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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여행

1.

이름은 거창했다.

정선으로 땅을 보러가자! ㅋ

 

어찌됐든 서울을 잠시 떠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계획을 잡아 여행을 가면 좋으련만

갑자기 떠나지 않으면 떠날 수 없는 처지다.

 

시설이 좋아 일행을 감동시킨 가스공사연수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무수한 약속을 모조리 공연불이 되게 만든 이후에 깨닳은 지혜라고나 할까...

 

어찌됐든 약속을 미리 해놓지 않는 버릇이 생겼고,

정선에 가자는 후배들의 얘기에

'가능하면 가자'는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지냈다.

 

여유롭게 한잔 - 여기까진 굿

 

그래서였을까. 마침 시간이 났다.

시간은 났지만, 숙소를 잡기로 한 후배가 숙소가 없다고 했다.

떠나기로 한 날이 금요일이다.

어디서 숙소를 정한단 말이지?

물론 요즘 유행하는 펜션이야 많겠지만,

비용도 비용이지만, 기분 좋게 묶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여기저기 알아보다,

공공노조 이종훈 동지의 도움으로 가스공사 연수원 숙소를 구했다.

 

 

2.

가스공사 연수원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지만,

그렇게까지 좋을 지 몰랐다.

호텔 수준의 객실에

수영장, 야외바베큐장, 당구장, 노래방 등 모든 게 완비돼있다.

더욱이 모든 게 꽁짜라는 거...

 

고기를 굽고 술상을 차리고,

식탁을 버리고 TV가 있는 널찍한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소주 4병, 캔맥주 10통.

소주는 각일병에 1병은 보너스.

호기롭게 각일병을 외쳤지만, 난 1병을 채우지 못하고 전사...

요즘 체력이 챙피한 수준이다. ㅎ

 

여명이 틀 무렵 연수원 밖 풍경

 

 

3.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5시 쯤 되었는데, 그름낀 하늘인데도 밖이 훤히 보인다.

 

이 시간대에 박왕자씨는 금강산 장전항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니...

이 산골에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밝기인데,

사방이 트인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사람을 식별할 수 없었을까???

같이 잠에서 깬 후배 태하는 혼자말 같은 물음을 한다.

 

아침을 차려먹고, 길을 나섰다.

이와 정선에 왔으니 레일바이크를 타자!

초등학교 4학년 훈식이도 왔으니 좋은 추억이 되겠지?

 

그런데 레일바이크 출발지인 구절리역으로 향하는데, 레일 위로 레일바이크 일행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그렇담 이미 출발?

 

레일바이크 출발지인 구절리역 - 한때는 탄광으로 날리던 곳이다.

 

구절리역에 도착하니 9시 30분쯤 되었는데,

다음 출발시간이 11시란다.

한번 왕복하는데 1시간 30분이 걸리니

12시 30이 되어야 끝나는 일정이다.

 

그래. 아쉽지만 포기하자.

 

레일바이크가 떠난 텅빈 철길...

 

 

3.

대신 아우라지로 갔다.

 

아우라지는 유명한 정선아리랑의 발원지라고 한다.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비로소 '강'이라고 불리우는 조양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유명한 곳에 대개 그렇듯,

이곳도 막상 가보면 별 게 아니다.

마른 장마 때문에 바싹 준 수량 때문에

건너편 여인상까지 징검다리를 통해 갈 수도 있을 정도다.

 

아우라지 - 이곳부터 조양강이 시작된다. 조양강이 정선을 지나면 동강이 되고, 영월을 지나면 서강이 되고, 단양부터는 남한강이 된다는...

 

물수제비를 뜨는 풀소리의 멋진 폼 ㅋ

 

그래도 물은 좋다.

강가에 나가 새끼 물고기 구경도 하고,

오랫만에 물수제비도 떠봤다.

 

 

4.

이제 목적지인 광덕리로 갈 차례다.

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어찌어찌 오라고 하는데, 자신이 없다.

 

선배네 집에서 바라본 광덕리 '채운'마을

 

미안했스럽게도 선배는 큰길가에 까지 나와서 우리를 기다렸다.

물론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됐지만 말이다.

 

선배내 동네(3집이 있으니 동네는 동네)는 생각보다 큰길에서 멀지 않았다.

입구 냇물은 바짝 말라 물기가 하나도 없었다.

불길했다.

일행들은 무엇보다도 물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었기 때문이다.

 

선배네 동네는 의외로 넓찍했다.

산끝 마을. 해발고도 530M. 3만여평의 분지.

산속 치고는 햇볕도 좋아 이곳의 찜통더위도 산 아래 못지 않았다.

 

채운마을 - 멀리 보이는 집이 선배네 집이다.

 

마을 끝. 저 끝 나무 밑에 샘이 솟고 있었다.

 

 

5.

집 안은 매우 시원했다.

통풍도 잘 되었고...

 

오랫만에 본 형수도 여전했다.

 

난 캔맥주 한 캔 마시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동네 구경을 했다.

 

채운마을

 

넓은 밭들과 대조적으로 또랑에는 물기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걸어가봤는데, 그곳엔 샘도 있고, 예전에 집이 있음직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곳은 외지인이 땅을 사서 오가피 등 약초를 재배한다고 한다.

 

땡볕 아래서 한 바퀴 돌고 나니 머리가 띵했다.

우리는 신선한 채소로 만든 여러 종류 나물과

선배가 냇가에서 우리를 위해 잡아온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선배는 반주 한잔 하자고 작은 피티 '산'소주를 가져왔다.

태하는 운전을 이유로 안 마시고,

순장이도 독하다고 별로 마시지 않는다.

나는 선배하고 속도를 맞추려고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패착이었다.

이런 산속에서 3년 동안 세속기운을 빼버린 선배하고 대작을 하다니...

 

결국 난 최종 레이스에서 전사하면서 탈락했다. ㅎ

 

수와우 계곡/ 물이 맑고 시원했다.

 

 

6.

선배는 이웃 마을인 '수와우'로 가자고 했다.

그곳은 사철 물이 맑고 시원하다며...

 

정말 그곳은 묽이 맑았다.

마른 장마로 물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맑았다.

가재가 많았고, 도롱룡도 살았다.

주변에 널린 게 약초고...

 

수와우 계곡의 가재

 

도롱룡

 

이름모를 약초/ 지천이다.

 

거기서도 또 작은 피티 소주를 마셨다.

또 다시 대작 ㅋ

 

거기서 또 자리를 옮겼다.

선녀탕이라고 경치가 좋다고 한다.

근데 가뭄으로 물흐름이 끊겨서

좋다는 경관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거기서 나는 사망...

 

깨어나니 빗속의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괴로운 일이었겠지만

내겐 제법 멋진 시간여행이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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