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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4
    네이트온 메신저가 안깔려서^^
    파란 하늘
  2. 2009/06/11
    나는 어데로 가고 있는가
    파란 하늘
  3. 2009/04/24
    고래 도서관에서
    파란 하늘
  4. 2009/04/23
    2009/04/23
    파란 하늘
  5. 2008/10/15
    꿈에 나타난 일제고사
    파란 하늘
  6. 2008/09/06
    사람의 그릇(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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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5/20
    삐쭉 나온 부모의 욕심
    파란 하늘
  8. 2007/10/26
    사람과 사람
    파란 하늘
  9. 2007/04/23
    물오른 봄산
    파란 하늘
  10. 2007/03/17
    콜트악기의 '불순한' 정리해고(4)
    파란 하늘

네이트온 메신저가 안깔려서^^

'고래도서관'에 공부하려고 나왔는데-으, 왜 나를 방해하는 것들이 많을까.

파워포인트도 안돼고, USB도 안 읽히고, 메신저를 깔아서 프로그램을 받아 읽어보려고 했더니 그것마저 안되어서 답답갑갑 그리고 아침부터 짜증나는 마음을 다스리고자, 블로그에 글쩍 글쩍인다.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따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지 어언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 머릿속에는 아직도 식물 병원균의 형상(탄저병, 무름병, 갈색무늬병, 점무늬병, 흰가루병...)과 벌레들의 어릴적 모습 커서 모습 그리고 피해흔적을 다 집어넣지 못한 채 여전히 헤맨다.

 

식물마다 침입한 병의 흔적도 다 다르고, 가해하는 벌레들 생김들도 다 다르다. 그런데 이 많은 것들 중에서 딱 23문제를 내니 노력도 그렇지만 이를 맞추기 위해선 별로 뾰족한 공부방법이 없다. 특징들 살펴보고, 모양새를 보고, 길을 가다가, 산을 오르다가도 나무와 풀들이 정상이 아니면 저건 무슨 병일까. 아님 어떤 곤충이 와서 얌얌 거리며 먹고 있을까. 생각하는데, 정답엔 확신이 없다.

 

이렇게 까다로우니, 기사시험 응시자의 8%만 겨우 합격을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사람들 병을 의사가 고치듯이 식물들 병은 기초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고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보면 당연히 까다롭고 어려운 시험이 아닐 수 없는데... 나처럼 벼락치기하는 사람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물론, 이 땡볕에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짓는 많은 농부님들은 이미 터득한 일이지만, 나는 논이나 밭에서 자라는 잡초 이름 외우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애기똥풀, 개망초, 민들레... 이런 애들은 지나다니면서 알고 있기에 그럭저럭 쉽지만 특히 피 중에서도 강피, 돌피, 물피...영 ~ 모르겠다. 

 

이렇게 몇자를 적는 사이에 옆자리에 사람이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다.

아 ~ 나도 다시 공부모드로 전환해야겠다.

30도를 넘는 날씨에 땅콩밭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과 많은 농부님들을 생각하면서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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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데로 가고 있는가

새벽 다섯시라고 블로그 이름도 바꿨는데, 한 달도 못가서 새벽 5시가 아니라 6시가 넘어서야 일어나게 됐다.

 

그 이유는 밤 12시 전에 잠을 안 자기 때문. 다시 야행성으로 바뀌고 있다. 새벽형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만큼 내 관리를 잘해서 잘 땐 자고 일어날 땐 정확하게 일어나야 하는데, 나처럼 미련이 많은 인간은 한밤중에 오늘 못 본 것들을 이것 저것 보면서 잠 잘 시간을 넘기곤 한다. 그 만큼 어떤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불혹이 넘은 나이에 20년 넘게 해오는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안하던 공부를 하면서 여차저차해서 공불한다고 설명하면 열에 아홉은 "어휴,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둔감한 나는 아직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사실 아직 못 느끼고 있다. 다만 예상만 할 뿐이다. 

 

수 많은 사람 속에서 부대끼다가 수 많은 곤충과 식물을 알아야 하는 공불하다보니 또다른 세계에서 오는 재미는 있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배우고 깨쳤던 길을 뒤늦게 걸어가야 하니 조금 조바심같은 게 생기려고 할 때도 있다.

 

갑자기 지난 주 지리산에 다녀오면서 느꼈던 생각 하나. 

앞 선 사람의 뒷모습이 보일 때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일 때) 두려움은 없지만, 앞 선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길에는 막막한 두려움이 몰려든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은 어디지?

문득 드는 생각 둘.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앞 선 사람은 있는가?  

지금 나는 전과 달리 마음이 아주 편하다.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보내던 가족들과 늘상 같이 붙어 있다. 좋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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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도서관에서

푸른 하늘빛인가 아님 바닷색깔인가. 이곳 시립도서관은 외벽을 하늘색 유리로 만든 독특한 5층 건물이다. 더 특이한 것은 외형인데, 멀리서 보면 고래모습같다. 분수와 꼬리가 제대로 살진 않았지만, 유심히 보면 그렇구나하고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여기 도서관을 그렇게 부르진 않는 것 같다. 만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런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와 달리 짓고 나서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고위급에서.

 

도서관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다들 책상에 고갤 박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문뜩 이들이 바로 예비노동자들임을 느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투자를 하는 거다. 100만 명 실업시대의 주인공들. 물론 나도 이제 그 대열에 끼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옆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전을 때렸다.

"설계를 하는 데 한 가구당 1.8대의 차량을 기준으로 하고, 요즘에는 도서관, 노인정, 체육실 등을 만들면서도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에서 남는 공간을 임대하지"

혹시 전직이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했던 사람인가? 또 한 사람은 그 얘길 들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아파트 관리사 자격증 공부하나?

 

공부하는 사람들의 책을 보면 한국사, 영어, 안전설비, 공인중계사 ... 곧 있을 공무원시험, 자격증 시험 등에 응시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먹기 위해 그들은 고개한 번 제대로 안 들고 '열공'한다.  

나도 생존을 위해 열공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붙들고...때론 졸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지만.

 

이곳 도서관 시설을 얘기하자면.... 참 좋다.

1층에는 관리사무실이 있고, 지하에는 영화관이 있고, 2층은 어린이열림실 2곳 초등학생과 유아들실을 분리했다. 3층은 소설 등 작품 - 소프트한 책들이 있고, 4층에는 철학, 과학...- 전문도서들이 있다. 5층은 컴퓨터실. 영화도 볼 수 있고, 동영상도 듣고, 검색과 편집까지... 지금 이 글을 올리는 곳도 바로 여기다. 점심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을 사귈 때까진 예서 수다를 떨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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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안녕하세요, 세잔씨

 

울퉁불퉁하게 살다간 세잔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책이다. 내 손을 가게 만든 것은 세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잘 만들어진 표지때문이다. 표지에 세잔이 의자를 들고 어디론가 옮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밑에 세잔의 삶과 그림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작은 표제 아래로 세잔의 그림과 글이 함께 흐른다. 강물처럼.

 

재밌다. 세잔이 나름의 철학을 지닌 화가였다는 것도. 에밀졸라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친한 친구였다는 것도. 하지만 에밀졸라가 쓴 작품을 읽은 뒤, 세잔은 그에게 편지한통을 보냈고 그 뒤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 1885년 작품이 나왔고, 1894년 드레퓌스 사건으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공개장을 신문에 발표했다. 1902년 벽난로 연기구멍을 막아 질식사당하기까지. 졸라는 7년 동안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엑스에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불발됐다고 소개된다.

세잔은 졸라가 엑스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책도, 그의 못된 하녀도 다 잊었다"며 그를 만나러 달려갔으나 우연히 만난 한 친구가 전한 말때문에 눈물을 짓고 돌아왔다고 씌여있다. 세잔이 전해 들은 말. 졸라는 "이미 죽은 사람과 뭣하러 만나겠냐"고 했다.

졸라의 집에 벽이 아닌 창고에 처박혔던 세잔의 작품. 졸라는 작품을 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년시절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그들이 심판하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않았다.

이것은 그의 경향이고 그래서 나는 작품을 펴냈어요. 그것에 영감을 준 사람도 세잔이지요.

 

1906년 10월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홀로... 그의 나이 예순일곱살.

"저를 고독하게 했고 강하게 했던 주님, 주의 은총으로 지상의 졸음처럼 죽을 수 있도록 해주소서."

 

사과 하나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굳센 신념을 지녔던 외골수 세잔.

그는 날마다 그림을 그렸고, 그런 노력의 결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화폭에 담아 새로운 회화를 창조했다.

그런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집념과 끈기.

그가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있고 그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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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일제고사

평소때와 달리 아이가 먼저 깼다.

아직 잠에 취해 있던 나에게 와서 일어나라고 한다. 난 감기를 핑게로 이불을 박차고 나가기 싫다. 밥 해줘야 하는데...

밖에서 "엄마, 오늘은 빵!" 하는 소리가 들린다.

휴~ 살았다. 조금 더 자고 되겠지. 그렇게 30분을 더 게겼다.

 

아이가 부산하게 왔다갔다하면서 빵을 굽고, 치즈 위에 마요네즈를 바를 건지, 아님 토마토소스를 바를 건지 얘기하란다.

기특하다. 어제 밤에도 스스로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혼자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엔 스스로 밥상(?)을 차리리. 이젠 다 컷구나.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어제 시험 본거 학력미달이래."

"뭐? 벌써 성적이 나왔어"

"아니, 꿈 꿨어"

"... ..."

"꿈에, 시험 봤는데 학력미달로 나와서 얘들이랑, 선생님이랑 다들 킥킥 대며 웃었어."

 

일제고사가 우리 아이에게 이다지도 심한 압박과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구나 싶었다.

 

며칠 전부터 일제고사에 대해 얘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딴에는 아이가 "그까짓 시험, 안 볼래"하면 "그래, 여행가자"하고 싶었는데, 아이는 시험 안봐도 된다는 얘길해도 안보겠다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난, 그냥 무시하면서 그 따위 일제고사에 시험에 들지 않겠노라며 무시 작전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머릿끝부터 발끝까지 시험이라는 압박. 그것도 전국의 아이들이 등수를 매기게 되는 끔찍한 사태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희생양이었다.

 

시험은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이여야 한다. 그러나, 3학년이나, 6학년, 중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일제고사는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하는 것인지. 학교를 공부하는 곳이 아닌, 등수 매기는 도살장처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야, 점수하고 등수는 중요하지 않아. 왜냐면 지금 너희는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시험 보면 내가 어떤 것을 잘 알고 잘 모르는 지 알 수 있잖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잘모르는 걸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

 

그냥 입에서 아이가 받은 상처. 아이는 1등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만 느낄 정도로 많이 단순하다. 아직 싹을 트우기도 전에, 채 크기도 전에 성적으로 재단당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엄마, 나는 시험보는 것은 좋아"

"......"

"난, 일제고사 이름은 싫어"

"......"

"일제시대때 만든 거야? 일제고사가?"

"......"

"등수 매기는 것도 별로야, 다 백점 맞았는데, 누구는 1등이고 누군 100등이면 어떻게 해?"

"응, 그럴 땐 공동 1등이라고 해. 엄마도 성적매기고 등수내는 것은 진짜 안좋아. 너희 모르는 걸 배우고 또 배우는 학생들이잖아. 그치~ "

 

일제고사. 누구의 머릿속에서 기안돼 나온 일제고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수많은 엄마들과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쓸데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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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그릇

어제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낱말이 '그릇'이다. 똑같은 음식으로 놋그릇, 사기그릇, 플라스틱 그릇, 유리 그릇에 담았을 때 느끼는 맛이 다 다르다.

 

그와 같이 사람들도 각기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 다르다. 어떤 이는 깨진 그릇에, 어떤 이는 투명한 유리 그릇에, 또 어떤이는 강철 그릇에 자신을 담아 살아 간다. 아니, 어쩌면 살다보니 그런 그릇들이 된 것일터.

 

불현듯, 아니 숨가쁘게 달려와 막상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니 그들의 눈에 비친 내 그릇은 어떤가? 나는 어떤 그릇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는가?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온통 경쟁이 판치는 세상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배려에 인색한 내 그릇때문이다. 일하면서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내 성격이 원래 그래"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지금은 깊이 반성을 하게 된다. 더는 이기적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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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쭉 나온 부모의 욕심

아이가 6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은 생각보다 젊었고, 야물게 생기신 분이었다. 울 아들내미 '과'는 아니지만...

 

엄마들 여러분이 와서 교실로 들어섰고, 공개수업이 진행됐다. 헌데, 울 아들은 수업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책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서 하품을 쫙쫙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엄마 모습이 별로 맘에 안들어서일까.(다른 엄마들이 쫙 빼입었던 반면, 난 늘 입던 대로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갔기때문에?)

아님, 무슨 심술일까?

 

수업 도중에 왜 손들고 답변같은 걸 하지 않냐고 물으니, 모르기 때문이란다. 미술수업 중에 다색판화를 가르쳐주시고 계셨지만, 아는 사람 손들고 말해봐요 하면서 수업을 하셨다.

 

애들은 어떻게 잘 알고 있을까? 분명 지난 시간에 설명을 해주신 것 같은데, 왜 울 아들은 모른다고 할까. 참 걱정이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던데, 요즘 조금씩 초초감이 인다. 부모의 욕심이 발동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 가슴안에만 있으면 다행인데 삐쭉 삐쭉 나와서 표정에 묻어나고 행동으로 표시가 난다는 거다. 그런 갑다, 하면 되는데 쉽지가 않다.

 

오늘 공개수업에서 울 아들의 태도 -공부에 도통 관심없고,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나대로 한다는 식의 태도-가 영맘에 안들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알알하다.

 

수업마치고 담임선생님과 첫대면을 하면서 "애가 대답도 영 안하고 그러네요."라고 하자, 담임선생님이 "아뇨~ 평소엔 잘하는 데..."라고하면서 걱정을 덜어주셨다.  엄마맘을 틀킨 것 같지만, 염치 불구하고 메일 주소를 받아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울 아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에 앉아서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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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이 넒고 넓은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많은 이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다 갈 것인가 ?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때 그 순간의 느낌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어쩌면 내가 안경을 통해 본 사람들이지 않은가.

문득,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형형색색 물들이며 나무들이 살기 위해 잎을 떨굴 때 그 아래서 찬바람결에 숨어 있는 쓸쓸함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일텐데... 왜 한정된 관계들을 벗어나지 못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테지만, 만나왔던 무수한 사람들을 다 보내고 난 기분. 나는 오늘 누구와 이야기를 하나? 자기 굴레에 갇혀 그 안에서 허덕이는 나를 본다.  누굴 위해 고민하거나 마음을 써 본적이 없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인간 하나가 거기 서 있구나.

넓고 넓은 세상,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진정 알고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 기울이고 있는가? 오늘 밤,  지리산에게 물어보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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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 봄산

매주 산에 가곤 했는데 요즘 지역에서 보궐선거를 하느라 열심은 아니지만 얼굴은 내밀어야 하기에 이번 주에는 '박'하는 산행은 못하고 뒷산에서 두어시간을 보냈다.

약 2백미터 높이는 될까? 나즈막한 산이라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갔었다. 날이 흐려서 그렇지 봉긋 봉긋 연두색빛으로 물이 오른 나무마다 "봄이 왔어요" 외치는 듯했다. 이미 개나리며 진달래는 다 피고 졌는데 새삼 봄을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진짜 봄은 새순이 돋아나는 지금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봄날, 봄산에서 피어오르는 새잎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나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나는 이렇게 생생하게 삶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봄날 산행이 봄바람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 그런 자유를 만킥하는 산행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에서 이런 봄산을 몇번이나 보게될까, 그때마다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새로운 생각의 나래를 펴는 산행이 되었다.

20대 소위 운동권으로 시작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꿀림없이 내 멋대로 살고 있는데...20년동안 나의 주변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도 고집스레 이 삶을 살고 있지만 '정신머리'는 참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연두빛 물오른 봄산에서 서서 나의 철모르던 젊은 시절과 현재가 교차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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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악기의 '불순한' 정리해고

 

산재환자 - 노조간부 마구잡이 정리해고

콜트악기 38명 정리해고 명단통보


콜트악기가 무리하게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콜트악기회사는 직반장 면담을 통해 38명에게 4월 12일자로 정리해고하겠다고 알려줬다. 면담은 콜트악기 지회간부들의 격렬한 항의 끝에 중단됐으나 회사는 노동부에 38명을 정리해고 한다는 신고서를 제출했다.

회사는 12일까지 희망퇴직서를 낸 18명과 이 달 말 정년퇴직자 3명을 포함하면 모두 59명을

정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콜트악기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도 없고, 대상자의 선정기준도 올바르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글쎄?”


회사가 주장하는 정리해고 사유는 “수주가 없다”는 거다. 지난해에는 콜트악기는 절반씩 또는 1/4씩 순환휴직을 했다. 그러나 콜트악기를 보려면 콜텍을 비롯해서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6개 공장을 모두 비교해 봐야 한다. 지난 해 매출액은 2,075억원으로 악기산업 국내 1위를 차지했다. 박영호 사장은 1,191억원의 재산을 가진 국내 120번째 부자다.

회사가 ‘경영이 악화됐다’고 하지만 사장이 유상감자를 해서 주식100억원을 챙겨갔다. 그로 인해 부채비율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다. 현재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은 무리 없이 팽팽 잘 돌아가고 있다. 지난 해 한국신용평가정보원 분석결과에 따라 종합신용등급이 신용늘역이 우량하고, 환경변화에 적절한 대처가 가능한 기업이며, 현금흐름등급이 최상급인 유동성 우수기업이고, 신용등릅 작성이후 신용도의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했다.

2007년 1월 28일자 매일경제신문이나,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 1위”로 98%를 30여개 나라에 수출하는 재무구조가 탄탄한 회사라고 소개했다.


콜트악기가 이유 없는 정리해고를 하는 까닭은?

정리해고대상자 노조활동-나이든 여성-산재환자


“일은 잘하는데 너무 입 바른 소리를 잘하기 때문이래.” 주임에게 면담과정에서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이명숙은 사유를 따져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하더라고 한다. 콜트악기지회 여성부장은 회사주임이 면담하면서 “해고 이유 없다”고 솔직히 시인하더란 얘길했다. 이번 정리해고자 명단에는 선세규 수석부지회장를 포함해서 상집간부가 8명을 포함됐는데 이는 지회장과 상집 1명을 제외한 모든 집행간부와 임원을 짜른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참에 민주노조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속셈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한쪽은 근속이 오래고 나이든 여성조합원들이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다. 조합원 160여명 중 여성이 66명이다. 약 40%다. 그러나 정리해고명단에 오른 38명 중 여성이 23명으로 60%를 차지한다. 이 중에는 정년인 55세를 불과 몇 달 남겨 놓은 분들도 포함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해고할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나이든 여성을 정리해고 제1순위로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콜트악기의 정리해고 명단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산재치료 중인 산재환자 5명을 포함시킨 것이다.

콜트악기의 작업환경은 형편없다. 먼지 많으나 환기시설하나 변변치 않고, 접착제를 사용하는 곳에도 통풍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기관지 천식환자들이 많다. 이번에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된 분들이 모두 기관지 천식환자들이다. 그러나 올해 6월30일 요양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나와서 일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서 산재기간 중에 나와 일하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 대부분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하다가 병들었는데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주기는커녕 정리해고명단에 포함해놓았으니 이보다 더한 악질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회사, 민주노조 깨려고 속이고 또 속이고


콜트악기에 87년 처음 노조의 깃발이 세웠다가 회사의 탄압으로 꺾인 뒤 그 다음해인 88년에 민주노조를 세우고 지금까지 지켜오는 과정에서 회사가 얼마나 거짓말을 해왔는지 많은 노조간부들이 치를 떨며 얘기한다.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은 “이번까지 포함하면 회사는 네 번째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방 지회장의 말에 따르면 88년에는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 문닫을 수 밖에 없다고 해서 당시 50세 이상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회사에서 나갔는데 알고보니 19억8천2백만원으로 창사이래 최고의 흑자를 냈다. 두 번째는 88년 민주노조가 세워지자 죽어도 노조인정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1년치 평균임금 주겠다며 조합원들을 탈퇴하게 해놓고도 부당노동행위로 판결나서 노조를 깰 수 없게 되자 오리발을 내밀었다. 세 번째는 2002년 1월에 8억9천만원이 당기순이익났다고 브리핑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당기순이익이 29억에 배당금을 26억 챙겼다. 회사는 12월에 갑자기 돈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게 됐다며 실수라고 했다. 이에 지회는 2개월 파업으로 회사에게 사과까지 받아냈다.


콜트악기에는 20년이상 일한 노동자들이 많다. 평균연령이 45세 정도다. 그러나 근속이 길기 때문에 임금이 높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할 뿐이다. 잔업이 없기 때문에 월급으로 받아가는 돈은 겨우 100만원 내외라고 한다. 형편없는 월급에 열악하기 짝이 없는 작업환경, 그러나 이들은 인노협에서 금속노조까지 파란만장한 내부 역사는 있었지만 꿋꿋히 민주노조를 사수해왔다.

이들은 같은 계열사인 콜텍에 민주노조를 세우는 데 형님처럼 큰 도움을 줬다. 회사가 이것 저것 다 떼먹으면서 쥐꼬리 만한 임금을 주며 노동자를 착취해왔다. 콜트악기 사장은 이를  ‘꿈의 공장’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노조 없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있는 공 없는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그런 꿈의 공장에도 민주노조의 깃발은 올랐다. 따라서 콜트악기의 정리해고 분쇄투쟁은 민주노조사수 투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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