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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7
    아름다운 여인 룻의 비장한 선택
    목동

아름다운 여인 룻의 비장한 선택

룻기 1:15-22
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러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신앙은 선택으로 표출된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순간 순간들이 넘실댄다. 금성 냉장고나 텔레비전에 대한 한번의 선택은 제품의 품질 보증의10년을 좌우 합니다 라는 광고를 접한 적이 있었다. 항상 인생 앞에는 여러가지 선택의 기로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인생의 길에는 천안 삼거리와 같은 길들이 많이 놓여 있다. 그 천안 삼거리에서 한 길을 선택하여 가면 그 길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다른 도로 가는 세 갈랫길로 나뉜다. 하나는 전라도로 가는 길이며, 하나는 경상도로 가는 것이며, 그리고 충청도로 가는 길이다.

오랜만에 즉 7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났다. 민족의 앞날에 중요한 결정을 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함께 맞이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북한은 특히 개방이냐 아니면, 폐쇄냐 하는 기로에서 생존의 갈림길에 달려 있다. 남북은 이제 따로 설수 없는 민족 공영 공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남은 북을 품지 않으면 번영으로 더 나갈 수 없으며, 북은 남과 손을 잡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남북 민족의 공동의 운명의 갈림길에 있는 것이다.

롯의 선택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삼촌 아브라함 앞에서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장차 망할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의 에덴동산 같은 곳을 선택하여 나중에는 그곳에서 의인으로서 심한 영적이며 도덕적인 우울에 걸려, 끌려 다니다 시피하는 타락된 사회에서 맛 잃은 소금처럼 이리 저리 치이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그 땅의 사람들과 같은 운명 안에서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롯 유다는 몊 푼에 스승을 파는 후회막급의 선택을 하여, 결국 자살로 자신의 생애를 끝냈다. 지옥의 자리에 떨어졌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통일 왕국의 통일 치세의 길을 제시하는 노인들의 지혜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분단으로 이끄는 자기 동무들의 어리석음의 과욕의 분단의 길을 선택하여, 결국 통일 왕국인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는 안타까운 민족적인 손해의 행보를 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영생을 위한 선택을 통해 그는 주님의 제자들 중에 수제자로 그의 사역을 이어받아, 초대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는 역할을 하였으며, 쿠오바디스라는 영화에도 나오듯이 그는 십자가의 죽음의 선택의 기로에서 도망가듯 로마에서 빠져 나오다, 그는 다시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가시는 주님의 환상을 보고 그는 결국 주님을 위해 죽기로 하는 십자가의 순교의 선택을 하였다.

사업에도 투자 하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투자한다. 공부도 무엇을 해야 할지를 선택한다. 연애도 결혼도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를 선택하는 가는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늦은 막이나 혹은 갖 결혼하자마자 이혼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쏘아져 나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의 실수로 인하여, 잘못된 선택을 돌이키려는 경향들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삶의 이야기 가운데에 이 이야기는 지극히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전의 이야기이다. 어려운 일에 있을 달콤한 축복의 세월을 교훈하는 고진감래라는 말이나, 역전의 삶의 통용어인 기사회생의 말이라 든 지를 생각나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진한 감동을 주는 드라마에 매료되어, 그것이 한류가 되어 외국에 까지 타민족의 사회에 영향을 주는 감동의 이야기로 알려 주고 있다.
한류의 원조인 겨울 연가를 저는 감명 있게 본 적이 있다.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는 특히 주인공의 죽음과 그 죽음 후에 있는 꿈 같은 재회의 기회로서 죽은 이에 대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는 그 드라마에서 주님에 대한 저의 첫사랑의 애끓는 듯한 과거의 주님에 대한 사랑을 기억나게 하여, 영적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주인공은 죽은 첫 애인에 대한 첫사랑의 향수를 그녀를 자주 괴롭혔지만, 그녀는 그 첫사랑의 분신으로 그녀 앞에 다가온 새로운 인연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의 연결로 끝나는 것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많은 인생의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의 유산을 남겨주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많은 민족의 이야기를 말로 전수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자녀들 세대에 전달하며 자기들만의 민족적이며, 신앙적인 희망의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원래 성경은 기록된 문자라기보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말로 전달되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의 당시에도 신약은 없었고 다만 그들에게는 주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만 전달되며, 그 이야기나 간증은 생명력이 되어 사람들의 삶에 파고 들어 죽어가는 인생들을 변화시키는 부활과 생명의 메시지로 널리 로마 세계에 살고 있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할 것 없이 전파되었다. 나중에는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로 우뚝 서게 되었다.

나오미는 고향 땅을 떠나 객지 생활 10년 만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어버린 인생의 쓰라린 상실의 계절을 맞이했다. 모압이라는 땅에 들어가는 그녀에게는 이민의 삶이 기회의 땅이 아니고, 그녀에게는 상실과 방황의 쓰디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이민 생활에서 맞이한 이방 여인이었던 두 며느리는 모압의 여인들로 이방 풍습에 젖어있던 그 며느리들은 남편이 죽자 그들에게는 희망이 사라지고, 자식도 없는 처지에서 당연히 그들을 보낸 친정 집이며, 같은 동족인 모압 족속에게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다.

나오미는 그 자부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줄 만한 것이 없었다. 다만 삶의 시련과 황량함으로 남은 자신의 삶의 부담을 안겨줄 뿐이다. 룻은 아무것도 없는 희망이라고 볼 수 없는 그녀의 시어머니의 황량한 고통의 삶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겉으로는 희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두 여인의 삶은 시작되는 것이다.

룻은 그녀의 시어머니의 삶을 보지 않고, 그녀의 배후에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면서,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시어머니를 자신이 돌보아 주리라는 일념으로 시어머니를 세상 끝까지 따르려는 아름다운 선택을 하였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하는 것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할 때가 많다. 룻 그녀는 황량한 시어머니의 삶을 끌어안으며, 그 험악한 삶의 세월들을 헤쳐나가리라는 비장한 각오의 선택을 하고 있다. 룻은 그녀의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공동 운명체로 이방 여인이었던 자신의 삶을 시어머니가 섬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택하는 기로에서 그녀는 보이는 처량한 시어머니의 삶을 보지 않고 그녀의 배후에서 새롭게 역사하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룻은 그녀는 자신의 삶을 그녀의 시어머니의 삶과 묶는 결단의 말을 하고 있다. 살아도 그녀와 함께 죽어도 그녀의 곁에서 죽을 것이라는 일사각오와 같은 희생적인 결단은 그녀의 선택을 나약하지만, 훌륭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비장한 선택의 말을 내뱉고 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보면서, 그 시어머니의 인생의 삶의 삭막하고 실패한 자처럼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거기에 계시는 그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며, 오히려 희망이 없는 시어머니와 함께 하고자 하는 자신의 선택이 당연한 귀결임을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룻의 부활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부활 신앙은 인생의 실패와 좌절의 십자가를 통과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믿음을 갖게 한다.

나오미는 감동적인 며느리의 결단과 그녀의 확고한 마음을 보고는 그녀에 대하여 시어머니로서 그녀의 기특함을 보고, 그녀의 선택을 받아 용납하였다. 이제는 한 여인의 황량한 삶이 아니라, 두 여인의 아름다운 삶의 미래가 전개되는 것이다. 인생은 좌절과 실의 속에서도 함께하는 두 마음의 결합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지라도 부부가 함께 마음으로 한다면, 그 일은 쉬이 물러가며, 그 어려운 때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어려움이 극할 때에 주변에 있는 우인이나 친우들의 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격려나 충고는 자신에게 엄청난 힘을 얻는 계기가 된다.

나오미는 며느리인 룻과 함께 고향 땅을 다시 밟았을 때에, 온 동리가 그들을 보러 나왔다. 그 두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고향 사람들은 옛날 같은 동네 이웃이었던 나오미를 보며,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처럼 기쁨의 여인 같은 모습이 아니고 쓸쓸한 노인의 황량함과 희망을 바라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한 그녀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오미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고향을 떠 날 때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희망찬 이민의 삶을 살 것을 바라보면서 나갔지만, 이제는 타향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아픔을 고백하는 쓰디쓴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며 기쁨의 여인이 아니라, 괴로운 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인생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행복의 파랑새를 좇아가는 젊은 시절에 가고 있던 꿈을 향해 나가던 시절이 어느 덧, 지난 날들을 회고하며, 회한에 빠져 슬픔과 실의에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게 한다. 젊은 시절의 강인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생기 있고 발랄한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몸도 스스로 가눌 수 없는 무능하고 연약한 자신을 깊이 느끼는 시간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생은 결코 우리의 삶을 그렇게 결산하도록 해서는 안되는 삶의 진지함이나, 인생의 숭고한 발자취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록 자신의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의 생명이야말로, 자신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후회하고 쓸쓸한 노후를 맞이하는 그때에야 말로 인생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고 자신들의 처하는 위치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노인이었던 나오미의 삶의 처량하고 처참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황량한 그녀의 노후에 더 너머에 있는 그녀의 말년의 세월은 인생 행복 귀결이라는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다복한 여인의 말년을 보내며, 지난 쓰라린 세월들을 되갚아 그렇게 찾기를 힘썼던 그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왜 인생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일을 신의 조화라고 여기는 가 여기 나오미도 자신의 고되고 고통스런 삶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이 이렇게 황량 스럽게 된 것은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인생의 생사 화복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삶의 이야기 중심에서 도외시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분의 손안에 나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가 나를 지으셨고, 나를 이끌어 이 땅에 살게 하였으며, 그리고 나를 따라 내가 살아온 길에 서 계셨으며, 장차 나의 미래를 이끄실 분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이나 불행이나, 죽고 사는 일들은 그 분안에 있는 우리 인생들이 겪은 일들이며, 그리고 장차 맛보야 할 일들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던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룻의 하나님 선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녀는 과연 지혜로운 선택을 하였으며, 자신의 인생의 운명을 넘어가는 크나큰 인생 선택의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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