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컨닝

 

내 점수를 올리기 위해 처음 했던 컨닝은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국어시험에 맞춤법을 물어보는 문제가 있었다. 헷갈려서 답을 못정하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답을 써야한다는 강박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빈틈을 안남기려는 강박증은 뿌리 가 깊은 것 같다. 그 무렵에도 컨닝이란 건 학교생활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반사회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어있는 답을 메우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컨닝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걸렸을 때 겪게될 일들이 두려웠을 따름이었다. 내가 한문제를 더 맞는다 해서 누군가에게 별다른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고, 설사 죄책감이 들었다 해도 비어있는 답안란을 놓아두는 것보다는 그 죄책감을 마음에 이는 것이 차라리 더 홀가분했다.

 

그 땐 책상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시험을 치뤘었는데, 컨닝을 못하게 막기위한 의식이지만 사실 이건 컨닝에 매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준다. 다른 사람 것을 보고적기야 힘들겠지만, 자기 책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가려지니 말이다.

시험과 관련된 책들은 다 치웠기 때문에 책상에 참고할 만한게 없었는데, 서랍을 뒤적이다 눈에 들어왔던게 얇은 한영사전이었다. 빈약해보이기는 하지만, 어쨋든 쟤도 사전이니 표준어대로 실려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가방을 병풍삼아 재빨리 단어를 찾았다. 그렇게 답을 찾아 적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그 뒤로도 컨닝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미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음에도, 100점이 아닌 시험지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고, 100점에 대한 강박이 컸다. 점수는 등수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집착했던 것은, 아닌 척 해도 스스로를 서열화된 경쟁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서술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무렵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등수를 얻고 있었고, 그 이상의 등수가 필요하다는 욕심을 낸 적은 없다. 시험이 절대평가이길 항상 바랬으며 대학입시에는 절대평가로 계산된 내신성적이 반영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1등을 하든 20등을 하든 90점만 넘기면 별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컨닝은 등수를 올리는 것 보다는 비어있는 답안지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결벽증에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설명하는 편이 옳다.

 

대학에 와서도 컨닝은 때때로 이어졌고, 이 때의 컨닝은 생존을 위한 컨닝이었다. 유급을 면하기 위한 - ......

 

나중에 더 써야지.;;

 

 

 

 

그런 결벽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Pass 시험이고 충분히 통과할 만큼 답안을 작성했더라도, 남은 여백을 채우기 위해 끙끙대며 컨닝이라도 할 방법을 강구한다. 시험에서 뿐만 아니라, 레포트를 쓸 때도, 다른 글을 쓸 때도, 어떤 사업을 할 때도 - 여백이 보이면 그것이 머리에 끊임없이 떠올라 손댈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여백을 못견디는 건 그렇다쳐도, 그 여백을 메우기 위해 그만큼 절실하게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컨닝과 비슷한 방법을 시도해서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그냥 놓아둔다. 어차피 내가 노력하지 않았던 부분이니, 성공하면 덤이고, 안되도 손해볼 건 없다고 여겨버리는 것이다. 완벽에 대한 결벽증과 내 삶을 소진시키고 싶지 않은 얄팍한 마음은 샛길을 찾아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잡을 수 없는 공을 잡으려 해야하느냐는 질문은 정당하다. 거기에는 공을 잡아내야 하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후자의 질문을 빼놓고서, 떨어진 공을 주워 글러브에 담아놓고는,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지만 공은 잡는다고 얘기하는 꼴이다.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내가 본래는 어느 편에 가까운 인간인지 알수없게한다.

 

100 점짜리 시험지에도, 성공한 삶에도, 멋진 인간관계에도, 어느것에도 얽매이기 싫다는 마음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얽매이지는 않되, 그것을 놓아버리지는 못한다. 놓지는 안되, 잡지도 않기 때문에 되면 그만, 안되도 그만이다. 결국 내 진심을 다하는 것이지 않다. 내 모든 걸 던지는 삶을 동경하지만, 일상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에게는 정작 그러지 못한다. 내 삶을 던지지 못하면 잡지 않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마음일 뿐이다. 이런 내 모습이 안타깝다.

2009/12/13 11:08 2009/12/13 11:08

지나간다아픔

나만 아픈 게 아니다.
아픈 사람은 참 많다. 아픔의 종류도 다양하다.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위로가 된다.
공감받지 못할까봐, 동정받을까봐 두려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꺼낼 수 있다.

비슷한 류의 사람들이 비슷한 아픔을 겪는 것 같다.
나 의 상처는 나의 온존재를 걸었던 무언가가 무너졌을 때 생긴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내가 죽을 수 있어야 했다. 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내가 죽을 수 있었다. 그 칼날이 나를 베었다. 내 주변의 아픈 사람들도, 보통 그래서 아프다. 자신의 모든 걸 던졌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데 대한 상실감. 비슷한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하게 아프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다. 자신이 제일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아픔을 나누고 싶지도 않고, 나눌 수도 없다. 내가 겪은 아픔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연민이 든다. 쓰다듬어 준다. 그 사람도 나를 쓰다듬어 준다. 동정하는 게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느낌이 좋다.

2009/12/12 00:48 2009/12/12 00:48

지나간다포털 댓글

포털 메인에 있는 뉴스기사를 누르다 보면 달려있는 댓글들도 같이 읽게 되는데, 말그대로 개념 물말아 드신 댓글도 있지만, 요즘들어 상당히 정확한  인식을 담은 댓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예를들면,
이번 철도 파업에 대한 기사를 보면
파 업이 당연한 권리이고, 공기업 선진화가 민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 민영화를 통해 얻어지는 일자리래봐야 불안정한 삶을 확대하는 것일 뿐,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것 등을 이야기하는 댓글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런 댓글들이 가장 추천을 많이 받아 위쪽에 올라와있다.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이게 어느정도의 여론인걸까? 왜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게 느껴지질 않지..? 신뢰할 수 있는걸까?

그런 댓글에 담긴 말 몇 마디로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판단하기는 어려운거고, 너무 쉽게 긍정하거나 비관하지 말아야지. 어쨋든, 예전엔 욕지거리 하기 싫어서 댓글에는 눈길을 안줬는데, 요즘엔 읽을만한 댓글이 많네...

2009/12/11 08:16 2009/12/11 08:16

지나간다갑사

계룡산 밑자락에서 시험공부하고 있다. 단체로 합숙중인데, 이것도 며칠지나니 긴장이 풀려 매일 댕강댕강이다. 그래도 산밑에 있어서인지 나를 돌아보는 게 잘된다.

밤 에 일과가 끝나고 근처에 있는 갑사를 올라가봤다. 밤중에, 가로등이 모두 꺼져 캄캄한 길을 별빛과 달빛이 희미하게 밝혀줬다. 별빛도 어두운 길에선 꽤나 밝다. 옛날엔 더 밝았겠지? 이 추운 날, 츄리닝 차림으로 걸어올라갔더니 얼굴, 손, 다리가 꽁꽁 어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올라가서 절은 너무 조용했고, 감히 경내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근처에 약사여래상이 있대서 거길 찾아가봤다. 고려 때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는 약사여래상은 비바람에 많이 닳아있었다.

작 년 초, 실상사에 들렀을 때, 그 때도 약사여래불 앞에서 여러 서원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 날의 서원을 흐트러트리지 않기를 서원했다. 약사여래와 인연이 깊은가보다. 몇 번 절을 하다, 너무 추워 손에 감각도 없어지고 해서 돌아서 내려왔다.

난 언제나, 작고 약하다. 그리고 작고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건, 내 약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때이다.

그나저나 공부는 제대로 안하고, 큰일이네..

2009/12/11 08:16 2009/12/11 08:16

지나간다잡기

삶아먹으려고 사놓은 바지락이 냉장고에 있는데,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무심코 바지락이 담긴 비닐봉지를 보니 바지락이 꿈틀거렸다. 잘못본게 아닌가 싶어 계속 지켜보니까 그 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다. 순간 마음이 찡해지면서 내가 이것들을 먹어도 될것인지에 대해 자못 진지한 의문이 생겼다. 떠올려보면 대야 가득 살아있는 바지락을 삶아 먹기도 했었는데, 냉장고 안에서 꿈틀거리는 바지락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걸까. 이 억척스러운 곳에서 살려고 바둥거리는 몸짓이 내가 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의 이들의 몸짓과 닮아있다. 그런 장면을 볼 때 항상 동동거리는 것은 내가 제대로 알 수 없는 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몸짓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파리도, 그냥 지나가고 나면 가슴에 남아 한동안 괴롭힌다. 더 생각해보면, 내가 위해를 가했는지 여부가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위해를 가하는 순간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그 위해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존재의 모습을 깨달을 때 마음이 무너내린다.(내 눈에 보이지 않게 내가 상처입힌 존재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이런 거스럭거림이 자기만족을 위한 알량한 치장에 불과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나 에게 원죄같이 따라붙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래전에 할머니가 꾸셨다던 꿈의 장면이다. 어디론가 먼길을 떠나는 나에게 색동옷을 입은 아이가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같이가면 안될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난 그 아이를 내치지 못하고 데리고 떠난다. 할머니는 그 꿈 이야기를 하시며, 저걸 떼어놓아야하는 데 못 떼어놓았다며 애석해 하셨다. 내가 꾼 꿈도 아니지만 그 이미지가 생생하게 나에게 입혀져 원형인 것 마냥 나의 한 조각으로 엉켜있다. 내가 이번 생에서 풀거나 지고 가야할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정보라 글로 풀어놓기가 어렵지만, 나의 원형이 내가 어떤 자극을 수용했을 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을 대략적으로 붙들어 매는 것 같다는 거다.

 

 

 

 

 

 

 

;;;;;; 그래서 난 융심리학에 관심이 많고, 핵심감정 이론도 공부해보고 싶다.

참고로 핵심감정은 자궁에 있을 때 혹은 그 이전부터 형성되어 평생동안 가장 밑바닥에서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다. 프로이트 무의식과는 근거가 다른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개체(주로 모체)로 인해 핵심감정이 형성되는 것이고 때로는 자신이 발생하기 전이 이미 핵심감정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융의 원형, 집단무의식과 더 가까울 듯..
2009/11/27 09:56 2009/11/27 09:56

지나간다시간대를 좀 길게 가질 것

하루, 일주일, 이렇게 짧은 시간대를 살면서 그 안에서 겪는 것들을 세상의 전부인양 기뻐하고 체념하고, 그렇게 끄달릴 필요는 없다. 그것들이 과정들로서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 밖의 것들도 세상엔 많이 있으니까.

 

학교 안에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내가 스스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데, 설사 잃어간들 또 어떠하고,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시간대를 짧게 두기 때문인 것이니까.

 

어차피, 지금은, 나를 ......

2009/11/19 13:32 2009/11/19 13:32

지나간다배앓이

왠일인지, 지난주부터 계속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설사야 워낙 자주 겪는 것이다 보니, 좀 지나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이제 시험공부도 시작해야 하는데, 왜 자꾸 게으름 피울 거리가 생기는 건지, 원.

공부하기 싫으니까, 몸이 알아서 아픈걸까?

 

병원에 가거나, 뭔가 약을 먹어야할 것 같은데..

움직이기도 귀찮고, 더군다나 춥다.

 

평소 신경이 가지 않던 곳이 이렇게 아프면, 저혼자 싹싹빌곤 한다. 이런 모습이 우스꽝스러운데, 딱히 할 수 있는 다른게 없으니 빌기라도 해야지. 사람이 곤조가 없다. 막 대하려면 곤조있게 막 대해야지. 간사스럽게.

 

 

 

 

 

 

 

아플 때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했는데,

난 후자 쪽인 것 같다. 관계에서 얻는 병은 아니라는 거겠지.

혹시 효험이 있을까 하여, 메밀차를 마시고 있지만 별무소용인 것 같다.

 

2009/11/16 21:02 2009/11/16 21:02

지나간다서글픔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집에 들리면, 슬픔이 한 덩어리씩 불어난다.

애초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일어나는 정동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집에 있는 차는 햇수로 16년째 타고 있다.

낡을대로 낡아, 지금껏 굴러다닌 게 용할정도다. 그런데 얼마전 차가 고장났나보다.

 

이 차를 고치는데 돈이 얼마나 들지, 고친다고 해도 또 고장나지 않을지 - 부모님은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차를 하나 새로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차를 새로 사야한다는 생각에는, 이제 나이도 지긋한데 친척집에 가든 어디를 가든 이 차를 가지고 다니는게 남사스럽다는 이유도 있었다. 무슨 명물 보듯 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쓰이고, 위신 같은 걸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게다.

그래서 새차를 살까 하는데, xx는 1000만원 대이고.... -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차종들은 겉보기라는 면에서 생각한다면 너무 초라한 것들이었다. 나야 차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걸로 서열을 매기려는 생각도 없지만, 어쨋든 부모님은 차에 대한 사회일반의 기준에 따르고 싶은 건데, 그 욕망에 따라 편입해봐야 가장 아래층이라는 거다. 위신을 생각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게, 기껏 그렇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은 그게 또 얼마나 씁쓸할까를 생각하면 슬픔이 비 젖은 종이쪼가리 처럼 무겁고 질척거리게 내려앉는다.

아에 그런 기준따위 생각치 않고, 필요만 생각하고 차를 산다하면 즐겁고 들뜰 수도 있을텐데. 겉보기 따위에 끄달리지 않겠다는 어릴적 부터의 다짐, 하지만 이건 나를 자유롭게 할지 모르지만 저것들이 충족되길 바라는 부모님은 어떻게하나? 소위, 평범한 집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가슴 저미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님이 그 끄달림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그것은 놓음(放)이 아니라 체념일테니까. 그동안 쌓여온 상실감들을 메워낼 방법을 모르겠다. 알아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속만 태운다.

 

 

 

 

내가 거리두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거리는 둘 지언정 언제나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짐은 삶을 회의하게 한다.

2009/11/16 20:47 2009/11/16 20:47

지나간다필수품(깃대, 청테이프, 양면테이프) 고르기

돈 좀 아껴보겠다고, 온라인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다보면 쓸모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도착해있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 걸 사서 쓰는 게 좋은지 비슷한 물품 구매가 많은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면 좋을텐데 싶다. 그래서 그간 경험했던 걸 적어놓아 보면,
 
우선, 깃대로 쓸만한 싼 낚시대를 사곤 했는데
10절이 넘는 6m쯤 되는 민장대를 사서 끝에 2마디를 버리고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이건 어떤 제품이 좋았었는지 잘 생각이 안난다..;; 싸파 낚시대가 싸니가 아마 싸파제품 중 골랐었을텐데..)
 
이번에 산 녀석은 바다뜰채였는데, 보통 낚시대보다 마디수가 적어 접은 길이 1m정도이고, 그만큼 튼튼했다.
싸파 지수2라는 6m 짜리 바다뜰채를 샀는데,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사놓고 보니 그보다 싼 싸파 묵수 550이라는 낚시대를 샀어도 좋았을 뻔했다.
묵수 550도 접은 길이 1m에 편길이 5m정도 되는 뜰채다.
5m와 6m의 길이가 갸늠이 안되어서 6m짜리를 산건데, 직접 들고 다녀보니 5m면 충분하겠더라.
 
그나저나, 깃대만 몇 개를 사는건지 몰라;;
집회 갈 때마다 잃어버리고 오고...
 
 
다음엔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던
청테이프와 양면테이프 -_-;
 
청테이프는 동성에서 만든 거 접착력 좋다.
박스채로 구입해 놓고 잘 쓰고 있다. 하지만 양면테이프는 동성에서 만든 거 절대 사면 안된다!!!!! 절대!! 사람 성질 다 베린다. 뭣 좀 만들면서 양면테이프 쓰다 보면 어느새 서로 싸우고 있다.(그래서 이건 활동을 위축되게 하려는 누군가가 테이프 기업에 저질테이프를 만들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만들었다.)
붙어야할 대상과 테이프가 붙는 거 보다 테이프와 껍데기(?)의 접착력이 더 좋다. 쉽게 말해, 껍데기가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 벗겨진다.
양면테이프는 덕성이 제일 좋은 것 같고(근데,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안보인다.)
회사를 알 수 없지만 이거 잘 쓰고 있다.
 
 
가장 싼 걸 쓰려다 보니까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는 건데,
그냥 적당히 사서 쓸 폭 잡았다면 오히려 돈을 더 아꼈을지도 -_-
그리고 싸게 판다는 건 그만큼 중간에서 더 많이 뜯는 것이기도 할텐데,
돈이 없이 활동하려다 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금액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이런 게 제 살 깎아먹기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2009/11/09 10:29 2009/11/09 10:29

지나간다영화제

학교에서 영화제 준비한다고 아주 개난리를 치고 있다.

돈없이 해보자고 덤볐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다. 매일 모여 12시간씩은 준비작업을 하는 것 같다. 포스터를 수작업으로 만들어 붙이려니 다른 곳에서 붙이는 포스터에 비해 물량이 밀린다. 한창 동아리 행사들이 많은 시기인지라 여러곳에서 포스터를 붙이는데, 우리것은 아무리 만들어 붙여도 붙인 티도 안난다.

그래도 깐에 리플렛 까지 만들었는데, 영화 보러와서 리플렛 받아갈 사람이 몇이나 있으려나 싶다.

 

원래 주된 목적은 용산을 선전하는 거였으니, 떡고물 바라지 않고 묵묵히 선전하면 될일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기다리면 될까? 아닐텐데.. 도무지 자신이 없다.

 

마음 맞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중얼거렸었지만, 한 사람 있으면 두 사람 있었으면 싶고, 세 사람 있었으면 싶어진다. 숫자가 결정적인 건 아니지만, 꽤 중요하다. 열명과 열한명은 별 차이 없을지 모르지만, 세 사람이서 할 수 있는 것과 네 사람이서 할 수 있는 것은 배 이상 차이난다.

 

지금 하는 것들이 너무 일이 되는 건 좋지 않다.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했다는 기억으로 남는게 필요한데.. 뭐, 지나면 그러겠지? 모든 걸 일로 접근하는 나는, 너무 쉽게 성과를 계산하고 비판을 가한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톡톡거리던 시절의 나를 풍성하게 해줬던 영화제가 떠오른다. 그 때에도 찬 바람 맞으며 열심히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었는데. 봄철의 영화제도 설레지만, 늦가을의 설레임에 비할바가 아니다. 가을과 겨울이 좋은 건, 무엇인가 마무리되는 듯한 포근함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마무리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손에 들려있는 것에 매진할 수 있다. 내가 살아낸 삶에 대한, 그러니까 내 시간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뿌듯함. 봄에는 아무래도 내 손에 들린 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기 어렵다.

 

어느새 가을이다. 올해 어지간히 했다. 주체적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객관적 정세가 안받쳐주면, 어쩔 수 없는 거다. 내년에 올해만큼 할 수 있을까? -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특히 내년. 올해에도 충분하지 않던 것들이 여럿 있었다. 적당히 넘기지 말고 날을 세워야 한다.

2009/11/06 23:14 2009/11/06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