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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는 건가?

최근 읽은 책들은 공통적으로, 뭘 어쩌라는 말인가... 라는 공통된 질문을 던져주었다.

 

#. 악셀 하커, 조반니 로렌조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
악셀 하케 & 조반니 디 로렌초
푸른지식, 2011

 

알라딘에서 퍼온 책표지는 저리 상쿰한 레몬색이지만... 내가 동작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껍데기 날아간 검은 양장본... ㅡ.ㅡ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들인 두 아자씨들.

이들은 잘못된 선택과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해왔고, 신사회운동의 언저리에서 적극적 혹은 소극적 참여를 경험했고,  매 순간의 선택과 비선택에 대해서 후회와 사려깊은 성찰을 피하지 않는, 괜찮은 사람들로 추정된다 (실제 사생활이야 어찌 알겠냐구... ).

 

아주 특출나게 주장이 강한 별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시류에만 몸을 맡긴 소시민 대표주자도 아닌 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도 때로는 속물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가치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품새가 마치 인생의 선배가 토닥토닥하며 후배한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 좋기는 했다. 폼이나 잡고 '내가 왕년에는...' 이런 거 절대 없고 ㅋㅋㅋ

 

그런데, 독일에서 이들이 위치한 것과 비슷한 입지에 있는 한국의 인사가 이런 책을 썼더라면, 혹은 내가 독일인이었다면 훨씬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법한 이야기들이, 어쩔 수없는 '사회적 거리' 때문에 영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더라는 문제가.... ㅡ.ㅡ

 

이들도 딱히 인생의 답을 주려고 이 책을 쓴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다 읽고 나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느낌은 영 피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이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도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들만큼의 긍정적 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 

 

참, 로렌초의 안토니오 네그리 인터뷰 삽화는 허거덕.... 이런 일화를 가지고 그의 생애와 활동을 모두 파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상황이 또 아주 낯선 건 아니라서 ㅜ.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에휴....

 

 

#. 리처드 세넷 [뉴 캐피탈리즘]

 

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위즈덤하우스, 2009

 

몇 가지 주요 내용 요약

 

*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과 관련된 세 가지 요인 (혹은 도전과제)

 

첫째, 시간 - 프레임이 달라졌다, 자주 바뀐다 (여기에 적응할 수 있어야 현대적 인간 ㅡ.ㅡ) 사실, 자본주의가 군대를 모방할 수 있었던 (그래서 효율을 높일 수 있었던) 비밀의 열쇠는 시간, 즉 제도가 개인에게 보장하는 기간으로서의 구조화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더이상 그렇지 못하다는... 

둘째, 재능- 특정 기술이 아니라 잠재력이 중요한 세상 (기술과 지식은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부단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셋째, 포기의 문제 - 과거와 얼마나 잘 단절할 수 있는가 (즉, 새로운 것에 재깍 얼마나 뛰어들고 몰입할 수 있느냐)

 

*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노동하는 개인들이 경험하는 변화를 특징짓는 거대요인 - 첫째, 관료제의 변화

 

경직되고 진부한 관료제 (말하자면 '사회자본주의')란 오늘날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 개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게 했던 안정된 토대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컨설턴트들에 의해 관료적 조직특성을 변화시키는 구조조정과 개혁이 추진되지만, 조직 안정성의 붕괴, 단기적 수익에의 몰두는 위계의 가장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안겼을 뿐이다.  안정된 조직 기반의 붕괴는 조지 소로스의 지적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관계맺기'가 아닌 '거래'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이게 참 딜레마인 것이.... 관료제야말로 그 특유의 안정성과 지속성, 피라미드적 위계를 통해 치밀한 '포섭'을 가능케 하고 변혁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데, 문제는 관료제를 뛰어넘는 소위 '현대적' 기업운영체계로의 변화야말로 노동유연화를 통해 변혁의 가능성을 더욱 가로막고 있으니....

 

저자는 '관료제 쇠창살' 해체와 관련된 주요 변화를 (1) 경영자에게서 주주로의 권력 이동, (2) 이와 관련된 것으로 장기실적보다 단기성과의 중시, (3) 통신과 제조부문의 기술혁신 으로 꼽았다. 기술이 혁신하면서 앙드레 고르가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새로운 여가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제레미 리프킨이 걱정했던 것 같은 '노동의 종말'이 다가왔고, 주주 자본주의의 대두는 단기적 이익과 책임지지 않는 경영체제 (의사결정과 책임의 분리),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뭐 새로운 분석은 아니지만, 명쾌하게 1, 2, 3으로 정리해주니까 오케이 ㅋㅋ 

 

하여간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이제 조직은 MP3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비유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이 쓰여졌던 시점에서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으나, 말하자면 피라미드 관료조직과 달리 복잡한 중간단계 없이 중앙이 말단을 직접 통제하는 구조, 유연한 조직으로서 MP3라니... ㅡ.ㅡ (저자가 말한 대로 기술문명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ㅋㅋ)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런 유연한 조직에서 상시적인,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anxiety) 에 시달린다. 기업들은 개인들의 독립성과 자기관리를 미덕으로 내세우며 더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타나는 세 가지 사회적 적자라면 (1) 충성도 저하, (2) 노동자들 사이의 비공식적 신뢰 붕괴, (3) 구성원들의 조직 생리에 대한 무지... 결국 이렇게 되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보상을 유예하고 지연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 the social 은 죽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과 유동성이 특징인 사회, 공식적인 제도와 관료제적 안정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특권, 사회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특권을 가진 이들이라면 삶을 전략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지적에 격하게 공감... ㅜ.ㅜ) 사회자본주의가 쇠퇴하는 곳에 불평등과 소외는 커지고 있다.

 

* 거대요인 - 둘째, 능력주의 (와 동반된 퇴출의 공포)

 

능력주의와 그에 따른 퇴출의 공포는 현재에만 해당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지만, 특별히 오늘날의 공포는 (1) 글로벌 노동력 공급, (2) 자동화, (3) 고령자에 대한 처우 라는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앞의 두 가지야 뭐 워낙 익숙한 것이고, 특별히 고령자 처우 문제를 보자면,

사회자본주의의 틀을 해체한 기업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령노동자의 경험이 아니라 젊은층의 재능, 그래서 경험이 늘어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기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건비만 잡아먹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평가... ㅜ.ㅜ

이러한 퇴출의 공포는 복지국가를 위협하는 요인, 즉 아예 사람들을 복지국가의 체계 바깥으로 밀어내버린다는 지젹에 동의.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지 않나... ㅡ.ㅡ

 

한편 저자는 '잠재력'에 대한 강조가 '재능'의 기준을 훼손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 곧 정의로 여겨지지만 (대표적으로 아마티야 센이나 마샤 누스바움의 논거를 드는데, 적절한 것같지는 않음), 이는 경험의 축적이나 연습, 노력의 중요성을 미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천재적 소질(잠재력)을 가진 연주자라도 부단한 연습이 없으면 좋은 연주를 해낼 수 없는 것인데, 미래를 준거로 과거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은 번역이 이상한 건지, 사회적 맥락이 달라서 그런지 잘 이해가 안 가는게... 재능/잠재력/능력주의 용어가 내가 생각했던 맥락과는 좀 안 들어맞음.. ㅜ.ㅜ 이를테면 SAT 사례도 지식 자체보다 생각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는 평가라고 하면서 이것이 잠재력을 중시하는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주입식 교육과 암기를 위주로 학력고사를 통해 1등부터 백만등 까지 줄세웠던 과거의 입시제도에 비해 사고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는 수능과 논술, 잠재력을 중심에 둔다는 입학사정관 제도들이 훨씬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로 얼추 이해는 하겠는데.. 개별 문장들의 앞 뒤가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 이건 뭐 원서를 확인해봐야 알 것 같다.

 

하여간 신분적 귀족사회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지위를 보장받는 '자연적 귀족사회' 혹은 능력주의가 분명히 정의로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오늘날은 여기에 보태 과거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을 독려하고 개인을 무력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업적을 기준으로 '비인격적'인 평가를 했던데 비해, 타고난 재능이나 잠재력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인격'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주, 잠재력이 없다고 판정된 이들은 과거의 업적이 어떠하든 이제 쓸모 없는 인물인 것이다. ㅜ.ㅜ

          

* 거대요인 - 셋째, 정치의 몰락

 

이제 이렇게 변화된 경제는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뭐 당연하겠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분절된 노동자계급, 원자화된 개인들을 낳고 이들의 불안정성과 노동의 방식은 정치 또한 소비상품의 하나로 만들 뿐이다. 변혁에의 열정은 소멸해버린다. 

 

저자는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를 '소비자'이자 '구경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1) 기업의 생산이나 유통에서 활용되는 플랫폼과 유사한 정치적 플랫폼을 제공받으며, (1) 정치제품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라) 금박을 입힌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고, (3) 칸드가 명명한 '인간성이란 휘어진 목재'를 평가절하하며 (즉 이미 손에 진 것은 무엇이든지 충분치 못하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생각), (4) (굳이 배우고 노력할 필요없이 간편하게 제시되는) 사용자 중심의 정치를 신뢰하도록 요구받고, (5) 부단히 제공되는 정치적 신제품을 받아들인다. 

 

자,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 진보정치가 성장하기 어렵다.... 고 이야기하는데, 한편으로는 진보정치의 저성장에 대해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상황 탓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문화적 닻을 단단하게 내리는데 꼭 필요한 가치로 (1) 사건과 경험의 축적, (2) 개인 유용성의 발견, (3) 장인정신 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할 수 있는 안정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유연화로 인해 안정된 노동기반과 노동조합을 가질 수 없다면 노동자센터 같은 병렬조직을 세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새로운 상황에서 시간을 재구성하여 인생설계를 할 수 있는 방식 (기본소득이나 기본자본)

 

둘째, 사람들이 쓸모있는 존재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특히나 국가가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일이지만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와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 가능)

 

셋째.. 이게 약간 거시기한데, '헌신'을 특징으로 하는 '장인정신'을 회복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맬수 있다'는 주장에 매우 공감은 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기회가 없다는 것 아닌가 말이지... ㅜ.ㅜ  우리 모두 생활의 달인이 되라는 것이여???

 

문제의 제기와 진단에 비한다면, 사실 저자가 내놓은 처방이 충분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문제들을 정치경제적 관점보다는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했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일목요연하게  (특히 번호매겨가면서 ㅋㅋ) 정리해주고, 오히려 그동안 익숙했던 정치경제 방식의 신자유주의 분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준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좀 읽어봐야겠다.

 

 

#. 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트까지 현대를 창조한 사람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트까지 현대를 창조한 사람들
전성원
인물과사상사, 2012

 

만물박사 지식을 익혀서 남들한테 자랑하는데 써먹기에는 유용한 책인데..

딱히 통찰력을 주는 책은 아니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는데 고생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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