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보고 나왔다.
돌아와서 사람들의 평이 궁금해 찾아보니, 대개 지루하고 재미없다네..
난정신없이 봤는데.. 뭐에 그리 빠져들었을까.
감정의 거리가 보일 듯이 그려진다. 가까이 가면 멀어지고, 가까이 가면 다시 멀어지고, 또 다시 멀어지고..
훈은 애나를 뒤쫓지만 애나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멈추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하지만 밤이 되어서, 잠시 멈춘 훈을 애나도 멈춰서서 기다린다. 곳곳에 이런 변화들이 스며있다.
시애틀에서 햇빛은 짧다. 짧은 햇빛을 즐기라 하지만, 감옥은 날씨가 좋은 곳에 있다. 둘에게는 시애틀에서의 안개야 말로 찰나일 뿐이다. 삶의 아름다움은 햇빛보다는 안개에서 탄생하는지도 모르겠다.
휴게소에서 안개가 걷히지 전까지가 둘에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다. 상대방을 소유할 수도, 훗날을 기약할 수도 없다. 그저 그 순간만 있을 뿐. 왕징과 옥자의 남편은 사랑하기 때문에 소유하려고 한다. 소유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소유하고 싶어서 사랑.한다. 그 소유욕이 넘쳐 상대방의 포크를 뺏어가고도, 사과할 줄 모른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는데, 아름다웠던 찰나는 범속해져 소유로만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난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저런 사랑을 원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손에 쥐는 순간 범속해질까봐, 두려워하는데.. 그것만 두려울까?
이 영화, 시간의 흐름과 공간과 감정을 이어놓은 게 참 좋았다. 박찬옥의 파주가 떠올랐다..
/ 놀이공원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보다 가슴이 덜컥했다. 몸을 기대어 뛰어 오르는 동작에 찬란하다고 느꼈다.
/ 탕웨이를 보면서 공효진과 닮았다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몰랐는데, 닮은 거 같애. 현빈은 정우성과 비슷한 듯? 뭔가 풍기는 이미지가.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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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사는 - "괴물로 평생을 살 것인가, 선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비유하면 빨간약을 먹을래, 파란약을 먹을래.
죽음의 의미도 어느 편이 real world이느냐에 따라 다중적인데, 자신이 환상 속에 있었음을 알고서도 끝까지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 파란약을 먹겠다는 의미일 수도있고, 파란약을 먹고 평생을 사느니 real world 속에서 죽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느 편이든, 언제나 던져봄직한 질문이다. real world가 괴물같은 곳인지, 파란약의 세상이 괴물같은 곳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영화는 현실이 괴물같은 곳이라는 암시를 더 짙게 남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믿고 있는 것 - 이를테면 난 '자유''민주주의'사회에 살고 있어)이 사실인지 누구도 보증해주지 않는다. 그저 다같이 믿고 사는 것일 뿐. 그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 테디 꼴 난다. 테디가 전쟁 가운데 겪었던 일들이 '사실'이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된 시기. 메카시즘이 성행하던 때일 것이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파시즘과 싸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 당연한 의문에 사회는 어떻게 답했을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게 아닐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