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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다시 샛강공원

1.

머리가 아팠다.

순전히 내탓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 자존심이 이제

떨어질 듯 말 듯 간당간당하는 것 같다.

 

샛강공원은 여전히 평온하다.

 

주는 것 받는 것 더하고 빼도

세상에 민폐나 끼치지 않고 싶은데,

글쎄, 그렇게 살 거라고 확신하기 힘들다.

 

2.

며칠 전

문득 봄이 정말 왔음을 느꼈다.

자유로를 지나며 차창으로 스치는 길옆 잔디밭에

푸른빛이 도는 게 보였다.

 

버들강아지/ 얼마만인가? 새생명이 아우성치는 것 같다.

 

도시에서

물가에 소담스럽게

아이의 살결처럼 맑고, 투명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솟아나던 어릴적 시골 봄 풍경을 기대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일까?

 

철지난 마른 갈대 사이로 연두색 푸른 빛이 엿보인다.

 

봄은 나무 밑에도 오고 있었다.

 

도랑가에도 봄은 오고 있다.

 

메마른 아스팔트 옆 풀밭에

온통 거무튀튀한 오염물질을 뒤짚어 쓴 채

세포분열을 강제해내는 도시의 흐린 온기...

모자라는 수분과 공해로 나면서부터 줄기 끝은 벌써 시들고...

 

도시의 봄은, 아니 서울의 봄은 그렇게 온다.

 

그나마 서울 한 가운데

봄맛을 좀 더 느낄 수 있는 샛강공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수련은 새순을 이미 물위에 띄우고 있다.

 

3.

나는 봄을 좋아한다.

그게 현실의 봄인지, 아님 관념의 봄인지

이제는 조금은 헷갈리기도 한다.

 

어쨌든 좋아하는 봄이 왔건만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세상은 온통 황사로 희뿌옇다.

마치 안개가 가득 낀 것 같다.

 

철새들이 여전히 머무르는 연못 가에서 난 맥주를 한 캔 마셨다.

 

한적한 샛강공원은

묵묵히 봄을 맞고 있었고,

마찬가지를 나를 받아주었다.

 

 

냉이같은 풀들은 벌써 꽃을 피웠다.

 

4.

샛강공원 연못 옆 풀밭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조그만 연못에는

청동오리, 비오리 등

아직 돌아가지 않은 철새들이 남아 있다. 

 

억새는 꽃처럼 흰 씨앗을 모두 날려보냈어도 여전히 서있다.

 

낯술을 해서 그런가,

해조차 가린 황사낀 흐린 하늘 탓인가,

세상은 꿈결인듯 몽환적이고,

나는 그저 한없이 퍼질러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복지공단 옆 양지녘엔 산수유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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