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리장님의 [정신 못차리는 청와대 찌라시를 받다] 에 관련된 글.

정문수 경제보좌관. 언젠가 심상정 의원에게 서민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거 아니냐고 공박을 당하자 기껏 하는 말이 "나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다..." 이래가지고 좌중으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장본인. 청와대 경제보좌관인 동시에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장이라는 직함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출세했다고 봐야하나 어쩌나...

 

이분, FTA와 관련해서 틈만 나면 뻘타를 날리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뻘타를 친다. "햄버거와 유토피아 : 한미 FTA의 진실"이라는 이분의 글 한편이 2006년 장마철 내렸던 비보다 더욱 강력한 파괴력으로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미 몇 달 전에 개방만이 살길이라는 취지의 주옥같은 한미 FTA 찬양글을 올리면서 여러 사람 황당하게 만든 전력이 있는 분인지라 이번 일이 그닥 새삼스럽거나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구라를 까도 어느 정도껏 까야지, 극강의 개구라신공을 선량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날리면 바로 싸대기가 날아가는 법이다.

 

리장님이 꼼꼼한 비판을 날려주셨으므로 일일이 검토하는 것은 피하기로 하고 다만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기 어린 시절에 가난함을 몸소 겪었던 이분이 판단하고 있는 오늘날의 농업현실 및 한미 FTA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해보자.

 

4대 선결조건에 대해 이분, 전보다는 많이 전향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거 없다"고 쌩까던 자세를 벗어나 끝까지 4대 선결조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표현한다. "4대 선결조건이라는 것은 사실 FTA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연하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던 이 문제들, 한미 FTA가 아니었더라도 진작에 해결했어야 한다. 미국애들에게 "다신 이야기도 꺼내지 마~!"라고 했어야 할 문제들인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해결했나?

 

이 중, 쇠고기 수입문제만 보자.

정문수 보좌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잘 아시다시피 쇠고기 수입을 제한한 것은 광우병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광우병 위험을 고려한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이 충족되면 수입을 재개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미 일본, 대만, 홍콩 등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였습니다. 무슨 선결조건이라 할 사안이 아닙니다."

 

마침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된 문건을 하나 냈다.

오마이뉴스 기사 "정부의 한미 FTA 광고에 숨겨진 진실"

사실 이 기사에 나와 있는 몇 줄만 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일단의 위험성에 대해선 엄청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다른 거 다 제끼고 미국의 광우병 검역체계만 먼저 살펴보자. 시민행동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광우병 검사의 대상이 되는 소는 도축되는 소의 1%에 불과하다. 이것은 일본이 24개월 이상 되는 전체의 도축소와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에 대해 검역을 하고 있는 것에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유럽 역시 30개월 이상 된 모든 소와 광우병 의심 소에 대해 전면적인 광우병 조사를 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연맹이 2006년 미국 농무부의 감사보고서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미국 농무부가 검사한 소들은 그 나이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검사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하고 특히 7살 이상 된 소들에 대해선 어디에도 검사를 했다는 근거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또한 광우병 위험지역의 소들에 대한 충분한 샘플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보고에 따르면 중추신경계질환의 증상을 보이는 소들을 대상으로 검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아다고 한다. 한편 농무부가 검사한 소들 중 87%는 이미 정제가공시설에 도착하기 전에 불분명한 이유로 죽은 상태였다고 한다.

 

정문수 보좌관은 일본, 대만, 홍콩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마당에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뭐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인 등뼈가 발견되었고, 수입조건이었던 20개월 미만의 소가 아니라 30개월 된 소가 수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다시금 전면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홍콩에서도 수입조건이었던 뼈 없는 쇠고기가 아니라 뼈가 붙은 쇠고기가 발견되면서 수입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런데 일본과 홍콩에 수입되었던 미국산 쇠고기에는 어김없이 미국 정부의 검역관들이 찍은 안전검사필증이 부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상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의 글을 참조)

 

이쯤되면 정문수 보좌관의 저 결의에 찬 항변의 목소리가 실상은 극강의 개구라신공에 불과하다는 것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때, 우리의 정문수 보좌관은 또다시 가난한 농민의 아들 답게 농촌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한미 FTA에 따른 관세인하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더라도 상당부분은 이미 수입되고 있는 중국산 등 다른 국가의 농산물을 대체할 가능성이 큽니다. ... 우리 농산품의 경우 신선도 유지가 필요한 채소류 등은 경쟁력이 있으며, 쇠고기 등 축산물이나 사과 등 과일은 가격 차이는 있으나 품질 고급화 등을 통해 시장을 차별화 할 경우 경쟁해 볼만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정문수 보좌관은 이미 우리 나라 안에 중국산 농산물 등 외국 농산물이 수입되고 있고, 미국산이 들어와봐야 이러한 다른 국가들의 농산물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우리 농산물, 다른 국가의 농산물과 게임이 되지 않아 경쟁력을 상실했다. 시골서 포도농사짓고 있던 내 친구넘, 칠레산 포도가 와장창 쏟아져 들어오면서 "품질고급화" 노력과는 상관 없이 폭삭 망했다.

 

결국 정문수 보좌관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 농산물이 미국산 농산물과 경쟁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거다. 전제가 그렇게 된 마당에 "품질 고급화"니 "신선도 유지"니 하는 이야기는 죄다 헛소리가 되고 만다.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냉장포장되어 들어오는 외국산 농산물, 신선도 제대로다. 지금이 아메리카에서 산채로 소를 싣고 유럽으로 가던 16세긴줄 아나...

 

정문수 보좌관이 앞서 펼쳤던 개방에 대한 피끓는 절규 속에 이런 글도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전업농, 유기농 등 농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앞으로는 대외 개방에 따른 농업문제가 아닌 생활공간인 농촌문제로서 도, 농이 상생하는 균형발전전략으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

 

전업농? 인구 대비 8%로 추산되는 농민들은 전업농이 아니고 무슨 알바 뛰는 셈 치고 농사짓냐? 유기농? 그놈의 유기농, 쌀개방 문제때문에 전국이 들썩거리던 YS 시절부터 앞으로 살길은 유기농이라고 온통 설레발 치던 놈들, 지금 다 어디 숨었다니? 도대체 유기농이 농업의 새로운 활로로 등장한 게 언제적 이야기며, 그 수많은 시간이 흘러간 동안 유기농 해서 대박터뜨렸다는 사람 코빼기도 안보이는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다는 정문수 보좌관. 일찍 출세하여 가난을 극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농사짓던 집안 식구들이 죄다 농촌 떠난지가 오래되서인지는 모르겠으되 시덥잖게 농촌 사정도 모르면서 농업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품세는 아무리 좋게 볼라고 해도 고까울 뿐이다. 이런 사람이 청와대 들어가서 유기농이니 뭐니 하는 동안 작년 그 추운 날에 애꿎은 농민 두분이 비명횡사를 했다.

 

한미 FTA가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짐 싸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낫다. 거기서 자리 잡고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서 미국산 차 타고 신선한 미국산 농산물 먹으면서 헐리우드 공장에서 찍어나온 미국산 영화를 보며 여생을 즐겁게 사시면 된다. 한미 FTA 반대투쟁 하는 사람들도 우리 경제여건에서 '개방'이라는 화두가 가지고 있는 절박한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 절박함을 알면서도 결국 한쪽의 절박함을 이유로 다른 한쪽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목소리를 높이는 거다.

 

미국에게 개방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당신의 귀를 개방하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가난한 농민의 자제로서 이만큼 출세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더 욕보기 전에 후딱 입 닥치고 안 보이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 좋다. 청문회에 기꺼이 서겠다고? 당신은 청문회에 서서 자기 변명만 하고 총총히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당신의 청문회를 위해 죽어나가는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은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도 없이, 그럴만한 시간도 없이 쪽박차고 거리로 나앉았다가 찬서리 맞으며 죽어가야 한다. 배가 부르다 못해 배 찢어지는 소리는 그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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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6 05:46 2006/07/26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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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문수씨... 농민의 자식은 농민의 자식이되 부농 아니면 지주의 자식이었나봐요 >_<;; 우리나라 정부는 뭐 개방 한다고 해놓고 식량자급률목표치법제화 하자는 거도 무시하고, 농협 정책은 개판으로 하면서 경쟁력 가지자고 하고, 유기농 하자면서 지원도, 대책도, 비전도 없고... 그러면서 무한경쟁 하자는건 대체 무슨 심뽀인지... 칼 든 사람하고 싸우는데 무기는 커녕 속옷만 걸치고 싸우는거도 아니고... 정신 나간 인간들;;

  2. 세상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치가 있는 듯.

  3. 에밀리오/ 글게 말여요... ㅠㅠ

    말걸기/ 정말 그런 이치가 따로 있는 걸까...

  4. 정문수 이 사람 혹시 386ㅅㅔ대라고 떠벌리는 사람 아니에요? 전북에서 유기농 하시던 농민 분들 거의 파산 직전인 것 같습디다. 행인 님, 이메일 주소 좀 가르쳐 주세요. 혹시 민주노동당 당원 분들 중에서 유기농 쌀과 농작물 구입하실 수 있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전북 유기농협회(?)에서 일하시는 분한테 메일 왔는데, 메일 내용 보내드리려고요. 그래서 행인 님께서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좀 올려 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부탁 드립니다.

  5. 이재유/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finger@kdlp.org
    입니다.
    정문수라는 사람, 전혀 현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요. 유기농... 진짜 어이가 없어서리...

  6. 사실 농민의 자식이라는 말은 저에게 참 욕으로 들리네요. 지금도 촌부의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말입니다. 암튼 경제보좌관이란 작자가 하는 말 꼬라지를 보면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ㅡㅡ:
    ;;

  7. 부모 등에 칼을 꼽는 자녀도 있는 법이죠...

  8. 리장/ 그러게 말입니다. 리장님의 심정이 노가다꾼의 자식으로, 한 때는 노가다꾼으로 살아온 제가 포스코 사태를 보는 관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커/ 커허....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