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라고 무시하는 건가?

해방누리님의 [0719 포스코 투쟁 총정리] 에 관련된 글.

오마이뉴스의 기사 "한 달에 '400'씩 벌면 거리로 나왔겠는가"를 보다가...

 

며칠 전 휴게실에 굴러다니는 조선찌라시를 보다가 하루 종일 기분이 잡친 기억이 있다. 사설란에 건설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농성과 관련한 글이었는데, 이게 과연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쓴 글인지 동네 양아치가 쓴 글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다. 그럴싸한 용어로 포장된 욕지거리... 그래, 글 배운 넘의 티는 그렇게 내는 거다.

 

뱅쿠버에서 묵었던 숙소는 다운타운 동쪽 끝자락에 있는, 그 동네에서 가장 싼 유스호스텔이었다. 말이 그럴싸해서 유스호스텔이지 거의 남한 어디 지역 구석에 있는 여인숙 비슷한 수준이었다. 숙소 옆에는 한창 건물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매일 노동자들이 말 그대로 '노가다'를 하고 있었고, 여기서 '노가다' 뛰면 얼마나 받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뭐 그랬다.

 

하루는 뭔가 이색적인 것을 발견했는데, 공사장 윗쪽 철근이 튀어나온 곳에 형형색색의 작은 공들이 떠 있는 거다. 이게 뭘까 하고 자세히 보니까 철근 끄트머리 마다 작은 공으로 안전 캡을 씌워놓은 것이었다. 작업진행이 되지 않는 구역에는 항상 저렇게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는다. 실제 그 위쪽으로는 아무런 구조물이 올라간 것이 없었고, 사람들도 다른 구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사고같은 것은 날 이유가 없을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일일이 철근 끄트머리마다 캡을 씌웠고 사고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가다' 뛸 때 그 삐죽삐죽 튀어나온 철근들이 무서워보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안전장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더 희안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뱅쿠버는 체류기간 내내 구름이 끼지 않을 정도로 화창한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당연히 '노가다판'에 '노가다꾼'들이 땀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어야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현장에 작업인부가 보이질 않는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힌두교 신자처럼 보이는 인도인 현장관리자만 의자 내놓고 파리 날리고 있는 거다. 그러더니 그 이튿날도 작업장은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아하, 이거 건설업체가 부도났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튿날은 또 멀쩡히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다. 문득, 짚히는 것이 있어 날짜를 계산해봤더니 월요일이었다. 즉 이 '노가다판' 일꾼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거다. 한국같으면 노가다꾼들에게는 비오는날이 노는 날인데, 여기 작업자들은 토요일, 일요일이 휴일인 거다. 비오는 날은 우천관계로 어쩔 수 없이 휴무를 하겠지만서도 어쨌든 이 동네에선 노가다도 주 5일 근무로다...

 

게다가 이 동네에서는 노가다도 '정상근무' 한다. 행사 참여하고 돌아오면 오후 5시나 6시쯤 되는데 와 보면 이미 공사장의 하루 업무는 종료되어 있다. 낮동안 일하고 저녁되면 어김없이 퇴근하는 거다. 물론 한국 노가다판에서 종종 벌어지는 '야리끼리' 같은 것은 없겠지만,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들이나 노가다판 들통지는 사람들이나 일하는 시간과 기준은 똑같이 적용되는 거다.

 

원래 뱅쿠버에서 있었던 World Peace Forum의 둘째날 프로그램은 일요일날 있었다. 행사지인 UBC까지는 노선버스를 타야되는데, 시간 널널하기에 천천히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왠걸, 버스가 오질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게다가 버스 기다리는 승객들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다. 허겁지겁 현지 버스 노선 안내책자를 들고 안돌아가는 머리로 영어로 된 안내문을 계속 읽다 보니 이 동네에서는 일부 노선버스가 주 5일 운행이다.... 노선 버스도 주 5일 근무제라뉘...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결국 택시를 잡아 타는 바람에 예산에 엄청난 차질을 초래하고야 말았지만 생각할 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했던 건설노동자들, "노가다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그들의 절규가 왜 이제까지 절규로 남았어야 했을까... 노가다로 학비 벌었던 나조차도 혹시 "노가다는 비오는 날이 노는 날"이라는 이 비정상적인 근무형태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어느 나라 노동자들은 건설일용직이라고 할지라도 주 5일 근무를 하는데, 왜 이 땅의 '노가다' 인부들은 죽으라고 내내 일만 해야하는 걸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7/20 14:39 2006/07/20 14:39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562
    • Tracked from
    • At 2006/07/21 20:27

    행인의 ['노가다'라고 무시하는 건가?] 에 관련된 글. 하루 종일, YTN은 점거투쟁이 휩쓸고 간 포스코 사무실을 보여준다. 그들이 준비했던 쇠파이프, 그들이 준비했던 프로판개스통, 그들

  1. 한국에서도 안전 캡을 씌우는 곳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일 다녔던 몇몇 곳에서도 철근 끄트머리에 안전 캡을 씌웠었거든요. 재료는 아주 질긴 테니스 공, 물론 현장 기술자들이 테니스 장을 돌며 주서오는 것들이라 어느 현장은 철근마다 다 씌워져 있는 반면에 어느 현장을 위험하다 싶은 곳에서 씌워져 있는 등, 업체나 감독은 전혀 신경쓰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죠.^^;;

  2. 캐나다에서는 산재가 나면 노동자에 대한 보상 뿐만 아니라 엄청난 벌금이 떨어지기 때문에 작은 업체들은 산재 한두번 나면 문을 닫아야 한다네요. 그래서 거의 모든 면에서 산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래요. 노동부 내에서도 산재 관련 부서가 가장 크고.. 예전에 블로그에 대한 한번 올린 적이 있긴 한데, 그 후로도 계속 노동부 광고는 산재 관련 광고들이더라구요.

  3. 역시 배워야 할게 많군요.. 아 우리나라 정부 웃깁니다. 배워야 할거 안 배우고 이상한거만 배워서... ㅠ.ㅠ

  4. 저도 토론토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캐나다 데이였던 7월 1일이 토요일이자 토요일 말고 월요일 날 따로 날 잡아 쉬더군요. 도대체 울 나라 노동자들 주 5일 근무 하면 너무 많이 논다고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몰갔어요.

  5. dakdoo/ 예, 저도 본 적이 있죠. 테니스공 모아서 그 정도 하는 사람들은 양심적이라고 봐야죠. 하지만 그렇게 몇 사람의 자발적인 솔선수범이 전부라서 문제인 거 같아요. 님께서도 이야기하셨듯이 업체나 감독이 이 부분에 대해 확고한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참 답답한 노릇이죠...

    neoscrum/ 한국은 말이에요, 얼마 전에 산재나 부실공사 건수가 3회 이상 적발되면 관급공사입찰에 일정한 불이익을 주는 내용으로 법률개정안을 만들었는데요, 아직 감감무소식이에요... 그 법 적용했다가는 삼성, 현대를 비롯한 굴지의 건설업체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거든요... 쩌ㅕㅂ...

    에밀리오/ 지금 정부 하는 짓은 어디서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닌 거 같아요. 아예 무개념이 아닌지...

    dakkwang/ 글쿤요... 도대체 왜 노는 것은 죄악시 되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