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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하나로 도저히 모아지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하게 하나의 흐름 속에 자리한 책과 영화들...

 

#. 성석제 [위풍당당] 

 

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문학동네, 2012

 

오랜만에 성석제의 소설을 읽었는데,  이건 '읽었다'기보다 마치 마당극 한 편을 감상한 기분?

중고등학교 국어 시험 문제에나 등장할 법한, '풍자와 해학'이라는 전형적인 단어가 이렇게나 어울리는 오늘날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인듯... 

이 아자씨... 녹슬지 않았어!!!

미친 듯이 웃기고, 번뜩이고, 그리고 심지어 짠하기조차 하다니....

버림받고 내쳐진 사람들끼리의 이 유쾌한 연대의 소동극과 대책없는 낙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잖아!

 


#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1

 

몇 달 전에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알랭 드 보통이 약장사같은 '더빙' 톤과 몸짓으로 수백명의 한국 관객들 앞에서 멘토 코스프레 하는 것 보고 (심지어 승합차 타고 시내를 돌면서 이동상담까지.. ㅜ.ㅜ) 식겁해서 입이 쩍 벌어진 적이 있었더랬다. 아... 저건 또 뭔가.... 

어쩐지, 이제 다시는 이 자의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동작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스르르 또 집어들었네 그려...  스맛폰에 담아둔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아직 있었던 탓...

근데, 또 이 책을 읽고 나니, '인생학교'를 열어 정말 삶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려는 그의 노력, '종교에게' 전유당했던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다시 찾아오자는 견해에 깊이 동의하게 되면서, 굳이 어릿광대 같은 모습으로 대중강연회에 나타났던 것도 그리 이해못할 바는 아니라는 관대한 마음이... ㅡ.ㅡ (물론, 강연료 때문에 그리 한 것인지, 견해를 널리 전달하기 위해 그리 한 것인지는 내 알 수 없으나..)

 

이 책의 주장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듯...  

종교 자체가 인간의 발명품 - 함께 살아가야 할 필요성과 고통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 인데, 무신론자들은 종교가 보여준 독단과 부정적 측면에 경도된 나머지, 이렇게 중요한 필요성을 종교가 전담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것... 마치 그것을 종교만이 다룰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그니까, 무신론자들은 원래 인간의 문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종교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눈감을 것이 아니라, 가져오자는 것.... 이건 너무 소중한 문제들이잖아....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며,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것의 가장 큰 적들이라도 이를 선별적으로나마 다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 배경에는 현대의 제도와 고안물, 이를테면 교육제도, 대학, 미술, 건축 같은 것들이 그동안 종교가 해왔던 교육, 통찰, 혹은 위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미술관이 공급자 마인드?로 작품들은 연대기별, 유파별로 배치함으로써 중세 성당의 그림들이 주었던 영감이나 감흥을 완벽하게 차단했다는 비판에 대해서 완전 공감!!!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그만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에 흠칫....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만 들으면, 종교활동이 인간의 고통을 대면하고 극복하게 하는 깊이있는 숙고와 성찰 드라마인 것 같지만,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좀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국사회 공격적 복음주의자들의 신앙 활동 중 어느 부분이 지적이고 합리적인가???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유대교의 세심한 교리와 삶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그럼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하는 짓거리는 뭔데? 하는 질문 때문에 도대체 곱게 바라봐줄 수가 없더라니...   (사실, 나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그 어떤 긍정적 스토리도 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ㅡ.ㅡ )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자들이 소중한 인류의 지혜를 눈여겨 보고, 종교로부터 이를 찾아오자는 주장 자체에는 매우매우 공감....

 

#. [마지막 4중주] (야론 질버만 감독, 2012년 작)

 

마지막 4중주

 

원제가 "late quartet" 인데 과연 이것이 '마지막'으로 번역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냥 '말년의'라고 했더라면, 연주자들의 나이와 상황, 이런 것들에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고, 소소한 (?) 인생의 드라마들의 구성도 촘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혹은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이렇게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것은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연주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불협화음이라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이제는 불협화음이, 일탈이, 소위 비정상성이 일상, 정상, 질서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실제 이것들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며 살아내기란 참으로 만만치 않은 '필생의 과제'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자연스레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찾아 들어보았다. 귀가 막귀라서.... 불협화음의 화음을 제대로 알아내기 어렵다는 점이 함정...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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