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39건

  1. 언터쳐블 (3) 2011/11/15
  2. 슬리피 할로우 / 팀 버튼 2011/11/15
  3. in a better world 2011/10/31
  4. 고백 2011/09/11
  5. 비몽 2011/08/23
  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11/08/16
  7. 초민망한능력자들 2011/07/14
  8. 대탈주 2011/06/20
  9.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 2011/03/31
  10. 블랙 스완 2011/03/13

언터쳐블

갱스터 영화 중 수작이라는데, 뭐가 그런건지 잘 모르겠다-

법을 지키는 게 정의라는 식의 조악한 논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덕분에 죽일 놈과 살릴 놈이 명확히 나눠지긴 했지만,

그닥 공감하기엔...

이야기를 단순하게 끌고가기 위해서 저런 설정은 어쩔 수 없었을지도.

 

 

 

미국은 조폭도 재무부 요원들이 잡는다는 말에 솔깃해서 봤다.

미국은 대통령 경호도 재무부에서 한다고 한다.

실제 알 카포네는 탈세로 복역했다고 한다.

거참.

 

돈이 제일인 세상의 선두주자답게,

모범을 보여준다.

2011/11/15 15:40 2011/11/15 15:40

슬리피 할로우 / 팀 버튼

책([슬리피 할로우])읽은 김에 영화도 봤다.

조니 뎁이 나오고, 팀 버튼이 감독이다.

 

목이 수도없이 댕강댕강 잘려나가는데,

어이구나,

좀 무섭다.

 

이카보드는 근거중심의 합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이지만,

정작 현실을 대면할 때는 '여성'과 '아이'를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 살금살금 다가간다.

용맹을 자랑하던 브롬은 허무하게 쓰러졌고,

이카보드가 가진 도구들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이 실재하는데,

해결의 실마리는 오히려 주술과 마법에 있었다.

재밌는 건, 주술은 여성이 돋보기는 남성이 사용한다는 거다.

 

소설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 시기는 어느편이 월등하지 못하고 아웅다웅하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어느 편이든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그 사실이 쉽게 기각된다.

 

조니 뎁의 능청스러운 몸동작들, 표정들 - 타고난게로구나!

2011/11/15 15:11 2011/11/15 15:11

in a better world

잔잔한 영상과 소리가 포근했다.

폭력에 대해 질문한다.

누군가 나를 때리면, 나도 같이 때려야 당면한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을테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을 재생산한다.

 

감독은 그래서 나머지 뺨까지 내주자고 얘기한다.

 

단기적인 국면과 장기적이 국면 사이의 갈등-

 

빅 맨을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장면이 너무 서러웠다.

우리는 왜 이리들 살까.

2011/10/31 12:22 2011/10/31 12:22

고백

일본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데, 볼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있다.

추격자, 황해 같은 한국영화에서 느껴지는 어떤 게 있듯,(한국느와르의 어떤 교본이 만들어진 것 처럼)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일본영화에서 종종 느끼는 어떤 게 있다.

그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재주가 없어서 막막하네..

 

스포일러 잔뜩.

 

 

 

 

//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 중 다른 이의 죽음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쿠라미야만 빠질까?

누구는 복수를 위해, 누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누구는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는 다른 사람의 꾀임에 빠져, 온갖 비틀림 속에서 죽고 죽인다.

 

마음이 약한 자가 그보다 더 약한 자에게 상처입힌다.

상처입은 자는 견디거나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가.

 

타인에게 온갖 고통을 안기지만, 자신이 입는 상처는 조금도 견딜 수 없는

자의식과잉의 군상들-

이런 관계 속에서 생명은 무게가 있을 턱이 없다.

생명의 가치는 미리 주어진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니까.

모두 관계 속에서 죽은 것이기도 하다. 얽히고 비틀린 관계.

실상, 전쟁이든 사회적죽음이라 일컬어지는 어떤 죽음이든 영화에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갱생은 지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그리고 장난이라고 말하며 영화가 끝난다.

폭탄설치가 장난이라는 건지, 갱생이 장난이라는 건지 이중적이지만 어느 편이든 해결되는 건 없다. 아무것도 교정되지 않았다. 그저 다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일 뿐.

 

죽음 앞에서 삶이 피 한방울 값보다 못해지는 상황이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죽으면서도 무엇인가 남기려는 노력으로 역사는 움직인다.

그래서 모든 죽음이 비극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를 비췄을 때 비극일 수 있다.

 

우중충한 하늘이 중간중간 끼워져있다.

OST 듣고 싶다. 노래가 radiohead 스럽다고 생각했는데, radiohead 노래 맞다.

 

 

 

 

//

일본영화를 일반화시켜 조금 더 적자면,

과잉되어 있다.

감정도, 상황도, 모든 게 과잉되어 있다. 이게 좀 힘들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벼운 척 하려는 게 과잉되어 있기도 하다.

(한 번 일본영화, 과잉이란 검색어로 검색해보니, 뜻밖에 일본영화와 드라마는 감정이 과잉되지 않은 게 장점이라는 글이 있네..)

과잉시켜야 미세한 차이를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절제 속에서 섬세함이 더 드러나지 않나..

 

고백을 보면서 배틀로얄도 떠올랐다.

배틀로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그 부풀려진 상황이 기괴했다.

일본 멜로 영화도 거의 보지 않는데, 그 과잉된 사랑의 감정에 이입이 잘 안돼서다.

하지만.. 평소 눈물 쭉쭉 빼는 신파도 어지간히 잘 보니,

단순히 감정의 과잉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암튼 뭔가 묘하게.. 마음에서 어긋난다..

2011/09/11 09:28 2011/09/11 09:28

비몽

나쁜남자 이후, 김기덕 영화는 선뜻 고르기 어려웠다. -_-;

 

큰 맘 먹고 봤다.;

 

색감이 좋더라.

빨간색, 흑색. 세로로 가로지르는 천.

 

상대방의 꿈이 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이 되지 않기 위해 쥐어뜯고 자해하고.

꿈 속에서 서로의 연인을 만나고, 키스하고, 섹스하고, 죽이고.

상대의 연인이 자신임을 깨닫고.

현실은 꿈? 꿈 이후의 꿈?

 

....

 

 

비몽의 비가 날비일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했을꼬.

2011/08/23 22:48 2011/08/23 22:48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위한나라는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뻥쪘다.

헐리우드 문법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듯.

한 번 다시 봐야려나..

 

특별히 살려두는 이 없이,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죽이는 게 압권인 듯.

파국으로 치닫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삶의 지혜 따윈 흘러간 옛사랑을 그리는 추억의 노래?

2011/08/16 22:40 2011/08/16 22:40

초민망한능력자들

이완맥그리거가 나온대서 봤다.......는 아니고, 영화 소개가 끌려서 봤다.(영화 소개에 이완맥그리거가 보여서...)

 

스포일러 몽땅 있음. 결말까지 다 있음. 근데 알고 본대서 영화의 재미가 떨어지지는 않을것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펼친다. 현실이 아닌 영화속에서 조차 그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일한 길이 없다. 뭔가 우스꽝스러운데 다들 진지하니 웃음을 터트릴 곳을 찾기 어렵다. 영화는 그렇게 전쟁과 군대를 비꼰다.

 

설정을 조금바꿔보면 영화속 신지구군은 정의의 사도 미군과 그대로 겹친다. 세계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군대 말이다. 그것도 자국의 안위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미군은 이라크로 갔고, 영화 주 배경도 이라크다. 영화 속에서 린 캐서디는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에 충실한다. 피지배자들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가상의 보편성을 곧이 곧대로 실현하려 하면 반역이 된다(발리바르)는 문구가 연상된다.

 

린 캐서디는 이라크에서 미군 혹 미국인의 실상을 두눈으로 보고, 이라크 인에게 사과한다. 이라크인 또한 캐서디에게 사과한다. 이렇게 만나는 건 현실에서는 환상에 불과할까.. 쉽지는 않겠지. 어쨋든 영화에서 저 장면이 가장 뭉클하면서 기억에 남는다. 그 과정의 구체적인 장면을 보면 용병들은 매번 이라크인의 이름을 바꿔부른다. 그리고 납치하듯 차에 태우고선 아무 의사를 물어보지 않는다. 이라크는 미국에게 그렇게 보호받고 있다. 평화를 노래하던 초능력자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죄없는 염소를 죽이는 장면도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힘 과시라는 현실의 비유다. 

 

그러니까 영화는 저 초능력부대보다 현실의 미군이 더 황당무계하지 않냐고 묻는다. 말도 안되는 일들을 사회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잖은가. 굳이 나서서 '반대'하지 않아야 할, 그런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아야할 일들이 수많은 논리로 지켜지고 있다. 미군이 내세우는 자기 존재 이유는 신지구군의 교본과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평화를 위해 전쟁을 선택하는 미군에 대해, 영화는 훈련을 위해 가둬둔 염소와 전쟁포로들을 풀어주는 걸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영화로 끝났고, 현실의 과제는 당연히 우리 손에 남겨져 있다.

 

영화를 보고나니 씁쓸한 웃음이 많이 남는다. 현실이 보이기 때문에 마음껏 깔깔 거릴 수 없는 그런 웃음. 이 영화 정말 수준높은 블랙코미디다.

2011/07/14 11:33 2011/07/14 11:33

대탈주

토요일 밤, EBS에서 대탈주가 나오고 있었다.

이 영화 끝까지 본 적은 없는데, 이런식으로 중간중간 몇 번 봤던 듯 하다.

그래서 결말은 잘 모른다. 

토요일 밤에도 중간부터 보다가 그냥 잤다.

이야기가 재밌어서, 끝까지 보려고 다운 받아놨다.

다 보고나서 더 적어야지.

 

포로수용소가 저렇게 자유로웠을까 싶기도 하고,

영화 중간중간 재치들이 좋았다.

 

방금 다 봤는데, 예상과 달리 해피엔딩(?)은 아니네.

결국 탈주를 감했했던 다수가 죽거나 수용소로 돌아오게 된다. 중요한 건 준비 과정속에서의 희망이기야 했겠지만..

 

전쟁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영화를 토대로 유추해보건대, 군복을 입고서 비전투중에 잡히면 사살하지 않는게, 원칙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 때에도 민간인은 많이 죽지 않았으려나?

radiohead의 ideoteque가 떠오른다. women and children first, children first children first

 

자유를 향한 갈망을 적군에게도 전염시켰다는 게 이야기의 한 부분이겠다. 

 

기관총을 쏘고 가는 레지스탕스도 뜻밖이었고,

저 땐 국경이 어떻게 생겼을지도 궁금하고. 국경이 모두 전선이었을까?

 

스티브 맥퀸이 주연이었는데, 이 사람 빠삐용에서도 주연이었다.

빠삐용 안 봤는데.. 봐야지.. ㅎㅎ

2011/06/20 13:52 2011/06/20 13:52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

 

 

 

영화에서 김복남은 섬에 고립된 여성이다. 섬사람 모두는 한편이 되어 잔인하리만치 김복남을 핍박한다. 그리고 이들은 김복남이 겪는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다. 김복남은 섬 바깥에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했다.
얼핏보면 이 영화는 그렇게 당해온 김복남의 복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얽혀있는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 섬에 쉬러온 복남의 친구 해원은 모든 상황을 보고서도 끼어들지 않는다. 해원에게 복남은 철저히 타인일 뿐이다. 복남은 해원에게 넌 다 알고 있지 않느냐며 도와 달라 요청하지만, 해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며 외면한다. 복수를 시작한 복남은 자신을 괴롭혔던 마을 사람 뿐만 아니라 해원에게도 낫을 겨눈다.
 
김복남은 곳곳에 있다
이 영화는 단어를 몇 개만 바꾸면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 현대차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전북버스노동자, 이외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된다.
전북에서는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이 100일을 넘겼다. 행정당국, 버스회사, 경찰은 한 몸이 되어 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오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시민들의 무관심한 태도도 큰 이유로 작용한다. 시는 이런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체버스를 운행하며 시민들의 불편을 없애려 노력해왔다. 버스 운행률이 90%를 넘어섰고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에 관심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
이 영화는 이런 시민들에게 죄가 없는지, 이 시민들과 버스회사는 한 편이 아닌지를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조자는 직접 가해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해에서 책임을 면할 것인가? 도로를 막고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노동자들의 복수는 과도하고 비난받을 일인가?
 
이 복수는 과도한가?
영화에서 해원은 거짓말을 했고, 가해에 동참한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명시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흐릿하게 엉켜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곳곳에서 언제나 있지만 관심 가지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지 조차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외면했다고 탓할 수 있을까? 힘없는 이들의 싸움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 사회는 이런 식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유로운(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들이 만든 사회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다. 사회와 구성원들은 서로 면죄부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해도, 누군가는 실제로 고통 받으며 스러져가고 있다. 내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제3세계 아동이 맨몸으로 농장에 농약을 뿌리고 있고,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을 얻는다. 해원처럼 ‘난 아무것도 몰랐다’며 발뺌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있다.
 
복수는 누구에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벌렁거려 오랫동안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해마다 수많은 열사들이 있었고 선전물로 열사를 알릴 때 마다, 난 ‘우리 모두가 죽인 것’이라는 표현을 집어넣곤 했다. 영화를 보면서 박종태 열사가, 김주익 열사가, 배달호 열사가, 김진숙씨가.. 이런 사람들이 내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잔인한 복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복수의 방식보다는, 집요하게 ‘누구에게’ 복수할 것인지를 캐묻는다. 김복남의 낫은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우리 모두를 향해 겨눠지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벌렁거려 오랫동안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해마다 수많은 열사들이 있었고 선전물로 열사를 알릴 때 마다, 난 ‘우리 모두가 죽인 것’이라는 표현을 집어넣곤 했다. 영화를 보면서 박종태 열사가, 김주익 열사가, 배달호 열사가, 김진숙씨가.. 이런 사람들이 내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잔인한 복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복수의 방식보다는, 집요하게 ‘누구에게’ 복수할 것인지를 캐묻는다. 김복남의 낫은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우리 모두를 향해 겨눠지지 않을까?김복남은 섬에 고립된 여성이다. 섬사람 모두는 한편이 되어 잔인하리만치 김복남을 핍박한다. 그리고 이들은 김복남이 겪는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다. 김복남은 섬 바깥에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했다.
얼핏보면 이 영화는 그렇게 당해온 김복남의 복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얽혀있는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 섬에 쉬러온 복남의 친구 해원은 모든 상황을 보고서도 끼어들지 않는다. 해원에게 복남은 철저히 타인일 뿐이다. 복남은 해원에게 넌 다 알고 있지 않느냐며 도와 달라 요청하지만, 해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며 외면한다. 복수를 시작한 복남은 자신을 괴롭혔던 마을 사람 뿐만 아니라 해원에게도 낫을 겨눈다.
 
김복남은 곳곳에 있다
이 영화는 단어를 몇 개만 바꾸면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 현대차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전북버스노동자, 이외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된다.
전북에서는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이 100일을 넘겼다. 행정당국, 버스회사, 경찰은 한 몸이 되어 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오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시민들의 무관심한 태도도 큰 이유로 작용한다. 시는 이런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체버스를 운행하며 시민들의 불편을 없애려 노력해왔다. 버스 운행률이 90%를 넘어섰고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에 관심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
이 영화는 이런 시민들에게 죄가 없는지, 이 시민들과 버스회사는 한 편이 아닌지를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조자는 직접 가해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해에서 책임을 면할 것인가? 도로를 막고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노동자들의 복수는 과도하고 비난받을 일인가?
 
이 복수는 과도한가?
영화에서 해원은 거짓말을 했고, 가해에 동참한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명시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흐릿하게 엉켜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곳곳에서 언제나 있지만 관심 가지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지 조차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외면했다고 탓할 수 있을까? 힘없는 이들의 싸움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 사회는 이런 식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유로운(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들이 만든 사회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다. 사회와 구성원들은 서로 면죄부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해도, 누군가는 실제로 고통 받으며 스러져가고 있다. 내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제3세계 아동이 맨몸으로 농장에 농약을 뿌리고 있고,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을 얻는다. 해원처럼 ‘난 아무것도 몰랐다’며 발뺌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있다.
 
복수는 누구에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벌렁거려 오랫동안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해마다 수많은 열사들이 있었고 선전물로 열사를 알릴 때 마다, 난 ‘우리 모두가 죽인 것’이라는 표현을 집어넣곤 했다. 영화를 보면서 박종태 열사가, 김주익 열사가, 배달호 열사가, 김진숙씨가.. 이런 사람들이 내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잔인한 복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복수의 방식보다는, 집요하게 ‘누구에게’ 복수할 것인지를 캐묻는다. 김복남의 낫은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우리 모두를 향해 겨눠지지 않을까?
2011/03/31 11:23 2011/03/31 11:23

블랙 스완

1. 날고 싶다는 욕망이 선사시대 부터 인류의 욕망이랬던가..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서 발레의 몸동작이 날고 싶은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채찍질 하듯 몸을 돌리는 동작을 푸에타라고 한다. 검은 깃털을 펼치고 몸을 휘도는 장면, 좋았다.

 

2. 전체적인 줄거리는 백조와 흑조가 한 몸안에 있다는 것. 이런 전개는 헐리우드 영화들에 이미 숱하게 등장했었다. 다만 백조의 호수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본다는 점이 튀는 듯.

 

3. 얼마 전 도립미술관에 들리니 빅 뮤니츠라는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작가는 예술과 재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 현실의 모사라고 했을 때, 현실을 얼마나 근접하게 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같았다. 모든 예술이 공유하는 질문일텐데, 완전히 재현하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 궁극인건가? 기표가 기의에 미끄러지듯, 애초 불가능한?

2011/03/13 10:53 2011/03/13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