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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22
    닐스의 모험
    풀소리
  2. 2005/01/21
    동지밤 어둠을 검찰 조사실에서 맞으며
    풀소리
  3. 2005/01/21
    시장에서 길을 잃다.
    풀소리

닐스의 모험

닐스의 모험

 

1.
내 아침 출근길은 길다.
승용차로 10분도 안 걸릴 행주산성까지
화정, 행신지역을 답답하게 훑고 지나가는 버스로는
30분이나 걸린다.

 

그래도 나는 늘
인도 쪽으로 난 창가에 자리잡는다.
버스가 자유로를 지나기에
탁 트인 한강변을 보기 위해서다.
능곡을 지나 행주산성으로 접어들면
황량한 겨울에도 눈맛이 시원하다.

 

2.
월요일(2월 2일) 아침
나는 습관처럼 내 지정석(?)에 앉았다.
뒤편에서 둘째 또는 셋째 창가다.

 

행주산성 들머리에 들어서자
뭔가 하늘이 검어지는 듯하며,
어디선가 끼~욱 끼~욱 소리가 들린다.

 

기러기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200-300 마리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몸집의 기러기 떼가
열 개 가까운 편대를 이루며 날고 있었다.
.
.
.
황홀했다.
.
.
.
시골 깡촌 강 근처에서 자란 나이지만
이렇게 많은 기러기 떼를 본 게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낮게 날고 있다니....

 

3.
기러기.
흔하지 않은 이 새는
그러나 슬프게도 익숙하다.

 

반세기 전
새로운 희망에 불탔던 청년들,
양심적 지식인들,
3000만이 잘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려 했던 사람들이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날아갔다.
파리한 달빛에 어린 밤의 적막이
산허리를 수놓아둔 채 말이 없는 산하를 가르며....

 

그 후로도 반세기 동안
파리한 달빛에 어린 밤의 적막이
온 산하를 감쌌고,
의식이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반역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4.
이제 반세기의 어둠을 뚫고
진보세력이 권력의 핵심인 국회 앞에까지 와 있다.
기러기 떼는 그렇게 돌아왔다.

 

이제 세상은
돌아온 닐스처럼
모든 게 정상으로 그렇게 돌아오려나....

 

<200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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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밤 어둠을 검찰 조사실에서 맞으며

어제가 동지입니다.
1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이날을 경계로 해가 길어지니 엄격히 말하면 새로운 해가 마감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2달 이상 우울증에 시달려온 저로서는, 저의 우울증 탈출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아내를 봐서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우울증을 탈출하는 계기를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동지날이 좋은 꺼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잎새 벗은 앙상한 나뭇가지 가득한 행주산성 덕양산을 보면서 '오늘밤 어둠이 내릴 때쯤부터 새로운 일을 모색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넓은 곳으로 나가 동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걸 보면서 뭔갈 한다면 더 좋을 것이고...

오후 1시 검찰에 조사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피의자는 아니고, 부당노동행위 건으로 관련 회사를 고발해놓은 것이 있는데, 고발인 조사였습니다. '고발인 조사이니 잠깐이면 끝나겠지'했는데, 이게 웬걸 꼬박 5시간을 조사받았습니다. 그런 벌도 없더군요.
시간은 지나고 5시가 지나면서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찍 조사를 끝내야 되는데'하고 조바심을 내는데, 사측 년놈들은 헛소리만 합니다.

참고로 고발한 회사 대표는 여자인데, 6월 말 지부(노동조합) 설립 이후 처음 봤습니다.
전 '악마'니 '마녀'니 하는 게 단순히 인간의 상상력의 소산이겠거니 하였는데, 이 여자를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말할 때마다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떠는 게 장난이 아니었고, 조사실에서 '죽이든 살리든, 감옥에 넣든 맘대로 하라'고 대들 땐 '도대체 이 사람들이 믿는 게 뭔가', '검사실에서도 큰소리 칠 정도면 우리 조합원들 앞에서는 얼마나 기고만장일까?'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저런 사람은 평생 저렇게 기고만장하게 살아왔겠지?' 하는 생각에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어찌됐든 6시가 넘어서야 조사실을 나왔습니다. 조사 담당관의 립서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여자 처음 봤다면서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위안으로 삼으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미 세상은 온전한 밤이었습니다.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전에 다친 꼬리뼈는 5시간 앉아있던 딱딱한 의자에 배겨 저려옵니다.
아내가 분회장으로 당선되었는데, 축하자리도 못 만들고, 몰려오는 고단함에 따뜻한 이불 속으로 퍼졌습니다.

오늘부터 해가 길어지는 날입니다.
'새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해야지!'
별 뜻이 아니라도, 조그만 것에라도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사회 전체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사는날까지는... 사는날까지는...

<2004.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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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길을 잃다.

시장에서 길을 잃다.

나는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도 10분 거리를 걸어 출근한다.
영등포시장역 앞에서 내리면 네거리 못 미쳐 건널목이 있고, 건널목을 건너 네거리에서 왼편으로 돌아 영등포로타리까지 큰길로 걸어다닌다.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면 건널목에 곧장 이어진 시장 골목이 보인다.
저리로 가면 어떨까?
늘 호기심이 발동하면서도 나이 탓인가 매일 가던 길로만 다녔다.

오늘은 한 번 하고 시장길로 접어들었다.
곧장 곧은길이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들어가자 길폭도 줄어들고, 방향도 바뀐다.
문구류 도매상가를 지나 좁은 골목이 끝나고 양쪽 상가에 가운데 두 줄로 좌판이 이어진 시장 중심골목이 나온다. 더 이상 오던 방향에서 똑바로 갈 길은 없다.
어디로 갈까.

채소와 생선, 생닭과 그 부속(?), 건어물과 마른 고추, 온갖 밑반찬 그야말로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좌판들이 큰 시장골목을 꽉 메우고 있다.
어디로 갈까?
나는 왼편으로 길을 잡았다.
길을 잃고도 내 마음은 한없이 한가롭다.

한 평쯤 되는 좌판에 아줌마들이 채소를 다듬고, 생닭을 정리하고, 사는 사람이 없어도 손길은 분주하다.
좁을 통로에 끌차에 짐을 잔뜩 담아 옮기는 아줌마들은 이미 얼굴 표정이 된 조금은 쓸쓸한 웃음으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시장.
촌놈인 나에겐 시장은 이국의 풍경과도 같았다.
대학시절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의기소침해질 때면 돈이 있으면 태종대에 가 파란 바다를 보고, 돈이 없으면 남대문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넘치는 사람과 상인들의 외침. 그 생생한 삶의 현장을 정신 없이 떠밀려 다니다보면 나도 모르게 의욕이 생기곤 하였다.

영등포시장은 서울의 큰 시장 중 하나인데, 아침이라 그런지 분비지 않는다.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시장이 살아야 할텐데.... 대형마트의 편리함도 좋지만 저 많은 사람은 어찌하라고.....

큰 시장골목을 지나니 아는 길이 나온다.
이어진 가게들이 한결같이 스텐으로 된 각종 개수대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물로 씻는다. 매일 씻나?
스텐가게를 지나면 공구상가다.
용접불꽃이 튀고, 집어던지듯 쌓는 산소통 부딪치는 소리에 기겁을 하기도 한다.
공구상가와 우리 사무실 빌딩 사이에는 조그마하고 아늑한 공원이 있다. 유유자적 공원으로 접어든다.

공원이 끝나는 곳에 천막 두 개가 있고, 부엌 집기들이 널려 있는 틈으로 LPG 화덕 위에는 100그릇 도 더 나올 커다란 솥에서 국이 끓고 있다. 화물연대 사수대 동지들이 임시로 이용하는 노천식당이다.
식당 옆엔 방패와 곤봉을 든 전경들이 늘어서 있고....

유유자적 잃은 길은 그렇게 엄혹한 현실에서 끝났다.

 

<200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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