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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투쟁하지 않으면 평화는 없어


아무 생각 없이..몇일째 연기했던 언니와의 만남을 가지기 위해 신촌으로 갔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언니가 영화를 예매했다며 얼른 가자고 했다. 길가에서 오뎅 두어 꼬지 먹고 극장으로 올라갔다.
제목은 디 아워스 'The Hours'..

최근에 영화소식을 본적이 없어서 유명한 여자배우 세명이 나온다는 것 밖에는 사전정보는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쨍쨍한 배우들이다.

메릴 스트립-아...아웃 오브 아프리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아름다고 고풍적이던 그녀..
줄리안 무어-조역으로 많이 봤지만..오묘한 표정..
니콜 키드먼-길고 늘씬늘씬한 그녀를 보면..가슴이 쿡쿡..뭔가 일을 낼 것만 같은 표정..
내용도 감독이 누군지도 모른 채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시~~작'

'앗! 니콜 키드먼이 버지니아 울프 역이었어! 뭐야...버지니아 울프와 관련된 영화였네..오 맙소사..눈여겨 보질 못했다니..세상에..."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 심한 정신병에도 불구하고 죽음까지도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던 매력적인 여자,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다..그녀는 리치몬드의 고요함을 벗어나 런던으로 가고 싶어하지만, 모두 일제히 병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린다..

1951년 미국 LA,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평온한 중산층의 삶속에 불안한 미소를 짓고 있고, 그의 아들은 그녀를 역시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2001년 미국 뉴욕의 클래리사는 자신의 삶의 전부인양 에이즈에 걸린 옛애인인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

이 세사람의 하루는 어떻게 펼쳐질까,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것이며, 리치몬드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로라는 너무나 평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받아들일까.
클래리사와 리처드는 과연 무사히 파티를 치를 수 있을까..
이 것들의 결과만을 따라가다가는 영화를 보는데 실패할 것이다..히히히..
그녀들의 표정, 그들의 표정, 대사 하나하나, 상황을 잘 보시라..
그안에서 심상치 않은 메세지를 발견했다. '엥..감독이 누구야..도대체..심상치 않아.'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 모르게 박차고 나가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결국 발각된다.

남편이 버지니아에게 던진 말은 대략 이렇다.
"당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당신을 위해 인쇄소를 차렸는데..이럴 수 있냐..런던에서 당신이 망가졌던 것을 생각해봐라..두번이나 자살 시도를 하지않았냐. 의사들이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그랬다. 당신은 배은망덕이라고 생각지 않아?"

버지니아는 대략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들이 하는 말, 믿지 않는다고. 망가지더라도 움직이는 런던에 있고 싶어. 정신병자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당신이 내 삶을 다 빼앗아 버렸어. 나도 리치몬드의 고요와 평화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 배은망덕이라니..그런 말을..내게 하다니.."

결론은 영화를 보시길..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버지니아가 던진다..퍼~엉...깜짝..
"삶과 투쟁하지 않으면 평화는 없어."

로라의 친구가 자궁암에 걸려 친구를 찾아와서는 역시 의사를 부정한다..
의사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거나 구속해버린다.
특히 정신병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찾아내 해결하기보다 약물치료로 억제해버린다.
여성관련 병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궁에 뭔가 병이 생기면 쉽게 들어내 버린다. 그런 의술 행위가 당사자인 여성의 남은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고민하지 않고 말이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누구에 의해 판단하거나..누구를 위해 살거나 하지 않고...세사람의 여성의 하루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니콜 키드먼이 엄청난 연기를 했다고 난리를 치는데..물론 아주 좋은 연기였다. 버지니아처럼과 흡사해 보이기도 하고..그렇지만..나는 역시 관록의 메릴 스트립에 한표..
그녀야 말로 진정한 댈러웨이 부인이 아닐까..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이지적인 얼굴과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연기...요즘은 나이든 사람들의 연기를 보면..가슴이 저릿하다..나도 나이를 먹으면 삶이 깊어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집에 가서 리플렛을 보니까..세상에...그 감동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꼭꼭 넣어두고는 가끔 다시 빌려보는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감독이 영화 전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지만..모르고 봐도 별 상관이 없지만..그래도 알고 나니까..
이말이 딱..생각났다..
자영언니왈..."되는 놈은 된다."

----교정도 보지 않았고, 문장도 다듬지 않았다...완전 날 것이라..괴로울 수도 있겠구나..흐흐..
하긴 뭐 이 곳에 있는 잡글들이 대부분 그러니까..
나는 왜 다시 돌아보고..다듬는 작업이 왜 이리 귀찮은 걸까..게으름은 나의 적이야..적...

200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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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노래칼춤] 검결속에 흐르는 오늘

오늘을 말하기 위해서는 과거, 걸어온 역사를 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좌절과 실수, 판단착오, 승리의 모든 것이 나와 있으니, 100년이 지난, 역사 속의 현장인 동학혁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뜻을 품어 동학에 입문하였으니 조직하고 훈련하는데 한점 흐트러짐이 없다. 가야할 길은 오로지 하나의 길이었다. 허나, 장대한 뜻을 품고 당당히 출전하였으나 찟겨진 깃발을 들고 침묵하였다.

이제 눈을 돌려 역사에 이름 석자 박았던 장두들이 아닌 동학혁명의 진짜 주역들인 한사람의 농민군과 아낙들을 보라.
역사속 여성은 난을 겪을 때마다 온만신이 부서지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 관군에게 겁탈당하고 가족들과는 생이별을 한 아낙들은 남정네들보다 더 강하고 질긴 한과 희망을 갖고 있다.

이제 현재의 우리 모습이 담겨져 있는 장으로 가자. 고향을 잃고 병신이 된 광대패들이 다시 찾은 고향에는 밥짓는 따뜻한 풍경은 커녕 효수당한 정다운 이들의 잘려진 목들만 걸려있다.

동학혁명의 큰뜻을 갖고 출정했으나 죽은 이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갖고 , 뒷날을 도모해 전쟁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허나, 혁명 속의 다양한 삶과 방식, 길을 보지 못하니. 이것이 지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광대로서의 길을 같이 가자는 '곰배'의 말에 '억수'는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로 일축해버린다.

"죽창 들고 나서는 것도 북을 치는 것도 싸움이고, 장구를 치는 것도 싸움이고, 춤을 추는 것도 싸움이고, 밥 짓는 것도 싸움이다."

넉넉한 싸움의 의미를 아는 '곰배'는 뒷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효수당한 목을 수습해서는 안된다는 '억수'에게 웃음과 함께 "그것도 너의 싸움도 맞고, 목을 거두는 것도 맞다"라며 이웃들의 목을 처연하게 거두다가 죽음을 당한다.

맞다. 싸움이 장두들만의 것이었나? 죽창들고 나섰던 사람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각자의 몫으로 살아냈던 그네들과 우리의 싸움이다. 오히려 죽음이 두렵지 않다라는 말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하는 그 하나의 행동이 진정한 싸움이 아닌가.

이제 '맑은물(청수)' 한동이 들어 절망과 희망의 판씻음 속에서 억울함, 분노, 한을 조금씩 풀어간다. 강요된 희망도 아니요, 주장도 아니다. 그저 이만큼 살아냈으니 또 아픔은 아픔대로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나.

과거에는 그렇게 살아왔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절망스런 현실에 모조리 해체되고 상처받아서 쓰러질 수 밖에 없지만 억울함이, 분노가 어디 가겄나. 내 맘속에 있으니 다독여서 삶을 살아가야지. 삶의 전장터에 의연하게 나가야지.

칼노래 칼춤 속에는 동학혁명만 아니라 광주혁명도 있고, 7, 80년대 민주화 투쟁, 노동운동도 있고, 90년대 이후 분열의 시기에 몸부림치며 싸우는 현재도 있다. 판안에서 함께 싸우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상처도 씻어내고 왔으니 오늘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해진다. 좋은 공연 보고 나면 만든 이들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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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예술, 혁명은 한몸

 

팀로빈스,'정치·예술·혁명은 한몸'

팀 로빈스는 누군인가? 얼마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이라크 침공 반대시위의 선두에서 그의 비제도적 아내(제도로서의 결혼을 거부하는 관계로 알려져 있음) 수잔 새런든과 ‘부시행정부의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oil for work)’이라며 대이라크 전쟁의 본질이 야만성과 이기적 욕심임을 폭로한 미국의 유명배우이다.

팀 로빈스 감독의 99년작, 영화 <요람은 흔들리리라(The Cradle will Rock)>는 표현하기 쉽지 않은 미국 현대사의 실제 상황을 등푸른 생선의 팔팔 뛰는 이미지로 그려낸 수작으로 국내 영화팬들이 손꼽아 개봉을 기다린 영화. 영화는 지난 15일 국제노동영화제 초청작으로 처음 소개됐다.

팀 로빈스는 세 번째로 각본 겸 감독을 맡았다.
1930년대 후반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동명의 연극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헐리우드 문법과 브레히트적 문법이 뒤섞여 보는이를 낯설게 하기도 하고 초반엔 다소 얼떨떨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a (mostly) true story'(대부분 실화) 란 설명과 함께 열린다. 이야기는 디트로이트를 연상케하는 가상의 철강도시에서 이곳을 지배하는 자본가인 미스터씨(Mr.Mister)와 그의 폭력적 노무 정책에 거세게 대항하는 노동조합을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전례없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미국은 20년대 경제대공황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뉴딜(Newdeal)정책으로 상징되는 적극적인 국가 수요창출 정책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수요 창출 정책의 일환으로 폈던 정책이 연방극장계획(FTA:Federal Theater Project).

이 계획은 막대한 국가 재원을 들여 실직한 예술인을 모아 연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그러나 이들이 만든 연극 <요람은 흔들리리라>는 공산주의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공연이 불가능해 진다.
그러나 이들은 마지막 장면에 무대장치도, 음악·음향도, 의상도 없이 공연을 선보여 뜨거운 갈채를 받는다.

이외에도 이야기의 다른 두 줄기로 △자유로운 예술가의 우울한 영혼을 가진 복화술사인 토미 크릭쇼(빌 머레이)가 극렬 반공주의자인 허프만(조안 쿠삭)과 사랑에 빠지는 플롯과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의 선전선동가로 나오는 수잔 새런든, 자본가 록펠러 역의 존 쿠삭 등이 혁명운동의 지지자며 반골적 기질의 화가로 나오는 리베라(루벤 블레이즈)와 벌이는 그림과 예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쟁투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전반을 꿰고 있는 정서는 △파시즘에 협잡하고 철저한 반공주의로 일관한 당시 미국주류 사회에 대한 조소와 △노동자의 자각이 당대 산업자본가와 첨예하게 빚어내는 긴장을 예술을 매개로 꼬집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노동자들이 연극 <요람을 흔들리리라>를 통해 계급관계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은 장구한 설명이나 서사가 아닌 시종 유쾌한 지껄임과 추출해 낸 듯한 인간관계의 메타포를 통해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 팀 로빈스
99년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휩쓰는 공고한 양대 보수정당체제의 미국 사회에서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팀 로빈스 감독은 유머와 위트, 해학으로 날카롭게 꼬집으며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이 경제적 토대의 반영인 상부구조(예술)의 반동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임을 각인시킨다.
헐리우드적 감수성이 브레히트를 만나는 형식의 신선함, 자본주의체제와 예술의 관계성의 본질을 꿰뜷는 통찰이 당신에게 새로운 감수성을 제공할 것임을 확신한다.

아직 국내 개봉 계획이 없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앞선다.
오마이뉴스 최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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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원더풀 라이프]행복했던 단 한 장면의 추억을 선택하세요!

만약 한평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장면만을 간직해야 한다면 어떤 장면을 선택할까? 선택이나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빨리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굴곡이 심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저 그렇게 순탄한 삶, 특징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정말 선택하기 힘들 게 분명하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것. 냄새, 느낌, 시작, 후각 등으로 조합되어 뇌속에 남아있게 되는데..어떤 것은 한가지의 감각만으로도 남아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모든 감각이 총 동원되어 세밀하게 남아있다. 행복했던 단 한가지의 기억을 충실하게 재현해 주며 죽은 이들을 영원으로 시간으로 보내는 중간계의 사람들. 정작 그들은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지 못한 영혼들이다. 그속에서 시오리는 모치즈키를 말없이 짝사랑하고, 1930년대 사람인 모치즈키는 자신이 죽기전 약혼자의 남편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녀가 가지고 간 추억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소중했던가에 대한 강력한 궁금증과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를 몰래 사모했던 시오리는 모치즈키 약혼녀의 추억을 같이 추적하고, 결국 그가 추억을 선택하게끔 도와주지만 중간계를 떠나면서 그 모든 일을 잊어버릴 그의 모습에 가슴 아파한다. 결국 그의 오랜 삶의 기억 속에서 단하나의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떠나게 된다.(그게 뭔지 말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비디오 껍데기를 보면서는 따뜻한 로맨틱 코메디인가 보다 했지만 모치즈키와 시오리의 묘한 감정의 교차라던가..저세상에 두고온 약혼자에 대한 사랑을 놓고 벌이는 삼각관계도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사람의 추억, 사람의 마음을 다른 측면에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성관계가 최고라는 사람, 아이를 낳는 순간, 비행하며 하늘에 떠있던 그 시간, 고향의 털털거리는 버스안,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던 호텔방, 오빠가 사준 드레스와 신발을 신고 춤추던 어린시절, 벚나무 아래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면 앉아있던 날, 아내와 지난 시간을 얘기하던 낙엽지던 오후의 벤취....20살 젊은 백수는 왜 과거야야 하느냐, 미래의 꿈같은 건 안되냐고 되물으며 여긴 잘못되었으니 고쳐야 한다며 중간계 관리자에게 툴툴 거리며 따지기도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을 감독은 특별한 개입없이 자연스럽게 팔짱 끼고 쳐다보고 있다. 영혼들을 배웅하는 기악대, 큰북, 작은북, 아코디언의 소리들이 우중충한 하늘에 맴맴 돈다. 나는 어떤 추억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저 중간계에 남아 버리지 않을까? ▩ 편집,각본,감독 : 코레에다 히로카즈 ▩ 촬영: 야마자키 유타카, 스키타 마사요시 ▩ 프로듀서: 사토 시호, 시게노부 유타카 ▩ 조명 : 사토 유즈르 ▩ 출연 : 아라타(모치즈키 역), 오다 에리카(시오리 역)/나이토 타카시(와타나베 역) 테라지마 스스무(스기에 역) (1998년 낭트영화제 그랑프리/ 토리노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산세바스찬영화제 FIPRESCI상 부에노스아이레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각본상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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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사랑의 기원, 피빛으로 시작되었네

"지구가 평평하던 때 불 구름이 떠다니고 하늘까지 솟은 산과 더 놓은 사이 있고 사람들은 나무통처럼 지구를 굴러다니며 두쌍의 팔, 두쌍의 다리와 큰 머리 양쪽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양쪽 세상도 다 볼수 있고 읽으면서 말할수 있었고 사랑이란 단어조차 몰랐어 그건 바로 사랑의 시작을 몰랐을때 사랑의 시작 사랑의 시작 사랑의 기원

그때는 성(性)이 3개가 있었지. 서로 등을 마주대고 태양의 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남자 같이 생긴 성(性) 생김새와 허리둘레가 같은 지구의 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굴러다니는 두 여자 같이 생긴 성(性). 그리고 달의 아이라 불리어진 스푼에 삐죽 꽂힌 포크 같은 반은 태양이고 반은 지구인 반은 딸이고 반은 아들인 그런 성(性). (...중략...)"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태고적 세 개의 성(性) - 남성/남성, 여성/여성, 남성/여성을 노래로 옮겨 인류의 기원, 지금의 두다리로 서있는 외로운 인간에 대한 기원, 신과 같은 절대권력에 대한 비유를 말하고 있는 ‘Origin Of Love’이다.

헤드윅은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영화다. 벨벳골드마인과도 연관시켜 얘기를 많이 하는 것처럼 글램록이라고 하는 음악적인 장르와 연관이 있다. 주인공의 심리상태,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화려하고 번쩍거리고 시끌시끌하면서도 그뒤의 공허함과 눈물을...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고 두 성과의 결합만이 사랑이라고 한다. 더나아가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만들어진 일부일처제의 가족형태. 자본주의 이전의 장남계승을 비롯한 가부장적인 구조를 그대로 계승한 그런 가족이 가장 모범적이고 일반적이며, 무엇보다 ‘정.상.적’이라고 한다. 누가? 신이 그랬다고 했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고 교회다닐때 그랬다. 출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동성애는 죄악이며 혼전 섹스도 간음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데’라는 한셀(여자가 되기 전의 헤드윅)의 말에 어머니는 ‘히틀러도 그렇게 말했어. 절대권력은 없을 수록 좋아.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되거든.’ 냉소적으로 대꾸한다. 이말이 정답일 듯.

영화는 동성애를 옹호해서 동성애자들의 심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아예 성별을 떠나버린다. 여자건 남자건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다니는 외로운 존재인 인간이 성별과 상관없이 피묻은 서로의 얼굴을 보둠어 안겠다는데 무슨 니가 남자냐, 여자냐가 왜 필요하다는 것인가.

뭐 이런 얘기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도 좋고, 남자가 남자를 만나도 좋고, 여자가 여자를 만나도 좋다. 신들에 의해 조각나 버린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서! 용기있게!

어느해 친구 자취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속옷바람으로 잠들어 있는 두친구를 보고 예의 느낌이 달라서 잠깐 당황했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잡담을 늘어놓았던 그 여름의 어느날.

이성애가 아닌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친구들은 역시 목하열애중이었고, 학생회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수군거렸다.

한아이는 세간의 그런 얘기 따위 관심이 없었고, 한아이는 몹시도 내면이 여린아이었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그중 전자의 그아이와 얘기를 하다가 이해한다는 말로 부족한 것같다는 내 얘기에 잠깐 충격을 받은 듯. 그 사람은 그냥 그런 것이다라고 봐야할 것 같아서 너도 더 당당해지라고 했다. 누구도 그런 얘기해주지 않는다며 우는 그 얼굴.

물론 그 사랑안에서도 반목이 있고 서로 상처주고 누군가가 더 잘못하기도 하지만, 같은 성을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음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내가 꼭 남자만 사랑할까?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만났는데 성이 여자라서 안될 수 있을까? 남자보다 더 잘 해나갈 수 있을텐데. 내 육체의 생김새에 신경쓰지 않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여자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든 순간, 이것은 정말 나의 취향 문제이구나! 하..그 이후에 사랑하고픈 여자를 만나지 못해서 한번도 성적 취향에 대한 다른 깨달음 없이 여전히 이성애자로 있지만 한순간 뒤엎어질 수 있는 동전의 양면일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헤드윅은 성전환 수술도 실패한 그 어떤 선택도 막혀버린 불우한 친구다. 기운내시길. 어떤 성공도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했지만, 사랑받고 버림받았지만 여전히 사랑할 줄 아는 그녀. 다시 만난 그가 넌 그 자리에 머물라고, 그게 너의 역할이라고 안녕이라고 했지만. 정말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그모든 심정을 노래로 표현한 이 헤드윅이라는 영화. 더위를 가져가고 머릿속에 가슴에 눈물을 흘릴 여유를 주었다. 벨벳골드마인과는 전혀 다르게 더 화들짝 소란스럽고 즐겁고, 유머스러하게, 그렇지만 더 가슴을 때리면서.

 

 

 

ORIGIN LOVE

 

 

지구가 평평하던 때 불 구름이 떠다니고
하늘까지 솟은 산과 더 놓은 사이 있고
사람들은 나무통처럼 지구를 굴러다니며,
두쌍의 팔, 두쌍의 다리와 큰 머리
양쪽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양쪽 세상도 다 볼수 있고 읽으면서 말할수 있었고
사랑이란 단어조차 몰랐어 그것이 사랑의 기원
 
 그땐 3개의 성이 있었지
하나는 두 남자의 등이 붙은 해의 아이들과
두 여자아이의 등이 붙어 하나로 된 땅의 아이들과
포크와 스푼이 붙은 것 같은 달의 아이들이 있었지
한쪽은 해 한쪽은 달 한쪽은 아들 한쪽은 딸
그건 바로..사랑의 시작을 몰랐을 때
사랑의 시작,  사랑의 시작, 사랑의 기원
 
신들은 우리의 힘과 반항을 두려워 하기 시작했지
천둥의 신은 말했어
"내 망치로 그들을 모두 죽이리라"
"내가 거인족을 죽였듯이.."
그때 제우스신이 말했지
"내 번개 가위로 혼내 주리!"
고래의 다리를 자르고 공룡을 도마뱀으로 만들었듯!!"
그리고 번갯불을 꺼내 크게 웃으며
"가운데를 자르리!" "딱 반으로..." 라고 했지
 
곧 먹구름이 모여 거대한 불이 되었고....
천둥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쳤지!
번뜩이는 칼날처럼 육체의 한가운데를 갈라 버렸어
해의 아이들 달의 아이들 땅의 아이들, 차례로..
어떤 인도의 신은 배둘레를 꿰메 배꼽을
만들어 우리 죄를 상기 시켰고
오시리스와 나일의 신들은 거대한 폭풍으로
허리케인을 만들어 우리를 흩어지게 했어
바람, 비, 홍수 파도의 조수로 우리를 쓸어 내리고
또다시 반항하면 또다시 반을 갈라버린다고 했지
그럼 한발로 뛰고 한눈으로 볼거라며..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지난번 내가 당신을 보았을 때
우리는 둘로 갈라진 채였어.
당신이 날 보았을 때 나도 당신을 보았지.
당신이 너무나 낯이 익더군.
그러나 내가 어찌 알아차릴 수 있겠어.
당신 얼굴에 피가 묻혀있고 내 눈에도 피가 있는데.
그렇지만 난 당신 표정으로 알 수 있었어.
당신 영혼에 자리잡은 영혼이
나의 고통과 같은 것이란 것을.
우리를 하나로 잘라 버린. 우리의 심장을
관통한 그 고통이란 것을.
우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그래서 우린 서로 포옹을 했지.
서로의 등을 떼밀면서. 우린 사랑을 했지.
오래 전 춥고 어두운 밤이었어.
제우스의 엄청난 손에 의해,
우리가 외로운 두 다리의 피조물이 되어버렸는지
참 슬픈 이야기야. 사랑의 시초의 이야기지.
그것이 사랑의 시초야
.

 

(영화관을 세번 찾아갔다..이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그리고 나서 쓴 것인데..오래된 글이지..흐흐..노래듣기가 안된다..그 게시판 없어져서..음악파일도 사라졌나 보다..흑흑..어디서 애니메이션 찾아봐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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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일주일간 다큐를 보자!!

1천원짜리 필름2.0을 보다가..EBS가 미쳤다!!!!!
환호성을 질렀다~~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1주일간 하루 18시간동안 다큐멘터리를 튼다는 것이다.
제목하여..
2004 제 1회 EBS 국제다큐멘타리 페스티발..
믿기지 않는다..
이 한주일간...나는 식음을 전폐하고..급한 회의를 제외하고는 꼼짝도 않고...텔레비젼만 봐야겠다..
아직 프로그램 내용을 훑어본 것은 아니지만..그래서 얼마나 알찬 것인지 모르겠지만..
또...EBS내부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것이..기쁠 나름이다..
교육방송 들어가봤다더니..페스티발 사이트 찾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시길..
http://www.ebsdoc.co.kr/2004/kor/index.html

 

 

 

                     

 

참고로 나의 선정작

 

[30일]
- 뒤돌아보지 마라(*)
- 그 오두막엔 여든 네살의 청년이 산다
- ABC아프리카
- 텍사스-카불(*)

[31일]
- 그녀 이름은 베트남(*)
- 버마 민주화 투쟁의 등불:아웅산 수치(*)
- 시간의 수레바퀴
- 울란바토르의 가출소년들

[1일]
- 마지막 수업(*)
- 아, 소록도
- 베트남의 혼:호치민(*)
- 앙코르의 사람들
- 도요하시의 민들레
- 자살특공대의 진실
- 네팔의 마지막 마오이스트

[2일]
- 브루클린 다리
-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

[3일]
- 러시아 신문사 살인사건
- 분단선의 사람들
- 신비로운 바다여행
- 인도의 폭소클럽
- 원래 여자는 태양이었다:신여성의 Frist song(*)

[4일]
- 넘버 17
- 아나의 아이들(*)
- 쑹메이링 : 영광과 오욕의 106년
- 무위당 장일순의 따뜻한 혁명
- 즐거운 나의 집

[5일]
- 칼릭감독의 실버스크린
- 모닝선(*)
- 명동, 부활의 날개짓을 하다



♪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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