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반 고흐전 유감

" 지인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 사실 그렇게 많이 아픈 것도 아니었습니다요.

  이제 엄살 포스팅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했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초 민망합니다. "

 

 

코감기쯤 가지고,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포스팅을 했더니만

일파만파...  순식간에 중환자가 되어버렸다.

 

사실, 어제는 상당히 멀쩡해져서, 서울 나들이도 다녀왔다.

친구가 Van Gogh 전시 티켓에 당첨(?) 되었다고 어제 오후 늦게 서울시립 미술관을 찾았더랬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 기획된 블록버스터급 해외미술품 전시들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편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몰두 내지는 침잠하면서 작품, 그 작가와 교감을 하는 것일진데, 이러한 류의 대규모 순회/기획 전시들은 도대체 '제대로' 감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두침침한 무배경의 전시공간에서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 시달리며 줄서서 목을 빼고 그림을 본다는게 과연 '나도 봤다'는 출석체크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전시도 그래서 별로 보러갈 생각이 없었으나, 공짜표도 생긴데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컬렉션은 본 적이 없기에 오랜만에 시립미술관으로 행차...

 

 

 

 

 



여러가지로 마음이 착잡했다.

 

불편한 감상환경이야 그렇다치고,

돈으로 바른 듯한 내부 공간과 컬러액정 MP3 오디오가이드, 값비싼 아트상품들...

전시장 벽면에 패셔너블하게 새겨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한두줄의 편지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성탄절에 예수가 사라진지 오래이듯, 고흐 작품이 전시된 그 곳에 고흐의 '정신'과 '고통'을 찾아보기란 미션임파서블이었다.

 

뭐 나름 인기를 끌었다는 LG 전자의 명화광고에 비하면 이 정도 부조화 전시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starry night on Rhone river

 

 


* portrait of Dr. Gachet

 

론 강 멀찍이 비치는 LG 광고판과 Dr Gachet 가 들고 있는 LG 휴대폰은 이들 작품과 풍경/인물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다. 광고판이 빛나는 도시의 밤에 별은 빛날 수 없다. Dr Gachet 의 무심하면서도 풍부해보이는 표정은 저깟 메탈릭폰 덕분에 사채 독촉받는 채무자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푸른 색.... 그 신비의 색은 저렇게 희화화되고 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대상이 고호만인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물신화되고 있다.

한 때의 운동이 후일담 소설로 소진된 것도 어느덧 10년 전 일이 되었고,

체게바라의 저항이 패션아이콘으로, 

고흐의 가난과 정신분열이 고상한 취향이 되어 버렸다. 

 

혹시나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고흐가 자신의 작품을 다 불싸르지 않을까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은 다음 전시로 '부르델' 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시립미술관'이 아니라, 이 정도면 엑스포라 칭할만하다.

오늘 우리 사회의 반 고흐를, 부르델을 후원하고 시민들에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게 아니라, 흥행보장된 패키지 직수입으로 매번 전시장을 갈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뭐 그닥 경험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본 미술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벨기에 브뤼셀의 왕립미술관과 프랑스 니스의 마그 미술관이다.

 

브뤼셀에서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이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브뤼겔 처럼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옛 플랑드르 작가들의 친근하고 소박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그리고 현대 벨기에 작가들 - 마그리트나 델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공간과 풍부한 자연채광 아래에서 그야말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둘러보았던 루브르나 오르세이 등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교감이 있었던 것이다. 미술관에서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마그 미술관은 작품을 위해 건설된 또하나의 작품이었다.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미로의 모빌, 그리고 무엇보다 마당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자코메티의 입상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나는 시립미술관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대의 가난한 미술가들을 후원하고, 사람들이 편하게 당대의 문제의식과 아름다움/추함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즐기고...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게 공공 미술관의 기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안 되도, 대기업의 엄청난 후원과 천문학적 보험금, 아트샵을 채우는 팬시상품 없어도 시민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줄 수 있는 공간...

 

그게 그리도 어려운 건가?

돈잔치 패키지 미술전은 이제 그만.... 좀 그만했음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