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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27
    음악을 들으면서
    목동
  2. 2008/08/18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찾아(상담사례)
    목동
  3. 2008/08/16
    아시안 이민자들에 대한 상담의 필요성
    목동
  4. 2008/07/31
    자아 시스템의 치유
    목동
  5. 2008/07/31
    내적치유와 용서사역에 대해
    목동
  6. 2008/03/11
    고질적인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목동
  7. 2007/12/28
    의술의 기적
    목동
  8. 2007/08/02
    자기방어 시스템의 예들
    목동
  9. 2007/06/22
    인간이해와 상담
    목동
  10. 2007/06/15
    걱정을 극복하려면
    목동

음악을 들으면서

사람은 오감의 특성에 따라, 어느 경향이나 그 경향을 따라 자신의 취미나 즐기는 엔터멘인트에 심취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보는 눈의 감각에 자극이 되어 보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를 보거나, 혹은 독서를 하는 경우이며, 청각에 의존하는 취미는 음악을 듣는 것이리라. 청소년 시절에 공부를 하든지 책을 읽을 때에 60,70년 대에 유행하던 미국이나 유럽의 팝송 음악을 들으며, 그 시간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내가 있는 미국의 한 도시에서는 과거 60,70년 대에 유행했던 팝송을 전문적으로 틀려주는 미국의 F.M. 음악 방송 전파 매체도 있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 그 방송 매체를 듣다 보면, 옛날 들었던 귀에 낯익은 음악 소리에 어린 청소년 시절의 향수에 젖기도 한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에 나의 다운된 마음을 추수리며, 나의 내면에 강한 반향을 일으키며, 나의 흩어진 마음을 다짐하게 결단의 영음으로 들려올 때가 많다. 젊은 날에는 팝송이나 웨스턴 음악을 들을 때에 젊은 날에 열기에 불을 붙이며, 일상의 평범에서 사는 나의 마음은 먼 미래로 날아가는 나의 영혼의 나래를 펴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이상에 대한 꿈에 대한 열기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부인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여 마음의 고요와 마음의 집중에 도움을 주는 음악의 감성의 흐름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클래식 음악은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보다는 더 음악이 주는 정서적인 혜택을 받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 한다. 그것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악보를 보고, 자기가 다루는 악기나 음정에서 나오는 멜로디나 들려주는 소리를 만드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갖기 때문이 아닌지… 나는 천성적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을 듣는 것이 없다면 나의 삶은 삭막하며, 활기차지 않다. 슬플 때도 음악을 듣고, 마음을 달랜다. 그리고 마음이 우울할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가다듬으며, 심기일전의 마음을 세운다. 그리고 공부할 때에나, 책을 읽을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흥에 겹든지, 아니면 음악에 심취하면서, 집중하면 능률도 오르고 긴 시간을 마음을 잡아서 그것에 매달려 머리를 쓰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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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찾아(상담사례)

어느 자매님이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 하기를
자기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 진다고 하였다. 
말의 내용은 목청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아의 목소리를 잃어 버렸다는 말이다. 
자기로서 말하는 것이 부모에 의해서나 학교에 의해서나
거부 당하든지 심한 상처를 받았을 ,
그의 자아가 안으로 움츠러 들면서 목소리 잃어 버리는 것이다. 
목소리는 나의 정체감을 나타내는 통로이기도 하다.
나는 자매에게 연관 사건들을 되살려 보게 하였다.

 

먼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술로 생활 했었던 이었는데
화가 나면 아무거나 가지고 매를 때리곤 하였고,
녀의 어머니는 화나 있었고,
자녀들에게 말하거나 감정을 맘껏 드러내도록 받아 주지 않았다.   

 

어느 그녀의 어머니는 선반 위에
놓아 돈이 없어 졌다고 그녀 (어린 시절, 7 즈음)에게
추궁하기 시작하여 아무리 가져 갔다고 해도,
거짓말 까지 한다고 무섭게 때리기 시작했다. 
어린 그녀는 결국 살기 위해 거짓말로 가져 갔다고 고백 했는데,
엄마는 이제 도둑이라고 거의 실신 정도로 때리고 놓아 주었다. 
때부터 자기의 목소리가 들어 같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녀의 내재아 (내적아이)
그녀의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문제는 기도를 하는 데에도
어느 것이 자기 진정한 인격에서 나오는 기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자매에게 조심스러이, 때로 돌아갈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매는 무섭다고 하며 용기를 내어
다시 그렇게 맞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 하였다. 
사람의 감정과 기억은 사라지고
없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누구든지 아픈 기억을 올리면
금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 있다.

 

 나는 어린 7살의 자매에게 목소리로
지금 그녀의 어머니에게 말을 있는지 물어 보았다. 
우리는 번의 어려움 끝에 성공 하였는데, 
자매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 두려움 없이 있고,
기도 때도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와,
자신이 아닌 것을 분간 있고
기도도 더욱 효과적으로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그런 환경에서
그때의 아이가 안으로 들어 움츠려 있든지
혹은, 다른 억압의 영이 영혼을 억압 상태에서
계속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억압된 위에 다를 자아를 만들어 내고
자기가 아닌 자기로서,
자기도 어느 것이 진짜 자기인지
때로 분간이 가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짓 자아 함께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거짓 자아가 자아 행세 하기도 하다가
정체를 가리고 숨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과감히 쫓아야 하는데
이유는 이것이 다를 이기 때문 이기도 하거니와
계속 다른 영으로 경우에,
나의 삶을 살지 못할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위선 행하기도 하여,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 하는 방법이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나,
성경 공부를 통해서나 있겠지만
사건으로 돌아가 영을 대적하고
영혼의 상처는 치유하고
성령님을 초청하여 사역 하시도록 부탁 드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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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이민자들에 대한 상담의 필요성

 

뉴스 위크지에 나온 기사를 읽고서.....

(아시안들에 대한 상담에 대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안 이민자들은 자기들의 운둔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자신의 속 마음에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 놓고 상담을 받기를
타 민족들보다는 자발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타민족보다도 더 언어습득이나 문화적인 동화작용이 더디며,
더 나아가 미국문화나 환경이 주는 헤택을 덜 받을 경향이 있다.

아시안 이민자들은 나름대로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페쇄적인 문화적인 이해나 태도는 이민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중문화의 테두리에서,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정신적인 스크레스를 많이 받고 살고 있다.
특히 가정새활에서의 동서양의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혼란이나,
혹은 가족간의 갈등에서 오는 문제들로 인하여 겪는 정신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상처를 갖고 사는 경우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더 하다.
남미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자기들끼리 터놓고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다.

동양의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침묵이나, 운둔적인 태도나,
비자발적인 사고나 행동양식에서 겪는 내면의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 상담을 받으려는 경향이 적다.
전쟁을 겪은 캄보디아인이나 베트남인들은 전쟁후유증을 앓으면서
이곳 이민생활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한국인들도 그렇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의 가정생활은 문화적인 차이,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이 생긴다.
특히 서로 문화가 다른 배우자들사이에는
서로간의 다른 문화적인 갈등과 언어의 소통의 차이로 인한
더 많은 갈등을 안은채 살아오고 있다.

그러기에 이곳에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일정한 상담사역은 많은 필요을 요구하게 한다.
정신적인 상담을 거치지 않고 살다가 육체적인 질환으로 발전되기도 하며,
혹은 혼돈된 인간관계의 모순과 곤란속에서 그저 묵묵히 참아 갈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은 더 외롭고, 그리고 삭막하며, 깊은 고뇌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고로 아시안들중, 많은 경우에 상담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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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시스템의 치유

우리는 가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

반응 하는 나자신을 보고도 놀랄 때가 있고

또 되돌아 서서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마음 끓이며

후회하고
자책할 때도 있는데

그것은
지금의 나와 상관없이

나에게
programming되어있는 자아의 시스템 때문이다. 



이것은 부모에게서도 오고 세상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 되어진 나름대로의 옳고 그름의 시스템이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스스로의 정의가 되어

지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나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 


     이것을 성경에서는 옛 자아라고 하기도 하고

육신 이라고 표현 되기도 한다.  이 시스템 중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이것은 어릴 때에 받은 영향일수록 더욱 강력 해지는데,

여러 가지 치유방법의 유형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태아의 치유기도로 많은 부분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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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와 용서사역에 대해

성경과 내적 치유( 3회 영성 수련의 모임)

* 내적 치유가 왜 필요한가?

인간의 마음 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로 나눈다.

믿음의 반응은 우리의 의식의 이해와 의지의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무의식과 영적인 세계까지 포함한다.

나도 모르는 나의 뜻과 마음

 겉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속으로는 내 뜻대로 하는지를 마7: 21

139: 23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나도 모르는 나의 뜻과 마음이 있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에, 이를 발견해 이 세계까지도 복음의 빛과 능력으로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 갈 필요가 있음

내면의 중시

구약은 외형을 중시 / 신약은 내면을 중시, 주님께서 내적인 차원을 강조 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 라는 말씀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마라에서 엘림으로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 15: 23)에서 쓴 물을 경험한다.

15: 16에 백성들이 원망하니 하나님께서 너희가 앞으로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그 말씀을 잘 지키면 내가 너희들을 치료하리라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 엘림에서의 치유 및 안식

원죄로부터 시작된 상한 마음

아담의 원죄/ 마음이 병들다.  죄를 범하면 두렵고 아프며 죄책감과 미움의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는 의식이 생긴다.

가장 근원적인 상처는 불신이다.  상한 인간의 원 마음의 상태

 열등감과 죄의식의 결과인 수치와 가리움 창3:7, 버림받은 마음으로부터 생긴 아픔과 불신, 3:14-24, 경쟁 사회의 사랑의 굶주림, 가인과 아벨의 예, 한으로 유전되는 분노 창 4:5-15, 이차적인 아픈 마음 사61:1 깨어진 마음, 가난, 상함, 포로, 갇힘, 중독은 포로된 마음에서 생김, 중독은 금단 증상과 내성 현상이 있다. 이런 마음의 현상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로 자유로와지며, 치유됨

상한 마음 밭에서 천국이 잘 자라지 못함

13장 에서 마음 밭의 비유/ 길가밭, 돌짝밭, 가시밭, 옥토밭, 염려, 두려움, 불신,

복음의 내적인 적용 과정이 내적 치유의 할 일이다.

내적인 마음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의식하거나 느낄 수 없는 영역, 2. 그리고 무의식 세계로 덮어버리는 경향등. 망각, 감추임

상한 마음은 두려움, 굶주림, 불신, 불안등에 노출되어 있다. 치료되어야 한다.

내적 치유가 되어야, 내면의 성장, 성숙도 있고, 외적인 하나님 나라가 건전하게 성장한다.

내면의 치유를 통해 내면의 세계에서 주님을 찬양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하나님의 이름) 송축하라 시편 103:1

 

내적 치유를 위한 주님의 진단들

아픈 내면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방법들

1.       예수님은 빛으로 우리를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며(1:9)이며 빛은 어둡고 악한 것을 드러내신다(3:20) 아무리 거짓으로 우리의 아픈 곳과 죄를 무의식의 어두움 가운데 숨기더라도 빛 되신 예수님께 드러내신다.

2.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깊이 숨어있는 것을 드러내신다.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니라 말씀의 기능을 통해 무의식의 깊은 곳에 숨은 죄와 거짓 그리고 상한 것들을 깨우쳐 알게 하고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드러난 것으로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의 피 흘리심의 보혈의 은총과 능력을 힘입도록 인도하신다. (양심, 말씀,율법: 증상, 진단의 기능)

3.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속에 있는 죄와 상한 것들을 드러내신다.  십자가는 상한 마음을 숨겨준 세상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기에 십자가를 만나면 세상으로 인해 감추어졌던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만다.

4.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드러내신다. 16: 17-18 , ,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책망은 사실이 아닌 것을 무엇을 밝히고 드러낸다.

 

내적 치유에 대한 기본 지침

1.       내적 치유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정당한 사역입니다.

2.       우리는 예수님께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는 내적 치유 사역을 하셨다고 믿습니다.( 4:18)

3.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은 (13:8) 우리를 억누르는 사단으로부터 자유케 하실뿐더러, 우리의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과거의 기억 및 그로 인한 상처를 짊어 주시고 고쳐주십니다.

4.       과거의 상처는 감정 및 개성, 사회적인 관계에 여러 가지의 병을 가져다 줍니다.

5.       반면에 과거의 상처에 대한 치유(내적 치유)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파손된 모든 영역의 회복 및 문제를 치유시킵니다.

6.       내적 치유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이런 것들은 다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주고 받음/ 이런 용서의 수용 및 인간의 심리적 쇼크에 대한 반작용으로 습관적/관례적 반응을 보이고 행동하려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3:12-17).

·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비추어 재해석하고 치유해주시도록 기도로 예수님을 초청하십시오( 8:28).

·         만약 부모 혹은 조상의 죄가 나쁜 영향을 미치면, 가계를 통해 흐르는 사단의 역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차단하십시오.

·         어떤 부정적인 영향의 원인이 되는 어떤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한 의존 내지 묶임(soul-tie)으로부터 기인한 사단의 공격을 절단하십시오.

·         예배, 기도, 성경 공부, 묵상 훈련들을 통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십시오(자신의 가치성과 삶의 의미)

 

내적 치유에 대한 이해

·         내적 치유가 과거의 상처의 치유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어 과거의 감정의 노예에서 해방될 때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         내적 치유가 속 사람의 치유라는 것은?

    인간의 속 사람은 정신(mind), 의지, 마음과 관련된 모든 영역의 치유를 포함하며,

    우리의 감정(emotions), 영혼(psyche, soul or spirit)등도 들어간다.

    내적 치유는 이런 부분들을 다룬다. 

·         내적 치유는 영적인 상태, 감정의 상태, 기억의 장소, 인간의 마음에 대한 사단의 침투나, 혈통이나 가계를 통해 인간의 내부 성향에 들어오는 사단의 공격에 대한 치유를 모두 포함한다. 영의 질병은 우리가 행한 죄(숨은 죄 혹은 깨닫지 못한 경우)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감정의 질병은 우리가 당한 것 혹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에 의해 발생한다. 내부 성향의 문제들은 조상의 죄가 현재의 우리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행함으로 생긴다.

 

심리적/영적인 관점에서 본 과거의 감정의 상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내적 치유에는 표면적이고 기본적인 치유와 내면적인 치유가 있다. 표면적인 치유는 육체적인 치유나 자세나 행동의 치유 등이며, 내면적인 치유에는 영적인 치유 즉 관계의 치유가 있다. 그 영적인 치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치유와 타인과의 관계 치유가 있다.  감정에 대한 치유는 자신(자아)에 대한 치유와 자아상(self-image: 자기가 이해하고 바라보는 자아상)에 대한 치유가 있다.  자아의 문제보다는 자아상에 대한 문제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1. 사건 발생에는 가계의 조상들의 사건들, 어릴 때나 과거의 경험이나 사건, 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들이 감정(상처난 상태나 억압된 상태)로 남아있다.  그 상처난 감정들은 우리의 두뇌의 기억 장치에 기억으로 남아있다.

 

2. 사건 발생에 대한 이해는 사건이 발생하여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이 나타난다. 그 반응이 상처로 남아있다. / 과대 반응은 발전하여 태도나 성향으로 형성한다.

(: 자신과 타인에 대한 상처, 반사회적인 행동, 유년기의 뻔뻔스러움, 통제 불가능, 자신의 감정의 포로, 과격한 행동)

*그 반응들이 낳는 성향들 즉 태도들:

* 자신에 대해 지나친 절제나 통제하는 태도, 자신의 감정의 포로된 상태,

자신을 학대하는 태도, 상처난 반응의 감정들이 더 내면으로 상주하여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남음, 대인 공포증, 정신적인 질병(신경성, 불안증), 결벽증, 완벽주의 등이다.  

* 그 부정적인 상처난 반응들은 자신에 대한 행동 성향을 낳는다(과격적인 행동, 퇴행성 행동, 비사회적인 행동)

* 그 반응에 대해 내적인 치유를 할 때에, 그 반응에 직면하며, 인정하고, 표현하며

그리고 나서 주님에게 고백하며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고치거나 치유할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해결 받음

 

사건 발생에 대한 과거의 상처에 대한 대처

상처를 받는 것보다는 상처에 어떻게 응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분노 내는 것은 죄가 아니나,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4:26)

 

(실제적인 처리 방법)

1.       복수하는 것을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2.       마음의 상처를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도록 내어 드린다.

3.       상처 난 자기의 모습에서 자기 신뢰(자신에게 상처를 준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얻음: 예수님의 신뢰(예수님에게 투사 내지는 그의 공로를 의지하는 믿음)를 얻음으로

4.       예수님을 통한 상처 난 인간관계의 회복(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근거가 됨)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마태 18:15-35, 5:23-24)

1.       예수님께서 용서하지 않는 마음(관용의 부족)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하심

2.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잘못했을 때 (이 비유에서 빚으로 나옴) 우리의 죄의 경중을 떠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마태 18:23-27).

3.       누군가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혹은 (당신 스스로의 실수 때문에)쓰라린 사건을 경험하였을 때, 어떤 잘못이든지 관계없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 있는 부정적인 영향들(질병이나, 잘못된 성향으로 발전 등)과 사단의 공경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4.       과거의 상처로 인해 생긴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모든 종류의 고통, 즉 영적,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인 고통을 초래합니다.(마태 18:33-35).

5.       누가 잘못하였던지 관계없이, 어떤 상처가 있으면, 당신의 책임은 항상 먼저 가서 용서를 하거나 받거나 해서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입니다 (마태 5:23-24).

6.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이 용서해 주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4:32).

7.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적극적으로 한 지체로서의 기능을 감당하고 교제에 참여함으로서 영적으로 성장해가면서, 각가지 종류의 내적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 4:15-16, 5: 10).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들

1.       용서하지 않는 마음의 죄를 고백하십시오(마태 18:15-35, 마태5:23-24, 요일 1:9).

2.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그의 용서를 수용하십시오(요일 1:8, 9).

3.       우리가 받은 상처를 적절하게 표현(발산)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상처의 짐을 맡김/ 마태 11:28, 주님의 평안을 구함/ 요한14: 27).

4.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감정에 지배 받기 보다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한 의지의 지배를 받으십시오(요한 20:22-23)(상처 난 감정으로는 안되지만 자신을 돌보는 의지로는 가능합니다.

5.       하나님께 그 사람의 죄의 용서를 빌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통해 오는 자신에게 향한 복을 받으십시오( 42: 10). 욥이 자기 친구들의 잘못된 위로한다는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복을 빌어줌

6.       만약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해주었으며, 잘못을 잊고 그 사람을 믿어주고 한 형제로 대해 주십시오(그 사람 스스로가 내가 그 사람을 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경우에).


상한 마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상훈저)과 신학교강의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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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질적인 병폐내지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늘 잊어 버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늘 걱정에 휩싸여 사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남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항상 약속시간에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늘 무엇인가를 잊어버리는 습성은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거나
어느 부분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할 때에 일어난다.
차에서 내릴 때에 차열쇠를 두고 내리는 일이나,
아파트집을 나설때에도 문열쇠를 집에다 두고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증상은 자신에 대한 연민적인 상태의 지속이나,
자기만의 세게에 몰입하여 있으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외부의 세계와의 대상화에서 자신의 전체일을 파악하지 않아,
늘 보면 길을 나서거나 일을 준비할때에는 무엇인가 빠진 것들이 있다.
특히 이런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의 사고반경이 부분적일 때에는 빠뜨려 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고로 자기중심의 패턴에서 벗어나는것은 물론 부분적인 것에서
전체를 볼수 있는안목을 키워야 할것이다.

늘 걱정을 안고 사는 경우는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거나, 소심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보니 쓸데없는 걱정,
부질없는 소일까지 늘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삶자체가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고로 사람이 일상의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닌것이다.

걱정의 생각은 사고하는 인간의 의식을 가두어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처럼 늘 걱정의 한 짐을 지고 살아간다.
고로 이런 상태에서 걱정을 벗어나는데 마음의 평안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신의 마음이나 삶의 위치가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에,
평안이 생긴다. 신을 믿고 의지하는 유익은 인간의 자기존재에 대한 무지나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신을 통해 사람은 자기의 존재의 위치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불안을 극복하는 신이 주는 평안을 맛볼수 있다.
그 평안함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걱정하는 습성을 해소할 수 있다.

남을 향해 항상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사람은 자신안에 자신에 대해
부정적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오랫동안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싸여서 그렇게
남에게 욕을 해대는 사고패턴에 길들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에게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욕을 하므로
일시적인 마음의 짐을 더는 효과가 있으나,
그것이 늘 상용적으로 나타나면, 자칫 자신의 결점을 평소에 노출하며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입에서 뱉어나오는 악한 말들은 마음에서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을 가꾸는 일은 마음에 들어가는 정보를 통해 형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는 가는 자신의 언어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늘 마음을 열고 좋은 말이나 선한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 지식을 통해 마음을 바르게 갖게 한다. 그리고 바른 판단을 하게하며,
옳은 일을 하게 하며, 좋은 말을 쏟아낸다.
반면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남의 말이나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한다.
마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래동안 묶은 생각들로 고여 있으면,
신선하지 않게되며, 마음의 창은 어두워 지고,
그 어두운 마음안에는 악한 생각이나 쓸모없는 부정적인 사고들로 차게 되어,
그런 악한 것들을 입으로 쏟아내게 되어, 자신의 입을 더럽힐 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욕을 해대기가 쉬워진다.
그동안 좋았던 인간관계도 쓸데없는 말이나
부정적인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을 통해 악화되기도 한다.
고로 사람은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신선하고
선하고 좋은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필요하다

약속시간에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는 습성은
항상 우리의 일이나 약속시간에 대한 준비가 그 시간의 끝에 맞추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시간에 늦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정해진 약속시간을 향해 그 시간에 닿으려는 생각때문에,
그 생각에 의해 진행하는 시간계산이 갑자기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인하여
제대로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되어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내에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시간의 끝에다 맞추다보니, 일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고로 항상 시간을 처음에 맞추어 나가면
시간의 끝에 가서는 제 시간에 약속시간을 맞추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잘 사용하는 길은 그 시간의 때에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다.
시간은 필요에 의해 생겼으며, 유용한 사람은 필요를 따라 시간을 잘 선용할 것이다.
고로 사람은 때에 맞는 필요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 무엇을 할 때인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정복하여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 내 영혼의 일에 대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이 그런 일을 생각해야 할 때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생각해보면 영혼의 유익을 위해 좋은 일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병폐적인 습관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길들여온 자신의 사고의 패턴에 의해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이 고칠려고 애를 쓰고 결심하여
그것을 개선하려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고로 이런 패턴을 깨뜨리기 위해 과감하게 자신을 향해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신을 내어놓는 일이 필요하다.

신을 믿는 저자로서는 그런 고질적인 패턴을 깨는 방법으로는
그런 병폐적인 패턴을 깨는 기도를 드리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이런 패턴을 깨는 기도는 내면의 치유에 필요한 내적인 치유기도의 한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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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의 기적

미국에 있는 저소득자들을 위한 보건소에 정기 검진으로 의사를 만나러 갔다.
그날 검진하는 의사는 인도계의 여의사였다.
그녀는 자신을 세밀히 검진하고, 자신의 상태가 안 좋았다.
그 여의사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렇지만 자신은 집에 와 그날 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병원에 빨리 가라고 한다.

3일간을 병원에 들어갔는데, 미국병원은 병의 정확한 병명을 규명하는 일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조사를 하며 신체를 검사한다.
여러 번 몸에서 피를 채취해 가며, 시티촬영과, 여러 번에 걸쳐서 엑스레이촬영을 한다.

첫날은 미국흑인여의사가 자신의 몸이 심장이 늘어났다는 평소의 병을 알고 있는 것에서,
이번에 병원에 들어와 종합검진을 받으며,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병이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폐에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알고, 폐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 폐 주변에 물이 찼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숨을 쉬기가 수월치 않았던 것이다.
그 흑인여의사는 동료미국여의사와 함께 등뒤 폐 있는 부분에 긴 바늘을 찔러,
바이압시로 거기에 고여있는 액체를 뽑아냈는데,
물이 나오면서 피가 섞인 물이 나왔다. 그 액을 빼는데, 정확하게 채취를 하지 못했다.
시술을 정확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의술은 정밀하고 세미한 진단으로 정확하게 병명을 판명하는 일이 우선이며,
그 병명에 따르는 치료 및 시술이 필요할 것이다.
시술도 의사들의 스킬이 있는 솜씨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날, 그 병원 안에 있는 피를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파트에 갔는데,
거기에는 중국계인 젊은 남자의사가 있었다.
그 검사실에는 중국계 말레이인이 보조로 그 의사를 돕고 있었다.
젊은 의사는 처음에 대면하는 중에,
그에게 받은 인상은 환자로서 그 의사에 대한 신뢰가 간다.
그 의사는 사람이 침착하게 생겼으며 여러가지 면에서 감성적으로 탁월한 면을 보인다.
그의 손끝은 아주 세밀하게 스킬 있는 솜씨로
긴 바늘을 자신의 등뒤에 꽂는데도 아프다는 감각을 깊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 하였다.
한 30분 동안을 바이압시 바늘로 그 액을 빼냈다.
그의 의사로서의 시술은 환자에게 신뢰를 주며,
자신의 의술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모습에서
그의 시술에 대한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꼈다.

그날 병원에서 잠을 자는데,
그 액이 빠져 나간 자신의 몸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며,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의술에서 얻은 몸의 변화를 느낀다.
처음에는 잠을 들지 못했는데, 나중에 잠이 들면서 숙면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을 통해 몸이 새롭게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하여
몸을 강화하며 회복하여 주는 면역 시스템의 활성으로 인하여
발과 다리가 부었던 부분이 붓기가 빠지면서,
몸이 아주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병원에 자신의 몸무게가 192파운드였는데,
퇴원하여 며칠이 지난 후에 집에서 재어보니 165파운드였다.
몸이 아주 가벼워졌다.
15년 전에 미국에 왔을 때에 가졌던 몸무게가 되었다.
가벼운 몸놀림에 주님께 감사한다.

병원으로 자신을 보낸 그 여의사와 젊은 의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의술이나 환자에 대한 의술의 성실함에 충실한 면들을 보여주었다.
우리들 삶의 주변에 고마운 분들을 경험한 일들이 비일비재 있다.

과거, 14년 전에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의 치료에 도움을 준
전달훈이라는 한국의사가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는 신앙도 돈독하고 힘든 유학생을 돕는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저녁시간에 시작된 통증을 견디지 못하였다.
급한 상태의 몸을 진찰을 받기 위해
그 의사의 집으로 가 거기에서 진찰받게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병원에 들어가는 일과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당시에는 유학생 보험이 있어 수술비와 일주일 입원비를 포함한 것,
의사들의 시술하는 서비스비용까지 면제를 받게 해주어,
단돈 오십불만 지불하고 치료를 받았다.

의술은 사람을 돌보고 사람을 살리는 귀한 시술이다.
그 시술은 인간의 몸을 고치고 상한 부분을 회복케 하는데 유용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돕고 고치는 의사와 환자의 영혼의 만남을 통한
사랑의 타취(만져짐)가 이루어 질때에
비로소 효과적인 치료가 이루어 진다고 하겠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와의 대화로부터 얻은 정보를 결코 가볍게 소홀히 여기지 않고,
그 환자의 대화나 몸을 통해 그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고,
환자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인간의 생명의 몸처럼,
소중한 영혼을 다루는 목양도 이런 태도나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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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방어 시스템의 예들

10/27/06 (금)
사람이 주님앞에서 자신이 바꾸어져 치유받는 일보다는 회개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이야기하는 크랩의 주장에 공감한다. 얼마나 인간자신이 하나님앞에서 회개하고 살아야 하는 지를 일깨워주는 것인데, 나는 평소에 죄의식을 별로 많이 느끼지도 않았고, 그 죄를 처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영혼이 죄의 오염이 되어, 나의 영적의식이 죄를 감지하지 못하고, 죄를 청소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죄의식은 영적인 자아의식을 강하게 주님앞에서 세우게 한다. 민감한 영성을 형성하게 하여, 성령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에 쉽게 반응할수 있다.

그런데, 죄의식이 무디어지면, 영적인 감각의식도 희미해져,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적상태를 간파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나, 영적인 소리에 민감하게 받응하지 못한다. 그러면 상담자로서 피상담자를 도울수 가 없게 되는 것이다.


10/25/06 (수)
해가이를 생각해보니, 그가 문화가 다르다보니, 그가 가지고 있는 사고시스템이나, 감정적인 체계나, 관계적인 인간관계에 있어, 서구의 스타일과도 다르고, 한국적인 스타일과도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왜 그는 자신을 보여주기를 극도로 싫어하며,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가?

나는 그가 어릴때에, 상당한 충격적인 일들을 많이 겪지 않았나 상상해본다. 아프리카에서 흔히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여, 자신을가누기 힘든일을 당할수 도 있다. 어느종족은 서로 싸우며, 살인하는 것을 밥먹듯하며, 자신들의 부족의 영의 영향아래에서, 자신이 머물러 있는 것을 경험한다.

그가 느끼는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는 그룹멤버들에게 의외로 들려지고, 나자신에게도 받아들일수 없는 견해라고 생각되어진다. 왜 그는 자신이 상담케이스를 발표하고, 자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질문에 대해, 인종차별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 것일까?

나도 과거에 백인들에게 인종차별이라는 느낌을경험한 적이 있다. 그들은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대적으로 자신을 약자로 보게 되고,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인 것이다. 그래서 쉽게 인종차별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측면에서. 한편으로는 해가이가 이해가 된다. 그는 자신의 두꺼운 껍질속에 갇혀서, 나오지를 못하며, 두터운 자기방어의 벽에 자신을 감추고 있다.

10/23/06 (월)
해가이의 그룹발표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가 자신안에 갇혀있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노출하기를 두려워 한다. 자신이 어느부분에서 스탁이되어, 자신을 볼수없으며, 자신을 노출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바로 직시하기를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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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해와 상담

인생을 카운셀링을 하는데는 4가지 측면으로 사람을 볼 필요가 있다.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생물학적인 측면을 보는 것이다.
그의 두뇌기능과, 그것으로 인한 몸의 변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사고를 당하고 난뒤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람의 두뇌에 충격을 받아,
그 두뇌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때문에,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원래 홀로 살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날때부터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고 태어나,
일정기간의 양육기간을 거쳐야 건강한 인생으로 자라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 초기 1,2년 사이에 갖는 인간관계는
그아이의 인생의 앞으로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게 된다.
아기가 부모의 돌봄을 받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안에서 자신이 형성되어지면,
그는 나중에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수 있지만,
그 기간에 다른 사람과 혹은 소홀히하는 사람과의 교제안에 있을때에,
그 아이는 자라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 힘이든다.

사람은 사회적인 유기체로 다른 이와의 만남, 관계형성,
그리고 교제를 통해서 사람이 영향을 받고,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을 상담할때에, 이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가?
사람과 사이에 관계는 일정한 규범을 가지고 있어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사람을 대할때에,
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어느 사람이 타인의 물건이나,
소유물을 훔쳤다고 했을때에,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을 전혀 죄의식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일반사회에서 통념되는 상식적인 기준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죄의식으로 여겨 지는 것은 윤리적인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라보고 조언을 해 줄때에, 이부분을 또한 간과 할수가 없는 것이다.
항상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사람의 다른 사람과의 일정거리의 사회적인 거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그것으로 인하여,
짐을 지거나, 혹은 다라른 사람과의 마찰에 의해, 원치않는 억압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억압이나, 스트레스나, 문제의 발생은
인간속에 늘 가지고 있는 자기 상실감에서 온다고 할수 있겟다.

인간의 자기 상실감은 자기 정체에 대한 바른 인식이나 관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기가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자기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만과 불안의 인간존재의 탄식안에 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안은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며,
그 불안은 인간이 자기의 안정된 위치에서 탈선하여 있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안과 비정상을 가리켜 인간의 타락된 본연의 실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살피고 그를 도와주려고 할때에,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 불안, 그 죄등은 바로 인간을 있게 한
창조주와의 관계가 빗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는 누구도 이런 인간의 실존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는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나고,
자신안에 뒤틀려진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 져 있을때에,
이 면을 살펴보고, 그 사람으로 그것을 벗어나는 해결의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면이라 할수 있는 영적인 측면인것이다.

그 영적인 면은 인간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인간이 제한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거기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바로 자신을 있게 한 근본적인 관계를 재설정하며,
그관계안에 있을때에, 참된 인생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대한
우리의 카운셀링은 여기에 귀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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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극복하려면

일상적인 걱정에 휩싸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이다. 그런데 이 걱정에서 벗어나 일정한 자세에서 살아갈수 있는 길이 없을까?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한 걱정이 쉬일 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걱정이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삶의 패턴에서 터득한 하나의 두뇌에서 활동하는 감정적인 부분이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여러가지문제에 부딪치며 살아오면서, 자연히 걱정하는 패턴이 하나의 관념으로 형성되어진다. 그리고 걱정이 심하게 되면, 패닉이 일어나는 공항을 경험하게 된다.

 

걱정의 종류에도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먼저 걱정에 짐지며 살아가는 상태가 있는가 하면, 일반적인 걱정에 대한 비정상적인 태도, 걱정이 심하게 되어 발전되는 패닉되어지는 공황이 지속되면,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현실적인 것들에 정상적인 반응을 할수가 없게 된다.

 

걱정은 사실 현실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 할수 있다. 건강한 정신을 갖고 살면, 사실에서 오는 도전을 잘 극복하며 살수 있다.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며 살아갈수 있다. 먼저 스트레스가 일어날때에 그 걱정을 잘 처리하는 기본적인 테크닉만 알아도 훨씬 우리의 생활을 건강하게 살아갈수 있다.

 

자기의 영혼을 잘 돌보고, 자기안에 웰빙이 되는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면, 걱정에서 오는 마음의 흩트러진 상태를 회복할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려분별을 상실하게 되며, 그 걱정을 떨어버리려고, 먹는 습관에 이상이 생겨, 술로 해결한다든지, 과식등을 통해 자신의 걱정하는 상태를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몸에 이상을 가져다 줄 뿐이다.

 

요즘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현대인들이 이런 걱정하는 습관이나 태도에 의해 생겨난 과식내지는 정상적이지 않는 식생활때문이다. 나의 이웃에 어느 미국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부인이 남편과의 관계에서오는 스트레스가 쌓여, 그것이 일반적인 걱정하는 태도에 의해 그녀의 과식하는 식생활습관으로 점점 그녀의 몸이 비대해 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걱정하는 습간을 떨어버린 방법 중에 쉽게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우리몸을 그 정신적인부담으로 부터 우리의 관심을 몸의 활동으로 돌리면 된다. 그것이 운동을 통해, 많은 부분의 정신적인 부담감을 줄일수 있고, 우리의 정신적인 상태를 건강하게 회복할수 있다.

 

우리의 영혼(마음)과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두 실체의 조화를 꾀하며 살아갈때 가능하다. 마음과 육체의 조화는 건강한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게 한다. 이런 것을 갖추는데, 좋은 길은 일관된 세계관내지는 인생관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갖는 지름길은 종교에 귀이하거나, 신앙심을 갖고 살아가면, 일상적인 걱정에 벗어나 휠씬 건강한 생활을 할수 있다. 이런 신앙심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일반적인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때에, 건강한 자신을 형성할수 있다.

 

그 위에 우리가 걱정을 벗어나는 구체적인 습관들을 형성하게 되면, 휠씬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갈수 있다. 먼저는 하나의 일관된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걱정하는 일이 있을때에 우리몸의 긴장을 풀게 하는 가벼운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걱정스런 일들이 발생할때에, 그 걱정을 가져다 주는 현실적인 사실이나, 정체를 잘분석하여, 그 걱정을 조정하는 자세를 가지면 그 걱정하는 태도를 해소할수 있다. 그리고 그 걱정이 어떤 것인지 명료화하여, 걱정을 주는 근거를 해소할수 있는 것이면, 그것을 처리하고 나면, 휠씬 마음이 가벼운 상태에서 살아갈수 있다.

 

혹은 또한 예를 들면 “지금 이 세상이 망하게 되면,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등을 생각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버리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더나아가서, 그 걱정에 대한 반응하는 나의 몸의 느낌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걱정하는 감정에 휩쌓이지 않도록, 감정순화내지는 감정변화를 줄수 있는 여행이나, 그 걱정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취미활동을 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걱정하는 감정을 대처하며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게 하는 마음의 평안이나 고요를 유지하는 음악듣기등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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