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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12
    이율배반(1)
    풀소리
  2. 2005/03/11
    긴 하루였다.(1)
    풀소리
  3. 2005/03/05
    지난 겨울의 추억(1)
    풀소리

이율배반

이율배반(二律背反)

 

며칠 전 박석삼 선배님의 지적으로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정형을 싫어했다. 뭔가 틀지어지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추구했다. 액체나 기체처럼 말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싫었고, 자기 관리 잘 하는 건 더더욱 밥맛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사상이나 조직이나 실천으로 볼 때 고농도 이성적 조합을 필요로 하는 맑스레닌이스트가 되었는지 이상하다. 하긴, 몸에 맡지 않는 옷이었지. 그런데 자꾸 입으니 중독이 되었을 뿐.

 

전두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어쩌다 가투에 나가면 언제나 대열 뒤쪽에 자리잡았다. '나이도 있고 한데 뭘' 하며 소심함과 비겁함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고 전경들하고 대치하다보면 늘 내가 맨 앞줄에 있는 거다. 왜일까. 내가 흥분했나? 아니면 앞줄 녀석들이 다 도망갔나? 아무튼 찍어놓은 필름도 없으니 지금 와서 뭐라 확신할 수는 없다.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조직(?) 활동도 책임 역할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설렁설렁 했는데, 어쩌다보니 노동판에 남아 있는 게 나 하나다. 지금도 모이는 학교 후배들만 해도 70명이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도 꿈꾼다. 대열이탈을 말이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고 늘 도리질친다. 그래도 이탈은 쉽지 않다.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나와 거의 한몸이 된 '범생이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다니면서 여러 조직의 문건을 보면 내겐 다 옳은 소리로 보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이상하게 차이를 명확히 지적했고, 더욱이 그 이면은 어쩠다는 등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보면 맞는 듯도 했다. 나는 매양 그런 식이다. 반역을 꿈꾸면서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범생기질.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학을 잘 하는 편이다. 내 두뇌 능력에 비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나의 범생이 기질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답이 있다. 그것도 숫자화 되는 명확한 답(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이 있다는 게 늘 안심이었고, 안심되는 순간 반은 푼 듯 했다.

 

머리는 반백인데도 답이 없다. '넌 뭐냐' 는 물음에도 답이 없다.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스스로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범생이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정형성을 추구하고, 로맨티스트의 머리로 리얼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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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였다.

긴 하루였다.

 

정발산역에 내렸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렸고, 당 사무실로 가는 골목길은 안개에 묻혀있었다.
당 사무실은 벅적거리며 아연 활기가 있다. 포럼 준비모임과 여성위원회 회의가 겹치는 관계로 많은 당원들과 아이들이 와 있다. 1000명 당원이 있는 당 사무실이니 매일 이래도 될 것 같고, 좋을 듯도 한데...

 

유난히 모임이 많이 잡힌 날이다. 여성위원회 회의, 화정분회 번개, 행신분회 주말농장모임, 파주 준비위 회의, 기타 등등.
결속력 높은 여성위원회,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화정분회 번개모임, 참석 안 하면 땅을 안 주겠다고 으름장 놓는 행신 주말농장모임. 포럼은 이 쟁쟁한 모임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다. 예상대로 모인 사람들이 적다. 적게 모인 이들조차 2차, 3차로 들러야 할 잿밥(?)에 더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회의를 '대충'할 우리는 아니지만^^;;

 

회의를 끝내고 우선 행신 주말농장모임이 있는 이정환 동지 집에 갔다. 이크,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내가 주말농장 배제 1순위였다는데, 그 자리에까지 불참하였다면 국물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맛있는, 안주에 맛있는 술자리까지. 이정환, 유현이 엄마, 유현이 고맙소!

 

모든 게 동날 때까지 눌러 있고 싶은 심정이지만 화정번개모임이 기다린다. 김해근 동지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한다. 먼저 그리로 가신 박석삼 선배님이 드라마 '해신'을 포기하고 포로로 잡혀있는 것 같다.

 

도착해보니 굉장히 많은 당원들이 와있다. 일산3,4동 번개모임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내기하자고 덤볐는데 최소한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최김재연 동지가 역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뭐람. 최김재연, 노상규, 최영희 이번 지역위원회 선거에서 낙선한 3인방이 모두 화정분회! 3인방은 자기들끼리만 건배하고, 낙선분회라고 자학하고...

 

나중에 술값 떨어진 우린(김종호 동지와 함께니까)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대체 몇시나 되었을까?
화정분회 동지들 고맙소! 원당분회로 한번 오시오. 내가 아니면 분회장이라도 대접하지 않겠소!

분회장이 알면 욕하겠지^^;; 분회장은 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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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의 추억

결혼하고 처음인 것 같다.

아니 중학교 이후 얼음판에 간 건 처음인 것 같다.

 

민주노동당 분회모임을 모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로 하였고,

아내는 분회장이라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수두가 났다.

 

수두는 전염성이 있어서 아이는 집에다 두고(할머니가 있으니까)

우리 부부만 참가하였다.

 

일산이란 지명을 낳은 고봉산자락에 있는 얼음판이다.

아파트를 짓겠다고 산자락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악착같이 막아내겠다고 사람들이 모여 농성도 하고

물이 나는 논에다 벼도 심었다.

 

그 논에다 얼음판을 만들고, 썰매도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하였다.

 

아내를 썰매에 태우고 경주를 했다.

경주에 나섰지만 승부에 대한 욕심은 애초에 없었다.

덕분에 모처럼 즐거움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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