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불패 혹은 무오류의 신화...

어제 시당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참가를 했다기보다... 미국/캐나다/꾸바의 보건의료 현황을 소개하는 간단한(?)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된 거다.

 

끝나고...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북한과 꾸바가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북한의 상황은 어떤가?

 



북한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W 샘이 나 대신 현황을 설명해주셨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ㅜ.ㅜ

국가 중앙 병원이라 할 수 있는 평양적십자병원조차 전기공급이 안 되는 지경이고, 보건의료체계는 거의 와해된 수준이라고 말이다....

나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여러 샘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북한과 꾸바는 왜 다를까...

 

대재앙 수준의 자연재해와 미국의 금수조치라는 엄청난 시련 때문에 북한의 상황이 어렵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꾸바가 상황이 더 나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자연재해라면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쉬지 않고 허리케인이 눌러살다시피 하는데다, 바로 미국의 코 앞에서 30년 넘은 금수조치, 특히 90년대 초반 소비에트 몰락 이후 더욱 고삐를 조인 미국의 압박 때문에 꾸바도 무진장 힘들었다. 92년 이후에 한층 강화된 미국의 잔혹한 금수조치를 두고, 일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genocide'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었다.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다면, 꾸바에는 'special period'가 있었다.

 

꾸바 사회에서 독특했던 점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 동안 '인민의 삶'을 지키는데 최선 (최고/최대가 아니라)을 다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국가 그 자신'이 아니라....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무상교육/무상의료 의제는 물론, 약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생명공학기술 투자, 농산물 수입을 대체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농업 육성...  그리고 심지어 더 가난한 남미 국가들에 대한 의사파견 지원사업은 멈춤이 없었다.

 

경제적 압력과 걸핏하면 무장공격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핵"이 아니라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민들이 다 굶어 죽고 아파 죽고 나면 ,

그깟 지켜야 할 조국이 무엇이고 혁명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북한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부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현재 민중들이 처한 고통을 자연재해나 미국 탓만으로 돌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좀더 개방적인, 이견을 허용하는 사회적 풍토도 꾸바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소비에트 유전학자 라이센코의 스캔들 (나중에 한번 소개해야지)은 전헝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지배한(자유주의자들의 비판), 그리고 환원론적 경직성이 변증법적 이해를 가로막았던(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 반과학 사건으로서, 교조주의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이와 달리 꾸바에서는 사회발전 방향, 개발 방식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토론'과 투쟁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난 직후에는 꾸바 사회의 교조적 경직성도 장난 아니었다고...  (레빈스 할배의 말씀) 시간이 걸려도, 주요 과제들을 인민들이 토론할 수 있는 사회,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까스트로 흉보며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숨쉬다가도 음악 나오면 앗싸~~~ 

 

글이 샛길로....

 

하여간, W 샘이 답변해주신 후에, 덧붙여서 이런 개인적인 의견을 짧게 피력했는데...

그 순간...

분위기 완전 썰렁~

 

몇몇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북한이 처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특수 정황론'을 들으면 두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선 유신정권의 소위 '한국식 민주주의'...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한국식' 민주주의...

 

두번째는 내인생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인디...

일명 대자보 파손 사건이다.

학생 때 우리학교에서 전대협 출범식이 열린 적이 있다. "불패의 신화, 전대협"...

마지막 날 모여서 라이터불 번쩍이며 의장님 "옹립식"하던 그 전대협 말이다.

당시 학생운동 일각에서는 전대협이 보여준 '불패의 신화'니 '무오류의 역사'니 하는 식의 자기인식을 비판하는 의견이 팽배(???) 해 있었다.

우리 단과대학도 이런 취지의 대자보를 학교 입구 (우리 건물은 정문 들어서면 첫번째!)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했었다. 

당시 대자보를 내가 썼는디....요지는 스스로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돌아봄으로써 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거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한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불패'니, '무오류'를 이야기할 수 있나... 플러스 뭐 어쩌구저쩌구... (생각해니 상당히 시건방진 대자보구나... 지금 같으면 절대 못쓸...ㅜ.ㅜ) 

 

문제는, 이 대자보를 붙이기만 하면 누군가가 찢어버렸다는 거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어떤 단체의 현수막도 가운데가 '싹뚝'...

출범식이 열리는 2박 3일 동안, 나는 똑같은 대자보를 세 번 썼다. (길이도 엄청 긴데..)

 

똑같은 대자보 연속 세 번 쓰면서 슬펐던 것은

우리글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들의 의견을 담은 비판의 대자보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찢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상황이 특수해서,

너무나 숭고해서 감히 비판조차 할 수 없는,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존재...

세상에 과연 그런게 존재하나???

 

속해있는 정파조직도 없고,

나 스스로 어떤 정파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지만

그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와 종교인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관념이 아닌 구체적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 아닌가?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는 이미 넘어섰다고 이야기해버리면 할 말 없고....

 

뭐 어쨌든,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이 분들이 베네수엘라에 열광하는지도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