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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풀의 '26년'

예전에 웹 상에 연재 중일 때, 기다림에 지쳐(ㅡ.ㅡ) 보기를 포기했었다.

 

아예 시작을 안 하면 모를까, 기다리는 거 질색.... 

생각해보니, 만화방 다니던 시절에도 완간되지 않은 거는 안 보고 꾹 참았다 나중에 원 샷.  '몬스터' 때 마음 고생 심했었고, '20세기 소년들'은 시작한 걸 엄청 후회했더랬다.

 

어쨌든....

포기하고 있자니, 예상대로 책이 나오는구나...

 

냉큼 세 권을 이어서 읽어버렸다.

 

   



*****

 

내가 '광주'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거 같은데, 성당 마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고 김승훈 신부님이 우리 성당 주임신부였음) 사진전을 했었고, 사진집(?) 같은 걸 신자들에게 빌려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현실감이 없어서, 그저 어디 먼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에서 전학 온 친구 한 명이 청소 시간에 광주 이야기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임산부 배를 찔렀다는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신문에 한 글자도 안 날 수가 있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가만히 있었겠냐구?"라며 내가 따졌던 거다 ㅡ.ㅡ 

나는 초딩 고학년 시절부터 신문 열심히 읽던 나름 유소년 인텔리... 이멜다의 구두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었다.   

 

그랬다..........

 

광주에는 대학 1학년 때 첨 가봤다.

친구들이랑 방학 때 광주 사는 선배형한테 놀러갔는데,

전남대에 가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오월대'는 진짜 교내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고,

잔뜩 긴장하고 찾은 금남로는 지하철 공사 때문에 온통 파헤쳐저 그냥 정신만 없었다.

그 후에도 몇 번, 광주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공사는 참 오래도 하더라. 사람들 말로는, 데모하는 거 막으려고 일부러 공사를 오래 한다는.. ㅡ.ㅡ

 

한 번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망월동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묘역까지 들어가는 버스 편이 없어서, 한참을 걸었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았던건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가겟집 할아버지가 고개 넘으면 바로 있다고 해서.... ㅜ.ㅜ)

그 때, 묘역 입구에는 전두환이 세웠다는 기념비가 누워있었고, 사람들은 자근자근 밟아주고 지나갔다. 우리도 일부러 오며가며 계속 밟았다.

 

생각보다, 아주아주 초라했다.....

 

새단장을 한 이후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다녀온 친구 말로는, 눈 버린다고 했다. ㅜ.ㅜ

 

*****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일들도, 의외로 쉽게 잊혀진다.

친구한테 나름 큰 돈을 빌려주면서, 까먹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액수 따윈 적어놓지 않았었다. 적어놓을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랬던 것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까먹는다.... ㅡ.ㅡ

 

하물며...

내가 아닌, 내 가족이 아닌, 우리 동네가 아닌 곳에서 일어난 일인 다음에야...

 

예전에, 지인 한 분이, 요새 대학생들 한심하다고, 어떻게 광주도 모르냐고 한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게 왜 한심한가? 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알아서 혼자 인터넷 검색해서, 혼자 책 읽어서 알게 되었나?

새로운 세대가 역사를 모른다면, 그건 우리 잘못이다.

그래서... 강풀의 투박한 (?) 시도는 소중하다.

 

*****

 

누군가의 악행을 보면, '저 사람 진짜 나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거야, 저이라고 왜 갈등이 없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임철우의 '붉은 방'은 어린 시절, 꽤나 충격이었다. 고문 형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족애가 있고, 일상의 피곤함이 있었다니... 그들도 인간이었어!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달라져갔다. 

'갈등? 타인의 고통 따위가 저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있을 리가 없어'

 

강풀의 '26년'이 슬픈 건,

만화 속 주인공들이 상처를 입어서, 혹은 거사에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 바깥에서 가해의 최고 책임자들이 여전히 자알~ 살고 있다는 것.

이런 책 쯤이야!!!

 

세상에는 '진짜 나쁜 놈'들이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단죄가 안 되니까, 만화책 속에서, 광주의 아이들이 직접 총들고 칼들고, 사제폭탄 들고 나서는 거다.... ㅡ.ㅡ

 

*****

 

문득, 광주에 가서 구 묘역을 다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차편이 없어서 한 시간 넘게 허덕이며 땡볕 도로를 걷던 학생이 자가용 끌고 가게 생겼으니,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고 해야겠지? 

 

살기 좋아진 만큼, 진실도 잊혀지고 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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