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시모프를 위한 변명?

오랜만에 한국어 책을 읽고 있다.

 

 

 

 

 

예전에 블로그에서도 읽었고, 수정된 윈고를 작가께서 친히 보여주신 적도 있는지라 (영광이오!) 내용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었으나, 그래도 역시 시청각 자료의 힘은 대단하여... 각종 자료와 사진들을 함께 보니 좋기는 하더라.  이 많은 그림들 찾아내고 저작권 확인하느라 편집자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대학 시절, 하루키의 소설을 읽던 중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인지, 상실의 시대인지 구분이 안 됨) 혁명의 가장 큰 적은 전술(이론?)의 빈곤이 아니라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표현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근데, 이거 정확한 기억인가 확신이 안 서네.. ㅡ.ㅡ)

소련 아카데미 교과서(?)의 번역물이었던 세계철학사 1,2,3를 열심히 암기(!)하던 나에게 "상상력과 혁명"이라는 개념은 한번도 함께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계식 언어 조합이었고.... 당시로선 충격이었지.... 

 

이제는 "통통 튄다"느니, "재기발랄"이라느니 하면서 사회운동에서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아직 미덕은 그저 미덕일 뿐....  생활 속의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고 전복적으로 사고하기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장구한 역사의 가부장제, 권위주의적 군사문화, 역시 그와 쌍동이처럼 자라온 권위주의적 운동 문화, 또 개념상실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문화속에서.... 길들여지기는 쉬워도 전복적으로 사고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 면에서 "내가 춤출 수 ~" 는 읽는 순간은 유쾌하게... 그리고 읽고 나서는 익숙한 것들의 이면을 다시 생각해보며 정치적인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책이다.

 

근데... 이거 접대용 멘트가 너무 심한가? ㅎㅎㅎ

음. 사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건데....



이 책에서는 아시모프의 로봇관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의 시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일부는 동의.

 

하지만, 아시모프가 로봇 3원칙을 통해서 주구장창 제기해왔던 문제는 "인간 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고 본다.  

 

그의 대표작인 로봇 시리즈 (The caves of steel - 강철도시, The Naked Sun - 벌거벗은 태양, Robots of Dawn -여명의 로봇, Robots and Empire 제국과 로봇) 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도대체 인간을 인간이게끔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면 베일리라는 지구인 경찰 (로봇 시리즈), (이름도 기억 안나는 시골 행성의) 해리샐던 박사(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들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Daneel R. Olivaw 라는 로봇이고, 이 로봇의 "완벽한" 이성적 판단과 행동, 로봇 3원칙을 통해 구현된 "완벽한" 도덕적 행위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무엇인지, 인간 본성의 취약함이 무엇인지, 혹은 강점 (때로는 무모한 도전, 그리고 상상력! 회의주의!)이 무언지, 그리고 연대와 인류애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도록 만든다. 

 

이 책에서 비판한 바이센테니얼맨 (사실, 그 모티브는 단편인 Robbie 에서 비롯되었고 나중에 Positronic man 양전자인간 이라는 작품으로 더욱 확장됨)도,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2백년에 걸쳐 "개인적인" 신분 상승을 "성취한" 로봇의 눈물겨운 성공스토리라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인간과 동등해질 수 없었던 소수자의 이야기라고 나는 이해해왔었다.    

 

아시모프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공포 - 특히 프랑켄슈타인, 정신나간 과학자들의 몬스터 창조로 상징되는 - 를 불식시키고 싶어했고, 그래서 고안한 것이 로봇 3원칙이다. 그렇다고 아시모프가 모든 과학발전은 선이요, 기술발전만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과학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거대한 파급력을 가질수록, 대중들이 새로운 과학기술에 깨어있고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대중적 글쓰기(소설과 각종 에세이)에 힘을 기울여왔던 것이다. 이 바닥 언어로 표현한다면 과학기술의 "사회민주적 통제" 쯤이라고나 할까....   

이런 할배의 지론을 생각할 때, 그의 로봇 3원칙이 자본가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딱 들어맞는다고 비판해버리면, 할배 너무 섭섭할 거다. 더구나, 그의 작품 속에서 로봇이 수동적 개체로 그려지거나, 인간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 적은 그야말로 없었는데 말이지...

 

또, 로봇 3원칙의 몰이해와 왜곡은 물론, 아무 개연성 없는 스토리로 아시모프 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아이 로봇" 같은 영화를 이 책에서 언급한 것도 좀 섭섭했더랬다. 사실 이 영화는 아시모프의 원착 I, Robot은 물론 로봇 3원칙과도 아무 관련이 없는.. 그저 제목만 같은 영화라고 보는게 맞는데 말이지.... (아이 로봇은 로봇 3원칙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구현되어 왔는지를 보여준 단편 모음. 파운데이션 시리즈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해왔음)

 

사실, 아시모프에 대해서는 불만도 많은데... 

변명해주려다보니 아시모프 칭찬 일색이 되어버렸네???

할배의 그 다짜고짜 줄거리 위주의 기술 (르귄 같은 작가하고 비교해보면 얼마나 서사가 부족한지.... 정말...)과 완전 뻔하고 유치찬란한 로맨스 양념 (이것만 빼도 소설이 열배는 훌륭해질거야), 거기다 꼭 결말까지 결정적인 비밀을 안고 가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려는 그 무리한 노력....  이런 건 정말 맘에 안 들어... 아무리 팬이라고 해도 말이지....

또 잘난척 하기로 유명하고.. (이런 거야 뭐 논외로 쳐야지. 인간성까지 어떻게 ㅎㅎㅎ)

 

어쨌든, 작가님!!!

혹시나 개정판 내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아이 로봇"은 좀  어떻게 바꿔주셈. 꼭~~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칭찬...

책이 쉽게 쓰여져서...

작가가 읽어주길 바랬던 사람들이 실제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좋아요.

 

 

 

* 사족

제목을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웬지 엠마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뻣뻣하게 말했을 거 같지는 않아서....   오히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내 혁명이 아니야"라고 했을 거 같은데 말이지...  하기야.. 뭐 누가 알겠냐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