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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03
    4월 30일 부산 - 김진숙지도위원 연설
    파란 하늘
  2. 2005/02/25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하늘입니다"
    파란 하늘
  3. 2005/02/20
    내게 큰 힘주는 여성노동자들
    파란 하늘
  4. 2005/02/20
    버릇 든 오타 오보(1)
    파란 하늘
  5. 2005/02/16
    어수선한 노동현장
    파란 하늘
  6. 2005/02/02
    그냥 두는 것과 막는 것(1)
    파란 하늘
  7. 2005/02/01
    내 계획에 두번째 차질
    파란 하늘
  8. 2005/01/30
    어색한 자리
    파란 하늘
  9. 2005/01/29
    유찬님의 한마디
    파란 하늘
  10. 2005/01/29
    취재 추가 정리
    파란 하늘

4월 30일 부산 - 김진숙지도위원 연설

부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밤새워 쓰는 편지도 있고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다려지는 편지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밤은 자꾸 오고 술마저 취하지 않는 밤.
새벽이 얼마나 더디 오는지 새벽을 견뎌 본 자는 압니다.

그런 밤, 신내린 무당처럼 산에 올라 부를수록 상처가 되는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언제나 늦게 오던 사랑. 다시는 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일은 얼마나 쓸쓸합니까?


내가 스물 하나 일 때 박창수도 스물 하나였고 내가 스물 셋일 때 스물
하나였던 김주익을 만났던 언제나 거기서부터 떠오르는 이 형벌같은 기억들은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참 잘 자란 용찬이가 지 에미가 가슴속에 눈물의 저수지를 파놓고 그 물 떠
먹여가며 그 물로 씻겨서 키웠을 용찬이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 한 살.
소나무처럼 푸르른던 그 때 그 애비의 나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죄스럽기만 한
우리는 준엽이 그 아이가 그 애비만한 나이가 될 때 그 때 우린 그 아이 앞에
무엇이 되어 서 있을까요?

내게 남은 시간들을 다 내주고 그들이 단 하루를 더 살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 하루동안 아이들만이라도 볼 수 있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들을 비벼보고 만져보고 빨아도 보고 부서지도록
안아도 보고 그랬어야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그 말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감빵안에서 징벌방에서 그리고 대공분실에서 혼자 당하는 일의 처절함, 혼자
견뎌내야 하는 그 참혹함을 알면서도 하나는 감방 안에서 하나는 크레인
위에서 하나는 도크바닥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박위원장이 주익씨를 만나지 않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저승에도
북극이란게 있고 남극이란 것도 있어서 그들의 거리는 천리나 만리나 되게
멀어서 그들이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예수님께 빌고 부처님께도
빌었습니다.

박위원장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보냈냐고 주익이를
어떻게 이렇게 보냈냐고 얼마나 원망을 하겠습니까? 그 착해빠진 사람이
혼자서 목에 밧줄을 걸 때까지 니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했던 거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산 자는 누구나 죄인이었던 그 날 이후. 우리는 각자의 양심에 검은 리본을
달았었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이란 것도 했습니다. 129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매달아 죽은 시신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을까? 함께 하지 못했던 자책감에
몸부림을 했었고 우리 모두의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속죄한 재규형 때문에 한
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나 복수를 다짐했었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맹세도 했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새끼들 또래의
아이들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살가죽이 불에 닿는 느낌이었고 키가 큰 사람을
보는 것 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했었습니다.

연대해야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 수 천번도 더 외쳤고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깨달은 노동자는 하나란 사실을 다시는 잊지 말자 했습니다. 우리 그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 그 때 다들 그러지 않았습니까? 부산 노동자도
그랬고 울산 노동자도 그랬고 여성노동자도 그랬고 남성 노동자도 그랬고 늙은
노동자도 그랬고 젊은 노동자도 그랬습니다. 정규직도 그랬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그랬고 금속노동자도 그랬고 병원노동자도 그랬고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그랬고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그랬습니까


그 일로부터 2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그토록 철폐를 외쳤던
신자유주의는 우리들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먹고 살기 위해 잔업철야를 해야하고 정규직은 짤리기 전에 한
대가리라도 더 하려고 잔업특근에 목숨을 겁니다. 연대투쟁 열심히 하는
집행부는 재선에 실패하고 임금 많이 올리고 성과급 많이 따내는 집행부는
인정받습니다.

성과급 받아서 차 바꾸고 그 차 값 할부금 때문에 잔업을 또 하고 뼈골 빠지게
잔업한 돈 모아서 큰 집으로 이사했으니 융자 갚고 관리비 감당하려면 특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큰 아이 학원비는 점점 늘어나는데 작은 아이마저
학원을 시작해야 하고 그렇게 키운 새끼들을 죄다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각자 알아서 알맞은 방법으로 자살하고 정규직은 과로사와 산재로
죽습니다.

열 사람 하던 일을 다섯 사람이 해도 충분하다는 걸 우린 점점 늘어나는
과로사와 근골격계를 감수하면서 입증해줬고 그렇게 우리는 저들의 구조조정을
합리화 시켜줬습니다. 결국 다섯 사람이 하던 일을 세사람이 해도 된다는 또
다른 구조조정의 무덤을 우린 우리 손으로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이제 자본가들은 더 이상 그들의 손으로 덫을 놓지 않습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덫을 만들고 그 덫에 걸릴 순서를 알아서 정하고 1번 비정규직, 2번 여자, 3번
늙은이 순으로 차례대로 그 덫에 밀어넣습니다.

공장 한쪽에서 비정규직은 투쟁하고 그 코앞에서 정규직들이 탁구를 치고
족구를 하는 것도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정규직을 넘어선 공장에서 노조간부들이 사무실에 앉아
각자 등돌리고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도 이제 자연스런 일상이 돼버렸고 에어컨
빵빵한 노조 사무실 소파에서 노조간부들이 연예인 X파일을 논할 때 엉덩이
붙이고 앉을데라곤 화장실 바닥 밖에 없는 청소용역 아지매들에겐 회사의
냉대보다는 노조의 무관심이 더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이은주의 자살에 대한 관심만큼 이용석의 죽음에 우리들이 관심을 쏟았더라면
박일수는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도 저는 합니다. 최희섭이나
박주영에 대한 관심의 반만이라도 우리가 과거사법, 사립학교법에 대해서
가진다면 자식을 먼저 보낸 늙은 부모님들이, 줄줄이 돌아가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전교조 동지들이 그들끼리만 거리를 헤매는 수치스런
일만큼은 막아낼 수 있다고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농민들이 제 손으로 키운 과일을 불태우며 울면서 싸우는데 수입과일을 사먹는
노동자가 어찌 세상의 주인일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쏟은 오물을 청소용역
아지매를 전화로 불러 치우게 하는 노조간부가 누구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규정이라는 이유로 역 구내에서 노점상 할머니와 노숙자를 눈물 한 방울도
없이 쫓아내는 노조간부가 집회에 나와서 외치는 평등과 해방은 얼만큼이나
진실입니까?

배차 시간 때문이란걸 알지만 장애인이 온 힘을 다해 손을 드는데 그냥
지나치는 버스 노동자가 자신들이 투쟁할 때 누구에게 당당히 연대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율스님의 그 일관된 진정성이 김주익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그
생각을 왜 우리는 안합니까?

이주노동자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칠건 빨리빨리와 씨발놈이 아니라 연대와
인간의 가치입니다.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 되는데 10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무궁화와 고속철이 아니라 같은 열차의 앞칸과 뒷칸일 뿐입니다.
1호차부터 10호차까지 비정규직을 인질로 태우고 지옥으로 돌진하는 이 죽음의
고속철을 11호차부터는 정규직이 실려있고 자유석엔 우리 아이들이 실려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에서 혼자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다 죽지 않으려면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게 콩 한쪽뿐이라 하더라도 그걸 나눌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연대입니다. 대우자동차 창원 공장처럼 부산은행처럼 정규직이 나서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일부터 합시다. 비정규직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다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합니다.

스물 한 살 용접공 제게 그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아침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매일 그런 아침을 맞을 비정규직들에 실업자들에게 우리가
희망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14년째 되풀이하는 다짐이지만 내년에 좀더 달라져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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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은 비정규직의 하늘입니다"

"누가 비정규직입니까?" 어떤 이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은 처음부터 업체로 들어 왔으니 "차별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얘기다. 허나 본질을 놓치고 하는 소리. 정규직으로 들어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란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어쩌면 그들의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정규직, 내 안의 차별이 아닐까?   .

 

그래서일까? 현대차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1백여 명을 계약해지하고, 노조위원장을 백주 대낮에 납치 구타한 뒤 경찰에 넘기는 등 천인공로 한 짓을 서슴지 않는데, 분위기가 냉랭하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알몸까지 드러내며 수치심보다 무서운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지만 아직까지 정규직 노조의 연대는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해 현대자동차가 2조원 순이익을 냈다. 정규직 노조는 성과급을 따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진 않았다. "우린 어떻게 되냐"며... 되레 회사가 떠드는 논리에 갇혀 있으니...이를 뚫을 수 있는 노조 간부들, 활동가들의 앞선 고민과 투쟁이 절실하다.

 

친구나 가족처럼 다가가기

 

"20년 전 통근버스를 타면 자리는 젊디젊은 관리들 차지였다. 이들에게 받았던 설움과 모멸감을 지금 비정규직이 우리에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말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다. 1998년 정리해고법과 파견법을 막아내지 못했다. 열심히 투쟁했지만 죽기로 싸워내지 못했다. 혹시 제아무리 법이 바꿔도 단체협약이 있기에 끄덕 없으리라 여기지 않았을까. 그 결과 840만 비정규직 시대,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일터가 됐고, 노조의 조직력도 바닥을 긁고 있다. 

"형으로서 그런 사정을 모른 것도 부끄럽지만 지금 현재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심정, 정말 죽고 싶다" 정규직형이 노조게시판에 올린 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인 동생이 일요일도 없이 뼈 빠지게 일하는 데 고작 한 달 1백 여 만원 받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고민을 하는 글이다. 진실로 가슴 아파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마음이 아닐까. 같은 노동자를 향해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비정규직들을 친구나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 자본의 속성이 경쟁과 분열이라면, 노동은 일할 때처럼 단결과 화합 아닐까.

 

올해 뭔가를 저지르자

 

우선 일상의 차별을 없애자. 말은 않지만, 비정규직들은 임금, 노동조건, 산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수두룩한 차별, 하나 씩 줄여가자. 그러자면 임단협 요구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내걸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둘째, 정규직으로 닫혀 있는 규약을 여는 것이다. 같은 현장에서 늘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소속에 상관없이 모두 조합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지난 해 대의원대회에서 규약개정하기로 결의했고, 금속노조는 올해 지회 규약을 바꿔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부터 조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셋째, 비정규직도 노동3권을 갖게 하자. 정규직 노조의 '든든한 연대'가 눈에 띈다. 현대차노조 전주지부 얘기다. 1년을 하청노동자 조직화에 힘썼다. 비정규직 주체를 꾸려 모임을 만들다. 드디어 23일 지회를 결성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가입대상의 2/3가 가입했다. 이들은 결성식이 끝난 뒤 평소보다 두시간이나 늦었는데 '대기'한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 할 수 있었다. 정규직이 어떻게 하냐에 달렸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이 밖에 불법파견 투쟁, 신규채용 100% 정규직화 등 노조의 현실과 자본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분석해서 비정규직 비율을 줄여나가자.

 

어느 비정규직이 꼭 하고 싶어했던 말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말하듯 오늘 날 비정규직은 '죽기보다 싫은 하류인생'이다. 그러나 이들은 20년 전 지금 정규직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지난 1월, 어느 수련회장에서 하청노동자가 따뜻한 연대를 당부하며 한 얘기가 가슴을 쳤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하늘입니다" 정규직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비정규직을 살게 하고, 차가운 냉대가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고 평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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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를 겨우 마쳤다. 마감을 이틀이나 넘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3일이다.

그동안 고민을 많이 하게 했다.

조선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 지 몰랐고,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이 어떠한지.... 무슨 얘길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읽고 여운이 남는 글이 될까.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내내 내가 비정규직에 대한 뭘하는 가 아는 게 실상은 다 판에 박힌 것 같은 사건과 사실 말고 그들의 삶과 고민을 하나 하나 함께 느끼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한참 멀리서 기사를 써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주변에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데  평소 대화를 못하고 그냥 살았다. 쓰고 싶었던 생활글을 포기하고 해설기사처럼 쓴 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고민 가까이 서려하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나를 반성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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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큰 힘주는 여성노동자들

10년 전 동지들이 모였다. 인천에서 제일 큰 옷공장 미싱사들이. 백아무개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만들자고 꿈만 가졌던 사람들. 쪽수도 능력도 못되어 노동자들에게 '작은 파문'만 던지고 해고되거나 정리했던 언니, 동생들. 살다보니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산 10년지기가 됐다. 언니는 낭군 하늘나라 보내고 애비 쏙 빼닮은 딸내미와 함께 살고 있다. 조건부 기초수급자다. 미싱탈때 얻은 직업병으로 허리가 망가진 채 가진 재산 하나 없어 다행히 정부의 큰 혜택(?)을 받는다. 자활센타에서 일한다. 그런데 정부는 12개월 중 1월 한달은 고 퇴직금 안줄려고 놀린다. 굶던지 어쩌던지 알게 뭐냐식이다. 2월부터 다시 가보니 인원은 팍 줄이고, 6명 가지고 월100만원 수익 내겠다고 난리란다. 언니는 발목부터 약10센티가량이 너무 아프다고 호소한다. 동생 하나는 몇 년만에 인천에 와서 사는 얘길 하고 갔다. 자기 주장 분명하고 마음이 아주 착한 동생이다. 결혼하고 애둘 낳고 보수적이고 제멋대로였던 남편을 180도 바꿔냈다고 한다. 그 몇년전보다 예뻐지고 살이 붙은 이유였다. 빚이 8천만원. 시댁에 보태고 남편 차 때문에 생긴 거란다. 그 때문에 일을 나갔고, 지금 너무나 힘든 일을 해서 근력이 세졌다나. 키고 작고 제 몸무게보다 많은 50Kg짜릴 나르고, 도배, 미장, 물품운반 등 그냥 막노동꾼과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내색 일절 않고 자다가 끙끙앓고 하니 그런 모습을 보며 남편이 차츰 변했다고. 뼈마디 마디 성한 데 없지만, 집에 돌아오면 애들 보랴 집안 치우랴 그렇게 산다고. 그래도 밝았다. 다른 동생하나는 공부방 선생님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방송통신학교로 10년 공부하고 있다. 올해 여름에 학사모를 쓴다. 싹싹하니 곰살 맞은 예쁜이다. 그런 예쁜이가 민주노동당 활동하느라 생활비 한푼 못 가져다주는 남편땜에 속을 끓인다. 바가지 안긁는 편이다. 나처럼 관심을 끊고, 공부방에서 버는 몇십만원으로 2005년을 사는 알뜰 주부다. 20대 젊은 노동자들이 30-40대 중년 노동자로 바뀐 모습들. 그러나 여전히 착하고 순진하다. 가진 것 없는 고통, 어려움, 꿋꿋이 이겨내며 산다. 나를 가슴까지 노동자로 만들어 줬던 나의 동지들...그들이 오늘 나를 살게 한다. 조만 간 얼마 전 두 동생들, 멀리 마산 사는 언니까지 1박2일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들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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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든 오타 오보

으악! 또 오타다. 이번에는 제법 큰 오보를 냈으니, 이를 어쩐담. 나도 참 이상타. 보고 또 보고 확인해야 하는 데 그런 마음을 어디에 잃어버렸나보다. 꼭 다 만든 뒤 인쇄해 나온 걸 보고 이것 저것 오타를 찾는다. 큰일이다. 뒷 북치면 이렇게 후회도 한번이 아니라 수차례 계속돼 이젠 버릇이 들렸나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심해졌다. 한 기사에서 날짜와 인원을 무려 세곳에서 틀린 것은 글쓰기 기본이 안된 것이다. 왜 이럴까. 넉 나간 듯 맥이 탁 풀려 있는 지금 나의 상태를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달 동안 겪은 여러 사건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두차례 연맹의 대대, 기아차사태, 민주노총 임대...그리고 현장. 중앙엔 판단력잃고 권력을 추구하는 꾼들이 늘어가고, 현장엔 노조운동의 기본을 상실한 간부들이 자리를 차지해 나간다. 왜 내눈에 보이는 것들이 암울하기만 할까. 밖에서 나로 돌아오면, 스스로 상실감이 커져 간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어찌어찌 20여년 운동인생. 사회 변혁을 위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바지하고자 했던 마음을 이젠 접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텐가. 쉬면서 내머릿속과 마음에 가득찼던 생각이었는데 그걸 털지 못한 채 일머리를 잡으려니, 글이 안써졌다. 그랬다. 나는 전문적인 신문쟁이가 아니다. 2000년 7월부터 지금까지 신문을 놓지 않고 만들수 있었던 것은, 내 의지력이었다. 그 의지력은 조직에 대한 신뢰였고, 상급단체가 노조운동에서 당연히 해야할 역할 있었다. 어느 한 순간도 먹고 살기 위해 여기 붙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최근 몇년간 나를 갈등케 했다. 조직의 상태가. 예전에 단체 활동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노동운동에서 상급단체의 역할이 참 크다는 거였다. 아무리 단위사업장에 허벌나게 방문을 해도 형식적인 관계이상을 맺기 어려웠다. 그런 관계를 뛰어 넘자면 꼬셔야 했다. 또 그런 재주는 젬병이어서 잘못했다. 그냥 성실하게 다가가고, 원칙적으로 얘기하고 더뎠다. 중앙조직이 만들어지면서 더 그랬다. 단체들도 중앙조직을 만들고, 회원조직으로 전환하고,...노조 활동을 도우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설 수 있게 만드는 지원단체. 설 자리가 점점 약해 졌다. 그래서 부러웠다. 일거리가 넘쳐나가는 상급단체, 노동조합. 변혁의 주역인 노동자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다시 그런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그 의지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내 희망은 꺽일 수 밖에 없다. 이 똥탕물 같은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한심타. 글재주없고, 정신이 맹해서 오보를 내놓고 세상을 탓하는 내모습이...나도 울퉁불퉁 찌그러진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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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노동현장

어제 경기지역의 한 노조 교선담당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라기 보다는 '소식지 제작과정'에 대한 교육에 가까웠다. 교육준비가 제대로 안되고 끝나서 충분히 얘기할 시간조차 없었던 걸 보니, 지역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조 사무실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노조간부들, 전과 비교해 보면 참 많이 변했다.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땜에 주눅들어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이들에게 연맹이나 민주노총은 어떻게 자리하는 걸까 궁금했다. 들이대고 묻지 못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교육을 하건 간담회를 하건 노조 돌아가는 상황이나 알고 있었어야 하는 데 지역에서 필요하다니까 그냥 간 것 뿐 준비가 없었다.

되돌아 오는 길이 더 무거웠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 준 것일까. 소식지 한 장 제대로 내는 것. 그래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노조 활동을 하는 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 노조는 선거때 이권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부패노조 척결'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불과 두달밖에 안됐는데 삐꺽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니 언론에 뜬 제2의 비리 문제를 노조가 스스로 정화 능력이 없다는 평가다. 

이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조합원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 그러나 엉뚱한 방향으로 고민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공약사항이었던 성과금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어 안절 부절하고 있다. 못따내면 조합원에게 실력없다는 소릴 들을 것이고, 따내자니 회사와 교섭에 뭔가를 내놔야 하고. 이거야 말로 '노조활동의 기본'을 잃어버린 간부들의 고민아닌가. 

노조간부가 조끼를 입고 현장에 내려가면 커피한잔은 커녕 "왜 왔냐?"는 소릴 듣고 "말로만 조합원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냉랭한 현장.

어디서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 초짜 간부들이 보기에도 무능력해 보이는 상급단체는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나도 그동안 현장을 거의 보고 않고 달려만 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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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는 것과 막는 것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파행을 겪고 인원이 모자라 사회적 교섭 안건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매우 찹찹했다. 한편으론 이수호집행부가 자초한 무리수였고 그것이 부른 '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두 마음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노총에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선 것이 증명하듯 민주노총의 대의원 절반이상의 성향이 그러할진대 이렇게 무력으로 막아선다고 해결될 것인가하는 점이다. 악에 바쳐(지도부에 대한 도전),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다수의 횡포에 소수의 무력행사.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론 안건처리를 못했으니 소수가 이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를 잃고 갈개갈개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조직의 다수가 어쩌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적고, 개악법안 통과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당히 타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만약에 그것이 통과된 다음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이 지도부에 있다. 현장의 분노와 정서에 밀려 그 때 번복하거나 사퇴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대중조직의 원리에 따라. 그러나 무력으로 부결을 외쳤던 동지들은 이런 믿음이 부족했거나 아예 없었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대변한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말하면서 폭력으로 진압해 버린 것에 대해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민주노총의 조직의 지도부들이 그러한데...어떻게 할 것인가. 노무현의 구도에 이미 말려 있는 이 상황이 바꿔지기? 좀더 길게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만약 나에게 대의원 표가 있었다면 반대를 당당히 밝혔을 것이다. 그래도 통과가 된다면 그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도록 현장을 조직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힘이 현장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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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계획에 두번째 차질

내 계획이 두 번 차질을 빚었다. 하나는 아들내미를 강화에 두고 온 것이고, 두번째는 휴가를 내고 민주노총 임시대대에는 안가고 돌아가는 상황은 인터넷으로 본다는 것이었는데...뒤늦게 3시가 훌쩍넘어 확인해 보니 생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때 부터 갈등이 생겨 머리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몸은 의연히 집에서 휴가를 즐기고...어떤가 궁금하니 이리저리 전화해대고 있다. 왜 민주노총은 가장 예민한 문제를 위원장 직권으로 대의원대회를 열어 다루면서 생중계조차 않는 걸까. 조용히 처리되기를 바래서일까. 노사정위 복귀든 새로운 노사정위든 들어가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이토록 목을 매는지 알 수 없다. 약속한거라도 있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만들 행보를 하고 있다. 비록 공약으로보면 노사정위 참여라는 걸 얘기하지 않은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합원들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앞서 나가는 것은 맞지 않다. 더구나 기아차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때 민주노총의 모습은 문제를 정면을 풀기보다는 엉뚱한 처방을 내려 명분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오늘 아주 편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모습들 안보고 '사회적 교섭'을 두고 어떤 얘기들을 하면서 서로를 설득하는가 보려고 했다. 나의 바램은 가차없이 깨지고 닫힌 민주노총 홈페이지만 야속할 따름이다. 그리고 갈등을 한다. 가 볼까? 말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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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자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도 여섯 다리를 건너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얘길 오늘 처음 들었다. 강화에 사는 사람. 예전에 운동권 물 좀 먹었다는 사람은 한다리만 통하면 "아 - 그 사람!"할 정도란다. 그 만큼 90년부터 강화에 꾸역꾸역 들어가 살고 있다. 오늘 우리 가족과 봄이네가 놀러간 집도 10년전 인천에서 함께 일했던 지인의 집이다. 유찬이가 "가고파" 노랠 부를 정도로 친구랑, 형들이랑 자기들끼리 세계를 만들고 놀 수 있는 곳이다. 결국 유찬이는 그곳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영하 10도 남짓 바람부는 날에 배타고 석모도 갔다가 보문사를 들러 낙가산 자락으로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나왔다. 그 사이 착한(?) 경찰 만나 선착장까지 경찰차로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오늘 얘기는 안뚱의 재혼이었고, 막판에는 사귀는 사람 동네 사람 대 안뚱 친구들 가족 간의 상견례 같은 아주 불편한 자리에 앉아야 했던 일이다. 우진이 엄마와 이혼한 지 이제 삼년정도 됐나? 별로 미련이 있진 않을 텐데...왠지 우진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게 밀려 들었다. 아니 우진이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고 있을까 걱정된다. "아빠 인생은 아빠꺼니까. 이제 엄마도 다른 사람 사랑해도 되겠네?"라고 했다는 말을 건네 들으면서 우진이가 품어왔던 간절한 소망이 가차 없이 깨졌구나 하고 느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겨주는 존재인 듯 싶다. 그 불편한 자리. 맛난 음식이 있지도 않았는데 계속 전화해서 우릴 불렀던 안뚱. 내내 서서 없는 음식솜씨로 있는 거 없는 거 다 끄집어 냈던 그 사귀는 사람. 선량해 보이며 소신있어 보이는 인상때문에 한편으로 좌충우돌 안뚱에게는 다행이다 싶으면서 결국 이 우진이 엄마아빠는 이렇게 인연이 끝나는 구나 나도 일말이 그런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구나 하고 느쎴다. 우진엄마에게 뭔말을 해야 할지. 어쩌면 이미 눈치를 챘는 지도... 자신이 차 버린 인연이기 때문에 미련은 없겠지만...1%의 서운함 같은 것은 있지 않을까. 아니 겉으론 화통하게 축하해 주겠지. 안뚱의 그 사람네 집에서 본 안뚱의 말로는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고 하는 데 체면치레 하는 모습은 여전해 보였다. 내 눈에는 왜 좋게 보이지 않을까. 소라며, 카레라이스며, 많이 먹은 거 같지 않은 데 이상하게 오늘은 아직껏 소화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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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님의 한마디

* 이 글은 줌마님의 [왜 이글을 썼냐하면] 에 관련된 글입니다.

김치 빨간 마스크 골룸 식인종 5백원짜리 오공본드 놈은 누구게? 정답은 악당드라이스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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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추가 정리

* 이 글은 줌마님의 [광주에 가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손태용 광주지부 대의원 만남>
조합원 분위기는 언제가는 정리해야 할 문제였으나 이것으로 파생되는 노조죽이기에 우려를 한다. 회사가 현장 통제를 구체적으로 들어오지 않겠냐는 우려와 함께. 언론에서 무얼 떠드는 지 관심이 많다. 마구잡이로 현장이야기를 쓰다보니 매우 곤혹스럽고 특히 동아일보 내용보고 황당했다.
어제 지부장이 구속되는 걸 보니 매우 씁쓸했다.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나
전에 직업훈련제 있을 때 보편적으로 취업이 가능했다. 현대가 들어온 이후 인사권과 경영권에 매우 집착했다. 분위가 어땠냐면, 교섭에 나올 때도 사장은 양복을 입고, 그 밑에 있는 이사급은 작업복을 입고 나왔다. 새벽시장이란 게 있다. 관리자들은 6시 출근해서 회의하고, 청소하고 이를 버티지 못하면 낙마하는 거다. 인사고과제 등 점수를 매긴다. 그러니 자연 작업통제가 심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가 산재환자에게 하는 걸 보면 얼마나 빡빡한 지 알 수 있다.

회사 실무자들도 자기업무외에는 일절 손대지 않으려고 한다.
인력관리부에서 인사팀과 노사협력팀을 구분해서 두고 인원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렸다.
부서 단위는 "지원과장" 손에서 부서 대의원들을 관리한다. 매사안 사안 사석에서 회사의 방침을 설득한다. 이들은 매일같이 현장마다 조합원, 대의원, 노조 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노사협력팀에 보고, 노사협력팀은 공장장, 공장장은 사장에서 보고한다. 사장은 앉아서 각 현장마다 노동자의 동향을 꿰뚫고 있다.

언론에서는 노조의 힘이 강해서 그렇다는 데 사실은 철저하게 회사에 이용당한 거다.
인사경영권이 문제이지 않냐. 그렇지만 이일로 인해 노조간부에 대한 불신은 팽배해졌다. 진상대책위를 구성하자는 제안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어용집행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된다는 걸 조합원들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지부장의 권한은 권위는 투쟁이나 운동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17대처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자기네가 깨끗하다고 그렇게 떠들더니 이렇게 됐다.
지부장도 만나보기 힘든 지부장이었다. 현대차 이용복 집행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년 여름. 입사 관련해서 장난칠 때. 상집 회의시간에 "직계를 집어넣어라"는 얘길 들었다고 한다. 결격 사유가지고 라인을 잡고, 채용되니 라인을 풀었다. 집행부는 가지고 있는 권한을 최대로 악용했다.
작업 특근해서 4∼5000원만원 받고 있는데 1천5백만원 공제된다. 아이들 두명 키우는데 일년에 천만원도 적금하기 어렵다. 그런데 억단위를 모은 것은 용서가 도저히 안된다.
비정규직 문제로 단식하고 있을 때 한번도 와보지 않았다. 서글프더라. 15대부터 시작해서 16대를 거쳐 작년 단협 특별안건으로 진행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채용비리 건이 5월부터 9월까지 딱 그 기간과 맞물려 있다.
5월∼6월 경 상집내 불만있는 사람이 현장에 퍼뜨려 이런 얘기들이 돌긴 했다.
투쟁을 하는 데 집행부는 얼굴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기아차사내하청해고장 3명 중 2명만 복직시키고 1명(고재한)은 빼고 말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추석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12월 3일 정기대의원대회 안건을  올렸다. 그랬더니 집행부에서 "의도가 뭐냐""조사해서 다 죽자는 거냐"며 난리가 났다. 이때부터 관계가 안 좋아졌다.
제가 낸 안건은 19개 중 16번째로 배정되었고, 그게 다뤄진 것은 1둴 14일 이었다. 그 기간내에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다. 12월 29일부터 1월 3일까지 위원장이 삭발까지 하면서 부적격자를 해결했다. 보통 2∼3개월 관례적으로 부적격자를 선별하면서 지연되는데... 돈 받고 1월부터 정규직화를 약속하지 않았나 예상한다. 회사도 1월 2일까지 강경하더니 노조가 "KM라인을 잡겠다"고 하니 일단 수습한 뒤에 보자며 그랬는지 회사가 합의했다.
위원장이 내려와서 투쟁했는데 광주공장장 사과 정도로 끝난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다.
회사는 그 일이 있은 뒤에 본사차원에서 인사팀장과 노협팀장 5명을 직위해제하고 본사인력으로 대기발령을 냈다. 사장도 경질 됐다.

노조는 내가 낸 안건으로 나를 회사의 사주를 받은 사람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14일밤부터 시작해 18일까지 다뤄서 표결을 거쳐 210 대 100으로 대책위를 구성키로 했다.
그 과정에서 대다수 침묵했다.  집행부는 자기네들도 내사를 했는데 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도 안되어 입사비리 사례를 들었다. 배경과 환경을 이용한 입사비리(정지부장 처남)사례를 들었더니 이게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영향을 발휘했다.
심지어 노조의 천적은 대의원이고, 조합원의 천적은 000다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내 목이 칼이 들어오더라도 끝까지 가자고 생각했었다. 결과에 따라 대책위를 구성키로 하고 발의자인 내가 팀장이 되고, 각 지부 임대서 뽑아 공장별로 1명씩 내기로 하고, 2월 1일부터 활동키로 했는데 이 문제가 터졌다.

-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면돌파해야 한다.
이번이거나 전에 비리문제로 연류된 사람들 지금 잠을 못자고 있을 거다. 조합원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역대의 모든 비리를 털어놓고, 다시는 운동하는 이들이 부정에 연류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것을 만들어야한다. 집행부는 강력해야 한다. 노무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의원이 권력이 되고 있다. 장갑을 끼지 않는 대의원이 대다수이고, 100명 중 40명 정도는 참석도 않고 있다. 대의원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해야 한다. 대의원부터 현장 지원과장과 개인적 유착관계를 맺고 하는 데 대의원 선출하는 조합원들의 판단도 달라져야 한다.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잘해준다고 표를 던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 지 알아야 한다.
회사가 항상 탄압을 해왔다. 너희조직 깔아 뭉기겠다는 식으로 현재 구조에서는 현장의 표를 회사 쪽에서 약 30%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진짜 열심히 뛰는 사람이 대의원으로 일할 수 없는 구조다. (대의원은 40명당 1명꼴이다)

현 집행부에서 회사에게 시간할애 받고 비정규직 전체를 모아놓고 수련회를 두 차례 했다. 그러면서 준비했던 게 18대 선거였다. 중앙으로는 중앙파와 손을 잡고 현장에는 평등연대라는 이름으로 계파를 확장하려고 준비중이었다.

활동하려는 사람들은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개념없이 운동을 시작하다보니 구렁텅이에 빠지는 게 아니냐. 술자리, 가까운 지인 등이 "다 하는 데 너도 해봐라"는 식으로 노조간부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그러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폄하를 한다. 현장 의견그룹에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회의체계나 내용 없이 상조회 수준의 조직으로 운영해서야 되나. 상급단체를 이를 철두철미하게 교육해야 한다.

부적격자만 조사해도 자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제조직들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돈 받은 사람은 돈 돌려주고, 부적격자는 스스로 알아서 퇴사해야 한다"

<조합원들-자판기앞에서>

조합원들은 언론에서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우리 노동자들을 도매급으로 넘기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야간일 해봐라. 마흔이 넘으니 새벽 3시만 되면 사람이 둘로 보인다. 이렇게 남들 쉴 때 일하는데 봉급을 6천만원이라고 떠들고 있다. 기아 이미지 훼손되고, 언론에서 너무 죽이기 하는 게 아니냐며 강력히 성토했다.
이런 일로 선량한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속상하다. 기분이 무척나쁘다.
전에는 선별채용을 했는데 노조가 때려 막은 것에 대해 보복하는 것 같다.
장난이 아니다. 서로 말도 안한다. 얘들은 얘들대로 불안하고.
언론이 문제다. 중앙방송에서 특종잡겠다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 죽이기 하고 있다. 매일같이 사진찍고 해쌌는데 정말 기분나쁘다. 내 오늘은 페인트를 가지고 와서 카메라에 퍼부으려고 했었다.
도매급으로 넘어간 분위기가 화나게 만든다.
너무 없이 살다보니 유혹에 빠진 거 아닌가. 지혜롭지 못하게.
그놈이 그놈이다.
재발방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직업훈련원 누가 봐도 투명하게 해야 한다.

 

<사무국장>
너무 몰리다 보니 말리는 것 같다. 기아노조 운동사를 기업이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LG정유의 경우는 기업 쪽에서 잘했다고 하니, 기아는 현대중공업노조를 모델로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정적일 때 노조 성과물은 어디로 다 날라가고 도덕적으로 몰려서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다. 연말 연시 투쟁은 회사가 노사 합의를 불이행해서 발생한 일 아닌가.

 

<황용운 부지부장>
우리 노조가 무너진 게 아니냐 싶다.
간부들 다 연루되고 하니 현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대기 상태다.
정계고, 뭐고 연루된 데는 다 터졌으면 좋겠다. 싹 털어 버렸으면 좋겠다.
언론이 ...

도급 일부가 있다. 연수생이 약 68명 정도 있음
이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할 것 인가도 앞으로 문제가 될 지점이다.
기아차노조 광주지부에서는 3년간 1709명을 정규직화했다.

 

<회계감사>
조합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 침묵으로 일관한다. 처음엔 조합간부들이 비판의 대상이더니 지금은 언론과 검찰이 길게 가니까 "너무 한 거 아니냐"며 분노하고 있다.
승합 조립라인은 3명 이상 모이질 않는다.

처음에는 노조활동가들의 문제에서 공장 노동자 문제로 확산되어 기아차 작업복 입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낯뜨겁다고 말한다.

 

<전 본조 사무국장>
"지금은 두둘겨 맞아야 할 시기다" 비리수사 추이를 보면서 패면 패는 대로 맞아야 한다. 16대도 이번에도 이런 문제가 되풀이 되니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엔진공장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만남>
비리는 확실히 밝혀야 한다.
오늘 언론에서 노조 지부장이 회사 대표와 대등하게 앉았다는 거 가지고 난리를 치는 걸 보고 놀랬다. 우리 뽑은 대표가 대등하게 교섭하는 게 뭐가 문제냔 말이다. 노동자를 어떻게 보는지...가장 분노했다.

노동운동하는 사람이 가장 선명해야 하는데 노조에서 밝은 세상 만들자고 해놓고 뒤에서 챙기니 분노를 느낀다. 국민들에게 나설 면목이 없어 이번에는 2월 파업에서 좀 빼줬으면 싶어. 낯짝이 있어야 사회 문제를 말하지.

조합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소위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위에 군림하고 있다 조합간부 눈치 보면서 일한다.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하면 되냐- 과거 대의원

이번에 다시 선거를 한다고 하는데.
다 똑같이 보이는 데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 거냐

정치판처럼 되어버렸다.

기득권을 놓칠 않는다. 조합비?
조합비 인하하고, 러닝메이트 없앴으면 한다. 여건이 다른 데 한곳에서 잘못하면 다 사퇴하고 이러지 말고 각 지부별로 다른 계파가 잡으면 더 경쟁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내부에서 정화할 수 있고)
억지로 줄을 세워 아는 사람 러닝메이트를 만들고. 내가 하고 싶어도 못 나서게 하는 구조다. 그러니 3∼4개 조직이 다 해처먹는 거 아니냐. 현대차노조처럼 그렇게 하자. 이번에도 기득권 세력이 잡고 있어서 1.2% 조합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사회개혁을 민주노총에 요구한다.
국민건강 보험료, 국민연금 자꾸 높아만 가는 데 타격을 가했으면 좋겠다. 돈 많은 놈들은 다 빠져나가고 있지 않는가.

연맹의 선거 간선제도 문제가 많다. 단위 사업장에서 나온 사람들은 단위 사업장에서 간부하던 사람들이 또 나온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단사 집행부가 다른 파가 되면 상급단체로 나간다.
단위노조 대의원은 조합원이 직접 뽑듯이 단위 사업장 기득권 버리고 규약을 다시 만들고 그래야 구조조적인 비리가 나올 수 없다.
단위 사업장의 규약부터 신선한 사람들이 나와서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되어야 한다. 정치권하고 똑같다. 고인 물이 썩는다고 그래서 썩은 거다.
현장 제조직으로 있으면서 모 이사 돈받아서 쓰고 그런거 현장에서 다 안다. (17년차 김명수 조합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참말로. 없는 사람은 전문자격을 따서 간신히 들어오는데 빽있는 놈은 쉽게 들어오니 늦었지만 잘 터졌어. 인사비리는 없어야 한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정치적으로 이것이 놀아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늙은 노동자)

실질적으로 국회의원부터 인사비리가 뻗어왔다는 게 잘못됐다. 이번 기회에 노조를 소멸시키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나.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과 기아차 노조 전체를 짓무른다는 것은 문제다. 이보다 더 큰일도 쉿쉬하면서 넘어가더니만...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노조는 있어야 한다. 노예처럼 살았던 80년대 투쟁해서 만들어낸 건데..지금은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도 오르지만, 연봉이 얼마니 하지만 실업자문제가 큰데 일하고 있으니 함부로 말을 못하겠더라고. 노조 없을 때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못받았지. 
광주 토박이들이 많아서 뭉치면 다른 곳과 달라. 회사 발전에도 더 힘을 쓸 수 있다.
(김형면 조합원 22년차)

상시적인 감시기구가 필요하다.
선거때 돈 안드는 선거를 제도화해야 한다. 감싸고자 덮어둘게 아니다.

기아차 부도났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이 사태도 마찮가지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선전물들 내고 있지만 우릴 보고 뭘 믿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자기 양심고백이 필요하다. 아무 것도 없는 데 진심을 어떻게 믿겠는가.
(윤정수 조합원)

이제 이런 일은 배우면 안된다. 더 좋아지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난 거 아니냐.

회사가 선거자금 뒷돈 된다는 거 다 헛소리다.
 
밖에서 작업복 못입고 다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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