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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학교 활동 정리

 

사람들이 내가 토종 서울 녀자라는 것을 알면 약간들 놀라는 경향이 있지만 (도대체 왜?) 

나란 녀자, 사실 농활을 빼놓고는 농촌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

게다가 농사일은 어찌나 몸에 안 맞는지, 농활이 열흘이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더 길었다면 도망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쪼그려앉기는 정말 쥐약.. ㅜ.ㅜ

하긴, 본 1 때 갔던 Y 마을은 너무 외지고 일도 힘들어서 (여름담배농사... ㅡ.ㅡ)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가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팀원들이 넋 놓고 버스 꽁무니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했더랬지....  지금 생각하니 참... ㅋㅋ

 

하여간, 과거는 이러했지만, 미국에 사는 동안 체리가 너무 맛나서 나중에 마당있는 집에 살면서 체리나무를 키워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자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더랬다. 

 

하지만 아무래도 농사는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주말농장에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그래도 뭔가 내 손으로 키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고...  그러다 우연히 도시농부학교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거다,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지난 가을에 지역에서 도시농부학교가 열리길래 냅다 신청....

 

일단,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농사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모인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여전히 농사짓기 방식은 나의 적성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 말이다. 천연 농약이나 비료 만들기 방법은, 어쩌구저쩌구 재로를 만들어 물에 1백배 ~ 5백배 희석해서 사용하라는 거다. 1백배에 5백배라니???  confidence interval 이 너무 넓지않냐는 말이다.. ㅡ.ㅡ 그리고 정리된 매뉴얼을 안 줘 ...

프로토콜에 따라 일을 하고 자료를 분석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게 다 부담이다 ㅋㅋ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적을 겪어가며,

특히 지난 해 하반기처럼 미친듯이 일이 바빴던 시절에, 조금씩 짬을 내서 코딱지만한 밭을 둘러보고 물을 주고 비료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는 배추 떠내려갈까봐 걱정하고, 비가 그치면 민달팽이가 내 배추 다 뜯어먹을까봐 걱정하고.... 비싼 말보로 담배 얻어다가 맥주에 섞어서 달팽이 덫도 설치하고, 쪼그리고 앉아 나무 젓가락 들고 달팽이랑 벌레를 잡아내던 그 날들...

배추 안 쪽 깊숙이에 몸을 또아리고 있던 초대형 토실토실 애벌레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침 일찍 밭에 갔다가 그 놈을 마주하고 혼자 비명을 질렀더랬지... 차마 발로 밟을 수가 없어서, 바위로 내리쳤던 (뭐야, 더 잔인해보이잖아.. ㅡ.ㅡ)...

어쨌든 마지막 수확 때에는 정말 감격만세 찍을 뻔 했다니까 ㅋㅋ

 

2013/09/03 정성껏 거지같이 심은 배추 모종...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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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4 배추가 벌써 달팽이의 공격을... 과연 얘네들이 잘 클 수 있을까 걱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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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2013/9/27, 10/05

하지만, 이건 우리가 평소에 보던 배추가 아니라 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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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4 배추는 날로 옆으로만 퍼지고, 사진을 보신 엄마가 의심을 하기 시작.... "니가 심은 게 배추 맞냐?" 응??? 잎사귀도 어찌나 억센지, 손가락을 다칠 지경... 선생님은 저절로 결구가 되는 품종의 배추라 묶어줄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왠지 혼자 결구할 것 같지 않은 느낌적 느낌....  달걀껍질과 현미식초로 만든 칼슘비료 열심히 뿌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림....

파는 아무리 쪽파를 심었다지만 저렇게 미세하게 가늘 수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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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어쩐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나 생장할 법한 야생배추의 탄생이 예고되는 마당에...

심지어 주차공원 관리아저씨마저 나한테 배추 좀 묶어주라고 조언을 하실 정도...

 

2013/11/08 주중에  같은 조원인 로피쉬가 귀한 지푸라기를 구해다가 드디어 배추를 묶어 주심... 배추야, 제발 이제 속을 채워다오.... 나는 파란 잎보다 보드라운 하얀 속 부분을 더 좋아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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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드디어 수확..

배추를 열 포기 심었지만, 두 포기는 중도 사망, 두 포기는 너무 알이 작고 벌레가 많이 먹어서 포기... 그래도 여섯 포기라는 경이적인 수확률을 기록하고, 갓과 쪽파, 무우도 극소량 수확.... (사진 속의 쪽파와 무우는 세 사람의 수확물을 합친 것 ㅋㅋ)

막판에 묶어준 덕택에 배추가 제법 배추다운 모습...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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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에 진딧물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데, 우리 집은 담가놓고 씻을 곳이 없어서 부모님 댁으로 운반..... 결국 욕하면서 엄마가 다 다듬어주심 ㅋㅋ

무우가 하도 작다보니, 엄마가 혹시 열무를 심은 거 아니냐고 물어보심... ㅋㅋㅋ 그러게, 우리도 뽑아보고 깜딱 놀랐다니까.... 이건 뭐 무우 미니어처, 분재라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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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확물들 중 무우는 엄마네 집 김장에 기념으로 들어갔고 (엄마가 나중에 나 다 먹으라고 ㅋㅋ)

나머지는 우리집에서 연구소 샘들하고 나눠 먹음....

배추는 겉절이와 배춧국 5인분, 갓도 겉절이 재료로, 그리고 3명이 수확한 쪽파는 달랑 파전 두 장 ㅋㅋ

하지만 어찌나 배추, 갓, 쪽파가 달고 맛있는지, 사람들 깜놀....

3개월 농사가 세 시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마법이라니... 

 

*

올해 가을에 또 하면 더 능숙하게, 당황하지 않으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도시농부라는 말이 너무 예쁘면서도 씩씩해보이지 않나?

새삼, 농약의 중요성도 깨닫고 ( ㅡ.ㅡ 정말 생계로 짓는 농사인데 그렇게 벌레가 많으면 울어버리고 싶을 듯) 날씨와 절기의 변화라는 자연의 힘도 절실하게 체감하고...

지인들과 협동해서 뭔가 꼼지락꼼지락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의 뿌듯함도 맛보고.....

이러니, 도시농부활동을 2013년 최고의 보람 사건으로 꼽지 않을 수가 없었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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