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시대

행인[100일] 에 관련된 글.

#1.

 

애초 잘 될 것이라는 기대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거지만, 역시나 미디어발전위원횐가 뭔가 하는 위원회는 이대로 쫑 났다. 그놈의 사회적 합의기구 운운할 때부터 웃겼던 거는, 기왕에 사회적 합의기구 역할을 해야할 국회의원들이 지들 책임 지지 않으려고 벼라별 수작을 다 부린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가리판이 되는 와중에 나경원은 국민이 무식하야 여론조사의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그러면 그렇게 무식한 국민들에게 국회의원 투표는 왜 하도록 하는지 원...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지만, 나경원이기에 가능하다. 그동안의 전례를 보았을 때, 예컨대 주어 없는 문장의 함의에 대한 언어학 이론의 새 장을 열어 제낄 때부터 그 가능성을 여지없이 보아왔던 거였다. 이 대목에서 박수, 짝짝짝...

 

문제는 이러한 개구라신공이 비단 나경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건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 사고방식의 문제다. 광범위하게 범위를 넓혀 보자면, 한반도 이남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대부분이 이런 인식장애현상을 겪고 있다. 쉬운 예로, 이명박 죽일놈이라는 생각이 이제 보편성을 띨 정도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프리미엄이 어떻게 변동하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 역시 보편적이라는 것. 어차피 개발동맹의 일원인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나경원식 사고방식이 몸에 베어버린 것은 아닌지.

 

 

#2.

 

장삼이사에게 이 책임을 다 돌린다는 것은 정치질 하는 인간들이 이게 다 국민성 때문이라고 책임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 다시 정치질 하는 정객들에게 관심을 돌려보자. 그렇다면 적어도 국민이 무식하므로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에 대해 맞설 유일한 정치세력 민주당의 수준은 어떤가?

 

씁쓸한 일이지만 함량미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껏 한다는 것이 노무현정신계승 운운하는 차원이라면 말 다한 거. "다시 노무현으로"라는 이 구호는 아직도 비통한 마음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감성적 접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 바로 그 구호는 또다시 이명박이라는 물건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국 이명박의 삽질과는 다른 뭔가를 내놔야 하는데, 기껏 4대강 살리기로 포장된 대운하 반대 정도로 가닥을 잡고 있는 민주당은, 기실 그 내부적으로도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송영길. 경인운하의 문제가 시시각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송영길, 더 나가 송영길이 속해있는 민주당은 여기에 대해 아리까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송영길은 자신의 홈페이지에다가 대놓고 경인운하를 찬성한다는 글을 올려놓고 있다. 게다가 그 글이 풍기는 뉘앙스는 "경인운하 까는 쉑들은 무식한 쉑들이에여" 이런 종류다. 웃기는 것은 송영길이 경인운하를 찬성하는 논리가 이명박이 대운하를 하겠다는 논리와 판박이라는 것. 여기서 느껴지는 이 아련한 데자뷰의 원류는? 송영길이 경인운하를 옹호하는 논리와 나경원이 미디어법 관련 여론조사를 기피하는 논리가 매우 흡사하다. 둘 다 국민이 무식해서 잘 모른다는 거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송영길은 민주당, 나경원은 한나라당.

 

 

#3.

 

송영길이 경인운하를 찬성하는 논리에 대한 반박은 도처에 올라와 있고,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패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영원한 행인의 ㅈ ㅂ 시스템클럽 지만원 아좌씨조차 논리정연하게 경인운하 반대하고 있다는 것. 이럴 때 보면 이냥반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오락 가락...) 바트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은 다른 것이 아니다. 왜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잘 하는 것인냥 포장질을 하느냐는 것. 결국 이것들은 인민들을 호구로 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 어차피 건당 수수료 30원을 놓고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드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은 하나의 헤프닝 정도로 치부해야 하는 걸까? 정치의 문제가 결국 사회생활 전반의 현상으로 발현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런 식의 회피모드는 별로 온당치 않을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 대중이 회피할 수 없는 상황 하나 더 보자.

 

철도노조가 소위 "준법투쟁"을 하겠단다. 이거 가지고 또 난리 법석을 피우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드는 것은 어째서 "준법"을 하겠다는 것이 투쟁의 방식이 될 수 있는지, 또한 "준법"을 하겠다는데 그걸 왜 처벌하겠다는 건지, 이거이 궁금하다는 거다.

 

시위중 농민의 사망을 유발하여 옷을 벗은 허준영이 낙하산으로 떨어진 곳이 철도인데, 거기서 하는 짓은 결국 사람 짜르는 거. 일은 늘리면서 사람은 짜르겠다는 이 고약한 발상은 IT산업에 투여될 돈 다 빼돌려 삽질에 투하하면서 왜 우리는 닌텐도를 못 만드냐고 힐난하던 이명박의 발상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래서 철도노조가 택한 것은 파업도 아니고 태업도 아니고 준법투쟁.

 

웃기는 것은 법치주의를 입에 달고 살면서 준법하라고 난리버거지를 치는 이 정권과 그 하수인인 검경이 준법하겠다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다는 거. 아무리 봐도 재밌다. 물론 어이없게 재밌다. 이건 뭐 코메디도 아니고...

 

 

#4.

 

이동관이 막장드라마를 비판하면서 방송개혁을 운운하는 걸 보면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웃었을 거다. 막장드라마는 아무리 개막장을 가더라도 보는 이들 시간 땜빵이나 하게 해주지, 이건 뭐 삽질 덕후들이 모여 앉아 오덕질하고 있는 정권은 어디서 떨어진 막장정권이냔 말이다. 시간이 아깝게...

 

물론, PD들이 달려 갈 때 뻘쭘히 물러나서 법대로 하겠다고 웅얼거리던 엄기영이 막상 밥그릇 문제가 터지자 바로 발끈하는 모습도 웃기긴 하다. 이건 뭐 넘어가고, 전반적으로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현상들이 마구 벌어지는 이 세태는 말 그대로 막장 내지 말세를 느끼게 하는 수준이다. 이래서야 원 내일 아침에 뭔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오늘 일을 준비하겠는가?

 

이런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위해 마침 청와대가 오는 8월에 "사회통합위원회"를 발족한단다. 내용을 들여다보자니, 뭐 특별한 콘텐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언제나처럼 대통령 이명박이 하는 얘기는 홍보가 잘 안되서 그렇다는 것. 결국 이 위원회의 기본 성격은 국정홍보처의 역할.

 

소통을 위해 트위터를 이용할 생각이 있다고 했던 이명박은 많은 사람들이 누누히 지적하듯, 자신의 문제가 통신망의 기술적 문제가 아닌 콘텐츠에 있다는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 이쯤 되면 도대체 누가 무식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가? 이 무식의 망망대해에 "사회통합위원회"라는 쪽배를 띄워 만인이 나아갈 바를 밝히겠다는 숭고한 바보선언. 바람은 불지요, 구름은 몰려 오지요, 파도는 높아지지요, 도대체 이 폭풍우치는 망망대해를 나침반도 없이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는 쪽배 하나로 헤쳐나가 보겠다는 이 발상. 아 씨바, 노 대신 삽으로 물을 저어볼라나...

 

 

#5.

 

하늘이 우라지게 맑은 날이다. 장마가 온다더니 이명박 보기 싫어 다시 빠져 나갔나... 그러게 올해부터 장마예보 안 한다더니 기상청은 왜 말 바꿔서 장마예보하고 쥐랄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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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2:45 2009/06/2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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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06/24 03:34

    행인, 모순의 시대 (2009.6.23)에 대한 단상. 1. "이명박 죽일놈이라는 생각이 이제 보편성을 띨 정도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프리미엄이 어떻게 변동하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 (...)" 이 지적이야말로 현 대한민국의 사회정치경제적 제문제의 근본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트 프리미엄에 집착하는 욕망, 소박해서 더 처절하게 뼈속까지 들러붙은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이 세속적 욕망은 어떤 정치적인 쇼크...

  1. 노 대신 삽 -ㅁ-)d

  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여기까지 찾아주셔서 제안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기획에 대해선 이미 당을 통해 확인한 바가 있구요. 다만 저는 이 기획에 참여하고싶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더랬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기획이 가지고 있는 선의는 이해하지만 동의하지는 못하겠군요. 더구나 그 심사위원단이라니... 아무튼 기획이 훌륭히 진행되시길 바라면서 다른 기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3. 행인님 덕분에 지대로 "개그의 시대"도 되는 거 같아요. 개그에서 안 끝나는 게 문제겠지만. ㅠ

    • 제 개그를 이해해주시는 몇 안 되는 분들 중 적린님이 계셨군요. 감솨합니다. ^^ 개그가 개그로 끝나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4. 댓글이 길어져서 트랙백 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