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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이렇게 고지식한 걸까?

작성일 2002-04-01

 

 

 

'2, 3층에서는 뛰지 말랍니다'
'우~우~'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경희대 '평화의 전당'은 멋진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는 윤도현 밴드를 사양할 것 같다.

같이 간 친구 얘기로는 4500석이라고 하던데, 내 짐작으로는 그 이상 모여든 것 같다.
'무붕 콘서트' 1탄 '크라잉 넛'과 '윤도현 밴드',
젊은 청춘들은 그야말로 놀고 있었다. 신나게 놀고 있었다.
잠시 잠깐 '역시 노래의 어원이 놀이라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층 맨 앞자리에 유일하게 앉아서 네 시간을 버틴 나(물론 친구 놈도 내 눈치를 보느라고 일어나지 못했다)는 강도 높은 지진을 느끼면서, 조금은 불안해하며,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은 아니지만 짧게라도 '무붕'이라는 콘서트 제목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주최측의 홍보자료에는 '없을 무와 립싱커 붕'이란다. 그리고 더 쉽게는 이번 기획 콘서트에는 '붕어'가 없단다. 정말 재미난 발상이다. 딴지일보다운 발상이다.

'우리 어릴 적에 이런게 좀 있었으면 좋았잖아'
친구 놈은 무척 즐거웠고, 또 부러웠나 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생각이 났다.
'우리도 있었어. 들국화, 산울림 그리고.......'
그러고 보니 우리 때도 있었다. 물론 항상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한번도 가지 못했지만.......
그 머뭇거림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생각해본다.
지금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입장료가 나를 머뭇거리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어도, 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 서울 시내에 비하면 공짜나 다름없는 학교 앞 당구장에 드나드는 것도 엄청난 눈치와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런 내가 들국화 콘서트에 가서 '무붕'에서 구경하고 온 청춘들처럼 뛰고 흔들 수 있었을리 만무하다.
친구는 내 이야기에 100% 동의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난 결론을 그렇게 내렸다.

'우리는 가난했고, 또 고지식('경직'이라고 심하게 이야기할 사람도 있고, '순수'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사람도 있겠지)했다.'

무붕에서 만난 청춘들은 모든 면에서 여유롭다.
사실, 데이트로 준비했다가 사정이 그렇지 못했던 친구 덕분에 신나는 놀이를 즐길 수 있었던 나로서는 아무리 가격에 비해 질과 양이 모두 만족스러운 공연이라고 해도, 거기에 사만원을 쉽게 투자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날 발전노조의 파업을 지지, 지원하는 민중문예운동 진영의 문화공연을 배신(?)한 나로서는 그렇게 마음 편하기만 한 놀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오늘의 청춘들은 내 그 시절보다는 물론, 지금의 나보다도 모든 면에서 몇갑절 여유로운 것이 분명하다.

회기 역에서 출발한 지하철이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내가 시청 역에서 내릴 때까지 윤도현과 크라잉 넛 이야기로 넘쳐난다.
청춘들의 여유로움이 너무나도 부럽다.
그렇지만 이제 막 그날의 붕괴 공포에서 벗어난 나는 부러움보다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이 다 그 자리의 청춘들처럼 여유로울까?
'노래의 어원인 놀이'가 과연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놀이를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이런 궁금증까지.........
도대체 세종문화회관 축소판에 가까운 그런 공연장이 대학에 왜 필요한 것이며, 그런 공연장을 가진 대학들이 과연 경영난에 시달리고는 있는 걸까?
그리고 또,
이런 궁금증까지........
난 왜 이렇게 고지식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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