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10/20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20
    야스쿠니 방문기, 성찰없는 평화는 공허하다
    자작나무숲
  2. 2006/10/20
    일본도 외국인자녀 교육권 심각
    자작나무숲
  3. 2006/10/20
    ODA정책, 일본을 반면교사로
    자작나무숲

야스쿠니 방문기, 성찰없는 평화는 공허하다

[한일시민사회포럼] 야스쿠니신사 인상기
야스쿠니에서 느낀 ‘역겨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입구에 육중하게 서 있는 ‘도리’에 들어서서 나올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돈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역겨움’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거부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야스쿠니에서 느끼는 역겨움은 ‘성찰 없는 평화’가 보여주는 섬뜩한 전쟁찬미와 ‘남성성만 내세우는 마초 성향’에서 오는 균형감각 상실 때문이었다.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강국진기자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어머니’ 조각상, 그러나 여성은 없다

류슈칸 앞에는 전쟁에 동원됐다 죽어간 군견과 군마, 심지어 비둘기까지 기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소년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동상도 서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더 사로잡은 것은 ‘어머니’이라 제목을 단 조각상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기모노를 입은 어머니가 서 있다. 오른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다. 어머니 양 옆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 옆에는 일본 군함 모형을 조각한 조형물이 있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파손되거나 침몰한 군함 현황을 표시한 지도가 그 아래 있다. 거기서 류슈칸 입구 쪽으로 가보면 소년 카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조각상이 있다.

국가는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잘 키우라고 강조한다. 잘 키운 아들은 군인이 돼서 군함과 함께 죽거나 카미가제가 돼 죽으라고 한다. 딸은 커서 다시 전쟁에 죽을 아들을 낳아 잘 키우라고 한다. 오빠나 동생처럼 군인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각상에 있는 어머니 모습이 우수에 젖은 눈길로 보이는 것은 혼자 느낌일까.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류슈칸 어디에도 여성은 없었다. 야스쿠니가 강조하고 치켜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그것도 ‘남성 군인’이다. 여성은 오로지 군인들을 위해 후방지원에 동원됐던 군속과 간호사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

류슈칸에서 상영하는 ‘평화를 위한 서약’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어머니는 ‘조국을 위해 자폭하는 군인 아들’을 걱정하고 눈물흘리며 가슴에 묻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조국을 위해 싸워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항상 힘 없고 연약한 여성이다. 전쟁은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강조한다. 한국 군대에서 ‘여성성’은 언제나 ‘욕’이었다.

류슈칸에서 용산 전쟁기념관을 떠올리다

야스쿠니 신사 본전 건물 오른편에는 류슈칸(遊就館)이라는 큼지막한 건물이 있다. 이른바 전쟁기념관이다. 빡빡한 일정 와중에 시간을 내서 야스쿠니신사를 가려고 할 때 누군가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류슈칸만 가 봐도 왜 야스쿠니를 반대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던 그 곳에서 역겨움은 극에 달했다.

그곳에서 나는 용산 전쟁기념관이 머리에 멈돌았다. ‘평화 감수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용산 전쟁기념관과 한국 곳곳에 있는 안보기념관이 류슈칸과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입장료 800엔을 내고 류슈칸 전시실로 들어섰다. 첫 번째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일본인들이 사용했다는 칼과 활, 갑옷 같은 전쟁무기다. 제목부터 ‘일본 무(武)의 역사’다. 전시물은 곧바로 일본 근대로 넘어간다. 개항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쳐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더니 2차세계대전과 패전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것은 모조리 ‘전쟁’ 뿐이다. 마치 일본이란 나라는 개항부터 지금까지 전쟁만 벌인 나라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전시물에 붙어 있는 설명은 ‘성찰 없는 평화’가 왜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한일합방’을 설명하는 내용은 “조선 정부가 일본 통감부에 양국 합방을 요청했고 일본 정부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만주국 건국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오족(五族) 평화를 위해 만주국을 건립했다’고만 써놨다. 심지어 태평양전쟁조차 일본의 침략은 온데 간데 없고 국제정치적 갈등에서 나온 갈등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한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용사들의 사진들’을 지나 마무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전쟁 찬가다. 2차대전 말기 일본군 잠수함은 미군 함정을 향해 돌격하다 전사하고 미군 함대 지휘관은 이들의 애국심에 감동해 이들을 정중하게 장례지낸다는 내용이다. 제목은 더 황당하게도 ‘평화를 위한 서약’이다.  

전시실을 나서면 기념품 판매소가 있는데 그 곳에서 파는 물품조차 자위대가 쓰는 군사용품들이다. 자위대 군모와 무기 모형, 심지어 ‘자위대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항공자위대가 자랑하는 최신 전투기 사진으로 도배한 달력까지. 판매하는 책도 극우적 내용 일색이다.

야스쿠니표 교통안전 부적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시민들은 야스쿠니 본전 앞에 있는 참배장소에서 끊임없이 참배를 한다. 나무함에 돈을 던져넣고 박수를 두 번 친 뒤 고개를 숙인다. 건물 바깥에는 대나무로 울타리처럼 만들어놓은 게 눈에 띈다. 그 대나무 울타리에 하얀 쪽지를 빼곡히 묶어놨다. 심지어 야스쿠니 경내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에도 종이쪽지들이 있었다. 궁금증은 나중에야 풀렸다.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는 거라고 한다.

참배장소 앞 한켠에는 물품판매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신관 옷차림을 한 여성이 파는 물품은 ‘교통안전 부적’이었다. 눈여겨 보니 ‘靖國神社交通安全御守護’라고 써 있다. 큰 부적은 1000엔이나 한다. 야스쿠니신사가 왕실 직속이니 일본 왕실의 권위를 빌어 교통안전을 기원하는 셈이다. 일본인들에게 야스쿠니, 그리고 일본 왕실은 여전히 신통력 있는 존재인 모양이다.

모르고 보면 공원 같은 야스쿠니

야스쿠니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다. 처음 야스쿠니에 들어설 때부터 가장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외국인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는 전쟁기념관보다는 공원에 가까워 보인다.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야스쿠니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한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꼭 붙어앉은 이들은 계속 귓속말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분위기 좋고 조용한 데이트장소일 뿐이다. 도쿄 시내 지하철을 타다가 한 남성이 찬 허리띠가 머리를 스친다. 묵직한 총알이 주렁주렁 달린 딴띠 모양으로 된 허리띠였다.

상념은 새까만 색깔로 통일한 일본 고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이어진다. 곧이어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똑같은 옷차림은 마찬가지인 한국 학생들의 교복도 떠오른다. 대형 서점 역사코너를 가보면 극우성향 고대사 책이 넘쳐나는 한국이 자꾸만 겹치는 것은 왜일까.

2년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평화운동가 진 스톨츠푸스는 “평화는 정의와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일견 평화롭고 깔끔하게 관리한 공원같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나는 “평화는 성찰과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일본인에게도 절실한 얘기지만 한국인에게도 흘려 들을 수 없는 얘기가 아닐까.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6면에 게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본도 외국인자녀 교육권 심각

[한일시민사회포럼] 일본의 다문화공생 현황과 과제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일본에서 결혼하는 이들 가운데 일본국적과 외국국적 혹은 외국국적과 외국국적이 결혼하는 비중은 몇 쌍 중에 한 쌍이나 될까요?”

왕휘친 다문화공생센터 대표가 질문했다.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은 제각기 100쌍, 50쌍, 20쌍일 거라고 답했다. 정답은 20쌍이었다. 2002년 현재 일본에서 결혼한 부부 가운데 5%가 다문화가정을 이뤘다. 도쿄는 10쌍 가운데 한 쌍 꼴로 다문화가정이었다. 1999년 통계에 따르면 도쿄도(都)에서 태어난 아기 14명 가운데 한 명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났다.

왕휘친 다문화공생센터 대표는 일본내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교복을 입은 일본초등학들.
강국진기자

왕휘친 다문화공생센터 대표는 일본내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교복을 입은 일본초등학들.

2006년 3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80만3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2%에 달한다. 그 중 53만7천여명이 90일 이상 장기체류자이다. 국제결혼도 급증한다. 2001년 전체 결혼 가운데 4.8%에 불과했던 것이 2005년에는 13.6%로 늘었다.

이에 따라 미등록 장기체류 외국인 노동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왕휘친 대표도 지적했듯이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 모두 이주노동자 문제와 다문화 공생이라는 화두는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다. 지난 13일 ‘다문화 공생과 개인의 자립&평등’을 주제로 한 분과회의에 참석한 한&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서로 경험을 나누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의논했다.

일본측 발제를 맡은 왕휘친 대표 자신이 다문화공생을 온 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중국인이고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일본에 건너와 이후 계속 일본에 거주하면서 다문화공생을 고민하는 단체를 이끌고 있다.

일본에서 외국인등록자는 191만5천여명(2003년 기준)이다. 비정규 입국자를 포함한 장기체류자(오바스테이)는 21만9천여명이다. 일본에서 외국인은 크게 ‘올드 타이머’와 ‘뉴 커머’로 나누는데 올드 타이머는 주로 1952년 5월 이전부터 일본에 사는 조선과 대만 등 옛 식민지 출신자 혹은 그 자손들을 말한다. 80년대부터 장기체류하는 사람을 포함하기도 한다. 뉴 커머는 80년 입관법 개정으로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로 80년대 이후 브라질 등 일본계, 중국 귀국자, 정주나 일반영주  체류자격을 취득하고 일본에 장기 체재하게 된 경우다.

일본 정부는 전통적으로 올드 타이머에게 동화정책을 사용했다. 이는 ‘일본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을 양산했다. 사회적 편견과 생계를 위해 본래 이름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아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드 타이머는 대부분 ‘특별영주’ 자격자인데 2005년 현재 45만명 가량이고 매년 1만명씩 줄고 있다. ‘일반영주’ 자격인 뉴 커머는 해마다 4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34~35만명 가량이었다. 배우자와 정주자는 일본인과 외국인 결혼이나 일본거주 외국인 결혼으로 형성된 이들이다.

왕휘친 대표는 일본내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는 고교 진학을 위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일본인과 똑같은 시험을 쳐야 하는데 외국국적 중에는 낮에 일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외국적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통계자료도 거의 없다.

왕휘친 대표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그 자녀들, 다문화 가정 출신자들은 일본사회에 유익한 자원들”이라며 “일본사회가 그런 인식을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분과회의에 참석한 한 일본 지자체 공무원은 “중앙정부에서 적극적인 대책이 없고 지방정부마다 국제교류센터나 협회를 만들었다”며 “그나마 처음에는 국고보조금이 나왔는데 나중에 없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교류센터 등 사업은 모두 지자체에서 자체로 하고 있다”며 “지방정부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인 상황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의지를 갖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7면에 게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ODA정책, 일본을 반면교사로

[한일시민사회포럼] 국익 유혹 버려야 진정한 ODA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한국에서 구미호는 모습을 바꿔 사람을 홀리는 ‘악녀’를 상징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구미호는 그렇지 않다. 선악 개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가치관을 보여주는 존재로 인식한다. 인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해 행동을 공유한다는 것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교류’다.”
왕민 호세대학 국제일본학연구센터 교수는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4차 한일시민사회포럼 전체회의 특별강연에서 상호교류를 유달리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면서 해마다 열리는 한일시민사회포럼은 이번 주제로 ‘인식 공유에서 행동 공유로’를 내세웠다. 흔히들 한국과 일본은 이웃이면서도 멀고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말한다. 한·일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일 시민사회는 서로가 없는 것을 갖고 있기에 가장 좋은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철은 뜨거울 때 때려야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은 ODA에서 50년 역사가 있지만 지금은 식어버렸습니다. 한국의 ODA는 시민사회가 바라는 모습과 격차가 있지만 아직은 미미합니다. 지금 더 강하게 ODA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활용하기 바랍니다.”

지난 12일 ODA를 주제로 열린 자유기획워크숍에서 일본측 발제자였던 나가세 PARC(Pacific Asia Resource Center) 이사는 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지금이 철을 내려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며 ODA개혁에 나설 것을 열정적으로 촉구했다.

강국진기자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철을 때리는 사람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시민운동은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다 이룬 꿈을 너희는 이뤄 달라’고 들릴수도 있는 발언을 그가 한국 시민운동가들에게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1986년 필리핀 민중들은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을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본 기업들이 필리핀 정부에 엄청난 뇌물을 제공했다는 문서가 나와 일본 시민사회를 경악시켰다. 문제는 이 뇌물들이 ODA라는 ‘공적개발원조’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시민사회가 ODA개혁에 나서는 기폭제가 됐다. 나가세씨는 “시민운동이 열심히 활동하기는 했지만 현재 운동이 정체돼 있는게 사실”이라고 털어놓는다. 물론 일본 시민사회가 이룬 성과와 노하우는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다카하시 일본국제자원봉사센터(JVC) 정책담당에 따르면 ODA를 다루는 일본 시민단체는 약 400곳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처럼 정책생산에 치중하는 곳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단체들이 도쿄에 몰려 있는 것도 전국적인 운동을 제약한다. 시민단체들은 외무성과 ODA정책을 다루는 정책협의회를 만들었다. 실효성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꾸준히 ODA활동을 감시하고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억지력을 유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관련 단체들의 연대체인 ODA개혁네트워크 등을 통해 공동조사와 연구를 계속 벌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 ODA정책은 쌍둥이

한국과 일본은 ODA정책에서 쌍둥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 ODA정책이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인 ODA개혁운동이 한국 시민사회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무엇보다 유상원조가 많다는 점이 닮았다. 이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ODA를 활용하려는 의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5년도 일본 ODA 규모는 8천억엔이었고 유상과 무상이 절반씩이었다. 가장 규모가 컸을 때는 1조엔까지 된 적도 있었다. 일본은 앞으로 유상원조를 늘릴 계획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노리는 일본은 ODA를 줄이기는 힘들고 정부 재정압박은 심해지고 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앞으로 전체총액은 그대로 두고 무상원조를 10%씩 줄이는 방식으로 유상원조를 늘리려는 것이다.

나가세씨는 “9.11 이후 일본정부는 더욱 더 미국에 편중된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ODA도 그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 대테러리즘에 따른 분쟁지역에 지원하는 규모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ODA를 어떻게 일본에 이익이 되게 사용할 것인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상원조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일본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ODA 집행 구조가 대단히 복잡하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다카하시씨는 “거의 모든 부처가 관련 예산과 정책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일본정부는 ODA개혁이라는 이름으로 ODA를 총괄하는 부서를 만들려고 한다. 안보와 ODA를 연동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정부 ODA 지원액은 7억4400만달러로 GNI의 0.09%였다. 북한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1977년 시작한 ODA는 양자원조 가운데 무상원조는 외교통상부, 유상원조는 재정경제부, 다자간원조 가운데 무상원조는 국제협력단, 유상원조는 수출입은행이 담당한다. 그 외에도 20여개 부처가 제각각 사업을 집행한다. 원조의 70-80%를 이라크,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에 지원하는데 최빈국은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뿐이다. 김혜경 경실련 국제위원장은 “한국의 유상원조는 한국의 물건을 사게 만들기 위한 원조”라고 꼬집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7면에 게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