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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5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성도
    목동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성도

(에베소서 5:15- 6:9)

어둠과 빛으로 비교되었던 크리스천의 삶은 이제는 지혜와 어리석음으로 비교합니다.
어리석음을 따라 사는 자는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거슬립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기에 자신의 근본에 대한 것이나
현재를 사는 의미를 모르며 더욱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모르고 삽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받지도 못하며 깨닫지도 못합니다.
고로 그가 선택하신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를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지혜를 따라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살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주장대로 삽니다.
세상인들은 자기가 자기에 대해 우상이며 자기중심적이어서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 세상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무엇인가에 빠지지 않으면 살수 없습니다.
술독에 빠진 사람들, 마약이나 도박, 게임등 그리고 성적인 탐닉하는 행위등,
사람들을 쓸모없게 하는 일등에 마음을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혜자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분을 모시고 사는 인생은 내가 어디서부터 왔으며, 지금 내가 왜 사는 지를,
그리고 내가 앞으로 갈 미래와 영원한 세상에 대한 분명한 길을 찾아 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는 어려운 인생역경에서도 웃을 수 있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유머는 그들의 고난 속에서 나온 유모어로
그들은 그것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노래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찬미하면서 고난을 맞이하셨습니다.
노래가 있는 삶은 즐거움을 주는 삶입니다.
건강하고 좋은 인생마다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어려울 때에도 슬픔의 노래가 아니라,
주어진 인생을 즐겁게 감사를 부르며 살아갈 때에 행복합니다.
늘 탄식과 불안의 체바퀴 돌 듯 절망의 늪 속에서
슬퍼하는 노래를 부르며 사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모든 인생들은 짧은 세월의 삶을 삽니다. 인생이 사는 때는 악한 때입니다.
타락한 인생은 세월이라는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세월은 화살시위를 날아가는 활시위처럼,
그리고 쉬 사라지는 바람안개처럼 곧 나의 앞에서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기에 그 시간 속에서 기회를 사고,
선한 일에 무의미하고 헛되지 않은 중요한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런 인생들인 성도들에게 바울은 지혜자가 그 시간 속에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주님의 뜻은 성도들이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여러 가지에 도취되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 성도들은 이방세계에 살면서 우상숭배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 우상숭배의 제사는 사람들을 술로 취하게 하여
사람들의 건강한 정신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술취한 인생처럼 살지 말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가져오시는 성령님을 바라보고
바로 그분으로 충만한 성령 충만한 영적인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며, 평안의 영이며, 또한 진리의 영입니다.
그가 오시면 죽은 인생들은 살아나고, 기쁨을 얻습니다.
은혜가 충만하며,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건강하게 삽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자세를 갖고 살게 합니다.
성도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이 오셔서
그들에게 주님을 알려주시고 주님의 구주이심을 믿게 인도하시며 언제나 내주하십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을 명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삶의 특성은 언제나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공중예배에서나 마음으로의 개인적인 교제 안에서
주님께 대한 감사나 감격을 늘 찬미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의 삶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모든 것을 주님의 중심으로 보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모든 일에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자신의 형편이나 처지를 감사하는 삶을 따라 삽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삶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긍정적인 인생을 삽니다.
청교도들은 미국땅에 와서 첫 번 겨울을 넘기면서, 감사절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인생긍정의 삶입니다. 하늘의 순천자는 흥합니다. 역천자는 망하는 삶입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와서 가정중심의 삶,
하나님중심의 삶, 예배중심의 삶을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넘기고 그들은 이곳에 생존하여
그 이듬해에 인디안 원주민들과 함께 한 해를 잘 보낸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 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또한 긍정적인 삶은 좋은 인간관계에서 나옵니다.
행복은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 이루며 삽니다.
여기서 바울은 근본적인 인간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부관계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축복의 기관인 가정을 이루는 관계입니다.
그 부부관계는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그것은 신비스러운 영적인 관계임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전과 하인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21절에 모든 인간관계에서 주님 안에서 서로 순종하고 살 것을 권면합니다.
그런 순종의 삶을 사는데, 먼저가정의 삶에서 부부의 생활을 먼저 생각합니다.
크리스천가정의 부부는 주님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을 합니다.
그러면 가정의 행복의 밑바탕이 됩니다.

남편과 부부와의 관계를 통해 가정의 행복을 가져옵니다.
부인은 남편을 순종하며 남편은 부인을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부부의 비밀은 몸의 하나 됨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부부의 연결을 끊어지지 않는 영속적인 관계라,
즉 나누어 질 수 없는 관계라 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가정의 행복을 유지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데는 부부의 위치와 역할이 있습니다. 남편은 부인을 사랑하고,
부인은 남편을 존중하고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로스엔젤레스의 동양선교교회에서 가진 이희돈 박사의 간증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세계무역센터의 부총재로,
2001년 에 9/11에 있었던 쌍둥이 무역회관 테러 당시에 그는 배가 아파서
그 회의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증하기를 그 부인은 언제나 자기가 하는 말이나 일에 대해
인정을 해주는 일이 너무나 고맙다는 것이며,
그것이 특히 자기가 힘들 때에, 유학와서 처음에 신발장수를 할 때에,
충분히 살 형편이 못될 때에도 그 부인은 늘 남편을 격려하였습니다.
그것이 자기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었고 자신 있게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바울은 신비의 관계라고 언급합니다.
부부관계가 한 몸인 것은 부부가 아닌 다른 이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도 신비함이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 즉 생명의 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이며, 영원의 관계이며,
지속적인 교제의 관계입니다.
성도들은 끊임없이 그분으로부터 삶의 의미와 가치와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주님은 그의 흘리신 보혈로 자신의 몸을 희생으로 교회 즉 신부를 사셨습니다.
주님의 신부인 성도들은 죄에서 구원하신 그의 백성들입니다.
주님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이며 영원한 관계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희생을 통해 드리므로 교회인
그의 신부를 정결케 하며 거룩한 몸으로 세워, 그분께서는 주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신랑이며 교회는 그의 신부입니다. 몸은 머리의 지시를 받습니다.
그분의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은 머리의 지시를 받아 생활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성도들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신부는 영원한 신랑이신 주님을 노래하며 찬송하며 삽니다.
영광된 주님을 향한 어린양의 노래는 계시록의 주제찬송입니다.

부부관계가 하나 됨의 신비한 관계라면
부모자식관계는 생명을 주고 받은 축복의 관계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시작하며 배웁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주는 삶의 모델이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인생의 형통함과 축복됨을 물려 받습니다.
가훈을 통해 유산을 통해 인생을 유익하게 하는 유동자산이든지
혹은 무형의 자산을 물려받습니다.
성경에 아내는 하나님깨로부터 오고 집과 재산은 부모로부터 받는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보다는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자식은 부모의 인정과 칭찬으로 건강한 인격의 사람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남에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잘 해냅니다.
부모의 입에서 나온 자녀들을 향한 칭찬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습니다.
자녀들은 그것을 먹고 건강하게 자랍니다.

사회는 위계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한국에는 장유유서라는 말은
젊은이가 노인들을 공경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상전을 잘 모시는 사람은 상전의 사랑을 받습니다.
인정을 받습니다. 주종의 관계를 생각합니다.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좋은 상전이 좋은 밑의 사람들을 다룹니다.
대통령이 바뀌면 그 밑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뀝니다.
임금이 잘하면 국민들이 그 지도자를 늘 노래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칭송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주종의 관계는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강압적이거나 비자율적인 관계가(고로 공산세게에서는
눈가림이나 상관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함) 아니며,
또한 자기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식의 이기적인 관계추구
(고로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인간이나 인간이 창출하는 모든 것들을
물질적인 수단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보다는
모든 관계에서 주님께 대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에 주님께 대하 듯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지혜자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항상 그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살기를 힘씁니다.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으니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고,
매사에 감사를 나타내는 삶을 영위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좋은 상태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감사와 기쁨의 노래 안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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