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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을 추억하며...

라니...

그 어떤 개인적 친분 관계도 없는 처지에 추억이고 나발이고....  ㅡ.ㅡ

 

근데,

이렇게 쓰고 싶어진건

저녁 나절에 읽은 두 편의 글이 우연찮게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

 

미국에서는 오만가지 종류의 임상시험을 다 하는데 내 보기에 가장 황당했던 것은 "기도의 효과"를 평가하는 연구들이었다. 최고의 통계학자들과 연구자들을 동원해서 가장 최신의 연구설계를 통해 이런 연구를 한다는게 나로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중요하다니, 이 사회의 관심이라니 뭐 내가 말릴 수 있나....

 

그 동안 기도가 환자 예후에 효과가 있다 없다 이래저래 논란들이 많았는데, 어제 발표된 대규모 연구결과 (그동안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기획된 연구라고 하더군)...

기도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상동맥우회술을 실시한 환자들을 세 군으로 나누어, 1군에게는 아무런 기도도 하지 않고, 2군에게는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기도를, 3군에게는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기도를 했는데... 30일 동안 관찰한 결과 예후에 차이가 없었고 심지어 2군에서는 합병증이 더 늘어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웃긴게, 기도에 참가한 신도들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환자를 위해 기도하되, "합병증이 없고 쾌유하도록 해달라"는 문구를 반드시 들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겠지만, 핑게없는 무덤 없다고, 가족과 친지들이 개인적으로 했던 기도들은 이 임상시험에 고려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보인 것 같다는 해석이 곁들여졌다.

 

기도라는 것이, 누군가 나를 영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지지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기도의 긍정적 건강 효과를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의 가설과 연구 목적은 단순히 이를 입증하는게 아니라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치유의 기적, 절대자의 권능... 

언제는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신을 믿었나. 그냥 "믿습니다" 하고 가던 길 갈 것이지 왜 과학의 이름을 빌어 쓸 데 없이 돈을 쓰고 과학을 모욕하냔 말이다. 지난 2000년 이후, 미국 정부에서 이런 "기도 효과" 연구들에 지원한 기금이 230만불이 넘는단다. 

(참조: http://www.nytimes.com/2006/03/31/health/31pray.html?pagewanted=1&_r=1)

 

신문 보다가 혼자 화르륵... 열 받아 있다가...

"그러길래... 내 책이나 보라니까...."

이런 계시를 받은 듯...

그동안 덮어두었던 칼 세이건의 Billions & Billions 마지막 장을 펴들었다. 

 



Billions & Billions: Thoughts on Life and Death at the Brink of the Millennium

 

이 책은 말하자면... 그의 유작이다.

책을 쓰는 도중 myelodysplasia (골수이형성증?)을 진단받고 감사의 글을 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과학 발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무분별한 (이윤과 정치적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과학 발전이 가져올 파국에 대한 끝없는 경고로 일관해온 그간의 행보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으나....

몇 가지 흥미로운, 그리고 숙연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The Common Enemy (공동의 적)"이라는 장은, 1988년 소련과 미국의 화해 무드 속에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레이건이 '만일 외계인의 침공한다면 소련과 미국이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기 더 쉬울 것'이라는 발언이 동기가 되어 쓰인 것이다. 스타워즈 계획을 비롯하여 갑자기 우주 전쟁에 대한 기이한 관심이 폭증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잡지사에서 공동 기획으로 이 분야 연구의 권위자이자 거의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칼 세이건에게 이와 관련한 특별 칼럼을 요청했고, 칼 세이건은 "절대 검열이 없을 것"을 조건으로 청탁을 수락했으며 (근데 소련에서는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음) 미국과 소련에서 함께 출판되었단다.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썼다. 

"악의에 찬 외계인이라 하더라도, 지구를 침공할 동기가 별로 있을 거 같지 않다. 아마도, 그들은 사전 조사 후에,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우리 스스로가 자멸하기를 기다리는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한테는 외계 침략자도 필요 없다. 이미 우리 스스로 충분한 위험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실종시킨 소련의 무늬만 사회주의, 개국 이래 멈추지 않았던 미국의 침략적 제국주의, 그리고 전세계를 공멸의 위기에 몰아넣은 이들의 가공할 군비경쟁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15장 "Abortion: is it possible to be both Pro-life and Pro-choice"에서는 미국 사회내에서 (말도 안 되는) 뜨거운 감자인 낙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태아는 "영혼이 깃들어 있는 생명체"이며, 그렇기 때문에 수태 순간부터 낙태는 곧 살인이라는 소위 Pro-life 의  주장에 대해, 칼 세이건은 그러한 가정 자체가 지난 2천년 간 기독교와는 무관했으며 오히려 20세기 초부터 등장한 보건의료인력의 전문주의와 더 상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글이 1990년에 잡지에 실렸는데, 독자들의 의견을 접수하는 음성사서함에 무려 38만건 (ㅡ.ㅡ)의 전화가 걸려왔단다.  이 중 상당수는 팻 로버트슨 (차베스 암살하자고 떠들어대던 그 또라이 복음주의자)의 돌격 명령에 의한 것이라니, 황우석 사건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광기가 유난하다고 비판했던게 부끄러울 지경 ㅎㅎㅎ

 

한편으로 나이브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비판과 비난을 비껴가지 않으면서 '이성의 힘'을 수호하려고 평생 노력해온 할배의 모습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과학자로서 그가 가진 풍부한 인문사회적 지식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력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회 모순의 근본적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큰 깨달음을 주기 충분하다. 

 

오늘..

언제 불쑥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앞에 두고 의연히 써내려간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존경의 마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동안, 그의 친구와 가족, 동료들, 그리고 직접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고, 그에게 이를 전하며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했단다.

 

"비록 나에 대한 신의 계획 -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 이 기도를 통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준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감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사후에 대한 확신 없이 어떻게 죽음을 대면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는 했다. 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연약한 영혼'에 대한 유보와 함께, 나의 영웅인 알버트 아인쉬타인의 견해를 공유한다.

 

나는 그의 창조물에게 보상을 하고 응징을 하는 신, 혹은 우리 자신이 경험하는 종류의 의지를 갖고 있는 신을 마음에 품을 수 없다.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는 개인을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두려움이나 불합리한 독단에서 비롯된 연약한 영혼들이나 그러한 생각을 가슴에 품도록 해라. 나는 삶의 영원성에 대한 신비, 현존하는 세계의 놀라운 구조에 만족한다. 실재하면서 스스로를 증거하는 이성의 한 부분 -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 을 이해하기 위한 헌신적 노력과 함께....  "

 

평생 우주의 진화, 생명체의 진화, 인간 지성의 진화를 이야기하며 계몽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 (인도주의적라는 뜻 절대 아님!)로 살아온 그가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깃발을 내렸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던 터라....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건 무슨 해괴한 감정이냐... 역시 할배는 배신하지 않았어... 이런????

 

아마도 한국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별 감흥 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미국 사회라는 맥락 - 종교의 이름을 가진 반이성주의와 시장주의의 교묘한 결합(!)이 인간적으로 심하게 미웠기 때문에, 칼 세이건의 글들이 더욱 맘에 와 닿은 것일수도...

 

근데...

도대체 이 할배의 책들은 출판만 되면 수 개월씩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그 책 읽은 사람들은 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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