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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광화문 연가

 

1.
광화문으로 가는 길은 팍팍하기만 했다.
해는 졌지만 한여름 열기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농성장으로 향하는 나는 내내
혼돈스런 상념과 씨름해야 했다.
당의 투쟁방침, 당의 모습, 농성장에 있는 대표, 등등...

 

그러나 상념과 씨름하는 나의 지력은
핏기 잃은, 서리맞은 풀잎처럼 힘이 없다.

 

도착하니 저녁 7:30
당 천막과 총연맹 천막을 들렀다.
단병호 위원장은 여전히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신다.
이수호 위원장은 지쳐 쓰러져있다.

 

저 멀리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김해경 대표는
씩씩해보이려 웃으시지만, 내민 손엔 힘이 없다.

 

제법 많은 단위에서 천막을 쳤다.
격문이 붙고, 플랜카드가 붙고,

 

나는 빈 벤치를 찾아 조용히 앉아있었다.
방송 출연 덕(?)분에
예전에 한번 찾아갔던 참여연대 상근자도 날 알아보고 하지만...

 

2.
저녁 8시
하루를 정리하는 집회를 시작했다.
하루 단식에 참여했던 단위 책임자들이 나와서 연설을 하고,
후원회원인 사회진보연대 박화순 동지도 나와서 연설을 하고,
기독교 청년단체에서 나와 노래도 하고,
광운대 후배들이 나와 율동도 하고,
하루 단식에 참여한 단병호 위원장이 연설하고
촛불을 들고 함께 외치고 노래하고
약 70여명이 모여 오붓한 집회를 가졌다.

 

집회에서 나는
오랜만에 사람들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참으로 착하게, 참으로 순진하게 생긴 얼굴들이다.
그 얼굴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운동을, 우리의 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3.
나는 집회를 하면서 문득
나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나 생각했다.

 

'대통령 님~~~ 뭐뭐 해주세요' 하던 사회자의 애원은
'노무현 규탄한다'로 바뀌었지만,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요구는 시민과 사회가 아니라
여전히 청와대로만 향해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했던 현대건설과 정주영이 생각났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77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100이 넘었다고 한다.
충분한 공기 없이 밀어붙인 군사문화도 있었지만
안전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희생자는 그만큼 컸다고 한다.

 

안전장비를 갖추자는 의견은
사망 보상금과 장비비용 중 어느 것이 경제적이냐의 논리로 묻혔다고 한다.

 

그렇다.
자본가들은 우리의 목숨도 돈의 문제일 뿐이다.

 

이라크 파병이 미국 자본, 특히 군산복합체와 석유자본의 이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정설인 듯 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 자본이 미국 자본에 예속되어 있든지, 또는 독자성이 크든지
그들은 그들 고유의 이해와 요구가 있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은 입었다 벗었다 하는 허울일 뿐
그들은 전자계산기처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이해타산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국익논리가 대중적으로 먹힌다면
그들의 내공이 강하다는 것일 뿐이다.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이
미국의 총칼 때문인가, 자본가들의 이해 때문인가.
맞다. 자본의 문제이다.
세계적 강대국 영국 불레어가
부시의 푸들이 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이외에
자본의 이해 이외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식민지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을 염두에 둔 사상적 배경을 하고 있겠지만,
필연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식민지로 고통을 받는다고
따라서 자본가들도 고통을 받는다고 할 것이고,
있지도 않은 민족자본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민족 문제 앞에 계급문제는 부속적 문제가 될 것이고...
80년대식 '식민지 조선' 얘기는
'노무현 반대'를 뺀 '미국 반대'로 부활한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 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오월의 향기를 가지고, 민중과 함께 하던 기억을 가지고
광화문에 다시 모였으면 좋겠다. 먼 훗날에도 광화문 연가를 부를 수 있도록...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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