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24
    네이트온 메신저가 안깔려서^^
    파란 하늘
  2. 2009/06/11
    나는 어데로 가고 있는가
    파란 하늘
  3. 2009/04/30
    밭에 가는 두번째 날
    파란 하늘
  4. 2009/04/24
    고래 도서관에서
    파란 하늘
  5. 2009/04/23
    2009/04/23
    파란 하늘
  6. 2009/04/22
    2009/04/20
    파란 하늘
  7. 2009/04/22
    2009/04/22
    파란 하늘
  8. 2008/10/15
    꿈에 나타난 일제고사
    파란 하늘
  9. 2008/09/06
    사람의 그릇(1)
    파란 하늘
  10. 2008/05/20
    삐쭉 나온 부모의 욕심
    파란 하늘

네이트온 메신저가 안깔려서^^

'고래도서관'에 공부하려고 나왔는데-으, 왜 나를 방해하는 것들이 많을까.

파워포인트도 안돼고, USB도 안 읽히고, 메신저를 깔아서 프로그램을 받아 읽어보려고 했더니 그것마저 안되어서 답답갑갑 그리고 아침부터 짜증나는 마음을 다스리고자, 블로그에 글쩍 글쩍인다.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따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지 어언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 머릿속에는 아직도 식물 병원균의 형상(탄저병, 무름병, 갈색무늬병, 점무늬병, 흰가루병...)과 벌레들의 어릴적 모습 커서 모습 그리고 피해흔적을 다 집어넣지 못한 채 여전히 헤맨다.

 

식물마다 침입한 병의 흔적도 다 다르고, 가해하는 벌레들 생김들도 다 다르다. 그런데 이 많은 것들 중에서 딱 23문제를 내니 노력도 그렇지만 이를 맞추기 위해선 별로 뾰족한 공부방법이 없다. 특징들 살펴보고, 모양새를 보고, 길을 가다가, 산을 오르다가도 나무와 풀들이 정상이 아니면 저건 무슨 병일까. 아님 어떤 곤충이 와서 얌얌 거리며 먹고 있을까. 생각하는데, 정답엔 확신이 없다.

 

이렇게 까다로우니, 기사시험 응시자의 8%만 겨우 합격을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사람들 병을 의사가 고치듯이 식물들 병은 기초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고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보면 당연히 까다롭고 어려운 시험이 아닐 수 없는데... 나처럼 벼락치기하는 사람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물론, 이 땡볕에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짓는 많은 농부님들은 이미 터득한 일이지만, 나는 논이나 밭에서 자라는 잡초 이름 외우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애기똥풀, 개망초, 민들레... 이런 애들은 지나다니면서 알고 있기에 그럭저럭 쉽지만 특히 피 중에서도 강피, 돌피, 물피...영 ~ 모르겠다. 

 

이렇게 몇자를 적는 사이에 옆자리에 사람이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다.

아 ~ 나도 다시 공부모드로 전환해야겠다.

30도를 넘는 날씨에 땅콩밭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과 많은 농부님들을 생각하면서 집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는 어데로 가고 있는가

새벽 다섯시라고 블로그 이름도 바꿨는데, 한 달도 못가서 새벽 5시가 아니라 6시가 넘어서야 일어나게 됐다.

 

그 이유는 밤 12시 전에 잠을 안 자기 때문. 다시 야행성으로 바뀌고 있다. 새벽형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만큼 내 관리를 잘해서 잘 땐 자고 일어날 땐 정확하게 일어나야 하는데, 나처럼 미련이 많은 인간은 한밤중에 오늘 못 본 것들을 이것 저것 보면서 잠 잘 시간을 넘기곤 한다. 그 만큼 어떤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불혹이 넘은 나이에 20년 넘게 해오는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안하던 공부를 하면서 여차저차해서 공불한다고 설명하면 열에 아홉은 "어휴,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둔감한 나는 아직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사실 아직 못 느끼고 있다. 다만 예상만 할 뿐이다. 

 

수 많은 사람 속에서 부대끼다가 수 많은 곤충과 식물을 알아야 하는 공불하다보니 또다른 세계에서 오는 재미는 있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배우고 깨쳤던 길을 뒤늦게 걸어가야 하니 조금 조바심같은 게 생기려고 할 때도 있다.

 

갑자기 지난 주 지리산에 다녀오면서 느꼈던 생각 하나. 

앞 선 사람의 뒷모습이 보일 때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일 때) 두려움은 없지만, 앞 선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길에는 막막한 두려움이 몰려든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은 어디지?

문득 드는 생각 둘.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앞 선 사람은 있는가?  

지금 나는 전과 달리 마음이 아주 편하다.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보내던 가족들과 늘상 같이 붙어 있다. 좋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밭에 가는 두번째 날

몇 시간 뒤면 밭에 나가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며칠 남지 않은 기사시험. 준비 못했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인 만큼 산 공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

더구나 우리가 빌린 밭 1,500평 중 지난 번에 800평 땅콩 심고 나머지 고추를 심는다.

이장님네, 이장님 어머니네, 글구 우리 밭까지.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엔 왠지 하루 종일 걸릴 것 같다.

지금 농촌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할 만큼 매우 바쁘다.

이번 주말께 비가 온다며 다음 날엔 채마밭에도 먹을 거리를 심기로 했다.

무엇을 심을까.

 

오늘, 진보신당이 처음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당적도 없지만 속으로 아주 쬐금 걱정했었는데, 참 잘 됐다.  

단결하니 아름답기까지하다. 

멀리서 어쩌다 한번 바라 보기만 하는 나는, 숨가빴을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종자 심었으니 결실이 좋을 거라고 기대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래 도서관에서

푸른 하늘빛인가 아님 바닷색깔인가. 이곳 시립도서관은 외벽을 하늘색 유리로 만든 독특한 5층 건물이다. 더 특이한 것은 외형인데, 멀리서 보면 고래모습같다. 분수와 꼬리가 제대로 살진 않았지만, 유심히 보면 그렇구나하고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여기 도서관을 그렇게 부르진 않는 것 같다. 만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런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와 달리 짓고 나서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고위급에서.

 

도서관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다들 책상에 고갤 박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문뜩 이들이 바로 예비노동자들임을 느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투자를 하는 거다. 100만 명 실업시대의 주인공들. 물론 나도 이제 그 대열에 끼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옆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전을 때렸다.

"설계를 하는 데 한 가구당 1.8대의 차량을 기준으로 하고, 요즘에는 도서관, 노인정, 체육실 등을 만들면서도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에서 남는 공간을 임대하지"

혹시 전직이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했던 사람인가? 또 한 사람은 그 얘길 들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아파트 관리사 자격증 공부하나?

 

공부하는 사람들의 책을 보면 한국사, 영어, 안전설비, 공인중계사 ... 곧 있을 공무원시험, 자격증 시험 등에 응시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먹기 위해 그들은 고개한 번 제대로 안 들고 '열공'한다.  

나도 생존을 위해 열공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붙들고...때론 졸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지만.

 

이곳 도서관 시설을 얘기하자면.... 참 좋다.

1층에는 관리사무실이 있고, 지하에는 영화관이 있고, 2층은 어린이열림실 2곳 초등학생과 유아들실을 분리했다. 3층은 소설 등 작품 - 소프트한 책들이 있고, 4층에는 철학, 과학...- 전문도서들이 있다. 5층은 컴퓨터실. 영화도 볼 수 있고, 동영상도 듣고, 검색과 편집까지... 지금 이 글을 올리는 곳도 바로 여기다. 점심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을 사귈 때까진 예서 수다를 떨어야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23

안녕하세요, 세잔씨

 

울퉁불퉁하게 살다간 세잔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책이다. 내 손을 가게 만든 것은 세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잘 만들어진 표지때문이다. 표지에 세잔이 의자를 들고 어디론가 옮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밑에 세잔의 삶과 그림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작은 표제 아래로 세잔의 그림과 글이 함께 흐른다. 강물처럼.

 

재밌다. 세잔이 나름의 철학을 지닌 화가였다는 것도. 에밀졸라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친한 친구였다는 것도. 하지만 에밀졸라가 쓴 작품을 읽은 뒤, 세잔은 그에게 편지한통을 보냈고 그 뒤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 1885년 작품이 나왔고, 1894년 드레퓌스 사건으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공개장을 신문에 발표했다. 1902년 벽난로 연기구멍을 막아 질식사당하기까지. 졸라는 7년 동안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엑스에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불발됐다고 소개된다.

세잔은 졸라가 엑스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책도, 그의 못된 하녀도 다 잊었다"며 그를 만나러 달려갔으나 우연히 만난 한 친구가 전한 말때문에 눈물을 짓고 돌아왔다고 씌여있다. 세잔이 전해 들은 말. 졸라는 "이미 죽은 사람과 뭣하러 만나겠냐"고 했다.

졸라의 집에 벽이 아닌 창고에 처박혔던 세잔의 작품. 졸라는 작품을 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년시절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그들이 심판하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않았다.

이것은 그의 경향이고 그래서 나는 작품을 펴냈어요. 그것에 영감을 준 사람도 세잔이지요.

 

1906년 10월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홀로... 그의 나이 예순일곱살.

"저를 고독하게 했고 강하게 했던 주님, 주의 은총으로 지상의 졸음처럼 죽을 수 있도록 해주소서."

 

사과 하나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굳센 신념을 지녔던 외골수 세잔.

그는 날마다 그림을 그렸고, 그런 노력의 결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화폭에 담아 새로운 회화를 창조했다.

그런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집념과 끈기.

그가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있고 그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20

미켈란젤로의 지옥같은 4년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그려놓은 천지창조. 미켈란젤로가 1508년 5월 10일에 시작해서 1512년 10월에 완성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하는 동안 그는 지옥이라고 고백했다.

왜냐면 미켈란젤로는 회화가 아닌 조각을 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비하하던 회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는데, 이는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욕망과 미켈란젤로를 시기하던 브란만데를 비롯한 무리들이 놓은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작품이 완성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로 대성공.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인내와 투철한 신앙심이 좋은 결실을 본 것. 물론 천재성은 빼놓을 수 없겠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22

톨스토이의 단편<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천사의 임무를 불이행한 천사는 수선공의 집에 기거하면서 하느님이 내준 세가지 숙제를 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사람은 어떻게 사는 가, 사람이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벌써 깜빡 깜빡 _ )

첫째, 사람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둘째, 자신의 몸이 언제 죽을 지 모른 채 살아간다. 셋째,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이웃과 더불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꿈에 나타난 일제고사

평소때와 달리 아이가 먼저 깼다.

아직 잠에 취해 있던 나에게 와서 일어나라고 한다. 난 감기를 핑게로 이불을 박차고 나가기 싫다. 밥 해줘야 하는데...

밖에서 "엄마, 오늘은 빵!" 하는 소리가 들린다.

휴~ 살았다. 조금 더 자고 되겠지. 그렇게 30분을 더 게겼다.

 

아이가 부산하게 왔다갔다하면서 빵을 굽고, 치즈 위에 마요네즈를 바를 건지, 아님 토마토소스를 바를 건지 얘기하란다.

기특하다. 어제 밤에도 스스로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혼자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엔 스스로 밥상(?)을 차리리. 이젠 다 컷구나.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어제 시험 본거 학력미달이래."

"뭐? 벌써 성적이 나왔어"

"아니, 꿈 꿨어"

"... ..."

"꿈에, 시험 봤는데 학력미달로 나와서 얘들이랑, 선생님이랑 다들 킥킥 대며 웃었어."

 

일제고사가 우리 아이에게 이다지도 심한 압박과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구나 싶었다.

 

며칠 전부터 일제고사에 대해 얘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딴에는 아이가 "그까짓 시험, 안 볼래"하면 "그래, 여행가자"하고 싶었는데, 아이는 시험 안봐도 된다는 얘길해도 안보겠다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난, 그냥 무시하면서 그 따위 일제고사에 시험에 들지 않겠노라며 무시 작전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머릿끝부터 발끝까지 시험이라는 압박. 그것도 전국의 아이들이 등수를 매기게 되는 끔찍한 사태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희생양이었다.

 

시험은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이여야 한다. 그러나, 3학년이나, 6학년, 중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일제고사는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하는 것인지. 학교를 공부하는 곳이 아닌, 등수 매기는 도살장처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야, 점수하고 등수는 중요하지 않아. 왜냐면 지금 너희는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시험 보면 내가 어떤 것을 잘 알고 잘 모르는 지 알 수 있잖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잘모르는 걸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

 

그냥 입에서 아이가 받은 상처. 아이는 1등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만 느낄 정도로 많이 단순하다. 아직 싹을 트우기도 전에, 채 크기도 전에 성적으로 재단당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엄마, 나는 시험보는 것은 좋아"

"......"

"난, 일제고사 이름은 싫어"

"......"

"일제시대때 만든 거야? 일제고사가?"

"......"

"등수 매기는 것도 별로야, 다 백점 맞았는데, 누구는 1등이고 누군 100등이면 어떻게 해?"

"응, 그럴 땐 공동 1등이라고 해. 엄마도 성적매기고 등수내는 것은 진짜 안좋아. 너희 모르는 걸 배우고 또 배우는 학생들이잖아. 그치~ "

 

일제고사. 누구의 머릿속에서 기안돼 나온 일제고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수많은 엄마들과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쓸데없는 짓'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람의 그릇

어제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낱말이 '그릇'이다. 똑같은 음식으로 놋그릇, 사기그릇, 플라스틱 그릇, 유리 그릇에 담았을 때 느끼는 맛이 다 다르다.

 

그와 같이 사람들도 각기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 다르다. 어떤 이는 깨진 그릇에, 어떤 이는 투명한 유리 그릇에, 또 어떤이는 강철 그릇에 자신을 담아 살아 간다. 아니, 어쩌면 살다보니 그런 그릇들이 된 것일터.

 

불현듯, 아니 숨가쁘게 달려와 막상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니 그들의 눈에 비친 내 그릇은 어떤가? 나는 어떤 그릇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는가?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온통 경쟁이 판치는 세상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배려에 인색한 내 그릇때문이다. 일하면서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내 성격이 원래 그래"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지금은 깊이 반성을 하게 된다. 더는 이기적이지 말자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삐쭉 나온 부모의 욕심

아이가 6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은 생각보다 젊었고, 야물게 생기신 분이었다. 울 아들내미 '과'는 아니지만...

 

엄마들 여러분이 와서 교실로 들어섰고, 공개수업이 진행됐다. 헌데, 울 아들은 수업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책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서 하품을 쫙쫙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엄마 모습이 별로 맘에 안들어서일까.(다른 엄마들이 쫙 빼입었던 반면, 난 늘 입던 대로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갔기때문에?)

아님, 무슨 심술일까?

 

수업 도중에 왜 손들고 답변같은 걸 하지 않냐고 물으니, 모르기 때문이란다. 미술수업 중에 다색판화를 가르쳐주시고 계셨지만, 아는 사람 손들고 말해봐요 하면서 수업을 하셨다.

 

애들은 어떻게 잘 알고 있을까? 분명 지난 시간에 설명을 해주신 것 같은데, 왜 울 아들은 모른다고 할까. 참 걱정이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던데, 요즘 조금씩 초초감이 인다. 부모의 욕심이 발동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 가슴안에만 있으면 다행인데 삐쭉 삐쭉 나와서 표정에 묻어나고 행동으로 표시가 난다는 거다. 그런 갑다, 하면 되는데 쉽지가 않다.

 

오늘 공개수업에서 울 아들의 태도 -공부에 도통 관심없고,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나대로 한다는 식의 태도-가 영맘에 안들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알알하다.

 

수업마치고 담임선생님과 첫대면을 하면서 "애가 대답도 영 안하고 그러네요."라고 하자, 담임선생님이 "아뇨~ 평소엔 잘하는 데..."라고하면서 걱정을 덜어주셨다.  엄마맘을 틀킨 것 같지만, 염치 불구하고 메일 주소를 받아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울 아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에 앉아서 인사를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