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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4/09

동학 발상지, 용담정의 폐쇄된 문->출입방법

수운 최제우가 득도하여 인간지상 절대평등의 가르침을 담은 <용담유사>를 쓴 곳이 바로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용담정이다.

아.. 뭐..특별히 동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다닌 대학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있는 곳이라서 알고 있는 것 뿐이다.

근데 이 용담정이 아래 사진에 보이는 문안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볼 수 있는데..

동학교도들이 성지로 여겨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자, 지금부터 내가 알려주는 정보에 따라서 혹시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활용하시길!!

위의 사진에서 나무를 제거하면 아래의 조잡한 그림과 같다.

지나가는 길위에 70센티~1미터 정도 두께를 가진 문이 서있는 형상이다.

문을 껴안고..문 입구에 한발을 두고 문 뒤로 연못을 가로질러 발을 디디면..

(굽있는 신발 금지..내가 그렇게 했다가 연못에 빠질까봐 후들후들 떨었다.)

짠~~ 용담정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용담정 바깥은 일반 관광지보다 더 심드렁하고 재미가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면...별천지다..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작은 계곡 위로 늘어진 단풍하며...나무 그늘 아래 한참 앉아있다 돌아온 기억이 난다.

물론 조심할 것은 이곳을 지키고 있는 동학교도들이다.

들키면..당연히 개쪽이다..흐흐..

(왠 아줌마 쳐다보는 것을 무시하고..유유자적 그러나 걸음은 좀 빨리 해서..

 빠져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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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놀이야...

옥슨..이제 늙은 홍서범이 불놀이야를 부르고 있다..

과거를 자꾸만 곱씹는 사람들...

마음에 써늘함이 없을까..

그걸 들여다 보고 있는 추석 휴가 끄트머리의 나...

꼬맹이였을 때..불놀이 되게 좋아했는데....

기분이 별로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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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거기는 관심도 안두었는데...누굴 찾다가..알게 되었다..

싸이 미니홈은 별로 관리를 열심히 할 생각 없었지만..그리운 얼굴들 하나둘 만나니까..

좋긴 하다...

그런데..정말 좋은가..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 자체로 좋은 것 같기도...하고..아리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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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잘 보내세요~~

고향이 경주여서...휴~~ 귀향행렬에 합류합니다..

잊지 않고 태워 가주는 파워넘치는 가수인 민주언니와 멋진 율동의 대가 효선에게 감사하고..

가는 길에..재미있는 수다제국을 만들어 보자고..

다들 건강하시고...

추석 잘 보내시고...

서울 와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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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 영원한 되풀이...

정말 어쩌면 인간들이 예상을 뒤엎지 않을까..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고 게시판에 논쟁이 붙으면..

늘 가해자가 먼저다..가해자가 갱생의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일 먼저다..

지긋지긋한 되풀이다..정말 끔찍하다..

도대체 왜 가해자를 먼저들 생각하는지..그사람이 왜그랬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혹 실수는 아니었는지,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아니..왜 그런 생각부터 하느냐 말이다..정말 열받는다..

생존자들이 둘이나 같은 자리에서 성폭력을 당했고, 그사실에 대해서 가해자가 인정했는데..

왜 나서서 다시 그상황을 의심하냐 말이다..

생존자들에게 많이 아프지? 힘들지? 내가 같이 울어줄까? 이게 먼저인데...

2년이나 묵힌 상처가 아마 곪아터지기 직전이었을 것 같다..

공개의 글을 보고, 게시판의 글을 보는 것이 괴롭다..

직접 몸담은 단체가 아니라서...말을 참 곱게 하면서 당신들이 지금 가해자를 걱정하며, 내뱉은 말들이 다시 칼이 되어서 생존자를 찌르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왔는데..

혼자 시근덕거리고 있는 중이다...

정말 이 지긋지긋한 되풀이가 끝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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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박경리 선생 대담을 듣다가..

반찬 두어가지와 함께 밥을 먹던 나..

비극구조에 대해 묻는 사회자의 말에..

박경리 선생은...희극을 쓰기가 더 힘들다..왜냐하면 삶은 힘들기 때문이다..

나비가 춤추는게 아니라 꿀을 먹기 위한 노동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힘든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아름답고 즐거운 것을 쓰기는 힘들다..

이 당연한 말이..그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밥숟가락을 멈추고..잠시 가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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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궁금]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미친 세계와 그 적들)


만화 신간 뒤져보다가 이 만화책 보고 싶어졌다..
음..빨리 돈이 생겨야..
내용이 뭔지 모르겠지만..리뷰가 아무곳에도 없어서..
근데..이 아저씨 표정이 끝내주지 않나..
혹 이책 본사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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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칼럼]노래패는 힘들어

 
[사진] 2003년 노문센터 연대의 밤에서 노래하고 있는 서울은행 한울타리 노래패






 

 

 

 

 

 

 

 

 

 

 

 

 

 

 

 

 

 

 

 

 

 

 

 

 

 

몇 주 전 기업은행 노동조합으로부터 참으로 황당한 전화한통을 받았다.
‘노래패가 3명밖에 모이지 않아서 회계감사가 들어왔다. 8월 달에도 거의 모이지 않던데, 그렇게 저조해서는 더 이상 노래패를 지원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아 그런가요, 그럼 노래패 사람들이랑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앞으로 노래패가 더 모이든 안모이든 지원을 하지 않겠다’.
이 이야기의 경과는 이렇다.
기업은행 ‘새울림’노래패는 전 집행부가 만든 노래패다. 물론 나도 그때 강사를 맡게 되었다. 선거를 통해 생각이 다른 집행부로 바뀌면서 제일 우려했던 것은 ‘과연 노래패를 그대로 둘 것 인가’였는데 (이전에 ‘한울림’이라는 노래패도 집행부가 바뀌면서 지원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닌 엄청난 탄압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별로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독자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노래패공연을 집행부 초기라는 이유로 11월로 연기해달라고 하면서 만약 연기하지 않으면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어떠한 지원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후원에 노동조합이라는 이름도 넣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홍보도 되었고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공연을 연기할 수는 없었다. 노래패는 공연을 올렸고, 집행부는 좀 머쓱했는지, 부분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그런데 여기부터가 시작이었다. 금융노조 대의원대회 때 금노 산하 노래패들이 연합으로 공연을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다른 노조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했는데, 유독 기은집행부는 기은노래패는 무대에 세우지 말라고 하면서, 활동까지 못하게 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노래패원이 모이지 않으니 사람들을 모우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대중가요를 가르치라고 했다. 문화패활동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내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더니, 독자적으로 신입패원을 모집했고, 한명도 사람이 모이지 않자 집행부들 보고 노래패 활동을 하라고 했으나, 이도 여의치 않자 결국은 결별을 선언했다. 자기 사람들로 노래패원들을 채우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자 껄끄러운 노래패를 떼어내고 만 것이다. 이에 새울림 노래패는 자체적으로 모임을 하기로 결정했다.(하지만 30대 중후반의 기혼자들인데다가 일하는 지점이 평촌, 인천인 사람도 있고, 새로운 전산시스템 도입으로 퇴근이 보통 9시, 10시인 상황에서 어렵게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노래패 활동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업은행 노조가 아주 심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 노조 간부들은 문화패가 문선대이기를 바란다. 노래패는 2년, 3년의 자신들의 임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노래패가 활동하는 동안은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 독자적인 소모임이다. 그런데 문화패가 하나둘 사라지고 그 활동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 그 진리는 다시 위협받고 있다.

    또 다른 노래패 이야기를 해보자. 현대백화점 노래패는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전원이 모인 적이 거의 없다. 남들처럼 일요일, 공휴일에 쉴 수 없는 백화점 노동자들은 주중에 개인이 시간을 조정하여 이틀을 쉬게 되는데(대체휴일), 퇴사는 하는 사람은 있어도 더 뽑지는 않고, 이틀을 쉬기 때문에 필요인원이 늘 부족하고 그래서 자기가 일하는 날은 죽고 싶을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이는 노래패 뿐 만이 아니고 매장 안에서도 다같이 얼굴 보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직영사원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늦게까지 일하면 연장수당도 있고, 일할 때 힘들어서 그렇지 이틀이라도 쉴 수 있지만 백화점 내의 비정규직 사원들이나, 협력업체직원들은 그나마 그것도 없다. 노래패원 중에도 협력업체직원이 있는데 그는 연장수당도, 상여금도 없으며 임금인상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협력업체직원들은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연애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백화점이 월1회 밖에 쉬지 않으니 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날이 딱 월1회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최소의 인원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둘이 같은 날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백화점 직영사원들이 임단협 사안에 대해서 이런 저런 비판을 하고 있으면 “그래도 너덜은 그래도 행복한 줄 알어~”라고 한다.  

  그럼 임단협을 통해 문화패 활동을 근무시간 중에 쟁취한 사회보험노조(이후 사보노조) 문화패는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단협을 통해 문화패 활동을 근무시간 중에 한다는 정말이지 파격적인 단협을 체결한 사보노조 문화패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일노조 문화패 중에 가장 인원도 많고 활동력도 높다고 알고 있다.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늘 앞장서서 문선활동과 연대활동을 하고 있으며, 패별로 년1회식 수련회를 열어서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있다. 근무시간 중에 모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어도 활동하는데 별 부담이 없고, 연간교육과 강사들의 일상교육을 통해 교육내용도 채워지고 있고, 해서 커다란 문제점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전체적으로는 숫자가 많지만 지역, 지부로 들어와서 단위패로 들어오면 인원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고 있고 뽑는다고 해도 적은 인원인데다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으니 문화패활동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문화패 막내들의 나이가 제일 양호한 곳이 20대 후반, 보통이 30대 초중반이다. ‘경로당 노래패가 될 때까지 우리는 노래할 꺼다’ 라고 말할 정도로 노래패에 대한 애정과 활동력은 높지만 사람이 채워지지 않으니 자연 분위기는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로 북적 북적거리고 신입패원 맞이하는 설레임도 있어야 패모임이 신이 날 텐데 그게 정체되어 있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다.

2004년! 다 같지는 않지만 현장의 노래패들은 노조간부들의 잘못된 시각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주5일제로,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로, 노동문화의 침체로, 노동조건의 열악함으로 그야말로 다각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문제들은 사실 노래패만으로는 해결할 수없는 문제들이다.  

  그럼 강사인 나는...  노조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 그 역동적인 시기에는 힘든 조건 속에서도 하루하루 늘어 가는 것이 노래패요, 문화패였지만 지금은 활동하고 있는 노래패들을 꼽는 게 더 쉬울 정도로 그 수도 감소했고 활동도 예전 같지가 않다. 게다가 노조가 조합원을 교육하지 않음으로 인해 강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내용들을 담아내야하는데 과연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모임에서 그럴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어쩔 때는 간부들과 싸우기까지 해야 한다. 조합 활동에서 느끼고, 일하면서 느끼고 그래서 노동가요를 통해 노래로 세상을 느껴야하는데, 노래로 다른 세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하는 요즘 강습이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아주 힘든 강습을 갔다 오면 나는 내가 섬 안에 갇힌 슈퍼우먼이 된 듯 한 느낌이 든다. 강사들도 조직적으로 교육이 담보되지 않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최후의 1인이 되어서라도 나는 노래패를 할 테야’라고 말하는 노래패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또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는 노래패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노래패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열심히 문선대를 하고 내려와서 힘들다고 투덜거리지만 뿌듯한 표정의 노래패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또한 다른 노래패를 만나면 자기 피붙이를 만난 것처럼 좋아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산재해 있는 이런 저런 문제들을 생각하면 이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쌓여 있는 문제점을 나열하기보다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내와야하는데 언제부터 인가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는데 너무나 힘들어하면서 그냥 방치해 두고 있다. 이제 노동문화교육운동과 노동자문화패의 발전경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준비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나의 행복은 그냥 여기서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

(박미영-노래교사,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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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홍성담전시-캔버스 굿판서 인류의 한풀이

[중앙일보] 화가 홍성담(49)씨를 사람들은 독종이라 부른다. '5월 광주'를 그림으로 증언하겠다며 밤낮없이 판화를 파던 그를 지켜본 후배도, 옛 안전기획부의 고문기술자도 모두 그가 신념 앞에 얼마나 무서운 투사가 되는지를 기억한다. 정작 홍성담씨 자신은 보살행을 살았다고 말한다. "이 땅에 산 죄, 전두환 노태우 밑에서 산 죄, 분단된 금 속에 머무른 죄값을 하려 그림으로 고행했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부적'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 화가 홍성담씨는 동북아시아의 문화원형이 낡고 지친 서구 문명을 대신할 새 세기의 빛이라고 믿는다. 그가 세상을 정화하는 굿판을 화폭 위에 펼쳐놓고 인류를 위한 푸닥거리를 그린 '신몽유도원도'는 세상을 끌어안은 여신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가화(假花).홍성담'은 한층 깊어진 화가의 생각과 마음을 가늠하게 만드는 개인전이다. 지난해 미국 뉴욕 퀸스미술관 초대로 열었던 '동쪽의 물결-저항과 명상 홍성담'이후 홍씨는 동북아시아 문화의 원형을 더듬는 일에 더 힘을 쏟는 눈치다. 서구의 이성 대신 이제는 동방의 샤머니즘이 인류를 구하리라는 믿음을 그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시 제목인 '가화'가 상징하듯 그의 그림은 굿판에서 펄럭이는 종이꽃처럼 우리 민족, 나아가 인류의 한풀이를 이야기한다. 바리데기 공주, 우주나무, 연꽃 등 한민족 설화가 큼직한 캔버스 위에 한 판 푸닥거리처럼 펼쳐진다. 붉은 외투를 두른 파시스트를 정화하는 무녀의 칼, 여신의 자궁에서 쏟아지는 생명의 물줄기, 고구려 벽화에서 날아온 궁사와 동물들, 여자의 얼굴을 찢고 나오는 호랑이 등 '신몽유도원도'는 지난 2000년 문명의 쓰레기로 범벅이 된 세계를 끌어안는다.

홍씨가 잡은 또 하나의 화두는 아바타다. 가상 공간과 아바타 문화에 빗대어 오늘의 한국 상황을 돌아보고 있다. 2002년 전국을 뒤흔든 '붉은 악마'의 숨겨진 욕망을 그려낸 '아바타' 연작은 또하나의 파시즘이 들끓고 있는 우리 현실을 치고 있다. 한밤중 도심을 수놓은 촛불 시위 현장을 불꽃의 모판으로 그려낸 '화종(火鐘)'은 섬뜩하게 아름다운 시민의 마음을 그린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저 작은 불씨들의 모판, 그 모판을 보며 불씨들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유쾌한 경험"이라고 평했다. 이제 홍성담씨의 그림이 바로 그 불씨다. 02-720-1524.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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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전시가 끝난다고 해서...오늘 학고재에 간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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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해구나.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그렇지 않았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1954~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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