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science fiction 과 fantasy 사이

#.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2013년)

설국열차

 

주말에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아이맥스로 감상...

 

첨에 영화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질주하는 액션극인가보다 생각했는데, 간간이 들려오는 혹평을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감독이 전작들이 보여준 페이소스 짙은 유머나 현실에 대한 비판 혹은 풍자도 덜할 것이라는 짐작도 하게 되었다. 음.. 뭔가 어둡고 비현실적인가보구나... 말하자면 허무하고 허무맹랑하다는 뜻이렸다.... 

 

이러한 예상은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그리고 내 예상보다 훨씬 밝고 복잡하고,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물론 보여주는 상황은 냉혹하기 그지 없었다. 극심한 불평등과 억압, 견딜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폭력이 냉혹하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유지되는 그 시스템 자체가 냉혹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

 

커티스가 마침내 엔진실에 들어가 윌포드를 만나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모두가 앞 칸으로 이동하기 위해 싸울 때 혼자 열차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는 남궁민수의 모습에서 내내 떠올랐던 것은 앙드레 고르의 저 말이었다.  

 

매트릭스의 네오도 마침내 아키텍트를 만나 이것이 여섯번째 시온의 멸망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또한 시스템의 일부라는 친절한 설명... 커티스가 진실을 대면한 순간이 어쩌면 이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게다. 하지만 최소한 네오는 스스로 아키텍트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정의를 향한 투쟁, 그것도 사랑하는 이들을 숱하게 희생시키고 여기까지 왔던 그 노력이 기껏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인구조절의 한 수단이었고, 더구나 이토록 냉혹한 인구조절과 계층화된 기능분화가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증오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력이라니.... 커티스의 절망과 혼란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 면에서 남궁민수가 꿈꾸는 것, 체제 내부의 변동이 아닌 체제 자체를 뛰어넘는다는 발상이야말로 '진정한 변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했다가 인류가 완전히 절멸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잘 풀렸다. 기후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어가는 듯 보였고, 인류를 이어갈 남자아이, 여자아이도 살아남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지만, 그 도전이 그냥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7인의 반란 '유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폭주하는 열차 안에서 질서를 바꾸기보다, 열차에서 내리라고, 다른 세상의 문을 열으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도 이야기한다.  ㅡ.ㅡ 어쩌란 말인가.... 

 

배우들 이야기도 해두고 싶다.    

 

교과서 말투의 캡틴 아메리카 모습만 봐서 그냥 별 관심도 없는 배우였는데, 크리스 에반스한테 깜놀했다. 와, 이런 배우였구나....  틸다 스윈턴은 본인이 너무 재밌어 하면서 연기했을 것같은 상상이 ㅋㅋ다른 이들 연기도 모두 훌륭한데, 특히 길리엄으로 분한 존 허트 등장할 때 나는 변희봉 선생이 등장한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이며 꾸부정한 모습이며, 괴물에서의 나왔던 모습이랑 너무 똑같잖아 ㅋㅋ 봉준호 감독의 변희봉 사랑은 정말 유별난가보다....

 

송강호가 분한 남궁민수가 '이게 인류 마지막 담배'라며 커티스에게 담배 던져줄 때 와우, 저 시크한 아자씨 ㅋㅋ 하긴 첨에 감옥 서랍에서 풀려나 그러지 않아도 귀에 거슬리던 '냄 (Nam)' 이라는 발음을 '남궁'이라고 고쳐줄 때부터 빵 터졌다. 고아성 요나는, 힘들게 괴물 뱃속에서 구조된 이후 결국 죽었는데, 이번에는 마침내 기차 뱃속에서 살아나왔다. 진짜 요나가 된 것이다. 피튀기는 현장을 지나서 능청맞게 웃으며 '크노롤' 하며 손을 뻗는 모습이나, 환락의 칸에서 술병으로 병나발 불며 휘청거리는 모습, 단호하게 총을 연발하던 모습.. 다 너무 사랑스럽고... 이제 진짜 인류의 희망이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장면들의 그로테스크함이 맘에 쏙 들었다. 스시를 만드는 흑인 요리사, 마지막 살아남은 인류는 아시아인과 흑인, 난데없이 나타나는 온실, 사우나, 수족관, 클럽, 뜬금없는 삶은 달걀 카트와 그걸 또 부잣집 어린이 이마에 부딪혀 까먹는 꼬리칸 불청객,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앞칸 사람들, 미친듯이 싸우다가 갑자기 나타난 창밖의 아름다운 풍광에 다들 손을 놓는 어처구니 없음, 적외선 카메라와 성화봉송 같은 횃불 릴레이...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건 영화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운드 좋은 아트나인에서 한 번 더 봐야겠당...

 

#. Orson Scott Card, Ender's Game (Tor Science Fiction 1991)

 

 

몇 년전에 3부작 사놓고 방치해두었다가 문득 (!) 소설이 읽고 싶어서 집어들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휴고와 네뷸러 상을 둘 다 받은 나름 우수작이다!!! 마지막 장인 "speaker for dead" 는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뭐 그건 취향...

 

초능력이라 할만한 인지능력을 지닌 어린이들에게 외계침입자로부터의 인류 수호라는 대과제가 맡겨지는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여전히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인지능력이 어른들을 뛰어넘는다고 해서, 정서나 사회성까지 어른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엔더가 무척이나 안타깝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피터, 발렌타인, 본조 같은 아이들이 무서운 것이다.  

 

전혀 맥락은 다른데, 모든 아이다움을 강제로 포기시켜가면서 아이들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전사로 훈련시키는 battle school 의 모습이 어째 한국사회 같다는...  이들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과 싸우는 훈련을 받는데 비해, 한국의 어린이들은 옆의 친구를 쳐부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 ㅜ.ㅜ

 

나중에 찾아보니,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단다. 그러게... 그냥 읽고만 있어도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르는데 이런 걸 놔둘리가 없지... IMDB 에서 찾아보니, 엔더 역의 배우가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Graff 역을 무려 해리슨 포드가 ..... 이상하게 감성 돋는 영화로 만들지는 말아야 할텐데.... 아이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잔인하고 악마같은 속성을 보여주는 많은 장면들이 과연 가족 제일주의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네 그려...

 

그런데, 인기있는 SF 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그렇지 않을까?

스케일이 너무 크면 앞의 로봇 3부작만 만들어도 엄청 인기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버디 수사물에, 액션 블록버스터에, 잔잔한 로맨스도 빠지지 않고, 미래사회의 신기한 기술문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전우주적 완벽남 R. 다니엘 올리버가 있잖아!!! 영화 프로메테우스 보면서 마이클 파스빈더가 올리버 역에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복잡미묘....  올란도 볼룸은 어떨까??? 응? 나 지금 뭐하고 있음???

 

#. Neil Gaiman, Anansi Boys (Harper Torch, 2005)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유쾌하게 킥킥거리며 읽은 명랑 소설...

 

게이먼의 전작 American Gods 에서 Anansi 가 직접 등장했었다는데, 당시에 하도 오만가지 신들이 나왔던지라 기억이 없다. ㅡ.ㅡ Anansi 는 서아프리카 지역 민담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신이란다. 

 

Anansi 두 아들, 특히 Fat Charlie 의 순박하면서 정감 가는 행태들, 등장 인물들의 해괴한 캐릭터와 완전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한 설정들 때문에 군데군데 빵빵 터진데다가, 무엇보다 이야기가 너무 촘촘하고 '재미있어서' 정말 빠져들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현대의 '옛날 이야기',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는!!! 

 

도대체 닐 게이먼은 어떤 사람인 게여...

Sandman 이나 배트맨 외전에서는 한없이 어둡고 깊게, American Gods나 Good Omens, 이번 작품에서는 들에서는 명랑쾌활하게, 또 Neverwhere 같은 데서는 신비롭고 음울하게.....

한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겐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