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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매

어제 오랜만에 엄마랑 채팅을 하는데...

엄마가 "얘, 그래도 말이다........" 하면서 전해준 이야기.

 

조카 생일이라고 식구들이 다 모였는데...

"김씨 집안의 유일한 인간"인 효경이가 제 아빠한테 따지더란다.

 

"아빠는 고모가 보고싶지도 않아?"

 

 



"너는 동생 우재가 어디 가면 보고 싶어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지"

"아빠도 마찬가지야"

 

이 말에, 울 엄마가 나름 감동받으신 게다. 

아니, 그럼 애가 그러구 물어보는데 뭐라고 답하라구...

평소 우리끼리 대화하던 그대로  "그 인간이 뭐 보구 싶냐?" 이래 버리면 효경이는 아마 울어버리고 말걸?

 

 

우리는 어려서부터 너무(!) 싸워서 엄마가 아주 속상해 죽으려고 했다.

한번은 엄마가 빨랫줄로 둘이 마주본 상태에서 묶어놓은 적도 있었다.

붙여놨으니, 어디 원없이 실컷 싸워보라구.... ㅜ.ㅜ

 

왜 싸웠나 생각해보면...

 

한 절반은 먹는 거 때문에.. 오빠가 꼭 내 걸 뺏어먹었다. 이를테면 엄마가 쫄면을 해줬는데 매워서 물 마시러 간 사이에 쫄면에 얹힌 엑기스-삶은 달걀을 홀랑 집어간다거나, 하드 같은거 먹으면서 텔레비에 정신 팔려 있는데 뭉텅 베어먹구 도망간다거나.... 아주 만행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면 반드시 우주대전쟁이 벌어지고, 마지막은 엄마의 파리채 혹은 구두주걱, 심지어 빨래 중이던 걸레 (이걸로 맞는게 제일 아프다. 철썩~하고 몸에 감기는 느낌...ㅡ.ㅡ)가 휩쓸고 지나간 후에야 끝이 나고는 했다.

그 밖에는... 시작을 알 수없는 사소한 괴롭힘들이 도를 더해가면서 파국을 낳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누워서 책보다가 발로 툭툭 치면서 귤 좀 집어줘. 그러면 알았어... 친절하게 답하면서 얼굴에 정통으로 던져 맞추기...한번은 오빠가 전화거는 옆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는데, 고만 하라고 해서 안 하니까 콧구멍을 찔러서 쌍코피가 난 적도 있다.  

 

뭔가 심각한 갈등, 이런 거 가지고는 별로 싸워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아, 오빠가 군입대 영장이 나온 다음 맨날 술퍼마시고 다니면서 엄마아빠한테 하도 말을 막 하길래 싸운 적이 있구나....

진짜 대판 말다툼을 벌이고 입대하는 날까지 둘이 말을 안 했다. 거의 50일 넘게....

결국 오빠는 가버리고, 집에 있던 나만 엄마한테 죽도록 야단 맞았다. 한 삼박사일 동안 욕을 먹었던 거 같다. 억울했어... ㅡ.ㅡ

 

엄마는 우리가 싸울 때마다 항상...

엄마 아빠 죽고 나면 하늘 아래 너희 남매 둘인데, 어쩜 그렇게 싸우니. 내가 죽어도 눈을 못 감겠다......

그러면 둘이 이구동성으로.. "걱정 마세요"

"나보구 걱정 말고 얼릉 죽기나 하란 소리냐?"

"아니, 그게 아니구.... ㅡ.ㅡ;;;"

이럴 때는 맘이 어찌나 잘 맞던지...

 

근데, 둘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봐도 엄마의 불만은 그치지 않았다.

내가 대학 가서 알바를 해서 첨으로 비디오를 장만했는데...

주말이면 둘이 SF 영화를 한 뭉치씩 빌려다 보곤 했다.

완전 진지 모드로 앉아서 심도 깊은(!) 토론을 하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쩜, 너네는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영화들을 좋다고 시시덕거리며 보고 있냐?"

"아니, 저게 왜 말이 안 돼?" 궁시렁궁시렁...

그 심도 깊은 대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 중간 쯤...

내가 "저 여자 (레이첼)도 레플리컨트 아닐까?" 물었더니

오빠 왈... "맞아, 틀림 없어"

"어, 어떻게 알았어?"

"저 여자 코를 좀 봐. 인간의 코가 저렇게 오똑할 수 있겠냐? 틀림없이 사이보그야"

배우 숀 영의 코가 오똑하기는 했다. ㅠ.ㅠ

 

아, 참.. 원래 쓰려던 이야기는...

오빠한테 애틋한 마음을 느낀 적이 딱 한 번 있다. (딱 한 번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가?)

 

오빠가 대입시에 실패하던 해는 그러지 않아도 빌빌대던 집안 경제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아빠의 병세가 급작스럽게 위중해지는 바람에 오랜 동안 일자리를 가질 수없었고 뭐 이래저래.... ㅡ.ㅡ

그래서 오빠는 재수를 꿈도 못 꾸고 그냥 작은 직장에 다니다가 군입대를 했다.

 

근데...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한번은 면회를 갔는데.. (의정부.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승용차도 없고... 면회길이 그야말로 천리길이었다. ㅜ.ㅜ)

오빠가 용돈을 주더라. 

당시 군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에게 연초비를 지급해주었는데, 

그걸 모아서 내 용돈을 마련한 것이었다.

액수는 기억이 잘 안난다. 2만원? 3만원? 

 

얼마나 오랜 동안 모았던 것일까?

 

사실... 그 때는 오빠의 애틋한 정에 감동했다기보다, 이렇게 궁상맞게 살아야하는 우리 가족의 인생이 더 구슬프게 느껴졌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면회를 갔을 때는 나도 주머니에 제법 돈이 있었고, 피엑스에 데려가서 호기롭게 "너 먹구 싶은 거 다 골라..." 했더니만... 오빠가 마니커 닭발 (이런게 있는줄도 몰랐다. ㅎㅎㅎ)을 고르는 거 보구 완전 충격 받은 적도 있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아 편식도 심하고 입도 엄청 짧았는데... 그런 인간이 닭발이라니...ㅡ.ㅡ

문득 안 되었다는 생각이 울컥....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보살펴주는 오빠와 오빠를 존경(?)하는 여동생 사이도 아니고, 

가부장적으로 억압하는 오빠와 이에 괴로워하는 여동생 사이도 아니고...

다른 집 남매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름 유대와 연대(무엇에 대한?)의 관계가 아니었었나 싶다.

 

그러고보니, 그토록 많은 싸움 중에서도 오빠는 "여자애가~"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장남 운운 하는 소리를 한 적도 한 번도 없다.

울 엄마는 맨날 결정적인 순간에 이 말을 해서 나를 폭발시키곤 했는데 말이지.

봉변을 당할 것이 두려워 의식적으로 회피한 것인지, 뼛 속 깊이 젠더 감수성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바 없으나 어쨌든 지금 보니 참으로 대견한 일이로구나...

 

근데 심각한 거는...

오빠는 물론 다른 가족들도 그렇게 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든다는 거다.... 

뭐 가서 보면 되는 거지....

"보고 싶다"는 감정이 뭔지를 까먹은 건 아닐까?

내가 사이보그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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