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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4
    고래 도서관에서
    파란 하늘
  2. 2007/10/26
    사람과 사람
    파란 하늘
  3. 2005/09/03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파란 하늘
  4. 2005/07/12
    체의 마지막 일기
    파란 하늘
  5. 2005/07/12
    밀린 숙제
    파란 하늘

고래 도서관에서

푸른 하늘빛인가 아님 바닷색깔인가. 이곳 시립도서관은 외벽을 하늘색 유리로 만든 독특한 5층 건물이다. 더 특이한 것은 외형인데, 멀리서 보면 고래모습같다. 분수와 꼬리가 제대로 살진 않았지만, 유심히 보면 그렇구나하고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여기 도서관을 그렇게 부르진 않는 것 같다. 만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런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와 달리 짓고 나서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고위급에서.

 

도서관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다들 책상에 고갤 박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문뜩 이들이 바로 예비노동자들임을 느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투자를 하는 거다. 100만 명 실업시대의 주인공들. 물론 나도 이제 그 대열에 끼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옆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전을 때렸다.

"설계를 하는 데 한 가구당 1.8대의 차량을 기준으로 하고, 요즘에는 도서관, 노인정, 체육실 등을 만들면서도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에서 남는 공간을 임대하지"

혹시 전직이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했던 사람인가? 또 한 사람은 그 얘길 들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아파트 관리사 자격증 공부하나?

 

공부하는 사람들의 책을 보면 한국사, 영어, 안전설비, 공인중계사 ... 곧 있을 공무원시험, 자격증 시험 등에 응시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먹기 위해 그들은 고개한 번 제대로 안 들고 '열공'한다.  

나도 생존을 위해 열공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붙들고...때론 졸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지만.

 

이곳 도서관 시설을 얘기하자면.... 참 좋다.

1층에는 관리사무실이 있고, 지하에는 영화관이 있고, 2층은 어린이열림실 2곳 초등학생과 유아들실을 분리했다. 3층은 소설 등 작품 - 소프트한 책들이 있고, 4층에는 철학, 과학...- 전문도서들이 있다. 5층은 컴퓨터실. 영화도 볼 수 있고, 동영상도 듣고, 검색과 편집까지... 지금 이 글을 올리는 곳도 바로 여기다. 점심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을 사귈 때까진 예서 수다를 떨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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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이 넒고 넓은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많은 이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다 갈 것인가 ?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때 그 순간의 느낌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어쩌면 내가 안경을 통해 본 사람들이지 않은가.

문득,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형형색색 물들이며 나무들이 살기 위해 잎을 떨굴 때 그 아래서 찬바람결에 숨어 있는 쓸쓸함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일텐데... 왜 한정된 관계들을 벗어나지 못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테지만, 만나왔던 무수한 사람들을 다 보내고 난 기분. 나는 오늘 누구와 이야기를 하나? 자기 굴레에 갇혀 그 안에서 허덕이는 나를 본다.  누굴 위해 고민하거나 마음을 써 본적이 없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인간 하나가 거기 서 있구나.

넓고 넓은 세상,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진정 알고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 기울이고 있는가? 오늘 밤,  지리산에게 물어보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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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저런 생각

어제 밤 사무실에서 나머지 숙제를 하고 있을 때 한 동지가 "(연락하고,통계내고) 이런 일하는 데 굳이 여기 있을 필요 있을까?" "빠릿 빠릿한 젊은 친구와서 하라고 그만 두는 게 낫겠어"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내 나이 마흔. 연맹에 온지 이제 만 5년을 넘었지만 느즈막히 왔기에 전노협에서 구금속을 거쳐 연맹 터주대감격인 동지들과 같은 부류로 분류된다. "나이 들면 좀 그만 두지."하는 얘기들으면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그래 너희는 나이 안드나 보자.' 씩씩 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내 마음 속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한번 가야할 곳에 안가는 것 같고, 챙겨야 하는 데 그냥 두는 것 같고.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눈 뜨고 못봐서 이리 저리 챙기다 실 전체를 혼자서 챙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적도 있었는데...(물론 그 때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가 결국 선택은 다른 사람 탓을 댄다. 쟤도 그러는 데 나도 이러면 뭐 어때? 사람의 심보가 고약하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생각해보면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것들이, 분하고 억울하지만 내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형태와 그런 유형에 어쩔 수 없이 '부화뇌동'하지 않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해를 더해 갈수록 조직의 상태가 건강성을 잃어가니 하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참 용하다. 그러나 또한편으로 비참하다. 요즘처럼 젊은 얘들이 치받아 오를때는 더 그렇다.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논리의 앞뒤가 맞고, 치밀하게 계산적이고...상근하는 30대들의 공통적인 모습 아닐까. 그네들 얘기는 걸 듣고 있으면 맞는 얘기인 것 같으면서 왠지 공허하다. 항상 색깔을 구분하며 더 선명한 것을 찾으려든다. 또는 자기가 만든 틀을 들이대며 주변을 재단한다. 이런 걸 두고 오만방자하다고 하는데...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문제를 던지려고 하면 통하지 않는다. 논리의 정합성을 따지면 왜 이런 생각과 문제제기를 하는 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 만큼 고민하지 않는다는 거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 때문일까.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젊고 패기가 있기 때문일까. 내가 선배들에게 혹시 이렇게 하지는 않았던가. 나는 어느덧 전후사정과 조건과 분위기를 고민하는데...일단 밀어붙이고 보는 태도와 충돌할 수 밖에.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고 한다. 오늘 이렇게 현재에서 흘려버리는 과거는 미래를 불안케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늘 내가 제대로 서야 하는데 어떻게 서는 게 올바른 것인지 항상 혼동스럽다. 여기서 버티고 있는 게 좋은 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게 좋은 지. 우리 조직이 '할머니의 가설'을 증명하게 하는 그런 곳이었으면 한다. 할머니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아이들을 기르듯이 오랜 활동과 경험을 가진 동지들의 경험과 지혜가 조직을 발전케 하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나는 경계인지도 모르겠다. 신입과 경력의 중간에 끼어 관망자로 있지는 않았는지. 실천이 항상 생각을 못따르면서 그때 그때 느낌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영복선생의 '강의'책 앞줄부터 온갖 상념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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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마지막 일기

2000년인가 사무실에 있는 캐비넷에 체게바라 사진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는 약간 우수에 젖은 듯한 모습으로 잘생긴 얼굴. 가끔씩 시선을 보내며...체게바라평전도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체가 직접 쓴 일기를 보면서 어쩌면 화려한 추앙 뒤에 감춰진 현실을 본 듯한 느낌을 갖는다. 여기에는 체가 서른 여덟, 아홉 나이에 볼리비아의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서 체포되고 총살 당하기까지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위대한 영웅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상 때론 동지로, 때론 적으로 치열한 현실 속 대립을 피하고 혁명을 위한 게릴라로 삶을 선택했던, 어쩌면 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의 판단까지가 보인다. 동맹군이라 믿었던 소련의 믿을 수 없는 태도, 남미 혁명가들의 판단의 차이 등...

소수 게릴라부대가 볼리비아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낙관적인 판단은 어디서 나왔을까. 마치 해방직전의 빨치산을 보는 듯하다. 고립되어 산화해간 혁명가들. 하나뿐인 목숨을 역사에 바친 이들. 체는 그렇게 서른 아홉에 죽었다. 죽은 체가 볼리비아 민중들을 흔들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쿠바의 카스트로는 체를 영웅적으로 만들어냈다.

휼륭한 게릴라. 그러나 사상가는 아니었다. 마르크스 사상을 믿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온 몸을 던졌을 뿐이다.

가끔은 산길을 걸으며 치열하게 이보다 더욱 험한 산맥을 오르내리며 혁명투쟁을 한 체가 생각이 날 것이다.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산인데, 그 속에 여러 삶이 그려지는 것처럼.

내가 두살이 되던 해인 1967년 10월 9일 체는 갔다. 그 뒤 사십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볼리비아 혁명에 헌신한 맑은 영혼을 기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그리고 쿠바의 카스트로... 남미는 아직도 혁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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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숙제

그동안 미뤘던 글을 써야 한다. 게으름을 부리며, 미루고 또 미뤘던 일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 마음 속에 남은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내 스스로 느낀다. 특히 비디오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내가 대본과정에서 말만 지껄이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니 일이 진척되지 않음을 느낀다. 그렇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번 되새기자. 이번 주에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못한다. 더는 다른 사람 탓을 하지 말자. 다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가를 보여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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