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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한겨레21 기사 중에 국가인권위와 한겨레가 공동 기획했다는 세계인권선언 감상문 공모 결과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최우수, 우수상 수상자는 성인이고,
가작, 장려상은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무심코 명단을 읽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명은 서초구에 위치한 명문사립고등학교 2학년, 두 명은 각각 외고 3학년, 한 명은 사립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다.
인권위 홍보대사인 공지영씨는 정말 놀랐다면서, 이런 젊은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든든해졌단다.
근데 내 마음은 왜 무겁나?
인권 감수성? 혹은 지식이라는 것도 이제는 고급 아비투스가 되어간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이 학생들의 진심을 폄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봉사활동에서 만난 난민 친구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결코 거짓일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그저, 다만...
이 한국 사회에서, 사실은 인권에 대해 '경험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알고 (비롯 바로 그것이 '인권'인지는 모른다해도), 또 인권을 가장 열심히 또박또박 공부해둘 필요가 있는 아이들, 학생들은 이런 공모전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라는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주간지를 읽으며 아이들에게 이런 공모전에 출품해보라고 권유해주는 부모님이 있는 아이들과,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동네 보습학원이라도 보내주는게 최고 목표인 부모를 둔 아이들, 혹은 그마저도 어려운 아이들이 과연 경쟁상대가 될까?
이 수상자들은,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입시에서 부가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강남, 혹은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나 수상경력은 화려하다. 성적도 좋은데다, 각종 봉사활동 경력도 화려하고, 경시대회는 기본이니,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수상이라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박찬욱 감독의 [쓰리,몬스터]에 보면, 실력도 있고, 집안 좋고 부자인데다 심지어 인간성마저 좋은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이병헌!) 구김살 없이 자라다보니, 부잣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게 요즘 세상이다. (뭐 안 그런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이제 인권감수성이니, 인간에 대한 배려니, 이런 것도 배려할 여유가 있는 사람의 최상급 아비투스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벌각박한 이 한국사회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끼리 '인간으로서'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달동네'의 신화는 깨진지 오래다.
혹시라도 미래에,
가난한 이들이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또다른 사회적 소수자에게 군림하려 하고,
부유한 이들이, 지식과 "봉사활동"을 통해 키운 드높은 인권 감수성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는 세상이 오는게 아닌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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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실이님의 걱정과 달리 "부유한 이들이, 지식과 "봉사활동"을 통해 키운 드높은 인권 감수성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용... 적어도 이 땅 안에선지금 "욕망으로 가득한 동네"에서 저와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실력도 좋고 집안도 좋은" 그 많은 이들의 상태를 보면 지식과 봉사활동만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체화시키기는 어렵다는 게 느껴진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네들은 그들과 다른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듯 하여요...
매우 가까이서 그들의 언행을 살피다 보면 그런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 나이에 어찌 저 지경이 됐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합격이 되어 ㅇㅇㅇ에 가게 되면 관행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XXX와 ㅇㅇㅇ에 가게 되면 역시 관행적으로 받게 된다는 YYY에 대한 이야기와 그런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는 그들...
빈발하는 각종 도난사고와 고도의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이런 저런 다툼들, 시험이 임박한 시점에서 다른 사람이 시험 준비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노트와 책을 없애버리기도 한다는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의 아비투스는 무한경쟁에서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얻게 된 권력과 지위의 남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답니다. -_-;;;
좀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는 이들일수록 일상생활에서의 도덕관념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도 많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요...
"이 사회의 동량이 될" 이 친구들과 날 것으로 부딪치다 보면 "지식과 "봉사활동"으로 구성된 "인권 감수성"은 (설령 그 비슷한 것이 이들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스스로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수단이 될 뿐 결코 내면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요...
- 그들이 차지할 자리를 하나라도 없애보겠다고 발버둥치는 一人의 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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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실이님이 느끼신 '무거운 마음'에 공감을 더하는 1人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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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see/ 아직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의 질서가 좀더 '안정적'으로 고착된다면 (그야말로 현존 지배질서가 공고해진다면) 그들이 고결한 인간이 되는 건 그닥 어렵지 않을 거 같아요. 물론 그 깊이라는 것이 얄팍하여 작은 충격에도 쉽게 균열을 보이기는 하겠지만요... ㅡ.ㅡ새벽무렵/ 공감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더 무거워지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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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실이님 댓글을 보고 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네용 ㅜ..ㅜ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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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는 너무 순진해... 어째 나이가 들수록 더... 이미 이 사회가 그렇게 고정화되었다고 보는 나는 너무 잘 길들여진건가?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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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과 전혀 무관하오나. 비외고인 한 고교는 사립이 아니라 공립입니다--;; 뭐 5대공립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 학교는 공립인게 더 자랑이지만...이른바 '8학군 기자'라는 언명이 유행한지도 꽤 됐는데요. 말할라면 긴데 참 묘하죠. '8학군 기자'라고 조중동, 경제지, 방송사에만 있는게 아니란 말씀. 이른바 '개혁 언론'에도 수두룩.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