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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풀이 눕다....[김수영시집]을 읽고

  • 등록일
    2007/02/13 07:34
  • 수정일
    2007/02/13 07:34

 

간만에

정말 간만에

거의 잊고 지내다가 간만에

김수영 시집을 샀다.

 

원래는 다른 책들을 구경갔다가

거의 충동적인 구매욕이 들어서

집에 분명 김수영 시집이 한 권 있는데도

참을 수가 없어서 샀다.

 

역시 좋았다.

눈물나게 좋았다.....큭큭

 

 

   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슨 펜과 뼈와 광기 ------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아 ! 넘 좋지 않나 ?

마치 나의 이야기인것처럼

시는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다.

시가 사람을 바꾼다면 아마도 이성이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일 것이다.

아니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성이 아닐까 .......^^;;

 

김수영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때이다.

뭐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3학년때

도서부장 하면서

도서관의 책이란 책은 다 읽기 시작했을땐데

그때는 뭔 소린지 몰라도 그냥 아 ! 좋군...뭐 이따위 생각으로 읽었었는데

 

고등학교시절

한창 까뮈를 읽고 있을때 시 한편이 아 ! 난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막막한 느낌을 주었을때 그 이후로 시집을 사서 읽고 읽고 또 읽고 ...........

그렇게하면서 좋아졌다.

 

그때 시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다.

한없이 소심하고 한없이 쪼잔하기만 했던

그 쪼잔함에 그 소심함에 기가죽어 자취방에 틀어박혀 지낼때

아 ! 뭔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진 시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우습지 않느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1965. 11. 4>

 

항상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에 분노하면서

항상 중요한 일들에 비껴서서 묻어 가기만 하는 삶

두렵기도 하고 뭔가 용기도 안난다는 이유로

괜히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화내고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면서 가는

어쩌면 내가 증오해 마지않는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눈이 마음이 시큰하지 않는가 ?

 

그때 그렇게 결심했던 것 같다.

용기있게 살자고

조금만

단지 한 발자국 정도 라도

남의 아품에, 시대의 아품에,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단지 한 발자국이라도 용기있게 다가가는 삶을 살자고........

 

지금 생각하고 반성하고...골똘이 골똘이 챙겨보아도

과연 이 나이되도록

그렇게 살아 오기는 했는지....한숨만 나온다.

 

               절 망

 

 風景이 風景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速度가 速度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 8. 28>

 

솔직히 요즘 그동안 해오던 시민사회단체일들을 정리하고

하루벌어 하루먹는

돈벌어야 사는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은

왠지 스스로 의기소침하고 누구말대로

너 ! 절망했냐 ? 라는 식의 말을 듣는 지금

어쩌면 나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그동안 해왔던 활동들에 대한 정리들 없이

너무나 성급히

너무나 생각없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

우리가 꿈꾸던 사회

자본과 재벌과 모든 독점과 차별을 철폐하는

진정한 자유와 인간다움과 연대와 활력이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 대한 꿈과 필요성...살고싶은 욕구가 줄어들기는 커녕

한국사회에서 나날이 이런 사회로의 발전가능성이 줄어들고

사람들은 극단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나란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싸워야 할까 ?

 

          아 ....그림자가 없다

 

우리들의 敵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敵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惡漢이 아니다
그들은 善良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民主主義者를 假裝하고
자기들이 良民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選良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會社員이라고도 하고
電車를 타고 自動車를 타고
料理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雜談하고
同精하고 眞摯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原稿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海邊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散步도 하고
映畵館에도 가고
愛嬌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戰線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延禧高地도 아니다
우리들의 戰線은 地圖冊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職場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洞里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焦土作戰이나
[건 힐의 昊齒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歡談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土木工事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市場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戀愛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
授業을 할 때도 退勤時에도
싸일렌소리에 時計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民主主義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民主主義式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民主主義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다……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
응응…… 응 …… 뭐?
아 그래 …… 그래 그래.

<1960. 4. 3>

 

그럴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이젠 도입이 아니라 삶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어딘들

내 가정 나의 인간관계속에서든

신자유주의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이 있으랴

어디든 그런 버려야 할 것들이 넘쳐나지 않는 곳이 있으랴.................

 

적은 언제나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동지라고 생각했던

민주노동당 혹은 민주노총 혹은 시민사회단체에도

결국은 우리의 신자유주의자인 적들이 있을 것이다.

그냥 시집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의 한심함과 내 자신의 소심함을 보며......................

 

오늘도 술한잔을 할 것 같다.

그래도 김수영 시를 읽었는데

이런 날 맘편이 술한잔 안하면 넘 슬프지 않겠나........!!

죽어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죽어서

더욱더 시인이 되어버린 김수영의 마지막 시란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술먹고

그냥 누워서 자야 겠다.....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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