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랑을 카피하다

[prologue]

 

어제 영화번개를 쳤습니다.

4시 30분 모임을 11시 51분에 쳤습니다.

 

번개는 실패했습니다.

결국 혼자 영화를 봤습니다.

 

저는 거의 정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영화를 상영한 씨네큐브 1관에는 이미 50여명의 관객 있었습니다.

남자 관객은 서너명 뿐이었고, 혼자 온 남자 관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90년대 초반 [중독된 사랑]을 봤을 땐 더 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을 카피하다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

 

[기막힌 복제품]이란 책을 쓴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는 책과 관련한 강연차 이탈리아 투스카니에 옵니다.

복제품(카피) 골동품점을 하고 있는 엘르는 제임스 밀러의 팬입니다.

엘르는 강연을 들으러 오지만 함께 온 아들의 배고프다는 성화 때문에 중간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자신의 연락처를 주고 만날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만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연 : 줄리엣 비노쉬, 월리엄 쉬멜 등

 

 

2.

 

제임스는 9시 기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있습니다.

답답한 실내보단 햇볕 아래에 있고 싶어합니다.

둘은 자연스레 교외로 갑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복제품(카피)에 대한 생각 정도일지 모르겠습니다.

나머지 모든 게 달라보입니다.

그들의 대화는 점점 어긋나고 날이 섭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불편해졌습니다.

마찰이란 상대방에 대한 개입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나 분노가 없다면 개입도 없겠지요.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찰을 이르킬 정도의 개입을 한다는 건 개연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마치 '꿩은 포유류입니다. 지금부터 포유류로서 꿩의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꿩이 포유류란 말이야?' 하는 생각에 계속 집착하는 꼴이랄까요..

 

그리고 개연성 부재에 계속 집착하는 저를 보면서 '내 몸 속에도 범생이의 피가 흐르나?'하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암튼 그런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대화에 좀 더 몰입했을 텐데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어느덧 그들은 15년차 결혼 부부가 되었습니다.

제임스도 엘르의 역할극에 점점 빠져듭니다.

신혼여행을 와서 처음 갔던 호텔로 갑니다.

그들의 역할극은 절정을 향해갑니다.

제임스는 결혼 15주년 날 집에 와서 엘르가 목욕하는 사이 잠든 자신에 대해 변명하기도 합니다.

엘르는 처음으로 제임스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8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제임스는 9시 기차를 타야 다음 약속에 늦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역할극은 여기서 끝날 지 아니면 계속 이어질 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epilogue]

 

사실 이 영화를 보고 후기를 쓰기 쉽지 않았습니다.

뭔가 강한 끌림 때문에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쉽게 후기를 쓰는데,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꿩이 포유류라는 전제에, 그러니까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소소한 대화와 심리적인 변화를 좋아한다면

그래도 볼만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ps :

스포일러 하나 : "제, 제, 제, 제임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