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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23
    몬테소리 앞에서(3)
    풀소리
  2. 2005/01/22
    문열이
    풀소리
  3. 2005/01/22
    벌써 매미가 운다.
    풀소리

몬테소리 앞에서

몬테소리 앞에서

 

출근시간이 끝나고
영업사원들이 한창 거리로 나설 오전 10시
커다란 건물들 앞 대로변엔
주차한 차들이 빼곡한데
몬테소리 앞에
한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있다.

 

출근시간이 지나고 나면
말끔하게 차려입은 30대 아줌마들이
조그마한 차들을 타고 모여들고
퇴근시간에 앞서
웃음을 터트리며 떼지어 나오기도 하고,
움울이 홀로 빠져나오기도 하는 몬테소리 앞
오늘은 한 엄마가 남매 아이를 데리고 있다.

 

다섯 살쯤 됐을까? 작은 사내 아이는
칼라가 달린 연노랑 T셔츠에
커다란 체크무늬가 있는 멜빵바지를 단정히 입고,
머리까지 곱게 빗어 넘겼다.
아이는 두 손을 앞멜빵을 잡은 채
금새라도 터질 것같은 울음을 꾹꾹 참으며
말없이 땅만 바라보며 한 발로 보도불럭을 문지르고 있다.
엄마는
아이 앞에 앉아
더 이상 고칠 것도 없는 아이의 단정한 옷매무새를
고치고 또 고친다.

 

일곱 살은 됐을까? 계집아이는
흰색 칼라와 단추단이 단정한
하늘색 원피스를 곱게 입고
참는 것이 몸에 배었는지
엄마 앞에서 울지도 못하는 동생이 안타까운지
약간 치켜뜬 시선의 무표정한 얼굴로 두어 걸음 떨어져
엄마와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저 엄마는
어떤 길을 휘휘 돌아
저 몬테소리 앞에까지 왔을까.
저렇게 곱게 자란 아이들은
또 어떤 길을 돌고 돌아 엄마의 나이에 이를까.
2001년 초여름 오전 10시
차들이 줄잇는 6차선 대로변 몬테소리 앞은
......
적막하기만 하다.

 

<2001년 초여름, IMF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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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이

문열이

 

개나 고양이, 돼지 등은 한 배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여러 마리 새끼 중 간혹 유난히 작고, 젖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비실거리는 놈이 있다. 이놈을 문열이라 부른다. 제일 작고 비실거리니 뭔가 시원찮은 막내이려니 하지만 실은 제일 먼저 태어난 놈이다. 다른 놈들보다 앞장서서 길(?)을 열며 나오다 보니 힘이 빠져 동생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밀리고, 비실거린다고 한다.

 

‘…. 정 위원장님은 꿈이 있습니까.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외롭습니다.

 

긴 재담 끝에 정석규 선배가 민주노동당의 정윤광 위원장에게 한 말이다. 말이 끝나고 어수선하던 좌중이 처음으로 잠시 침묵에 빠졌고, 몇 마디 더 오가고는 자리를 파했다. 나도 명치 끝이 묵지근해져 잠시 침묵했고, 한 마디 덧붙였다. 석규형 언제 소주나 한 잔 합시다. 결혼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뒷풀이 겸 7-8명이 맥주집에 모인 자리에서였다.

 

모두 7-8-90년대 이른바 운동권의 한 복판에 있었고, 혹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한 시절을 공간을 달리해도 모두 함께 겪으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얘기가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이 없이 이어졌다. 몸뚱이 일부가 잘리우면 그것이 곧바로 또 하나의 몸뚱이가 되는 아메바처럼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과 사건은 뻔히 알면서도 끄집어 내면 낼수록 새롭게 살아났다. 요즈음 흔히 그렇듯 깊은 얘기는 슬쩍 슬쩍 스치기만 하고, 예의 정석규 선배의 재담에 섞여 웃음을 이어갔다. 서로 아팠던 기억들도, 예전 같으면 가슴을 후벼팠을 만한 얘기들도 서울의 북부지역에서 주로 모인다고 하여 북부동맹, 무슨 조직이든 흔들어 놓는다고 하여 알 카에다 투의 농담에 섞여 커다란 웃음덩어리에 묻혀갔다. 때로 거친 말투나 화난 듯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여도 실은 모처럼 군대얘기를 곁들인 대포자리를 만난 아저씨들처럼 모두 신이 난듯했다. 특히 정석규 선배가 특유의 달변과 재담으로 전체 자리를 이끌었다.

 

그러던 선배의 표정과 목소리가 문득 바뀌었다. 깡시골에서 땅 한 마지기 없어 어머니가 먼 장터에 나와 장사를 하면서 학교에 보냈고, 이른바 명문대학에 다니게 되었다고 좋아하였는데, 요즈음 어쩌다 자신의 집에 오시면 마누라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참으로 서럽다고 했다. 외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위원장에게 묻듯이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녕 서러움일까? 외로움일까? 서러움이나 외로움이란 한 낱말로 모두를 설명할 수 있을까? 모처럼 신나 들떠있던 사람들 모두를 빨아들여 침묵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분노와 절망, 모멸감? 그렇다면 누구에게?

 

70년대, 80년대, 90년대 우리가 운동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문열이이고자 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올리비에 롤랭의 표현처럼 단도직입적이었고, 철학에 따라 행동했으며, 기꺼이 소수가 되었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힘과 자부심을 얻었었다. 그리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이제 힘도, 활력도 없고 자부심도 빛이 바랬다. 자랑스러워 하거나 존경할 조직을 하나도 만들어놓지 못했다. 당과 신생 소비에트의 존속을 위해 스탈린이 요구하는 대로 제국주의의 스파이임을 인정하고 사형장으로 들어선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사고의 메비우스의 띠에 갇혀 끊임없이 회의하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이것이 인민을 위한 길인가? ……. 자본가들이 민중의 피로 축배를 들면서 돈 놓고 돈 먹기식 파티를 벌이고, 그 파티에 끼지 못해 안달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것을 보면서, 패배했으면서도 인정할 용기조차 없는 패배자의 모습으로,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끊임없이 웅얼거리기만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다.

 

2002년 1월 희망을 얘기해야 할 시점에 나는 절망을 얘기한다. 온갖 상처로 그대로 두면 소생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마지막 실낱희망이라도 잡고자 정신과 의사와 마주 앉아 치부를 들추어 낼 차례를 고통스럽게 기다리며 고개를 드는 만큼의 용기라도 갖고자 난 오늘 절망을 얘기한다.

 

<추신>

정석규 형은 58년 개띠에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1세대이며, 기꺼이 현장에 투신하였고, 현장 활동 중에 몸에 병까지 얻은 사람이며, 내 알기로는 그 활동을 무기 삼아 제도권을 기웃거린 적도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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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매미가 운다.

1.
요즘 연일 야근으로 몸이 많이 피곤하다.
아침 일찍 마누라하고 함께 출근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잘 안 된다.

 

오늘 평소보다 30분쯤 늦게 나오니
버스 정류장은 한가하기만 하다.
벌써 뜨거운 습기 후끈한 게 한 여름이다.

 

웬만한 빌딩만 한 원릉역 앞 플라타너스는 언제 봐도 경이롭다.
저렇게 큰 나무가 바람에 어떻게 견딜까?
주변에 바람막이도 없는데...

 

텅빈 정류장에서 한가롭게 커다란 플라타너스 바라본다.
어디서 익숙한 소리
찌----- 찌-----
보리매미 소리다.
반갑다.
아니다. 다음 계절이 떠올라 서늘한 이별이 느껴진다.

 

보리매미가 울고,
말매미, 참매미가 울고,
쓰르라미가 울고,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힘겨워지고,
다시 보리매미가 울 때쯤이면
들판에는 곡식이 여물어가고,
빨간 고추잠자리가 뭉게구름 핀 파란 하늘을 채울 것이다.

 

사실 요즘 나는 매일같이
왜 매미가 울지 않지 하고 생각했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나무들이 많은데...
오늘 보리매미가 운다.
계절은 그렇게 지나고 있다.

 

2.
내가 근무하는 노조 사무실은 냉방이 너무 세다.
아니 나만 세게 느끼는 것 같다.
작년에는 몰랐는데, 올해는 냉방이 싫다.
몸이 얼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한 떼의 현장 동지들이 몰려왔다 몰려간다.
한 보따리씩 일감을 주고
어미 주둥이를 처다 보는 새끼 제비들처럼
잦은 눈길로 차례를 독촉한다.

 

모두들 가고 나니 온 몸이 얼었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머리에선 열이 난다.
쌓인 일감은 오늘도 밤 12시 전 퇴근을 막고 있는데,
지끈거리는 머리로 일이 안 된다.

 

3.
나는 건물을 나왔다.
사무실 뒤편은 조그마한 공원이다.
이름도 예쁜 중마루공원.

 

나는 피곤하면 가끔 이 공원을
몇 바퀴씩 돌곤 한다.
조그만 공원이지만 나무들도 제법 있고,
연못과 또랑이 있고,
벤치와 잔디가 있다.

 

중마루공원에 들어서자 말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어, 하고 있는데, 참매미 소리도 들린다.
보리매미 작은 소리도 들린다.

 

어, 어제까지는 매미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4.
중마루 공원은 실업자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매일 데모하는 아줌마에게
미안함과 불편함으로 눈길을 주지 못하듯
나는 실업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쓴다.

 

한낮인데도 나무 밑에 모여서 소주를 마시고,
벤치에 누워 잠을 잔다.
그들과 나 사이에 가르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이승과 저승처럼 다르기만 하고,
생각이 깊어지면 뿌연 장막이 머리를 감싸고,
풀과 나무를 거쳐서야 세상으로 나온다.

 

꽃이 만발했던 해당화는
뒤늦게 솟은 줄기에 매달린 두어 꽃송이 피어 있고,
일찍 맺은 열매들은
붉게붉게 읽어간다.

깊은 산속에나 자란다는 마가목은
여물어 열매가 벌써 노랗다.

 

6월 초부터 잎이 지기 시작하던 벚나무는
매미도 못 보고 잎이 모두 질 줄 알았는데,
오늘 처다 보니
성글어 졌어도 여전히 잎이 많다.

 

.....

계절의 흐름은 슬픔을 준다.
이별은 늘 그렇게 오는 것이니까.

그래도 남는 것은
그래도 지나가는 것은
그래도 있는 것은
그래도 없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을 꿈꾸던 나는 점점
여린 장자로 변한다.

 

그래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그립다.
맑스가 그립다.
뿌연 안개 걷힌 명징한 세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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