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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5/06
    믿음과 기도에 대한 이해
    목동
  2. 2008/10/27
    예수님안에서 우리는 하나
    목동
  3. 2008/10/27
    바울의 영적소원기도
    목동
  4. 2008/04/22
    믿음의 산 증거
    목동
  5. 2008/04/08
    성경적 믿음의 원조:아브라함
    목동
  6. 2008/03/31
    성령강림의 약속과 초대교우들의 기도
    목동
  7. 2008/03/25
    예수님의 부활과 믿음의 기초
    목동
  8. 2008/03/16
    종려주일
    목동
  9. 2008/03/09
    기도의 능력
    목동
  10. 2008/03/01
    믿음과 기도
    목동

믿음과 기도에 대한 이해

믿음과 기도에 대한 이해(약5:13-18)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주님에게 나갈때에 무엇이 필요한가?
나의 존재로 부터 나오는 행위의 결과나 혹은 자질의 유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미 자신은 주님앞에 도달할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으며,
그분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그분에게 나갈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대하는 나의 자세인데,
그 자세는 그분을 믿는 일이다.
믿음은 그분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말씀하심에 대한 내용을 신뢰하는 일이다.
천지를 지은 이가 피조물에게 요구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신뢰심이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바라는 신뢰심이다.
자녀는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으로 자녀가 취할수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분을 자녀가 갖을수 있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나오는 신뢰심이다.
이 신뢰심위에서 기도자가 그 기도를 들으시는 존재에게 나아가 구할 수 있다.
그분앞에서는 우리의 무엇이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때에 큰 것이나 우리가 생각컨대
이룰수 없는 바람이라도 그분앞에서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분앞에서는 우리의 신뢰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신뢰심만 있다면 기도자는 언제든지 무엇이나
그분에게 요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잇으리라.

믿고서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
주님에게 기도하는 일은 먼저 그분과 그분이 하신 말씀을 믿는 일이다.
믿음이 있고서야 그분앞에 나갈수 있다.
기도하고 구하는 자가 기도를 듣는 존재가 들을지
혹은 거절할지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갖지못하면 기도의 효력은 나타나지 않으리라.
고로 믿음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인 응답을 가져오는 것이다.

주님에게는 무엇이나 구하면 무엇이나 하실수 있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우리의 구함에 있어서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감히 그것을 응답하실까 하는 의구심을 갖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분이 바라보는 우리의 실제적인 문제는 무엇이나의 문제가 아니고,
동기가 바르다면 우리가 그분을 대하는 신뢰심의 문제인 것이다.

믿음은 우리가 그분을 대하는 처음의 문제이자
항상 지속되는 우리의 문제의 핵심이며, 우리의 관점을 늘 돌리게 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의 문제에서 오는 딜레마의 문제이다.
우리는 늘 원죄로 인하여 그분과의 사이가 늘 벌어지기가 쉬우며,
그분과 우리가 사이를 이간하는 악한 존재의 방해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우리에게 늘 그분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이나, 태도를 갖게 미혹을 한다.
그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하는 어둠의 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을 생각으로 차단하고,
기도로 방어하는 일은 기도자에게 늘 필요하다.
우리가 왜 그분이 하신 기록된 말씀으로(성경) 돌아가
그분이 하신 약속을 되새김질해야 하는 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말씀으로 우리의 믿음을 갈고 닦아야 (키우며 자라게 하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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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안에서 우리는 하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에베소서 2:11-22)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 (구원받은 가족이 되는 과정)의 원리를 제시한다. 또한 동시에 주 예수님 밖에 있는 불신자의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 안에서 신자의 삶으로 바뀌어 지는 지를 설명한다. 1. 하나됨(구원받음)에 대한 진술(2:11-13) (가) 불신자(이방인)의 문제들: 1.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분리됨. 2. 이스라엘의 시민권에서 제외됨 3. 하나님의 약속의 계약에서 소외됨 4. 구원의 희망이 없음 5. 하나님이 없는 삶 (나) 신자가 되는 기초(2:13) 예수님의 피로 주님 안에서 하나(구원받은 가족)됨 2. 하나됨(화평)의 원리들 (가) 화평의 기초(2:14-16) 주 예수님께서 막힌 담(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적대감)을 허심 (나) 화평의 선언(2:17-18)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화평을 선언하심,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허물 많은 우리를 인도하심 3. 하나됨(구원받음)의 결과(2:19-22) (가)새로운 관계(2:19)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됨,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이 됨 (나) 새로운 역사(2:20-22) 하나님의 집의 기초가 되시는 주 예수님 위에 서로 연결되며, 성령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으로 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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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영적소원기도

(에베소서 3:14-21) 기도의 이유; 필요는 우리의 소원을 구하는 것이며,그이상의 관계강화를 해줍니다. 에베소교회의 상황; 이교신전이 있는 이방인으로, 거짓교사의 가르침, 영지주의 니골라당. 지식만 있고 생활이 없는 영과 육을 분리 등을 주장하는 이단의 가르침에 미혹하려는 상황입니다. 처음사랑, 복음을 듣고, 계속적으로 자라지를 못하는 영적으로 풍성을 약속받았으나 영적거지로 사는 경우입니다. 바울의 목회; 그는 기도의 사람, 열정은 자신이 전하고 키운 성도들의 유익, 해산하는 수고, 그들의 유익, 성장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진리가 체험 할 수 있는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의 문제들을 알고,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경험으로도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자세는 무릎을 꿇는 모습은 외면적인 모습의 자세보다는 내면의 그의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가 주님에게 복종하며, 그리고 경배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목회자로서 강렬한 목회의 열정으로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처럼 간절한 자세로 드리며, 그가 에베소 장로들과의 마지막 해후에도 그들을 축복하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오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 바울은 1,2, 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게 되었음을 강조하며, 그 영적인 사람의 복지를 위해 영적으로 풍성하게 살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문제점; 자신의 신분의 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의 결과, 하나님지식의 상실(mind), 지배적인 부정적 감정(두려움)emotion, 수많은 선택의 책임 will , 소속감이 필요, 자존감의 회복의 필요, 능력의 요구, 마지막 아담의 성취를 통해 계속 하나님께 의지하는 일, 계속적인 영적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주셨는가? 새 생명은 새로운 출생을 요구, 새로운 신분을 부여, 새이름을 부여합니다. 무엇을 따라 기도하는가< 영광의 풍성=풍성, 넉넉하다, 우리의 요구를 다 채워주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 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받았으며,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았고 , 그들이 신자로서 지혜롭게 , 생명의 은혜안에서 사는 하늘나라의 시민들을 위해 아버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벧전2: 9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 신분의 인식이 중요합니다. 1.성령의 활동을 통해 내면의 사람이 강하게 됩니다. 에베소교인들의 상태는 기도의 내용으로 볼 때에, 그들의 내면이 허약함을 보여주며, 성령의 활동에 민감하지 못함, 능력의상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고후4:16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 신앙인의 역설적인 신비, 영은 날마다 더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성품으로 살게 합니다. 그들의 내면의 문제는 내적 치유의 일로서, 영적으로 허약해지고, 강하지를 못하고 넘어지고, 제자들의 문제, 시험을 이기지 못하니, 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양식을 먹을 때에 자라게 됨, 벧전2:2 갖난 아이들같이 사모하라, 영적인 성장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 집니다. 2.믿음에 의해 그리스도가 내주하심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삶을 살게 합니다. 지식을 넘어서는 사랑의 역사, 모든 관계가 더욱 든든해집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거주하심, 로버트의 내 마음은 주님의 집,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집으로 비유, 방마다 기능, 거실, 부엌, 서재, 침실,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가 지배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라는 말은 믿음으로 주님에게 주권을 드리는 우리의 주인 이시라는 권한 을 드릴 때에 , 요한 14:23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지키는 자는 사랑하고, 그에게로 가서 그에게 거주하리라 사랑의 풍부 성령의 내면적인 인도와 그리스도의 내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사랑이 넘치는 요13: 34, 서로 사랑하라는 은혜를 받고 나면, 사랑이 넘쳐나는 것을 벧전 1:22 진리를 통해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첫 열매를 의미합니다. 그 열매들 중에 사랑은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사랑의 원리를 쫓아 사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사랑의 결핍은 죄의 시작이 됩니다.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세우는 일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롬 5: 5 신앙생활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바 그 사랑에 대한 척도는 바울의 기도 속에 나타납니다. 넓이; 우주보다 넓은 사랑의 범위, / 사랑의 길이=영원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영원까지 이어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봅니다. 수 천대에 부어주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의 높이=하늘에 신령한 복을 주시는 가장 영광된 곳으로 올리 우심을 받습니다. 사랑의 깊이=바다 보다는 깊은 바다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우리의 죄까지 모든 것들을 용서하십니다.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무한대의 사랑을나타내십니다. 그가 흘리신 피를 통해 흐르는 사랑은 모든 인류를 다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큰 사랑, 3.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임하는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온갖 구하는 것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분은 전지, 전능, 사랑, 무소부재,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교회 안에서의 충만은 전적으로 지배하는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충만, 그리스도의 충만4:13, 성령의 충만5:18, 시편23: 1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는 역사로 임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심, 부흥,영적각성의 역사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14:13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4.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목적이 나타나는 곳/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고전 2:4에 자신의 메시지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고전 4:20 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원이란? 본문상황설명;바울의 목회와 신학; 바울의 기도; 적용; 바울의 기도/ 그들의 필요/기도는 왜 하는가?/ 영적인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및 교제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실천의 문제, 영적인 표현, 기도의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가? 신앙의 척도, 중보기도의 중요성, 에베소교우들의 영적진단,/ 내면의 문제, 성장의 문제, 실제생활, 영적 처방, 기도, 영적인 능력, 목표는 영적인 변화, 1. 성령의 역사; 2. 그리스도와의 관계 3.하나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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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산 증거

   
 
믿음의 산 증거
 
  2008/04/21 오후 9:53 | 성경공부

(마가복음16: 14-18)

본문분해
1. 불신의 잘못
열한 제자의 불신,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심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함

2. 주님의 명령
세상에 나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들은 구원을 받으리라
믿지 않는 이들은 정죄를 받으리라

3. 믿음의 산 증거들
믿는 이들에게 이런 증거들이 나타나리라
1.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영적인 권세와 능력)
주님을 믿을 때에 새신자에게는 그들이 갖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들을 몰아낸다.
우상을 섬기거나 세속사회의 영향하에 있었으므로 어둠의 주관자의 지배를 받은 상태인고로,
무지와 몰이해와 완고함과 어리석음의 사상이나 처세들을 몰아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영혼에 영향을 주는 것외에 육체적으로도 어둠의 지배를 단절해야 할 것이다.
우상을 극심하게 섬긴 경우일수록 더욱 어둠의 영향과 세력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2.새 방언을 말하며(주님과의 교제, 천국방언을 함)
주님은 이땅에 무너진 바벨탑의 흩어진 언어들을 통일하기위해서 오셨다.
그를 통해 사람들은 하늘의 새언어를 얻고,
그리고 그를 통해 사랑과 감사,용서로 이루어지는 천국의 언어들을 배우게 된다.

3.그리고 주님의 보호를 받으리라(뱀에게 물리지라도, 독을 마실지라도)
주님은 당신의 복음을 맡은 자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을 특별히 살펴주신다.
뱀에게 물리거나 독을 마시는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런 것들을 일반화 할수 없는 경우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당신의 종들이 핍박이나 위협속에 처해있을때에는 반드시 구원하신다.
예를들어 사도바울이 말타섬에서 장작불을 태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줍다가 독사에게 물렸을 때에 주님께서 극적으로
그를 독사의 독으로부터 해독을 하여 그의 몸을 구원하며 살리셨다.

4.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 즉 나으리라(기도의 응답과 치유)
주님의 복음은 사람들을 전인 치료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의 복음의 말씀은 사람들의 영혼에 양약과 같이 죄에 좀먹어있는 상태를
그의 치료하는 용서의 메시지로 씻기신다.
그리고 그의 용서의 메시지는 죄악의 늪에 깊이 빠져있는 영혼을 질식케하는
불화와 상처와 질투와 불안의 상태로부터 치유하신다.
그리고 신자들의 병든 몸들도 그의 영으로 치유하신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사람들의 증거는 누구에게나 여러방식으로 하나이든 둘이상이든 나타난다.
내가 받은 믿음의 증거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그분의 지극한 손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주예수를 믿는 영혼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니,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벗고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변하는 은총을 입게 된다.

성경 공부안
* 불신의 문제
믿음과 불신의 차이는 그 사실(주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이들의 증거를 받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이성적인 판단이나 선입견으로 인하여,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오히려 주님의 부활사실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완고하기까지 하였다.
고로 믿음의 시작은 사실에 대한 인정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를 통해 이루어진다.
1. 신앙인의 불신앙의 원인들은 무엇인가? 자기편견, 선입관, 고집, 시기, 질투, 안일 등
2. 불신앙을 극복하는 길은? 열린 자세, 믿음의 수용, 영성 강화등

* 복음전파의 명령
주님의 명령은 믿는 이들에게 주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라는 것이다. 복음은 전해야 하며, 모든 이들이 듣고 반응을 한다.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구원을 받으며, 믿지 아니하는 이들은 정죄를 받는다.
고로 먼저 믿은 이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
3. 복음전파의 실천에 필요한 방법들은? 전도실천, 전도대상자를 위한 중보기도,
영혼구원을 위한 관심,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 및 지원 등
4. 복음전파에 방해하는 요소들은? 두려움, 안일한 영적 의식, 세속사회에 지나친 관심,
바쁘다는 자신의 일정 핑계등

* 기독교의 믿음에는 진리에 대한 산 증거가 있다.
진리를 경험하는 자기인식 이나 확증하는 증거들이 있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이름으로 영적인 권세를 받아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낸다.
빛이 들어가면 어두움은 달아난다.
주님을 믿으면 주님과 교제하여, 새로운 천국의 삶을 살아간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은 주님이 책임 져주신다. 그분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
주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 따르는 표적이 있다.
믿고 기도한즉 응답을 받으며, 그들의 삶을 치료하는 능력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5. 신앙인들의 자기증거는 무엇이 있나요? 자기구원과 인성 변화,
치유와 영혼구원, 달라진 생활방식, 인생관과 처세술의 변화, 주변인들에게 주는 자기영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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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믿음의 원조:아브라함

(창세기 12:1-9)

본문 분해
* 하나님의 명령
1. 너는 떠나라/ 믿음은 떠나는 일부터
2. 새로운 시작/ 믿음은 순례의 길을 시작
*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1.이름을= 창대 하게 하리라
2.축복을=복의 근원이 되라
* 아브라함의 순종의 순례의 시작
1. 하란을 떠남(순례로의 떠남)
2. 부인과 조카와의 여행(가족에 대한 책임을 맡은 지도자)
*참 예배자 인 아브라함
1.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하나님의 계시, 현현)
2. 단을 쌓은 아브라함(자신의 신앙의 유형을 분명히 함)
3. 하나님께 경배를 드림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

본문 이해
1-3 아브라함의 순례/ 이 구절들은 성경을 통해 인간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확대되는 여정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계약이 소개된다.
그와의 계약은 15:18-21에 자세하게 나온다. 17: 1-21에서 하나님께서 그 계약을 재확인하신다.
이삭을 통해 갱신하신다(26:2-5) 그리고 야곱을 통해 다시 갱신하신다(28: 10-17).
그 계약의 요소들은 1. 씨(17:2-7, 갈 3:8, 16), 2. 땅(15:18-21, 17:8),
3. 한 나라(12:2, 17:4), 4. 신적인 축복과 보호(12:3).
이 계약은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성취와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관점에서 무조건적이다
(롬11: 1-27). 그러나 그것의 직접적인 성취의 관점에서 조건적이다 (17:4).
구약을 통해 이스라엘의 나라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확대하며 반복하여 관련됨을 강조한다
(왕하 13:23, 대상 16:15-22, 느 9:7,8).
그 계약이 영적으로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중요한 것을 강조한 이는 바울이다(갈 3:4).
스테반이 행전7: 31에서 인용한다.

1.땅에 대해/ 아브람은 아직 하란에 머물고 있었다 (11:31)
그 부르심이 행전7: 2에 보면 반복하여 가나안으로 부르셨다.
2.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라/ 아브람의 광대한 명성과 전설적인 이름은 물질적으로(13:2, 24:35),
영적으로 (21:22), 그리고 사회적으로(23:6)이루어졌다.
3.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아브람과 그의 후손들을 저주하는 자들을
멸시를 하며 경멸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거나 신성 모독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는
하나님의 자비 없는 심판을 자초할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아브람과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네게 속한 즉 이 지상에 속한 가족들 모두가 축복을 받을 것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아브람에게 축복을 만민을 구원하는 복음과 동일시 하고 있다.
4. 하란/ 11:31을 보면 그들은 한 그룹의 사람들을(아마 종들이었을 것이다) 모았기
때문에 거기를 떠나기로 하였다.
5.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왔다/ 주전 2090년경이었다.
6. 세겜/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계곡 안에 위치한 가나안의 마을이다. 그곳은
요단강 서쪽의 16마일 가량이며, 예루살렘의 북쪽 30마일 가량에 위치하고 있다.
가나안 족들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 모세는 아브람이 거기에 들어가던 약 700년
후에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주전 1405). 모세가 기록한 가나안 족들은
이스라엘이 들어갈 무렵에 적대자들로 대치하게 되었다.

7. 내가 이 땅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개인적인 약속으로 주신
것이라기보다는 장래에 있을 보다 높고 거룩한 관심들을 보이신 것이다.
그 땅은 아브람의 자손인 특별한 민족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씨앗은 모든 인류에게 유익함을 주시기 위해 뿌려진 것이다.
세계를 위한 구원과 신적인 진리의 계시가 임할 것을 가장 적합한 곳으로 선택된 것이다.
하나님께 제단을/ 이 행위를 통해 아브람은 그의 종교(신앙)에 대해 열린 고백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그의 신앙을 선언한 것이며 참 하나님께 옳은 예배를
확립한 것이다. 이것은 약속의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참된 예배의 곳이다.
후에 이삭도 또한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헌신의 표로 제단을
쌓았을 것이다
(26:24, 25). 야곱도 또한 세겜의 한곳에 제단을 쌓았다(33:18-20).
8. 벧엘…아이/ 벧엘은 예루살렘의 북쪽 7마일에 위치해 있으며,
나중에 아브라함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28:19). 아이는 벧엘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후에 여호수아가 싸웠던 곳이다(수 7:, 8:).
9. 남쪽으로 향하여/ 아브람은 네게브로 옮겨 농사짓기에 덜 좋은
그러나 목자로 방목하기 좋은 곳으로 아마 무역을 하기 좋은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1-3절은 하나님의 아브람에 대한 소명이며, 4-9은 아브람의 순종적인 자취이다.
1-3
아브람은 두 가지 명령을 받는다.
하나는 떠나라는 것으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의 떠남에는 반응의 연속의 시작이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명령은 축복으로 나타난다. 너는 축복(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아브람의 소명은 목적이 있었다. 그의 순종은 크나큰 축복을 가져왔다.
세가지 약속들은 그의 땅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소명 위에 기초한다.
1. 큰 민족, 2. 아브람을 위한 축복, 3. 위대한 이름. 이 약속들은 그를 복의 근원을 만들었다.
그의 순종은 하나님의 3가지 약속 위에 있다.
1.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리라, 2.그를 멸시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3.그를 통하여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족속들을 축복하리라.

그를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그의 하나님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행하게도 하나님께서 자주 그의 백성들을 훈련하기 위해 다른 민족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축복을 받는 데서 멀리 옮기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성취가 담겨있다
(갈 3:8, 롬 9:5). 이 아브라함의 기사는 믿음에 대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아브람은 여러 가지 일들을 떠나었야 했다.
그의 나라, 그의 백성, 그의 씨족 등.
그러나 그는 그가 가야 할 땅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떠남은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는 담대한 행위가 요구되었다.
특히 이 축복과 저주의 주제들이 이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창세기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4-9
이 기사는 단순히 아브람의 복종을 담고 있다. 그의 순종은 두 가지로 하나는 떠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가 축복(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란 에서 아브람은 그와 그의 가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어떤 하람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영혼
(자신의 영혼에 눈을 뜨는 사건)에 관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 제단을 쌓고, 즉 벧엘의 동쪽인 세겜 에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제단을 쌓은 곳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 우는 곳에였다
(21:33, 26:25).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중심에서 아브람의 증인으로 계셨다.
모레 상수리 나무를 언급한 것은 가나안 인들이 참나무 밑에 신성한 곳으로 여겼는데,
모레는 그들이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것들 중의 한 곳이었다.

세겜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람의 믿음을 돕기 위해 즉, 너의 후손들에게 이 땅을 주리라.
아브람이 그 땅에 도착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현시하셨다.
사실 아브람은 그의 매장지 정도의 땅만을 갖고 세상을 떠났다 (23:17-20).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확증하신 후 아브람은 그 땅에 머무르면서 그 약속을 기다렸다.
그러나 가나안 인들은 그 땅의 기름지고 좋은 땅을 다 차지 하고 있었고,
아브람은 크지만 불모지와 같은 즉 가나안의 남쪽 사막 지역인 네게브로 향하였다.
나중에 이스라엘 나라는 그들의 족장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따라, 큰 민족, 하나님의 축복, 전능자의 보호하심 등을 늘 상기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아브람 세대에 주신 약속에 대해 후대에도
그 축복의 약속을 나누기 위해 믿음을 요구하셨다.
이렇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가져야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태도),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학적 가르침
아브라함의 소명/ 하나님께서 이방인이었던 아브람을
이방 세계에서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보여주며 그에게 뛰어난 약속들을 주시며,
그 약속은 후에 아브라함의 계약으로 알려진다.
이 구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즉 그의 순종하는 믿음을 가르쳐 준다.
아브람은 고대의 세계에서는 중년의 나이에, 부요 하며, 안정된,
그러나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나서
모든 것을 순종적으로 포기하였다.
이것이 왜 성경 안에서 그를 믿음의 표상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롬 4:1-3, 16-24, 갈 3:6-9, 히 11:8-19, 약2: 21-23).

이 기사는 아브람의 소명을 통해 한 새로운 나라의 기초가 된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으로 반응하여 가나안으로 떠나는
한 개인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생겨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는 믿음의 직면하게 된다.

계약 신학/ 성경에서 계약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맺는 관계의 약속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다윗과 맺은 계약 등이다.
이 계약들 중에 아브라함과의 계약이 하나님의 구속과 은혜에 입각한 계약이다.
아브라함의 계약의 특성은 그의 순종에 있으며, 그의 믿음이 순종으로 표현되어있다.
그 계약은 순종하는 믿음에의 응답을 요구한다.
이 계약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사람들의 순종에 입각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모레 상수리 나무/ 홀로 자라 서있는 나무로 가나인 들에게 잘 알려졌고,
그들에게 “선생의 참나무”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 나무를 신성시 하였다.
이 야곱이 그 집의 우상들을 그런 상수리 나무 밑에 묻었던 것이다.
신 11:30에는 그런 나무의 지점을 지경표로 쓰여지기도 하였다.

성경 공부안
* 믿음의 순례를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부르심을 받은 인생이면 누구에게나 다 해당이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천성을 향하여 나가는 믿음의 순례는 떠나는 일부터 시작이다.
자기 주관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의 힘과 지혜로 사는 데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살 것을 명하는 것이다.

1. 나의 신앙 생활은 과연 장차 망할(하나님의 심판 받을)세상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나가는
발걸음의 신앙 생활인가?

* 믿음의 순례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따라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며, 너를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복을 주셨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축복의 근원이다.
이 믿음을 따르는 자신의 운명과 팔자를, 그리고 신수를 넘어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삶이다.

2. 나의 신앙의 순례는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의 길인가?

*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그의 믿음의 발자취를 밟아갔다.
그는 가족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그 씨족의 리더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았다. 인생은 순례의 과정의 연속이다. 그 인생의 한 가운데에 형통한 삶이 있으며,
고난의 세월도 있으며.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으며, 방황하는 기간도 있다.
믿음의 순종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하는 삶의 발걸음이다.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으며,
도착 지점이 있다. 신앙의 발자취는 시작도, 과정도, 끝도 중요하다.
그의 믿음은 영원한 상급을 바라는 순례의 길이다.

3. 나의 믿음의 발자취는 분명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가?
믿음의 길에서 방황하지는 않는가(세상의 여러 가지의 유혹들)?

*참 예배자 인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참 신앙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섬기는 참 예배의 본을 보였다.
그의 진정한 예배는 그의 경외와 순종하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는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았다.
예배를 드리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상한 일이며, 사람을 참되게 하는 일이다.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참 인간을 목표한다.
참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상이다.

4.나는 과연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는 참 예배자인가?
그리고 나는 예배 중심의 삶에 성공하고 있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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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의 약속과 초대교우들의 기도

사도행전1: 4-14

1. 성령 강림의 약속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시고,
그리고 그의 가르치심의 결론을 맺으신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배움도 약하고,힘이 없는 변방의 사람들이다.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그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교회를 떠나지 말라, 은혜를 받을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은혜 받을 자리에 있어야 , 교인들의 신앙은 우선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필요,
주일성수 모든 은혜받는 모임에 가야 한다.
2.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방법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
희망이란,기대감을 갖으면 일을 이룰 수 있다.
기대감은 강렬한 바람이다. 기도는 기대감이 상승 작용하여,
바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강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기대감의 정비례한다. 바라는 마음이 기도의 응답을 가져온다.

주님의 약속에는 누가 11:13에 좋으신 아버지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그 가장 좋은 것이란 바로 성령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성령을 바라는 것은 신자의 가장 주요한 기대감이다.
성령의 세례, 성령의 충만을 바라라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우리의 신앙에 목표이다.
승천하시는 주님은 신자들에게 하나의 이상을 주는 목표를 제시한다.
그의 승천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영광의 자리이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며,그분이 계시는 영광의 자리를 바라보며 신앙의 경주를 하는 것이다.

3. 다락방에서의 기도
그들은 약속을 받은 공동체로,그들은 하나님의약속의 실현을 위해
기도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1.그들의 기대감은 동일하다
2.그들의마음이하나가 되었다.
3.기도에전념하였다.
4.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가져올 간절한 간구였다.

본문 이해
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몸의 부활을 추가로 보여주신 증거를 알려준다.
주님의 나타남의 증거는 그의 부활의 사실성을 확증 한다.
주님의 부활 후에 승천하시기에 앞서 주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새로운 약속을 부여하신다.
누가 복음24: 49에서 아버지께로부터 약속하신 선물이 오시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행 1:5, 요14: 16, 15:26, 16:7).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주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요1: 33, 행전2: 38).
사도들은 오순절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 번 반복해서 약속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신다는 내용이다
(눅11: 13, 24:49, 요7: 39, 요20: 22).
그리고 나서 모든 신자들은 구원받을 시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고전 12: 13, 롬8: 9, 고전 6:19-20, 디3: 5-6).
6.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사도들은 여전히 메시아의 지상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눅19: 11, 24: 21).
그들은 알았다. 겔 36장과 요엘2장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부으심이
그 왕국의 도래와 더불어 오리라는 것을.

7.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구약에서 예언되고 주님이 가르치셨던 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리라는 것을 기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가르침의 핵심을 수정하여 고쳐 알려주셨다.
때와 시즌은/ 이 두말은 시기와 기간에 대해
그의 지상 왕국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리고 그의 재림에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다(마25: 21-34).
그러나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한 정확한 때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막13: 32, 신29: 29).

8.
사도들의 복음 전파의 사명은 성령이 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시는 주된 이유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틱하게 세계 역사를 바꿀 것이며,
복음의 메시지는 결국에 세상의 모든 곳에 전파될 것이다 (마28: 19-20).
능력을 받으리라/ 사도들은 이미 성령의 구원, 인도하심, 가르치심,
그리고 기적 행하심의 능력을 경험하였다.
이제 곧 그들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거주하심과
증인으로서의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받을 것이다 (행2: 4, 고전 6:19,20, 엡 3:16,20).
증인들/ 예수님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요14: 26, 벧전3: 15).
희랍어의 의미는 증인은 일반적으로 그의 증거의 가치로 인하여
그의 믿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9.
둘리우심/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하신 몸의 주 예수님을 세상에서 취하여
그의 오른편에 올리신다 (눅 24:51, 행 2:33, 요17: 1-6).
주 예수님의 영광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신다.
구름으로/사도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았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현존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번만이 아니고 과거에도 그들은 그 영광을 경험하였다 (마9: 26).
그 구름은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실 때에도 나타날 것이다(막13: 26, 14:62, 계 1:7).

10.
흰 옷 입은 두 사람/
사람의 형태를 취한 두 천사를 의미한다(창18: 2, 여호수아 5: 13-15, 막16: 5).
그들은 주님의 승천을 맞이하기 위해 영광의 구름 가운데에 나타나,
주님의 승천을 알리며, 그리고 재림하실 주님을 예언하고 있다.

11.
갈릴리 사람/
자살했던 가롯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은 모두가 갈릴리 사람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유다중심의 이스라엘에는 변방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을 수행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가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의 그루터기의 신학은
변방의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다.

12.
감람 원이라는 산/ 예루살렘 동쪽의 기드론 계곡에 위치한 그 도시보다
200피트 높은 넒은 오르막의 언덕이다 (눅24: 50, 51).
안식일에 갈 수 있는 거리/반 마일 정도의 거리이다.
신실한 유대인이 출16: 29에서 금하는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여행의 거리이다.
이 거리는 전통적으로 광야의 천막 생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장막들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안식일에 성막에 닿을 수 있는 2000의 피트 정도의 거리이다 (수3: 4, 민35: 5).

13.
다락방/주님의 마지막 만찬(성찬)이 시행되었던 곳이다.
부활 후에 주님이 그곳에 나타나셨다.
다락방은 초대 교회의 시작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이곳에 성령의 강림을 통해 교회의 탄생과 더불어 복음 전파의 근원지로 세워졌다.

14.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이 때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패턴이 생겼다 (요14: 13,14).
초대 교회의 기도는 합심 기도로 시작하여,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기도하는 공동체로 나타난다.
교회는 이때부터 기도하는 공동체로서의 자기 정체의 상징을 세우게 되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주님의 교훈이
지상 교회의 현실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학적 가르침
성령/ 성령님은 성자의 사역을 통해 이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에 강림하셔서, 그의 지상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성령은 원래, 창조 사역 속에서 이미 활동하셨으나,
주님의 승천을 통해 그의 사역은 구속과 구원 사역을 이루어가신다.
성령은 주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통해,
지상에 있는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영원히 거주하시며, 사역하시게 되었다.
성령의 강림과 사역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공동체의 기도 실천을 통해 이루어 진다.
주님의 증인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믿는 무리들이 그의 약속을 믿고,
성령의 강림을 대망하는 기도하는 심령 위에 임하게 되며,
그의 임하심을 통해 주님의 증인으로 변화되는 권능을 입는다.
고로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은 성령의 사역이 아니면 이루어 지지 않는다.

승천/ 주 예수님의 승천은 초림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받는 메시아의 위상을 벗어나,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권자로서의 위치를 알려준다.
주님의 승천은 지상 사역의 완성과 더불어, 장차 이루어질
우주적인 구원의 사역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승천은 그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감을 의미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사,
통치하시는 만주의 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승천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궁극적인 희망이 되며,
장차 그들도 그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나갈 것을 기대하게 한다.

합심 기도/ 초대 교회는 일심하는 마음으로 합심 기도를 드린다.
교회의 신앙적인 성격을 알려준다.
기독교의 영성이나 신앙의 근거는 공동체의 연합적인 테두리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영성이나 묵상으로서의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위에 세워지는 영성도 있지만
교회의 공동체의 영성의 성격으로서 교회의 신앙을 알려준다.
고로 교회는 합심하는 무리들의 일치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바라보는
약속 받은 공동체의 그 약속을 실천해 옮기는 무리들의 모임이다.

성경 공부안
약속된 성령 4-8
부활하신 주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신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교회의 탄생과 시작의 예언),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리라(성자의 사역의 결과로 오시는 성령의 강림)
그리하면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성령의 내주와 충만의 사역의 시작 예언),
그리고 나서, 그들은 모두가 내 증인들이 되었다(성령의 능력을 통한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
1.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2.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님의 승천 9-11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승천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바라보는 것은
신앙인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분은 우리의 목표이며,
최종적으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믿는 자는 주님은 바라봄의 대상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믿는 무리들에게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로 다가오신다.
3. 현재 자신의 신앙적인 목표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4. 주님의 승천은 자신의 신앙의 목표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다락방에서의 기도 12-14
다락방에 모인 초대 교우들 중에는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다.
초대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로 그들은 성령을 부어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전혀 기도에 힘쓰는 무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을 대망하는 공동체이며,
그 약속을 실현시키는 실천하는 기도자들이다.
5. 초대 교우들처럼 성령을 갈망하는 자신의 믿음은?
6. 자신의 영성 강화(성령 충만)를 위해 얼마나 기도에 힘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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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믿음의 기초

고전 15: 1-11, 12-19
본문 분해
주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신앙과 메시지의 핵심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실성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확실성과 그의 장사 지냄과 무덤 인봉, 돌을 옮겨놓음, 빈 무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10번의 가시적인 증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가시적인 증거들은 6권의 성경 책에 기록되어있다(4복음서, 행전, 고전).

1. 복음의 메시지(1-4)
크리스천의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에 있다.
주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메시지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 메시지는 크리스천의 구원에 효력을 가져오는 죄의 구속과 죽음의 파멸과
그리고 영생의 부활을 보장한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5-11)
주님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변화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의 결과이다.
부활의 증인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부활을 본 것,
그 부활을 경험한 것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애에 갑작스럽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대표적인 변화는 교회의 핍박자가 부활의 전도자가 된 바울이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의 결과에는 부활을 보증하시는 성령의 강림과
목숨을 걸고 전하는 그들을 통한 주님의 교회의 탄생이 있다.

3.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12)
간혹 교회 안에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믿음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4. 부활과 믿음의 관계(13-14)
부활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무효이다. 주님의 부활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에서 부활을 이루신 구원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부활을 전하는 메시지도 헛된 것이다.

5. 부활의 부인의 결과(15-19)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의 메시지도 헛것이며, 거짓 증인들이다.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죄의 상태에 놓여있으며, 주님 안에 먼저 믿고 간 이들은 멸망한 것이다.
사도들과 모든 전도자들을 포함한 크리스천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

본문 이해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교회(1,2), 성경(3,4), 증인들(5-7), 바울 사도 자신(8-10),
그리고 부활에 대한 메시지(11)로 증명하고 있다.

부활의 증인들(5-7)
1. 요한과 베드로(요20: 19-20; 눅 24:34) 2. 11사도(요20: 19-20, 눅24: 36, 행1:36),
3. 500 신도(벧후 3:15,16). 4.야고보(행15:13-21) 5. 사도들(요20: 19-29).

1-2
바울이 고린도에 전한 복음은 사도들이 전해 변치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메시지의 변질이나
부활의 가르침에 대한 변형이 발생하였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고린도인들에게 진행되는 구원 경험의 필수적인 기본이 된다.
부활의 가르침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몸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은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는 것이며,
믿음의 원리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믿음을 굳게 잡는 것을 포함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복음에 대한 믿음은 무효인 것이다(마태13: 18-22).

3-5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받은 것에 대해 말할 때에
모든 믿는 이들 속에 자신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들은 복음의 핵심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고백으로 여기는데,
그것은 두 가지로 그리스도가 모든 이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이것의 사실성은 성경에서 증명되고 있다 (시편 16:10, 이사야 53:8-10)
그리고 역사적인 증거로 빈 무덤의 사실과 그곳에서 살아있는 주님의 현존이 나왔다.
그 사실은 예수님이 그의 죽으심이 무덤에 묻혔다는 것과
그리고 그의 부활하심이 다른 이들에게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베드로가 증인이었고, 그 후에 남은 주님의 가까운 제자들에게 증명되었다.

6.
그 후에 더 많은 무리에게 주님의 부활이 증거되었다.
주님을 따르는 무리 500명 정도가 그의 부활의 증인으로 마태 28:19-20 주님의 승천 시에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쓸 무렵에 이들 중 대부분 당시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7-8.
어떤 이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만이 단지 믿음의 눈으로 본 것으로 여겼다.
그들 중에 두 사람이 처음에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이복동생이였던 야고보와
믿는 이들을 핍박했던 바울 자신이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바울과 같이 야고보도 아마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행 9:2-6, 22:6-11)으로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요7:5 와 행 1:14를 비교).
바울은 그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사람처럼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고 있다.
이전에 언급한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것처럼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전 9:1).

9.
그는 덜 자란 동물처럼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로 고백한다.
그는 더 나아가 사도직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교회를 핍박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행22: 4; 딤전 1:15-16).

10.
그러나 그는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자신을 받아들인자로 교회 안에서 활동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덕분이라고 한다.
교회의 역사는 그의 헌신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다른 사도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곳을 방문하여 전도하였으며,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누구보다도 많은 신약의 서신들을 기록하였으며,
그리고 여러 곳에서 여러 교회들을 세웠다.
그러나 바울은 결과적으로 이런 여러 가지 이룬 일들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고전2: 4-5).

11.
바울은 마지막으로 메신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메시지 자체에 대해 언급한다.
사도적인 메시지는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이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로 이루어졌다.
그 메시지를 바울이 전했으며, 고린도 교회가 믿었던 것이다.

12.
바울은 아무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구조 안에서 부활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3
그 원리 안에서 몸의 부활을 부인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안에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어,
그런 불신의 결과는 심각한 믿음의 손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고한다.

14.
그런 신앙적 부인은 복음의 메시지 안에서 부활을 부인하는 것인데,
그 복음의 메시지는 생명이 없음을 알려준다.
만일 그렇다면 고린도 교우들의 믿음은 쓸모 없는 것이며,
그들의 믿음 여전히 죽은 것으로 여김을 받기 때문이다.

15-16
그 교회의 사도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를 확증하였기에 부활이 없다는 고린도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은 사기꾼이며, 거짓 증인들인 것이다.

17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고린도인들의 구원은
실제적인 구원이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부활은 하나님의 유효성의 확증을 통해 구속 받음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대가로 치른 것을 받아들인다.
부활이 없이는 십자가의 구원은 효력이 없으며,
여전히 고린도 교우들은 구원에서 벗어났으며, 죄 가운데에 있게 된다.

18
그리스도가 부활이 없다면 고린도교우들중에 죽었던 이들은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벌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방 종교의 영혼의 자유 개념은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부활이 없이는 죽음의 형벌에 머물러 있으며, 영원한 고통에 처하게 된다

19
부활이 없다면 이방인들이 옳은 것이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은 정당하며,
바울과 사도들 같은 이들은 복음을 위해 고통을 받았으므로 불쌍한 자들인 것이다.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이들이 옳으며,
크리스천들의 희생은 단지 불쌍한 자들의 천박한 행동이며, 자기 연민의 조크에 지나지 않는다.

신학적 가르침
부활 신앙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시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증거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의 부활을 통해
온 세상의 주님과 구원받을 자의 메시아(그리스도: 구세주)와
원래 하나님의 아버지와 똑 같은 신적인 존재이셨던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므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온 우주의 전능하신 통치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죄와
죽음 아래에 놓여있는 인간들의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이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의 기관으로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부활의 보증이셨던 성령을 보내사, 전 세계에 그의 복음을 전하셨다.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이러한 사실들을 믿음의 근거로 세우며,
그 기초들 위에 신앙의 집을 세워나간다.
부활의 첫 열매인 주님의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재림 시에
즉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영생의 부활을 믿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의 구속(영광의 변화)을 기다린다.

성경 공부
* 주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신앙과 메시지의 핵심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확실성과 그의 장사 지냄과 무덤 인봉,
돌을 옮겨놓음, 빈 무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10번의 가시적인 증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가시적인 증거들은 성경 6 책에 기록되어있다(4복음서, 행전, 고전).

복음의 메시지(1-4) 크리스천의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에 있다.
주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인간의 지를 위해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메시지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 메시지는 크리스천의 구원에 효력을 가져오는 죄의 구속과 죽음의 파멸과
그리고 영생의 부활을 보장한다.
1. 나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가? 2. 주님의 부활은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5-11) 주님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변화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의 결과이다.
부활의 증인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부활을 본 것,
그 부활을 경험한 것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애에 갑작스럽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대표적인 변화는 교회의 핍박자가 부활의 전도자가 된 바울이다.
그 변화의 결과에는 부활을 보증하시는 성령의 강림과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하는그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주님의 교회의 탄생이 있다.
3. 주님의 부활과 자신의 믿음의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4. 부활하신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변화시키셨는가?

* 주님의 부활과 자신의 믿음
간혹 교회 안에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믿음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부활과 믿음의 관계(13-14) 부활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무효이다.
주님의 부활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에서 부활을 이루신 구원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부활을 전하는 메시지도 헛된 것이다.
부활의 부인의 결과(15-19)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의 메시지도 헛것이며, 거짓 증인들이다.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죄의 상태에 놓여있으며,
주님 안에 먼저 믿고 간 이들은 멸망한 것이다.
사도들과 모든 전도자들을 포함한 크리스천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
5. 혹시 자신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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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종려 주일
예수! 우리의 왕이여! (누가 복음 19: 28-44)

본문 분해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28-29 예루살렘 도착
29-34 제자들의 파송, 나귀의 쓰임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35-38 예수님의 행차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9- 바리새인들의 항변
40- 예수님의 답변
41-44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예언

본문 이해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의 목적은 메시아로서 자신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두 가지 부분에서 사역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메시아로 드러내시며(19: 28-44), 또 하나는 그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기서 몇 일간을 가르치셨다 19: 45-21:38).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세상에 가져오신 메시아로 알리셨다. 이제까지 주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는 이스라엘 사회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알리시며, 자신의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28-34 예루살렘 입성의 준비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때를 알린다. 그는 여리고로부터 올라오셔서 (18: 35-19:10), 예루살렘에서 짧은 거리인 베밧게과 베다니에 계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신다.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나귀를 발견하면 이리로 끌고 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스가랴 9:9-10의 메시아가 나귀를 타리라는 예언을 이루셨다 (마태21: 2에서 나귀와 나귀 새끼로 언급하고 있다). 군중들은 상징 뒤에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 나귀 새끼의 주인들은 그 두 제자들에게 그들이 요구 한대로 허락한다. 주님에게 그것이 필요한 대로.

35-40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시로 나가시기 위해 감람산의 서쪽으로 나가셨다. 군중들에 의해 그들의 메시아로 높임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앞에 놓인 길 위에 그들의 옷을 펴는 행위는 존경의 표시였다.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들은 그들이 보아왔던 기적을 행하신 그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이 신자들은 시편 118:26에 인용되어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을 꾸짖을 것을 언급하였다. 즉 그들은 그가 메시아나 왕으로 불리움을 받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돌들이 그를 위해 증거하기 위해 부르짖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모든 역사는 그 메시아가 공식적으로 그 자신을 그 나라에 드러나게 위해 있어왔다.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그 선포가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41-44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열정을 보여주셨다. 그는 장차 그 도시가 파멸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한 예루살렘을 거부하셨다. 그는 그 도시를 향해 우셨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가 가져오신 평화를 가져오신 그 날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때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도시가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주후 70년경에 그 일을 이루었다.

28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20마일 가량 동안에 약 4000피트를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다. 이것은 9:5에서 시작한 여행의 긴 여정이었음을 알려준다.

29 벳바게와 베다니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에 자주 그곳에 머무셨다. 감람이라 불리는 산/성전에 인접해있는 기드론 계곡의 동쪽에 위치해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지구의 주요 봉우리이다. 올리브 분지는 그곳을 많은 올리브 나무로 덮고 있는 지역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

30 나귀 새끼
다른 복음서에서는 당나귀의 새끼로 알려졌다 (스가랴 9:9). 마태에서는 엄마 당나귀도 같이 오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 새끼 나귀는 한번도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나귀였다.
36 그들의 옷을 펴고
누가는 마태와 마가에서 언급한 종려나무 가지를 자르는 내용을 생략하고 있다.
37 제자들의 큰 무리가
이 많은 무리가 진정한 제자들은 아닐 것이다.
큰 기적을 행하심
요한 12:17,18 그 나사렛 사람 에 대한 뉴스는 그 소문을 듣고 싶어 하는 군중들 사이에 전해졌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큰 기적의 사역을 요한 12:17,18에서 언급하고 있다.
38 그 왕을 축복하신다.
시편118: 26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외친다.
하늘에 평화가
단지 누가만이 이 구절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천사의 메시지인 2: 14의 내용과 비슷하다.

39 제자들을 꾸짖기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그런 예배적인 찬양으로 돌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그런 행위들을 멈추기를 원했다.

40 돌들이 즉시 소리지르리라
성경은 자연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자주 언급한다(시편 96:11; 98: 7-9; 114:7; 이사야 55:12. 세례 요한의 언급 마태3: 9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에서 마태27: 51.

41, 42
여기서 누가만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를 위해 우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적어도 다른 때에 두 번 정도 예루살렘을 슬퍼하셨다 (13:34, 마태23: 37). 이 탄식하심은 승리의 입성하시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예수님은 백성들의 마음의 진정한 면을 알고 계심을 보여준다. 같은 군중들이 곧 얼마 있지 않아 주님의 죽으심을 향해 슬퍼한다 (누가 23:21).

43 너를 에워싸고 너를 가두리라
21:20, 이것은 주후 70년경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는 그 도시를 4월 9일에 포위하고, 그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공급원을 차단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내려는 그 성안의 수만의 사람들을 가두는 함정에 걸리게 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조직적으로 그 성을 포위하는 방둑을 건설하여 그 도시의 주민들을 점차로 굶주리게 하였다. 그리고 여름에 하나씩 하나씩 그 도시의 여러 곳을 패배시겼다. 그리고 9월 초순에 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44 너가 다 평지가 되리라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 졌다. 로마 군인들은 그 도시의 성전, 거주지들, 사람들을 다 깔아 뭉게 버렸다. 수만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겨우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로마의 경기장의 놀이개로, 혹은 검투사로 사용되었다.

너가 너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은 메시아가 그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종려 주일(Palm Sunday)
종려주일은 크리스천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리스도가 승리하심과 그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요한도 계시록에서 마지막 승리의 의미를 부여할 시에 종려를 흔든다고 언급한다(계시록 7:9),

호산나
도와주세요,구원해주세요 의 외침의 표현이다. 그냥 혼자 쓰이기도 하고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에 붙여 쓰이기도 한다.
구약의 시편에서 할렐 시편에서 쓰이기도 한다(시113-118). 그리고 장막절에 종교 의식적으로 암송되어진다 (시118:25). 그것은 유월절이나 오순절에도 그리고 봉헌시에도 불리어진다. 할렐이나 송축할 때에, 국민적인 축제에 참석한 왕들이나 승리자들에게 인사하는데 불리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승리의 입성시에 예수님은 약속된 그리고 기대한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영광송으로 불리어 지게 된 것이다.

종려나무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아름다운 데이트 종려로 나와있다. 코코넛 종려나무는 중동에서 자라지 않는다. 긴 가느다란 줄기는 높이가 80에서 100피트가 된다. 그 나무는 100년에서 150년을 산다. 굵고 긴 뿌리는 그 나무를 사막에서도 잘자라게 한다. 그 나무는 모든 부분을 유용하게 쓰인다. 종려나무는 구약에서 종교적인 행사에 쓰인다. 장막절에 무화과 잎을 사용한다(레23: 40, 느8:15). 솔로몬 성전(왕상6: 29)이나 에스겔의 승리의 성전(겔 40: 16)에 문이나 벽에 장식으로 무늬로 새겨졌다.

성경 공부안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1. 자신의 생애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심을 어떻게 경험하였습니까? 즉 주님은 나의 주인으로 혹은 나의 주님으로 통치하시기를 원하신다. 나의 삶의 모든 분야에 그분은 어떤 분으로 계시는가? 손님, 불청객, 주인, 주님, 아니면 방관자로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주님 앞에 쓰임 받은 나귀처럼 순전하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데, 자신을 그분을 높이는 믿음의 자세는?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 주 예수님은 우리의 생애에 왕으로 임하신다.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을 높이는 길은?
그를 왕으로 모시는 것과 그를 거부하는 것의 차이는? 기쁨과 고통, 천국과 지옥, 승리와 패배, 용기와 낙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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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

야고보서 5:13-18

본문 분해
* 기도해야 할 이유
1. 고난을 당할 때에(주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할 시에)
2. 병이 들었을 때에(연약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
* 찬양을 하는 이유
1. 만족한 상태에서(영혼의 자족하는 자세)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함
2. 기쁜 마음으로(마음의 기쁨=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다름(요한15: 11)
* 치유를 위한 기도
1. 믿음의 기도=치유의 역사와 용서의 역사(육체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
2. 합심 회개기도=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시오(중보 기도의 힘)
* 기도의 사람: 엘리야
1. 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는 믿음의 기도의 사람이다.
1. 자연을 지배: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고, 비가 오기를 기도함
2. 응답의 역사: 믿음의 기도, 기도의 힘

본문 이해
야고보의 서신의 클라이맥스는 기도의 강조에 있다.
신자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것 중에 신실한 기도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기도는 돌봄의 분명한 증거이다.
기도는 사람들의 일중에 복잡하거나 불가능한 것에 대해 도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직통하는 것이다. 기도 안에서 나누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누군가의 필요에 민감함을 나타내며,
필요한 사람들을 부지런히 간구하며 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13/ 오늘날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약한 면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면이라 하겠다.
이런 것에 약한 것은 영적인 둔감함으로 인하여 일 것이다.
기도와 찬양에는 둘이 다 그것을 하는 이유기 있다.
고난을 받을 때에는 그 고난을 통해 거기에 맞는 기도가 나오고,
만족이 있을 때에는 거기에 맞는 기쁜 찬양이 나온다.

13/고난/ 핍박에 의해 혹은 악의 영향으로 고난을 당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안을 구한다.
기쁜 마음의 자연스런 반응은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하는 것이다.

아픈 자가 있는가?
야고보는 단순히 병든 이를 이야기 하기보다는 고난 중에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 그들을 돕게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겁있는 자들을 용기를 북돋우며, 약한 자들을 돕는다(살전 5:14).

14-15/ 아픈자즉 고통에 의해 약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의 지도자(장로)들은 힘을 북돋우며,
지원하며 기도로 돕는 것이다. 약한 자들을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새롭게 하며, 격려하며,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기름 부음을 통해 앙양하는 것이다.

14/ 기름을 붓고 기름으로 문지르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마 의식적인 기름 부음을 의미할 것이다.
야고보는 핍박에 의해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신자들을 위해 의학적으로 다루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기름 부음은 은유적으로 신자들에게 장로들의 격려, 위로
그리고 힘을 강화시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타락한 자, 낙심한 자, 낙담한 자들을 위해 지도자들에 의해 그들에게 회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강건하며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받아도 육체적으로 아픈 자들은
여전히 아플 수 있기에, 그래서 여기서 신자들에게 생각케 하는 바는
영적인 회복보다는 육체적인 회복에 대해 오해를 주기도 한다.

15/ 믿음의 기도는 장로들이 드리는 기도로, 병든 자를 구원(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느 경우는 그들의 공중 고백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
육체적인 고통으로 얻은 병을 고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장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 진다(이사야 43’;25, 단 9:9, 막 2:7).
당시에는 죄를 지은 이들이 장로들이 참여하는 중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경우이다.

16/ 서로의 허물을 고백하며/ 상호간에 정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신자들이 서로를 대할 때에,
영적인 싸움에서도 신자들이 서로의 필요를 나눌 수 있다.
경건자들의 강하고 열정적 기도는 아주 효과적이다 (민수기 11:2).

신앙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관심은 좌절과 낙심을 이기는 길이다.
치유는 개인적인 고백과 기도의 관심에 의해 이루어 진다.
여기서 말하는 치유는 단순히 육체의 치유뿐 아니라, 영혼의 치유를 의미한다
(마태 13:15, 히 12:13, 벧전2:24). 의인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가져온다.

17-18/
엘리야는 구약에서 가장 강한 기도의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기도에 의해 우상 숭배자들의 갈멜산의 영적인 대결에서 승리하여 850인의 바알,
아세라 우상 숭배자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는 3년 반 동안 자연 세계를 움직이는 기도를 드렸다.
가뭄과 단비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엘리야는 신앙인으로 같은 고난을 받았던 사람이며,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자연 세계를 지배하였다.

열심 있고 끈질긴 기도는 기도의 응답을 가져오나,
두 마음을 품은 기도는 자기 패배로 자기를 속이는 것으로 응답을 가져오지 않는다(약1: 6-8).

신학적 가르침
고난에 대해/ 신앙인으로 겪는 고난은 신앙으로 인한 수고이며,
영적인 이유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의 우리네 신앙인들은 외부적인 고난보다는
내면적이고, 영적인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
영적인 갈등은 외부적인 요인(사람이나, 환경등)도 있지만,
자기 내면의 정리되지 않은 영적인 일관성을 잃은 데서 오는 혹은
유혹이나 잘못된 가르침이나 안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갈등을 겪는다.
내면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와 마음의 자세와 사고하는 태도를 통해 나타난다.
그 세가지 면에 대해 과거의 사건이나 상처들을 통해 오며,
현재의 정상적이지 못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기도 한다.

기도에 대해/ 의인의 간구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통해 형성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앞에 아브라함처럼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 믿음을 소유한 자이다.
기도자는 기도할 믿음이 요구되며,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조지뮬러는 수 만번씩 응답을 받았는데,
그의 응답의 비결은 그는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구한 사람이라는 데 있다.
기도의 응답은 끈질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엘리야의 기도는 끈질긴 기도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번이 아니고 일곱번 엎드려 기도한 그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치유에 대해/ 온전한 치유는 영혼과 육체의 건강에 있다.
전인적인(영, 혼, 육) 웰빙이 기독교의 온전한 치유이다.
온전한 치유는 성도들 모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완전한 샬롬의 축복을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성경 공부안
*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 생활에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영적인 표현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필요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늘 아버지께 간구와 호소를 드렸다. 우리에게는 더욱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뢸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1.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맨 처음의 자신의 반응은? 걱정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등

2. 육체의 병이나 영혼의 병이 들었을 때에(연약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3.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만족한 상태에서(영혼의 자족하는 자세)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하며,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마음의 기쁨=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다름)
(요한15: 11)찬양한다. 자신이 찬양하는 이유와 찬송 생활하는 모습은 어떤지?

* 성도들을 위한 치유를 위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치유의 역사와 용서의 역사(육체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와 합심 회개기도=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는 것(중보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1.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라고 생각하는가?
2. 자신이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할 문제는?
3. 회개 (고백) 기도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러나 그는 믿음의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는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고, 후에는 비가 오기를 기도함.
그는 응답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는 믿음의 기도, 기도의 힘으로 이루어냈다.
1. 기도의 사람의 특성은? 2. 그 외 성경에서 내가 알고 있는 기도의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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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도

마가복음 11:20-24(25-26)

본문 분해
*무화과 나무의 비유/ 열매의 교훈과 심판의 교훈을 준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역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이 나타난다.

*믿음이란?
1. 믿음이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힘이 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 진다.
2. 믿음의 실제

산을 명하면 믿음대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
* 믿음과 기도와 용서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한 것은 얻는다.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과 용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본문 이해 (마태 복음 21:20-22)
마가 11:12-13
다음날 월요일 아침에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길에 예수님은 시장하셨다.
길에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며,
열매가 있는가 확인하셨는데, 열매는 없고 입만 무성하였다.
마가는 그것은 무화과가 아직 제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때는 4월 유월절 기간이다.
팔레스틴의 무화과 나무는 3월에서 4월에 잎이 나타나,
먹을 수 있는 싹에서 수확을 할 수 있는데,
이 나무에는 그 열매 있는 싹은 없고 푸른 잎만 무성하였다.
이 열매 있는 싹을 주님은 기대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그 싹은 정상적인 열매를 맺는 늦은 5월이나 6월 에는 나무에서 떨어진다.

20-21은 12-13절의 내용과 연결되어있다.
다음날은 화요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무화과나무가 하루 사이에 뿌리채 말라 시들어 버린 것을 발견한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생생한 심판의 그림으로 알려진다.

20/ 뿌리째 말랐더라
나무가 위로 뻗어 열매 맺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황폐로 결국 그 나무는 죽었다.
마태 복음은 보다 빡빡한 일정의 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

22/ 하나님 안에 믿음을 가지라
주님의 말씀의 능력 속에는 그의 제자들에게 믿음 없는 것을 부드럽게 책망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명한 믿음은 하나님의 드러난 계시의 진리, 그의 능력,
그리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요일 5: 14, 마태21: 21).
마태 21: 21에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구하는 것이 무화과나무에 대한 일뿐 아니라,
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빠지라 하는 일도 그대로 일어난다고 언급한다.
마가 9:24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의심이 없는 믿음이라고 언급하며,
귀신들린 아이의 아빠가 필요한 믿음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하였다.
하나님안에 믿음을 가지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신실한 선하심에 대해 흔들림이 없는 신뢰심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마가 5:34).
여기에 이산은 감람산을 의미하며 움직일 수 없는 산으로 묘사,
바다는 감람산에서 바라 본 사해바다를 가리킨다.

하나님안에 갖는 믿음은 의심을 떠난 흔들림이 없는 신뢰심을 가리킨다.
고로 믿음 있는 기도는 인간적으로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가 10: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권면하신다.
믿음은 실질적인 응답이 장래에 있지만 그것을 현재에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전제하신 것은 간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여야 함을 말씀하신다 (막 14:36, 마태 6:9-10; 요한 14: 13-14; 15:7; 16:23-24;
요일 5:14-15). 이 가능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순종적인 신자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신자들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며 어려운 것이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이다.

23/ 이 산을 바다에 빠지라
이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나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위대한 랍비나
영적 리더들의 유대문학에서 당시 사용되었던 산들의 뿌리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유와 연결되어있다. 분명히 예수님은 산들을
뿌리채 뽑는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사실, 그런 불신적인 유대 리더들을 위한 기적들을 거절하셨다 (마태 12:38).
예수님의 초점은 신자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그안에 있는 그런 믿음을 통해 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능력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다. (요한 14:13-14, 마태 21:21).

24/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면
믿는 자의 기도에 제한이 없음을 알려주신다 (마태17: 20).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불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가 얼마나 진실해야 하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교훈은 기도가 신실하고 순종적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구속사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들을 통해서 이며,
그의 구원하시는 목적은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약5: 16).

25/ 서서 기도하는
서서 기도하는 것은 전토적인 유대적인 기도의 자세이다
(삼상 1:26, 왕상 8: 14,22; 느헤미야 9:4; 마태 6:5; 눅 18: 11,13),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것이나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극단적인 긴급한 기도의 자세이다 (왕상8: 54, 에스라 9:5 단6:10; 마태26:39; 행전7:60).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죄를 짓는 것이나 단순히 싫어하는 것을 포함하여 신자가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가지게 된다.
그 다른 이는 신자나 불신자나 다 해당이 된다.
용서하라
예수님은 신자가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임을 언급하신다.
성공적인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하듯 남을 용서하는 일도 꼭 해야 할 일이다
(마태 5:22-24; 엡4: 32).

25-26
하나님의 용서와 타인에 대한 신자의 용서는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태 18: 21-35).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것을 기대한다 (엡 4:32).
만일 그가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거부하고 사는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믿음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바라보는 대로
가능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갖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에는 구원하는 믿음이 있고, 경험적인 믿음이 있고,
행동하는 믿음이 있으며, 관계적인 믿음이 있다.
더 나아가 믿음은 죄에서 구원 얻게 하는 믿음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따르는 믿음이 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행동적인 인격적인 신뢰와 주님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중생하는 재생산하는(영적 출생하는) 믿음이다.
믿음과 기도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영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하고, 기도하는 곳에 믿음을 전제하며,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기도와 용서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타인에 대한 용서와 연결이 되어있다.
용서 없이는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기도의 중요한 요소로 용서를 말씀하셨고,
십자가상에서 용서하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기도를 교훈하실 때에 많은 부분에서 용서를 말씀하셨다.
기도는 용서가 관계적인 용어이듯이 관계적인 용어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의 기도 속에 타인과의 용서를 다루며,
그 용서에서 자유 할때에 하나님의 응답은 쉽게 다가온다.

성경 공부안
* 열매 맺는 일은 신앙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신앙적인 주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 신앙인은 좋은 나무처럼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열매 없음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역은 그의 말씀의 선포와 그에 따르는 표적으로 다가 온다.
고로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이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일을 하려면? 순종, 헌신, 열심, 믿음, 진실 등등

* 신앙인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힘이 있다.
신자에게 믿음은 바라는 대로 자기에게 주어지게 한다.
믿음의 실제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대로 실행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믿고 산을 명하면 믿음대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교훈하셨다.
자신의 믿음에서 믿음의 대상(주님과 그의 약속하신 말씀)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믿음은?

* 신앙인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믿음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도는 어떤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가?
기도의 제목이나 내용은? 그리고 자신의 기도 생활은?

* 기도의 응답을 이루려면,
신앙인에게, 믿음과 기도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한 것은 얻는다.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과 용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도의 응답을 이루려면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인내. 용서, 믿음, 주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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