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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맛을 아주 쪼금 보고 왔다.

 

지난 금요일(10월 23일) 산청 간디학교 근처 둔철에 사시는 이준 선배네 집에 갔다.

이준 선배는 올 8월 회사를 그만두고 둔철로 완전히(?) 내려왔다.

 

이준 선배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려가면서 '한번 내려오라'고 문자를 보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몇몇이 의기투합했고,

결국 성인 6명, 아이 4명이 참가하는 대단위 원정단(?)을 꾸려

이준 선배네 집으로 쳐들어 간 것이다.

 

산청 이준 선배네 '봄이오는집'

 

 

도착 다음날,

이준 선배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고민하다가 지리산둘레길을 가지고 했다.

나는 '완전 ' 환영이다.

 

집을 나서서 마천을 지나 노루목(장항마을)으로 갔다.

장항마을에서 황매암을 거쳐 중군마을까지의 산길, 숲길은

이준 선배가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간이라고 했다.

 

장항마을 둘레길 이정표

 

 

장항마을 둘레길 이정표 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정표를 조금 오르면 느티나무들이 몇 구루 있는데,

이곳에서는 둘레길 걷는이들에게 막걸리와 간단한 요기를 파는데, 이미 왠만한 시장이 되어 있었다.

와~ 둘레길 완전 대박이다~

 

이미 장터가 되어버린 장항마을 둘레길 초입

 

400살이 넘었다는 장항마을 당산소나무

 

 

노루목에서 출발하는 길은 경사가 급해 들길 걷는 것 보다는 등산하는 맛이 났다.

비탈밭에는 주로 고사리를 키웠고, 밭둑에는 붉나무가 붉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수도권에선 보기 힘든 산국이 군데군데 흔하게 피어 있었다.

 

장항마을 둘레길 초입의 고사리밭과 붉나무, 그리고 노란 산국

 

길섶에도 산국이 많이 피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데도 누구도 꽃을 따가지 않았다.

 

 

산길 꼭대기는 배넘이고개이다.

옛날에 이곳에 배를 대었다는데, 뭍이 솟아올라 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돼었든 배넘이고개부터 길은 완만하다.

 

배넘이고개 오르는 산길

 

배넘이고개마루에 있는 커다란 개서어나무가 길손들의 쉼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배넘이고개를 넘어서는 길이 완만하다.

 

붉은 산벚나뭇잎과 노랑 서어나무잎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흐르는 물을 그냥 마실 수도 있고, 손발도 시원하게 씻을 수 있어 자연스럽게 쉼터를 만들어주는

계곡 물

 

황매암 가는 길에 잠깐 나온 포장된 임도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내려오니 황매암(黃梅庵)이 나타났다.

 

물맛이 일품이라는 황매암 석천

 

황매암 대웅전 오르는 길

 

대웅전과 저 멀리 요사채로 쓰는 것 같은 황매암

 

황매암 현판

 

해우소에서 바라본 황매암

 

 

황매암 정면에는 '塵外孤摽'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위 사진 중 처마 밑에 희미하게 보이는 현판이다.

이준 선배는 어떻게 읽고, 뜻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이준 선배와 머리를 맞대고 '塵外孤摽'라고 읽는 데 성공했다.

 

뜻은???

직역을 하면 '속세를 떠나 외롭게 떨어진다'는 뜻인데,

孤摽에 많은 뜻이 있어 그렇게만 해석하기 어려운 것 같다.

 

시경에 보면 '摽有梅'라는 시가 있는데, 직역하면 '매실 떨어지니' 쯤 된다.

매실은 익어서 떨어지니 황매암의 '黃梅'는 노란 매화꽃이 아니라

잘 영글어 노랗게 된 매실인가보다.

 

속세를 떠나 보는 이 없어도 스스로 영글어 간다면, 진정 수도자의 모습이기도 하겠다...

 

황매암 해우소

 

 

화장실을 찾던 아이들이 해우소에 갔다가 기겁을 하고 나온다.

들어가 봤더니 푸세식이지만, 나름 정갈하고, 또 깊이가 매우 깊어 냄새도 없다.

 

해우소에 달린 메모

 

해우소 선반에 꽂힌 책들

 

 

황매암에서 중군마을까지는 2km 거리다.

 

암자를 조금만 내려오면 비탈밭, 비탈논이 나온다.

추수를 한 논, 추수를 앞둔 수수밭, 추수한 콩을 길가에 말리고, 감나무에는 노랑 감들이 주렁주렁

정말 가을풍경이다.

 

황매암 밑에 있는 양봉(꿀벌)장

 

호젓한 농로길/ 제일 막내는 맨 뒤에 가는 6살 이안이다.

 

노란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우리들의 도착지 중군마을

 

중군마을 벽화/ 잣과 꿀이 특산물인가보다.

 

지리산길 팻말

 

 

우리가 걸은 길은 장항마을에서 중간 냇물까지 2km, 황매암까지 1.4km, 중군마을까지 2km

도합 5.4km였다.

지리산둘레길로 치면 매우 짧은 구간이지만, 서울 근교의 등산길로 치면 짧은 길도 아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과 6살 이안이까지 별 어려움 없이 걸었다.

 

우리가 간 날은 토요일이라 마치 서울 근교 산처럼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평일에 오면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둘레길도 때로는 험하기도 하고, 호젓하기도 하니

왁자지껄 다니기보단 혼자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길 같았다.

 

이런 좋은 길을 만든 사람들도 고맙지만, 또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 있다.

바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다.

이런 길을 내준다는 건 농민들이나 원주민들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기꺼이 길을 내준 이곳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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