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하지 않기

2004.04.27

 

 

 

아침부터 하늘이 우울하더니,

모처럼 비가,

오래도록,

많이도 내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은 듯 고여있던 화정천 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가까이 내려가서 걷는 출퇴근 길이

날이 더워지면서 냄새가 코를 찔렀드랬습니다.

물은 온갖 더러운 것들과 함께

그냥 고여있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빠뜨린 여러 모양의 공들이

떠내려갈 줄도 모른채

처음 빠진 자리에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보이질 않습니다.

흐르는 물 위에는 빗방울만 아주 잠깐 머물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냄새를 참으며 걸으면서

"저 더러운 것들을 싹 파내야 할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향기나는 물이 흐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흐르는 물을 보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더이상 더러운 것들을 쏟아 넣지만 않아도

물은 저렇게 한번씩 힘차게 흘러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맑게 하겠구나.

우리가 파낸들 무엇하랴.

다시 온갖 더러운 것들을

우리가 또 쏟아 부을텐데.


우리는 그저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더러운 때를 지우기 위해

아무 소용없는 힘을 또 쓰는구나.'


대개는,

뭘 애써서 하는 것보다

뭘 하지 않는 것이 이로운 것 같습니다.


"개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버린 요즈음

화정천 물이 날 가르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