제가 돼 죽으라고 한다. 딸은 커서 다시 전쟁에 죽을 아들을 낳아 잘 키우라고 한다. 오빠나 동생처럼 군인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각상에 있는 어머니 모습이 우수에 젖은 눈길로 보이는 것은 혼자 느낌일까.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류슈칸 어디에도 여성은 없었다. 야스쿠니가 강조하고 치켜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그것도 ‘남성 군인’이다. 여성은 오로지 군인들을 위해 후방지원에 동원됐던 군속과 간호사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

류슈칸에서 상영하는 ‘평화를 위한 서약’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어머니는 ‘조국을 위해 자폭하는 군인 아들’을 걱정하고 눈물흘리며 가슴에 묻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조국을 위해 싸워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항상 힘 없고 연약한 여성이다. 전쟁은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강조한다. 한국 군대에서 ‘여성성’은 언제나 ‘욕’이었다.

류슈칸에서 용산 전쟁기념관을 떠올리다

야스쿠니 신사 본전 건물 오른편에는 류슈칸(遊就館)이라는 큼지막한 건물이 있다. 이른바 전쟁기념관이다. 빡빡한 일정 와중에 시간을 내서 야스쿠니신사를 가려고 할 때 누군가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류슈칸만 가 봐도 왜 야스쿠니를 반대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던 그 곳에서 역겨움은 극에 달했다.

그곳에서 나는 용산 전쟁기념관이 머리에 멈돌았다. ‘평화 감수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용산 전쟁기념관과 한국 곳곳에 있는 안보기념관이 류슈칸과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입장료 800엔을 내고 류슈칸 전시실로 들어섰다. 첫 번째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일본인들이 사용했다는 칼과 활, 갑옷 같은 전쟁무기다. 제목부터 ‘일본 무(武)의 역사’다. 전시물은 곧바로 일본 근대로 넘어간다. 개항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쳐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더니 2차세계대전과 패전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것은 모조리 ‘전쟁’ 뿐이다. 마치 일본이란 나라는 개항부터 지금까지 전쟁만 벌인 나라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전시물에 붙어 있는 설명은 ‘성찰 없는 평화’가 왜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한일합방’을 설명하는 내용은 “조선 정부가 일본 통감부에 양국 합방을 요청했고 일본 정부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만주국 건국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오족(五族) 평화를 위해 만주국을 건립했다’고만 써놨다. 심지어 태평양전쟁조차 일본의 침략은 온데 간데 없고 국제정치적 갈등에서 나온 갈등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한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용사들의 사진들’을 지나 마무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전쟁 찬가다. 2차대전 말기 일본군 잠수함은 미군 함정을 향해 돌격하다 전사하고 미군 함대 지휘관은 이들의 애국심에 감동해 이들을 정중하게 장례지낸다는 내용이다. 제목은 더 황당하게도 ‘평화를 위한 서약’이다.  

전시실을 나서면 기념품 판매소가 있는데 그 곳에서 파는 물품조차 자위대가 쓰는 군사용품들이다. 자위대 군모와 무기 모형, 심지어 ‘자위대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항공자위대가 자랑하는 최신 전투기 사진으로 도배한 달력까지. 판매하는 책도 극우적 내용 일색이다.

야스쿠니표 교통안전 부적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시민들은 야스쿠니 본전 앞에 있는 참배장소에서 끊임없이 참배를 한다. 나무함에 돈을 던져넣고 박수를 두 번 친 뒤 고개를 숙인다. 건물 바깥에는 대나무로 울타리처럼 만들어놓은 게 눈에 띈다. 그 대나무 울타리에 하얀 쪽지를 빼곡히 묶어놨다. 심지어 야스쿠니 경내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에도 종이쪽지들이 있었다. 궁금증은 나중에야 풀렸다.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는 거라고 한다.

참배장소 앞 한켠에는 물품판매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신관 옷차림을 한 여성이 파는 물품은 ‘교통안전 부적’이었다. 눈여겨 보니 ‘靖國神社交通安全御守護’라고 써 있다. 큰 부적은 1000엔이나 한다. 야스쿠니신사가 왕실 직속이니 일본 왕실의 권위를 빌어 교통안전을 기원하는 셈이다. 일본인들에게 야스쿠니, 그리고 일본 왕실은 여전히 신통력 있는 존재인 모양이다.

모르고 보면 공원 같은 야스쿠니

야스쿠니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다. 처음 야스쿠니에 들어설 때부터 가장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외국인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는 전쟁기념관보다는 공원에 가까워 보인다.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야스쿠니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한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꼭 붙어앉은 이들은 계속 귓속말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분위기 좋고 조용한 데이트장소일 뿐이다. 도쿄 시내 지하철을 타다가 한 남성이 찬 허리띠가 머리를 스친다. 묵직한 총알이 주렁주렁 달린 딴띠 모양으로 된 허리띠였다.

상념은 새까만 색깔로 통일한 일본 고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이어진다. 곧이어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똑같은 옷차림은 마찬가지인 한국 학생들의 교복도 떠오른다. 대형 서점 역사코너를 가보면 극우성향 고대사 책이 넘쳐나는 한국이 자꾸만 겹치는 것은 왜일까.

2년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평화운동가 진 스톨츠푸스는 “평화는 정의와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일견 평화롭고 깔끔하게 관리한 공원같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나는 “평화는 성찰과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일본인에게도 절실한 얘기지만 한국인에게도 흘려 들을 수 없는 얘기가 아닐까.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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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민사회포럼] 일본의 다문화공생 현황과 과제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일본에서 결혼하는 이들 가운데 일본국적과 외국국적 혹은 외국국적과 외국국적이 결혼하는 비중은 몇 쌍 중에 한 쌍이나 될까요?”

왕휘친 다문화공생센터 대표가 질문했다.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은 제각기 100쌍, 50쌍, 20쌍일 거라고 답했다. 정답은 20쌍이었다. 2002년 현재 일본에서 결혼한 부부 가운데 5%가 다문화가정을 이뤘다. 도쿄는 10쌍 가운데 한 쌍 꼴로 다문화가정이었다. 1999년 통계에 따르면 도쿄도(都)에서 태어난 아기 14명 가운데 한 명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났다.

왕휘친 다문화공생센터 대표는 일본내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교복을 입은 일본초등학들.
강국진기자

왕휘친 다문화공생센터 대표는 일본내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교복을 입은 일본초등학들.

2006년 3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80만3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2%에 달한다. 그 중 53만7천여명이 90일 이상 장기체류자이다. 국제결혼도 급증한다. 2001년 전체 결혼 가운데 4.8%에 불과했던 것이 2005년에는 13.6%로 늘었다.

이에 따라 미등록 장기체류 외국인 노동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왕휘친 대표도 지적했듯이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 모두 이주노동자 문제와 다문화 공생이라는 화두는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다. 지난 13일 ‘다문화 공생과 개인의 자립&평등’을 주제로 한 분과회의에 참석한 한&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서로 경험을 나누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의논했다.

일본측 발제를 맡은 왕휘친 대표 자신이 다문화공생을 온 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중국인이고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일본에 건너와 이후 계속 일본에 거주하면서 다문화공생을 고민하는 단체를 이끌고 있다.

일본에서 외국인등록자는 191만5천여명(2003년 기준)이다. 비정규 입국자를 포함한 장기체류자(오바스테이)는 21만9천여명이다. 일본에서 외국인은 크게 ‘올드 타이머’와 ‘뉴 커머’로 나누는데 올드 타이머는 주로 1952년 5월 이전부터 일본에 사는 조선과 대만 등 옛 식민지 출신자 혹은 그 자손들을 말한다. 80년대부터 장기체류하는 사람을 포함하기도 한다. 뉴 커머는 80년 입관법 개정으로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로 80년대 이후 브라질 등 일본계, 중국 귀국자, 정주나 일반영주  체류자격을 취득하고 일본에 장기 체재하게 된 경우다.

일본 정부는 전통적으로 올드 타이머에게 동화정책을 사용했다. 이는 ‘일본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을 양산했다. 사회적 편견과 생계를 위해 본래 이름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아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드 타이머는 대부분 ‘특별영주’ 자격자인데 2005년 현재 45만명 가량이고 매년 1만명씩 줄고 있다. ‘일반영주’ 자격인 뉴 커머는 해마다 4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34~35만명 가량이었다. 배우자와 정주자는 일본인과 외국인 결혼이나 일본거주 외국인 결혼으로 형성된 이들이다.

왕휘친 대표는 일본내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는 고교 진학을 위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일본인과 똑같은 시험을 쳐야 하는데 외국국적 중에는 낮에 일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외국적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통계자료도 거의 없다.

왕휘친 대표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그 자녀들, 다문화 가정 출신자들은 일본사회에 유익한 자원들”이라며 “일본사회가 그런 인식을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분과회의에 참석한 한 일본 지자체 공무원은 “중앙정부에서 적극적인 대책이 없고 지방정부마다 국제교류센터나 협회를 만들었다”며 “그나마 처음에는 국고보조금이 나왔는데 나중에 없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교류센터 등 사업은 모두 지자체에서 자체로 하고 있다”며 “지방정부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인 상황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의지를 갖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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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정책, 일본을 반면교사로

[한일시민사회포럼] 국익 유혹 버려야 진정한 ODA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한국에서 구미호는 모습을 바꿔 사람을 홀리는 ‘악녀’를 상징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구미호는 그렇지 않다. 선악 개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가치관을 보여주는 존재로 인식한다. 인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해 행동을 공유한다는 것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교류’다.”
왕민 호세대학 국제일본학연구센터 교수는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4차 한일시민사회포럼 전체회의 특별강연에서 상호교류를 유달리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면서 해마다 열리는 한일시민사회포럼은 이번 주제로 ‘인식 공유에서 행동 공유로’를 내세웠다. 흔히들 한국과 일본은 이웃이면서도 멀고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말한다. 한·일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일 시민사회는 서로가 없는 것을 갖고 있기에 가장 좋은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철은 뜨거울 때 때려야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은 ODA에서 50년 역사가 있지만 지금은 식어버렸습니다. 한국의 ODA는 시민사회가 바라는 모습과 격차가 있지만 아직은 미미합니다. 지금 더 강하게 ODA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활용하기 바랍니다.”

지난 12일 ODA를 주제로 열린 자유기획워크숍에서 일본측 발제자였던 나가세 PARC(Pacific Asia Resource Center) 이사는 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지금이 철을 내려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며 ODA개혁에 나설 것을 열정적으로 촉구했다.

강국진기자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철을 때리는 사람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시민운동은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다 이룬 꿈을 너희는 이뤄 달라’고 들릴수도 있는 발언을 그가 한국 시민운동가들에게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1986년 필리핀 민중들은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을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본 기업들이 필리핀 정부에 엄청난 뇌물을 제공했다는 문서가 나와 일본 시민사회를 경악시켰다. 문제는 이 뇌물들이 ODA라는 ‘공적개발원조’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시민사회가 ODA개혁에 나서는 기폭제가 됐다. 나가세씨는 “시민운동이 열심히 활동하기는 했지만 현재 운동이 정체돼 있는게 사실”이라고 털어놓는다. 물론 일본 시민사회가 이룬 성과와 노하우는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다카하시 일본국제자원봉사센터(JVC) 정책담당에 따르면 ODA를 다루는 일본 시민단체는 약 400곳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처럼 정책생산에 치중하는 곳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단체들이 도쿄에 몰려 있는 것도 전국적인 운동을 제약한다. 시민단체들은 외무성과 ODA정책을 다루는 정책협의회를 만들었다. 실효성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꾸준히 ODA활동을 감시하고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억지력을 유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관련 단체들의 연대체인 ODA개혁네트워크 등을 통해 공동조사와 연구를 계속 벌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 ODA정책은 쌍둥이

한국과 일본은 ODA정책에서 쌍둥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 ODA정책이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인 ODA개혁운동이 한국 시민사회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무엇보다 유상원조가 많다는 점이 닮았다. 이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ODA를 활용하려는 의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5년도 일본 ODA 규모는 8천억엔이었고 유상과 무상이 절반씩이었다. 가장 규모가 컸을 때는 1조엔까지 된 적도 있었다. 일본은 앞으로 유상원조를 늘릴 계획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노리는 일본은 ODA를 줄이기는 힘들고 정부 재정압박은 심해지고 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앞으로 전체총액은 그대로 두고 무상원조를 10%씩 줄이는 방식으로 유상원조를 늘리려는 것이다.

나가세씨는 “9.11 이후 일본정부는 더욱 더 미국에 편중된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ODA도 그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 대테러리즘에 따른 분쟁지역에 지원하는 규모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ODA를 어떻게 일본에 이익이 되게 사용할 것인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상원조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일본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ODA 집행 구조가 대단히 복잡하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다카하시씨는 “거의 모든 부처가 관련 예산과 정책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일본정부는 ODA개혁이라는 이름으로 ODA를 총괄하는 부서를 만들려고 한다. 안보와 ODA를 연동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정부 ODA 지원액은 7억4400만달러로 GNI의 0.09%였다. 북한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1977년 시작한 ODA는 양자원조 가운데 무상원조는 외교통상부, 유상원조는 재정경제부, 다자간원조 가운데 무상원조는 국제협력단, 유상원조는 수출입은행이 담당한다. 그 외에도 20여개 부처가 제각각 사업을 집행한다. 원조의 70-80%를 이라크,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에 지원하는데 최빈국은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뿐이다. 김혜경 경실련 국제위원장은 “한국의 유상원조는 한국의 물건을 사게 만들기 위한 원조”라고 꼬집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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