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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돌아보며

원래 이런 글은 2013년 12월 30일이나 31일쯤 쓰여야 제 맛인데,

삿포로 여행 다녀와서 숙취와 (ㅜ.ㅜ) 아마도 인류 최후의 날까지 쪼아댈 것만 같은 마감의 압박에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언제 2014년이 왔는지 모르겠어... 흑....

여행 가 있는 동안 2013년은 어떠했는지 잠깐씩 돌아보며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해두기는 했었다.

1. "보람"

#.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대번 떠올린 것은 도시농부 활동이었다. 불질을 놓고 있던 차라 그 소중한 기억들을 그때그때 남기지는 못했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조만간 정리를 해야지...

사실, 지난 해 유난히 프로젝트에 쫓겨서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그나마 코딱지만한 밭에서 땀흘리며 마음을 쏟아붓는 그 시간들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마음은 황폐해졌을 것이다. 남들은 주경야독을 한다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 가서 밭을 가꾸는 이중생활 ㅋㅋ

 

#. 

처음 작업을 시작했던 시점으로 따진다면 거의 3년이나 걸렸던 반도체 건강영향에 대한 리뷰 논문을 드디어 마무리를 했다. 좋은 코멘트를 해주고, 발표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자료를 찾아주고, 영문 교정을 도와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완성을 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논문들에 '하나의 케이스'로밖에 헤아려지지 못한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권을 보호하는데 이런 작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

비판적 실재론에 대한 조금 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싶어 S 선생님의 대학원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청강했다. 비단 실재론 뿐 아니라 사회과학에 대한 메타과학적 접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의와 읽기자료들을 조금 더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2. "즐거움"

 

#.

사실 (주지육림 때문에 힘들어서) 즐거움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ㅋㅋ

연말의 북해도 여행은 어쨌든 반가운 얼굴과 맛난 음식,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 했던 나날들이었다. 작년에는 특히 나들이를 몇 번 가지 못했는데 그나마 연말에 아쉬움을 달랜 격....

 

#.

닐 게이먼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더랬다. 그의 샌드맨 시리즈, 이어서 일본 여행 즈음하여 외전, 샌드맨의 사랑스러운 누나 DEATH 의 이야기를 읽었다. 이 언니 너무 멋지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녀, 세상의 문을 닫고 무대를 정리하는 그녀...

그녀가 이토록 매혹적이기 때문에 지상의 누구도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평생(?)의 과업이었던 Sigur ros 의 내한공연을 관람한 것은 역시 대사건이다. 물론 다른 공연들도 여럿 보았고 다들 좋았지만, 이 공연은 특히나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예전에, 김광석이 1년에 수백번씩 공연을 하던 시절, 항상 다음 공연에는 꼭 가야지가야지 했는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버렸고, 그 때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인생에 유보는 없다는 것.... 할 수 있으면 미루지 말자고..... 

 

3. "당혹"

 

#.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한 일들 만큼이나 황당한 일들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황당한 것은 박사원정대에 참여했던 두 박사의 발병 아닐까 싶다. 한 박사는 소위 선진국형 중증질환에, 또 다른 박사는 소위 후진국형 소모성 질환에.... ㅡ.ㅡ

심지어 두 사람이 진단 시기도 비슷하고, (엄청난 중증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치료 경과마저 비슷하여 아연 실색....  둘 다 처음 입원했을 때에는 하루 간격으로 두 병원을 뛰어다니며 문병을 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지금 돌아봐도 참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다. 당사자들도 어이 없어 하기는 마찬가지 ㅋㅋ 

지금이야 어쨌든 고비들을 넘기고 다들 평정을 되찾았지만, 가히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

일터에서 한 사람이 퇴직하면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니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감정적 반응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심으로 대했던 모든 시간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게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민간기업에 다니는 친구들한테 이야기했다가 욕만 한 바가지 먹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인적 배려'로 처음부터 근무시간/임금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나와 연구소를 비난했다. 이미 처음부터 잘못된 시그널을 충분히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원칙 운운 해봤자 역효과가 난다는 주장이었다.  일견 수긍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회의는 남는다.

우리가, 대안적 세계를 지향한다는 연구공동체에서, 근태를 칼같이 점검하고 그걸 또 임금에 반영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연구 활동이라는 것이 출근해 있는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두고두고 씁쓸함을 남긴 사건이었다...

 

4. "후회"

 

뭐 후회할만한 일들도 널려 있다만... 단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부모님과 함께 떠나려던 큐슈 여행이 취소된 것이다.

여행 일정 다 잡아놓고 아빠가 갑자기 통풍이 발병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그래서 경주라도 구경시켜 드려려 했는데, 그 때도 마침 무릎 통증이 재발하여 도대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조금 더 건강하고 젊으셨을 때 모시고 갈 것을, 이제는 정말 영영 어디디에도 갈 수가 없겠구나 하는 회한이 몰려왔다.  

그런데 또 이러한 회한의 특징은 평소에 잊혀졌다가 결정적 순간에 다시 반복된다는 것이다.

날이 좀 풀리면 나들이를 시켜드려야 하는데, 그런 때는 넋 놓고 딴 짓하다가 날 추워지면 아이고, 그 때 갈 것을.. 하는 뻘짓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ㅜ.ㅜ

정말로... 국내 여행마저 불가능해지기 전에, 올해에는 꼭 따뜻한 남도 여행을 시켜드려야겠다... 

 

5. "아쉬움"

 

계획했다가 하지 못한 일들 또한 '무수히' 많은데, 특히 아쉬운 것은 프로젝트들에 밀려서 나들이를 충분히 다니지 못한 것, 불질을 거의 개점휴업한 것.. 그리고 몇몇 지인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북클럽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중간에 중단된 것이다. 

 

전반적으로 '힘들고 괴로운' 한 해는 아니었지만, 너무나 일에 쫓기며 산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도 그 잔재들이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 말이다....

2014년 말에는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즐거운 아쉬움"으로 돌아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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