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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7
    자기변화와 전도
    목동
  2. 2007/12/10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목동

자기변화와 전도

자기 변화와 전도 (사도행전9: 10-22)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경험에서 사람들은 깊고 넓은 변화를 경험 하기도 합니다.  그런 황당한 경험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가다 자동차사고를 만난 것처럼 잘나가는 사울의 인생이 그만 다메섹에서 고장 인생의 차로 전락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강한 빛에 쬐어 어둠 속에 있었던 그의 상태는 견딜 없었으며, 그러한 어둠의 자식으로는 아무것도 한치 앞도 없는 장님신세가 되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활개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남을 괴롭히는 종교인의 최고 절정에서 그만 다메섹에서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에게 잡혀 버렸습니다.

 

 

바울은 변화되기 전에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을 괴롭히고, 그들을 추격하여 잡아드리는 악역을 하였습니다.   독실한 종교인으로 자신의 확신하는 바가 결국 남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상처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나니아는 사울의 당한 처지를 구해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합니다.  타인을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울의 관점은 남을 무시하는 경향입니다.  교만한 눈입니다.  악을 향하는 입니다.  대제사장의 권위에 위해 그는 사람을 압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무슨 권위에 복종하는가는 우리의 신분이나 역할을 하게 합니다.  여기 사람 사울은 대제사장, 당시, 종교의 세력과 이름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의 권위에 복종하는 처지에 그는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살리는 은혜의 주님의 권위와 지시에 순종하는 아나니아는 사울을 돕고, 치료하고, 살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이나 사단의 하수에 따르는 경우는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자신들을 억압하는 일을 합니다.   세상의 소문은 사람들을 오해하게 합니다.  소문은 사람들을 시달리게 합니다.  사실은 사람들을 살립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만나기를 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통해 사실을 알고 후에 사울을 살리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과 같이 우리가 도와야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첫째,  복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살면서도 빛을 모릅니다.  자신이 하는 일들이 옳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것이 도리어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얽어 버리게 합니다.  나아가 주변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그에게는 좋은 소식이 필요합니다..  희망의 소식입니다.  자기우월감에 빠져 살지만 남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행복 없습니다.   둘째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음의 병이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줍니다.   육체의 병은 의사가 치료하지만, 마음의 병이나 영적인 질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마음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주변에 번째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길을 묻는 이들, 인생의 길에서 상처를 받아, 울고 있는 이들, 고난과 역경의 삶의 현장에서 지쳐있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사울은 주님을 만남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만나야 병을 고치는 것처럼, 환자가 의사를 못나면 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돌팔이의사가 최근에 나온 통계에 의하면 의사들이 자신들의 치료에 환자에게 나타난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술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일은 환자에게는 없이 중요합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사울 에게는 인상 깊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핍박자로 스데반의 순교현장에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시했던 사울이었으나, 사건은 그에게 적지 않은 의문을 주었을 것입니다.  상당히 충격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핍박 받고 돌에 맞아 죽어가는 이가 그렇게 천사의 모습으로 최후의 모습을 있을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받은 다메섹에서의 사명은 크리스천들을 잡아드리는 것이며, 그들을 핍박합니다.  유대종교인들이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과의 만남을 경험합니다.  만남의 경험은 전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였습니다.  그가 체험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였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막을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께서 광명의 빛으로 사울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의 영광의 광채의 빛에 사울은 꼬꾸라져 자기 인생의 전환점을 이룬 일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종교는 가문과 자신이 배운 학문에서 나온 것으로 그는 때부터 가지고 있는 전통과 가문에서 얻은 종교입니다.  그의 학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는 유대교에 정통하여 문화와 언어와 풍습에 익은 유대교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으로 사는 종교인으로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전형적인 자기 중심의 신앙형태를 가졌습니다.  그런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의 갑작스런 체험으로 자기 중심에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잠시 며칠간 눈이 멀었으며, 식음을 전폐하고 내면의 혼돈의 시기를 맞아, 자신의 내면의 소용돌이 치는 중에, 그의 안에 있는 어두운 면들이 드러나고, 자신의 종교가 자신의 내면의 자유보다는 억압으로 내몰았던 상태에서, 그는 어두운 면들을 벗고, 남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는 해로운 사람이 자신 속에 있는 깊은 내면의 상처들을 씻어내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종교의 껍질로 자신의 죄성을 눌러버리고, 자신의 의의 옷으로 치장하던 디펜스 메커니즘 자기방어나, 자기 공경의 성향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진정으로 다가가는 겸허한 성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변화

사울은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변화되면서 그는 자기의 종교적인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율법이 명하는 영적인 짐들을 지며,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된 상태에서 타인들을 억압하는 핍박자에게서 이제는 어둠에 억압된 사람들을 살리는 복음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종교의 형식적인 열심으로 자신을 얽어 아니라, 형식적인 종교적인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활용하여 자신이 배운 학문이나 종교적인 관습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람에서 내용의 사람으로 멋있는 사람이 됩니다.  교만한 사람에서 겸손한 사람으로 성숙해 집니다.  남에게 위협이 되며, 해를 끼치는 사람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전환합니다.

 

바울의 전도

1. 바울의 전도는 자기변화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는 과거에 기독교의 원수요, 크리스천들의 핍박자였으나, 다메섹으로 오는 길에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의 빛을 통해 새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2. 자기변화로 인한 확신하는 바를 전하는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사울의 자기 개종의 결과는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는 지식이나, 확신하는 바의 180 전환하는 인생변화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의 생각이나, 비전이나, 성품이나 마음까지 그는 송두리째 자신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확신한 바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증인이었습니다.  자기체험은 자기 증거에 대한 강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이끄는 것입니다.  전도는 못난 사람을 잘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있습니다.  신앙은 사람변화에 필요한 진리를 제공합니다.  고로 교회는 사람들을 살리고 변화를 주고, 올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아나니아의 역할

아나니아는 다메섹의 크리스천입니다.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전 중에 주님께서 지시하는 것을 순종하여 크리스천들의 원수인 사울에게 가서 그에게 안수하므로 그의 멀었던 눈을 시력을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성령을 부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나니아가 환상 중에, 그의 해야 일을 주님의 지시를 받아, 그가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아나니아는 다메섹의 크리스천들의 리더였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리더로서 항상 주님에게 열려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중이었는지 혹은 잠을 자다가 받았는지 모르나, 그가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계시는 그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는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에게 가서 그에게 사울의 환상 중에 받은 대로 안수하여 그의 멀었던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은 그리 간단히 해야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는 적대자요, 소문에 의하면 다메섹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잡으려고 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소 사람이라 함은 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로 사울은 성령을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안수를 받음은 개인적인 관계로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형제의 관계로 이해하고 그로부터 받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아나니아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또한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자신은 먼저, 남을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주며, 빛으로 살며, 남을 도울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는 치료자의 입장에서 그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울에게 찾아가서 그를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본문의 아나니아는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여 그가 지시하는 것을 따릅니다.그는 또한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지시를 따르면 그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살려주고 치료해주고, 남을 돕는 사람으로 역할을 합니다.

 

사울은 진리를 만난 이후에 변화되었고, 이후에 자신과 자신의 삶의 사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사울은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눈뜬 장님이 후에 그는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시력을 잃고 나서, 타인의 손에 이끌리면서 그는 자신이 보아왔던 것의 잘못을 알았습니다.  유대교에서 배운 종교습성들은 종교의 탈을 사람을 억압하는 것들이 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을 알게 되어 그가 바로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자신의 구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사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주님을 통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알았습니다.  자신이 3 동안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소경의 상태에서 진리와 어둠의 차이를 알며, 어둠 속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영광의 광채의 빛은 어둠에 있는 사울을 일시에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그는 앞에 설수 없는 죄인의 모습이며, 원수요 핍박자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핍박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음성에서 깨닫는 지난 날들의 과오를 생각하며, 그는 깊이 뉘우치며, 회개의 깊은 골을 팠습니다.  그는 회개를 통해 마음의 변화와 성품의 변화와 아울러 인생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셋째, 사울은. 자신이 해야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개종 시에 주님으로부터 자기 사명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아는 일은 참으로 좋은 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자기가 깨달은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만났던 주님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온 사람이 빛을 전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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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베트남에서 온 한 가족을 안다. 그들은 5년 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전도를 하였다. 그들은 북한의 탈북자들처럼 죽음의 사선을 넘어, 동남아시아의 몇 나라(베트남, 라오스, 태국등)를 거쳐서, 공산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공산베트남은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으로 소수의 종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믿고 지키려고 갖은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족은 불교를 가진 사람들로 그들이 사는 아파트의 거실에는 부처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향을 계속 피워 놓는다. 그들의 불교의식은 생활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처지나 환경을 넘어서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국경을 넘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환경가운데에서 사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갈림길을 지나온 위기를 넘어온 사람들로 또 다른 기회의 땅에서 사는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긴박감에서 지내다가, 새로운 자유의 세계에 와서 살면서, 그 사회에 동화해 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평범한 생활이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보스니안인 한 여학생을 만나 전도하였다. 대부분의 성인 보스니안 사람들은 옛유고 연방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모슬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다른 종파 사람들의 핍박을 피해, 당시 유고연방이 무너지면서, 각 민족이나 종파에 따라 한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나누어 지면서 각기 민족이나 종교분쟁으로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국제 난민이 되어 이곳 미국정부의 초청으로 난민으로 이곳에서 살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아 난민으로 살아온다.

그들은 모슬렘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들은 우선 기독교에 대해 적대시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여러 보스니안 성인들을 만나 전도하였지만, 대부분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고 종족전쟁을 피해온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피해의식 속에 살고 있다.

이락에서 온 젊은이들은 후세인이 이락을 통치할 때에 강압정치를 하는 중, 그 국민들 중에 가족이 죽거나, 핍박을 피해 자기고국을 떠나 국제난민으로 미국정부가 받아들여, 그들도 미국에 들어와 정착하여 산다. 그들은 모슬렘사람으로 기독교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아브달리라는 한 젊은이는 성탄절에 한국인의 떡을 가져다 주었는데, 별로 달가와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젊은이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수단에서 온 잃어버린 아이 청년들, 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적인 분쟁지역에 살다가, 어느 날 모슬렘의 습격을 받아,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고, 급기야는 혼자 살아남아, 집단적으로 자유를 찾아, 고국의 국경을 넘어, 이곳 미국의 종교단체들의 도움으로 카톨릭 교회의 지원으로 미국에 망명을 하여, 난민신분을 받아 이곳에서 하루 하루 일일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 젊은이들은 서로 3명씩 혹은 4명씩 모여 한 아파트에 기거하여 살고 있다. 어느 날 아파트 주변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얼굴이 검지만, 키고 훤칠하게 큰 가느다란 젊은이들을 만나, 전도를 하였다. 그들과 함께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자신의 태어난 생일과 정확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지어주어 각자는 그런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
예례미야, 피터등이다. 그들 가운데에 말라리아 열병을 앓았던 후유증을 가진 젊은이가 있어 함께 성경 공부하는 모임 가운데에 뜨겁게 그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데, 계속 눌러 오던 심한 두통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았다.

난민들중에 쿠바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미국의 가까운 나라에 있다보니, 쉽게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와서 살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 카스트로에 의해 오랫동안 경직된 사회를 피해, 자유를 찾아,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 그들중에 카톨릭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대개 복음에 대해 우호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 가운데에 일부 가족을 두고 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난민인 경우에는 부인이 공산주의자라서 헤어지고, 이곳 미국에 와서 혼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다니엘이라는 이 친구는 쿠바에서 펜타코스탈신학교(오순절교단)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영어를 스페니쉬어로 중간에서 통역하는 그를 내세워 쿠바민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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