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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종려 주일
예수! 우리의 왕이여! (누가 복음 19: 28-44)

본문 분해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28-29 예루살렘 도착
29-34 제자들의 파송, 나귀의 쓰임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35-38 예수님의 행차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9- 바리새인들의 항변
40- 예수님의 답변
41-44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예언

본문 이해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의 목적은 메시아로서 자신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두 가지 부분에서 사역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메시아로 드러내시며(19: 28-44), 또 하나는 그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기서 몇 일간을 가르치셨다 19: 45-21:38).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세상에 가져오신 메시아로 알리셨다. 이제까지 주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는 이스라엘 사회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알리시며, 자신의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28-34 예루살렘 입성의 준비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때를 알린다. 그는 여리고로부터 올라오셔서 (18: 35-19:10), 예루살렘에서 짧은 거리인 베밧게과 베다니에 계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신다.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나귀를 발견하면 이리로 끌고 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스가랴 9:9-10의 메시아가 나귀를 타리라는 예언을 이루셨다 (마태21: 2에서 나귀와 나귀 새끼로 언급하고 있다). 군중들은 상징 뒤에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 나귀 새끼의 주인들은 그 두 제자들에게 그들이 요구 한대로 허락한다. 주님에게 그것이 필요한 대로.

35-40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시로 나가시기 위해 감람산의 서쪽으로 나가셨다. 군중들에 의해 그들의 메시아로 높임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앞에 놓인 길 위에 그들의 옷을 펴는 행위는 존경의 표시였다.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들은 그들이 보아왔던 기적을 행하신 그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이 신자들은 시편 118:26에 인용되어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을 꾸짖을 것을 언급하였다. 즉 그들은 그가 메시아나 왕으로 불리움을 받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돌들이 그를 위해 증거하기 위해 부르짖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모든 역사는 그 메시아가 공식적으로 그 자신을 그 나라에 드러나게 위해 있어왔다.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그 선포가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41-44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열정을 보여주셨다. 그는 장차 그 도시가 파멸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한 예루살렘을 거부하셨다. 그는 그 도시를 향해 우셨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가 가져오신 평화를 가져오신 그 날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때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도시가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주후 70년경에 그 일을 이루었다.

28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20마일 가량 동안에 약 4000피트를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다. 이것은 9:5에서 시작한 여행의 긴 여정이었음을 알려준다.

29 벳바게와 베다니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에 자주 그곳에 머무셨다. 감람이라 불리는 산/성전에 인접해있는 기드론 계곡의 동쪽에 위치해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지구의 주요 봉우리이다. 올리브 분지는 그곳을 많은 올리브 나무로 덮고 있는 지역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

30 나귀 새끼
다른 복음서에서는 당나귀의 새끼로 알려졌다 (스가랴 9:9). 마태에서는 엄마 당나귀도 같이 오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 새끼 나귀는 한번도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나귀였다.
36 그들의 옷을 펴고
누가는 마태와 마가에서 언급한 종려나무 가지를 자르는 내용을 생략하고 있다.
37 제자들의 큰 무리가
이 많은 무리가 진정한 제자들은 아닐 것이다.
큰 기적을 행하심
요한 12:17,18 그 나사렛 사람 에 대한 뉴스는 그 소문을 듣고 싶어 하는 군중들 사이에 전해졌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큰 기적의 사역을 요한 12:17,18에서 언급하고 있다.
38 그 왕을 축복하신다.
시편118: 26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외친다.
하늘에 평화가
단지 누가만이 이 구절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천사의 메시지인 2: 14의 내용과 비슷하다.

39 제자들을 꾸짖기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그런 예배적인 찬양으로 돌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그런 행위들을 멈추기를 원했다.

40 돌들이 즉시 소리지르리라
성경은 자연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자주 언급한다(시편 96:11; 98: 7-9; 114:7; 이사야 55:12. 세례 요한의 언급 마태3: 9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에서 마태27: 51.

41, 42
여기서 누가만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를 위해 우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적어도 다른 때에 두 번 정도 예루살렘을 슬퍼하셨다 (13:34, 마태23: 37). 이 탄식하심은 승리의 입성하시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예수님은 백성들의 마음의 진정한 면을 알고 계심을 보여준다. 같은 군중들이 곧 얼마 있지 않아 주님의 죽으심을 향해 슬퍼한다 (누가 23:21).

43 너를 에워싸고 너를 가두리라
21:20, 이것은 주후 70년경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는 그 도시를 4월 9일에 포위하고, 그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공급원을 차단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내려는 그 성안의 수만의 사람들을 가두는 함정에 걸리게 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조직적으로 그 성을 포위하는 방둑을 건설하여 그 도시의 주민들을 점차로 굶주리게 하였다. 그리고 여름에 하나씩 하나씩 그 도시의 여러 곳을 패배시겼다. 그리고 9월 초순에 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44 너가 다 평지가 되리라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 졌다. 로마 군인들은 그 도시의 성전, 거주지들, 사람들을 다 깔아 뭉게 버렸다. 수만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겨우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로마의 경기장의 놀이개로, 혹은 검투사로 사용되었다.

너가 너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은 메시아가 그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종려 주일(Palm Sunday)
종려주일은 크리스천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리스도가 승리하심과 그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요한도 계시록에서 마지막 승리의 의미를 부여할 시에 종려를 흔든다고 언급한다(계시록 7:9),

호산나
도와주세요,구원해주세요 의 외침의 표현이다. 그냥 혼자 쓰이기도 하고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에 붙여 쓰이기도 한다.
구약의 시편에서 할렐 시편에서 쓰이기도 한다(시113-118). 그리고 장막절에 종교 의식적으로 암송되어진다 (시118:25). 그것은 유월절이나 오순절에도 그리고 봉헌시에도 불리어진다. 할렐이나 송축할 때에, 국민적인 축제에 참석한 왕들이나 승리자들에게 인사하는데 불리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승리의 입성시에 예수님은 약속된 그리고 기대한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영광송으로 불리어 지게 된 것이다.

종려나무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아름다운 데이트 종려로 나와있다. 코코넛 종려나무는 중동에서 자라지 않는다. 긴 가느다란 줄기는 높이가 80에서 100피트가 된다. 그 나무는 100년에서 150년을 산다. 굵고 긴 뿌리는 그 나무를 사막에서도 잘자라게 한다. 그 나무는 모든 부분을 유용하게 쓰인다. 종려나무는 구약에서 종교적인 행사에 쓰인다. 장막절에 무화과 잎을 사용한다(레23: 40, 느8:15). 솔로몬 성전(왕상6: 29)이나 에스겔의 승리의 성전(겔 40: 16)에 문이나 벽에 장식으로 무늬로 새겨졌다.

성경 공부안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1. 자신의 생애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심을 어떻게 경험하였습니까? 즉 주님은 나의 주인으로 혹은 나의 주님으로 통치하시기를 원하신다. 나의 삶의 모든 분야에 그분은 어떤 분으로 계시는가? 손님, 불청객, 주인, 주님, 아니면 방관자로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주님 앞에 쓰임 받은 나귀처럼 순전하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데, 자신을 그분을 높이는 믿음의 자세는?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 주 예수님은 우리의 생애에 왕으로 임하신다.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을 높이는 길은?
그를 왕으로 모시는 것과 그를 거부하는 것의 차이는? 기쁨과 고통, 천국과 지옥, 승리와 패배, 용기와 낙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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