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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을 극복하려면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어느 경우에 있어서도
스스로 자신에 대해 낙심하는 것은 가져서는 안될 자신의 태도이다.
신앙인의 생활에도 낙심은 금물이다.
하늘나라를 향하여 전진만 하는 영적인 순례의 인생의 길에서
낙심은 신앙인들을 뒷걸음을 치게 하며,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위태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고로 신앙의 현상중에 가장 나쁜 것은 낙심이다.
믿음이 없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신앙인의 낙심이다.
절망적인 태도가 낙심을 가져오며,
그 태도는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허물어 뜨려 놓는다.

그 낙심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며,
자신의 마음속에 절망감이 들어오면서,
낙심하여 자기스스로 힘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낙심을 잘하는 사람은 똑같은 환경이나 경험을 하여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거기에 부정적으로 쉽게 반응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그 일들을 보고 어려움을 감당하는데,
낙심하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에 짓눌려 더욱 절망감에 빠진다.

고로 낙심은 주변환경을 보고 체념하여 생기는 자신안에 있는 부정적인 관점이다.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면,
누구나 마음이 낙담이 되어 절망감에 빠진다.
그렇지만 지금은 낙심하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지켜, 굳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그런 절망적인 상황들을 극복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낙심은 인간자신의 나약함을 강화한다.
자신감을 결여하게 여기게 하는 낙심하는 마음은
자신을 자신할수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그/.그녀는 쉽게 낙심에 빠져서,
자신을 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여,
더욱 그런 좌절된 상태에 자신을 내던져서 거기에 머물러 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중에도 낙심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구약의 엘리야예언자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하나님의 예언자로,
온나라가 우상을 섬기는 상황하에서
수백명이 더 되는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영적인 대결을 하여 승리하며,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신앙으로 돌아오게 하는 역활을 하였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악한 왕이나 왕비의 자신을 죽이려는음모에 자신이 두려움에 휩싸이면서,
자신에 대해 낙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대개 자살하는 경우는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인생의 사명에 대해 스스로 낙심하여
자신과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가장 큰 낙심의 비애의 경우이다.
그 낙심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스스로 자신의 생명이나 인생의 삶에 대해 주관자로 나서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과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어떤 연유로도 자신과 자신의 생을 스스로 포기하는
극단적인 낙심의 경우인 생을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믿다가 낙심하는 것은 안믿은 만 못하다.
하나님은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귀하게 여기시며, 그를 자신의 친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자녀의 약속을 받았지만, 100세에 가서 자녀를 받았다. 그 사이에 수십년을 사는 동안 그는 낙심할수 있는 상황이나,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자녀를 갖는 일에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낙심하게 하는 자신의 상태나 환경을 극복하였다.
고로 아브라함의 가진 믿음은 불멸의 믿음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것을 바라보고,
자신에 대해 낙심하여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낙심을 극복하는 것은 낙심의 원인을 살펴보고,
낙심케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낙심의 원인이 외부의 환경이나 혹은 일등 자신의 밖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런 원인들을 잘 다루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그 원인들이 지나가면,곧 낙심하는 데서 자신을 극복할수 있다.

그렇지만, 낙심의 원인이 자신안에서 나오는 것이면,
그것은 그 낙심을 유발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성향이나,
혹은 심적인 태도, 그리고 심령의 상태에 대해
전문인의 도움(두뇌의 이상기능의 영향 때문에 올수도 있으므로
약물로 치료가능할 수 있음 혹은 묵상이나 명상적인 훈련참여)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낙심이 들때에 항상 그 낙심하는 마음이면을 볼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이면은 낙심과 정반대의 요소인 자신감이 있다.
우리 마음의 상태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낙심을 이기는 길은 쉽게(마치 동전의 이면에서 저면으로 돌리듯)
자신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갖기가 쉽지 않을때에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의 변화의 참여(여행이나 혹은 운동이나
혹은 자신을 격려시켜주는 독서나 취미할동)나,
혹은 주변인의 도움(조언이나 상담등 타인과의 필요적절한 대화)으로
자신의 낙심의 상태를 극복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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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이라는 말을 생각하며

영어로 empathy 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감정이입”이라는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이 말은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
이 말을 영영사전에서 보면, 크게 두가지로 설명을 해준다.
하나는 자신을 상대방과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 해석의 뜻을 좀더 풀어본다면 상대방과 대화나 교류를 할때에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자신의 감정이해를 통해 동일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또하나는 동정심이나, 연민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사람의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일 것이다.

인간의 대화를 많이 주고 받았다 할지라도
서로의 감정을 나누지 않는 대화에는 한계가 있다.
친한사람과의 서로의 정을 나누는 것은
이 감정이입을 잘소통이 되었을때에 가능하다.
이처럼, 사람과 사이의 관계나, 교제나 대화에 있어서,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일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상대방간에 두뇌의 이성으로 서로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도
감정에 앙금이 남아 있으면,
상대방과 진정한 대화나 교제가 이루어졌다고 할수 없다.

최근에 나는 이 말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상기하는 경험을 하였다.
부부간에 진정한 감정교류나 배우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서로에 대해 진정한 마음과 마음의
관계나 교제가 이루어 지지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부간에 대화에 있어서 서로의 감정이입이 잘되면
그 부부는 다정한 부부가 되며,
부부사이에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따스한 인간의 정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부부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힘든 때는
서로에 대해 상대방을 이해를 못하고,
상대방의 이해를 받아주지 못할때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혹은 가족대소사에 일어나는 힘든 일이나,
혹은 직장에서 퇴직하는 일등,
여러가지 부부나 가족의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게 있다.
그러나 부부생활에서 가장 힘들어지는 하는 것은
부부가 서로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지 못하고
즉 서로가 감정이입이 되지않아
감정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이다.
그때에는 서로 대화를 하여도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서로의 감정적인 상태를 무시하게 된다.

요즘은 E.Q(감성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감정의 차원은
이성적인 차원의 영향보다도 더 깊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안정된 감정생활을 하게 하는 교육은
어느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으나,
건강하고 행복한 자녀들의 삶을 바라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감성교육이나 개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서나
더 나아가서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감성지능이나 풍부한 감성의 소유의 능력이나 활용은
더 중요한 인간의 가지는 자질이다.

감성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인간의 교류안에서 막힘이 없는 감성의 흐름은
모든 인간관계의 자연적인 조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는다.
평소에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지인과의 대화를 할때에, 혹은주변사람들과의 교제를 할때에
단순히 소통의 차원에서 정보나, 인식적인 문제에만 생각하고 소통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인간관계가 공식적이며 사무적이고,
더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은
감정이입이라는 소통을 통해서
보다 깊고 영향력이 있는 인간관계나 교제가 이루어진다.

전문적으로 상담을 하는 일이나
혹은 청중들에게 영향을 주는 연설가등은
연사와 청중간에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지 못할때에도
진정한 상담이나 연설의 효과가 일어나지 않으며,
피상담자나 청중들에게 전혀 영향을 줄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감성의 흐름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그 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나 대화의 교류에서 사람의 감정적인 부분을 파악하고,
감성의 흐름을 인지하고,
감정적인 영향력을 고려할때에,
보다 효과적이고 영향력있는 인간관계나 교제를 이루어 낼수 있다.

감정이입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경험적으로 실천하게 되면,
자신과 만나는 사람의 슬픔과 기쁨과
혹은 분노와 싦음에 대한 감정등에 대해 민감하게 잘 반응하며,
그런 감정적인 교류전달에 관심을 가져 메마르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안에서 일어나는 감성의 상태등을 잘 파악하여 건강하게 대처하게 된다.
그리고 보다 나은 풍부하고 즐기는
인간관계나 교제의 대화를 이루어 낼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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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분의식의 중요성

왕자와 거지이야기가 있다.
한나라에 왕자와 거지가 살았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났다.
한소년은 왕자로 자라 궁궐에서 왕자로서 품위있게 대접받으며 살아간다.
또 한소년은 매일 빌어먹는 거지의 왕초의 아들로 자라,
아버지가 하는대로 거지로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왕자와 거지는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둘이는 서로 자신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서로 다른 삶의 현장으로 서로 다른 신분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의식은 자기정체감으로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식이며,
자기 표현에 모든 것을 주장하며 주관하는 자기의식이다.
자신이 누구냐하는 자기정체감은 자신안에 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이 자신을 만들어간다.
자신이 누구냐하는 물음과 그에 대한 해답은 중요한 절차이며 의식이다.

대통령이면 대통령에 걸맞는 자신의 의식이 있으며,
자신의 신분에 대한 태도가 있고, 그 태도에 따라 자신을 연출한다.
판사라면, 자신은 판사로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다.
의사라면, 자신은 의사로서 살아야할 자신신분에 맞는행동을 한다.
만일 대통령이 그 직책을 놓게 되면 자신의 신분은 평민으로 돌아간다.

자신속에 어떤 신분에 대한 의식이 있는가?
일생을 다해 갖는 신분에 대한 의식은 무엇일까?
신분의식은 자신의 의미지에 대한 자기인식의 옷이다.
신분은 자신의 의식의 표출로 나타난다.
신분의식을 통해 사람은 자기표현과 자기연출을 꾀한다.
이런의식은 단순히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역활로
주어지는 자신에 대한 신분의식이 아니라
평생을 살면서 자기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신분의식을 갖고 살면,
그 의식에 따르는 자기인생을 만들어간다.

특히 자기 신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얻어지는 자기정체감은
자신의 삶을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 자기 정체감중에 자기신분에 대한 분명한 의식은
자신을 더 확실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며,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의 하는일을 더 탁월하게 효과적으로 일을 하게 하며,
자기의 하는 일에 대한 자아의식을 강화시켜서
자기 성취에 대한 기대와 당연한 결과를 기대하게 한다.

크리스챤들이 세상에 살면서 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분의식의 믿기전이나 믿은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자기신분에 대한 깨달음이나
자아의식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여전히 자신은 불신의 상태에서 겪는 죄에만 오염된 자아약체의식이나,
혹은 자기결여에서 오는 영적인 방황을 겪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누구인가?
특히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기 신분에 대한 인식이 급선무이며,
자기인식을 바로 가질수록 자기의 크리스챤생활에 영향을 주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신분의 확인에서 오는 자기권한이나, 자기 영역에 대한 권리행사를 바로 할수 있다.

크리스챤의 신분은 죄의 노예에서 신의 자녀의 위치에 세워 졌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의 신분이 과거에 옛자아에서 겪은 죄와 어둠의 영역안에서
자신안에 갇혀있는 부정과 부패와 불만과 불안과 절망과
좌절에서 오는 자기패배에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했다는 자의식의 발견으로 인하여
자신신분의 확고한 자기정체감을 가져야 하며,
그 정체감은 자아상실이나, 모호한 자신의 상태가 아닌
분명한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있는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
새로운 세계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세계안에 있는 자신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
과거의 자기인식에서(죄인, 불안한 자아, 방황하는 영혼등)
새로운 신의 자녀로서 얻는 신분의 권한이나 권리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한으로서 깨달아지는 자기인식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자아신분발견이다. 그런 것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와의 관계에서 오는 자기이해의 확대: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할수 있는 힘,
그와의 교제에서 오는 실제적인 도움들:
기도를 통한 무한한 그의 자원에서 얻는 삶의 탁월한 지혜와
자기 능력(자기한계를 넘어가는 그와의 교제에서 오는 변화된 자기능력)의 확대등을 통해
전혀 다른 크리스챤의 삶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크리스챤의 자기신분인식과 그에 따르는 결과는
거지와 왕자의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대로 자기정체감의 인식을 통해,
자기신분에 따르는 삶을 이루어 갈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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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우울증들과 성경에 나타난 우울증이야기(우울증3)

며칠전에 또 우울증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울증으로 인한 반응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울증이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반응에서 일어나는 것과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요인,
일차적인 혹은 이차적인 원인, 단극적인 혹은 양극적인 현상으로 일어난다.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반응에서 일어나는 우울증은
(때로는 외인성이나 혹은 신경성 우울증이라한다)
주로 어떤 실제나 상상에서 일어난 상실내지는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혹은 걱정스런 감정의 높은 수치의 상태에서일어나는데,
그것은 그기간이 짧을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조절이 가능하다.

자신의 내면에서일어나는 (내인성의)
(그것을 또한 자율적이며 정신적인우울증이라 불리운다)
마음의 내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며
때때로 그것은 자기파괴적인 성향이 있는 강한절망의식을 동반하며
그 증상이 오래가기도한다.
그우울증치료하기가 용이하지 않으며, 그 우울증의 재발가능성이 높다.

일차적인 우울증이 일어나는 것은
이차적인 요인인 다이어트의 부작용이나 암이나 당뇨
그리고 인퓰레자 감염으로 인한 병의 결과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단극적인 (unipolar)우울증은 일차적인(주요한)심리적인 장애로서
한 기간이나 그 이상의 우울증의 일어나는 조건하에서 일어난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 우울증은 양극적인(bipolar) 우울증으로
우울증적인 행동이 스며든 조적(정신적인 우울증의 반대인 조적인 현상)인
증상의 기간에서 일어난다.
대개의 전문가들은 이런 단 혹은 양극적인 우울증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실망이나,
실패나, 그리고 상실에서 오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인 우울증의 현상들과는 구별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우울증은 사람들에게 다 일어나기 쉬운 평범한 현상도 있지만,
때때로 그 우울증 증상이 복잡하고 힘든 상태의 현상으로
정확히 우울증을 묘사하기가 쉽지 않으며, 치료하기도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성경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임상적인 용어는 다루지 않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 그런 증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 69편과 88편, 그리고 102편은 시인이 겪는 우울증적인 현상을 절망의 노래로 언급하며,
그런 좌절속에서 삶의 희망을 가질것을 호소하고 있다.
시편43편에서 다윗은 삶의 우울과 기쁨등 양쪽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영혼아 왜 너는 의기소침하여 있으며, 내안에서 혼란스러워 하는가?
그리고 불안해 하는 가? 하나님에게 너의 희망을 두어라
왜냐하면 내가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여러곳에서 우울증의 증상을 겪은 사람들의 경우를 보여준다.
욥이나 모세,와 요나와 베드로,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전체가 우울증을 겪기도 하였다.
예레미야예언자는 이스라엘민족의 절망이나
우울한 현상을 애가(비탄, 통곡)라는 책 전체에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가멜산에서 우상선지자 850명을 대결하여
승리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였지만,
살인자이며 우상숭배자인 이세벨왕후의 추격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광야로 도망을 가, 거기에서 극단적인 절망감이나 자기낙담한 상태에 빠졌다.
그는 죽기를 원했으며(자살충동)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천사에 의해
그 상태를 치료받을수 있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극단적인 슬픔과 고통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우울증상태에 빠져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이 매우 슬프며,
그 슬픔속에서 깊은 고통을 통해 죽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Amplified Bible에서 표현된 ).

이런 예들은 성경이 사람들이 사는 인생의 현실이
수많은 슬픔의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인생에게 꼭 필요한 희망과는 대비되는 인생의 절망적인 현실성을 알려준다.
믿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그런 인생의 우울한 현실들을
돌파하는 새롭고 지속되는 삶의 기쁨을 신앙안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성경에 이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생들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며
자신의 유일한 생명을 포기하는 이중적으로 짓는 심각한 죄이다)
두 연예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데 충격적이며
새삼 그들의 삶에서 오는 우울한 현상들과 삶의 도전들을
이기지 못하는 신앙의 무력감을 금할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성경은 강조하기를 이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과 그로 인한 하나님나라에서 오는 풍성한 인생의 확신은
인생이 겪는 모든 인생좌절들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의한
희망이 넘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의 모든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것을 기도하고 있다.
(게리 콜린즈의 Christian counseling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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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2)

사람은 어느 환경이나 삶의 조건들이나 사건가운데에
같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응답을 하며,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자신의 느끼고 생각한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어느 사람에게는 우울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어느 사람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성향에 의해 차이가 난다.
그것은 타고난 자신의 기질의 영향(내성적이고 자기 연민에 쉽게 빠지는 경우)이나
자신의 성품(부정적이며 비관적인 태도)이며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우울증도 여러가지 자신이 사는 환경안에서 반응을 통하여
자신의 우울증증세가 심각하게 발전하든지
혹은 우울에 빠지는 경험을 자주 겪는것이든지 아니면
그 우울증의 증세가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주든 지 아니면
전혀 그렇지 않을 사소한 일에도 우울이라는 것을 새로 겪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도 자신이 좋은 반응을 하든가,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겪었을 때에,
자신의 마음이 우울하게 되는 길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몇일 전에 일어났던 유명가수의 자살도 우울증으로 인한 것이란다. 그녀는 인터넷상에서 받은 자신을 험담하는 네티즌의 평가에 (악필로 인한 인간경멸에 대해) 대해 지나친 반응을 나타내,
우울증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을 주체할수 없는 상태로 발전하여, 자살하기에 이르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더 해준다.

우울증이 특히 안면수치심에 쉽게 노출되어,
자아상의 내면에 대해 강한 상처를 입는 아시안에게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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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대해(1)

얼마전에 타임지에서 앞으로 미국인들의 높은 사망율이 되는 3가지 질병이 있는데,
그것들은 에이즈와 심장병그리고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그중에 우울증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겪는 사소한 일이든지
혹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든지 얼마간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며,
긴장과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의 생활에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분노와 격정으로 인한 심적부담이 지속적으로 주게 될때에,
그것에 대한 반응이 마음에 무거운 짐을 가져오는데,
그것이 우울증으로 발전할수 있게 된다.

우울증은 지속적으로 사람의 마음이 좌절감에 빠지게 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수 있는 소지가 있다.
우리의 인생의 날들이 기쁘고, 성공적이고, 특별한 날로 기억되는 날들이 많지 않으며,
평범한 날들이 지속한다.
그리고 반면에 우리에게 어두운 날들이 있는데, 혼란, 의심, 좌절,
그리고 실망등이 이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주어진다.

그리고 사는 환경의 구조화되고, 변경할수 없는 상태에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결혼한 부부의 생활에, 시집식구든지, 친정식구가 함께 얹혀서 사는 경우에,
그 사는 환경에 희생자로서 남편이든지, 부인이든지 우울증으로 발전할수 있는 요지가 있게되며,
지속적으로 직장상사가 괴롭히는 환경이든지,
주변인물들이 왕따를 주는 경우라든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인관계에서 따스한 사람냄새를 맡기가 힘들고,
딱딱하고 냉정한 인간관계만 계속되면,
자신의 마음에 심적부담을 주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고 놔두면,우울증으로 발전할수 있다.

우울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전부터,
사람들사이에 세계적인 현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리고 우울증의 현상은 유아기로부터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다 노출되어있다.
마치 감기증상을 겪는 것처럼 오늘날 인간들사이에 우울증은 만연되어 있다.
심각한 우울증은 깊은 좌절감, 두려움, 허탈함, 무정함, 희망없음,
그리고 내적 자포자기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우울증에 대해 알아보면서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에 함께 그문제를 풀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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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생각이 자신의 자아상에 영향을 준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때마다,
자신을 향하여, 너는 할수 있다. 괞찮은 사람이다.
너는 지금 사랑받고 있다. 누구를 사랑할수 있다.
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안에 있는 자아(자기이메지)를 향해,
격려 하는 가운데에 자신의 자아상을 건강한 자신으로 날마다 세워가면,
평소에생활하면서 갖게되는 자신에 대해
소극적인생각이 들고, 그 생각안에 부정적인 자신의 이메지를 갖고 있는 습성에서
자기를 긍정적으로 변하기를 기대할수 있다.
지속적으로 자신을 향해 아침마다
이렇게 하는 생활습성을 갖게 되면
자신의 가진 고정된 자아상에 대해 상당한 발전된 자아상으로 나갈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한계를 벗어던질것은
제한된 생각, 편협된 생각, 길들어진 생각, 부정적인 생각에 자신의 자아상이 만들어져,
그 자아상에 맞는 습관이나, 일처리나, 생활태도나, 삶의 모습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상의 생각을 활용하여 자신에 대해 꿈을 꾸며,
자신이 바라는 이상을 향하여,
그것의 바라봄의 기대를 갖고, 성취에 대한 강한의욕을 가지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들때에,
그리고 특히 주변의 일로 인하여,
자신에 대해 너는 왜이러냐? 그리고 너는 왜 그모양이냐? 라고 생각이 들때에,
그렇데 자신에 대한 좋은 이상(긍정적인 자아상,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자아상: 그러면 남들도 자신안에비쳐진 자신을 보고 내가 갖고 있는 자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됨)을 생각할수 있겠다.

그런 좋은 자아상에 대한 계속적인 자기추구(자아상을 높이는 시도)를 하여야 하는 것은
사람은 살아가면서 계속, 일을 하거나,
사건을 겪든지, 환경에 자신이 들어가든지,
혹은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자아상이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메시지에 의해 세뇌되어
자신이 과거로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따라,
자신의 자아가 그 주어진 여건들 속에서 만들어 가는 삶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기관리하는 일에 있어서, 계획관리, 시간관리, 시간관리, 일처리습관관리,
그리고 생각관리가 있을 것인데,
그 많은 생각 관리중에, 자신에 대한 자아상(이메지)관리가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력을 미칠것이다.

자신을 레크레이션(재창조)을 하기 위해,
엔터테이먼트를 활용하는 데 있어, 취미나 오락활동을 할때에
자신이 생활하면서 겪었던 긴장(스트레스)을 푸는 것(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디프레스:불안이나 우울증현상으로 자신의 정신건강에 역작용을 함)과
자신에 대한 이메지(자아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일 경우에
자신의 모습관리나 생활태도에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그 취미나 활동중에 자신의 자아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활동(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경우에
자신의 몸상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하는 가벼운 걷기를 할수 있는 높지 않은 산에 산보나 산행을 하는 경우)을 하는 것일 것이다.

가령 음악을 듣는다는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취미나 오락을 통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할때에,
그 레크레이션의 시간이나, 취미활동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킬수 있을 것이다.
가령 빡빡한 생활환경의 단조로운 패턴에서 오는 자기자아상에 정체적인 현상을 지속하다보면,
그 권태로운 생활패턴에 변화를 주는 재미있는 여행을(겨울에 기차를 타고, 겨울 바다를 가서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나, 무더운 여름에 경치좋은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경우, 봄에는 가까운 교외의 시골 들녁에 가서 식물이나 초원의 푸르름을 보면서 만물이 생동하는 현상을 즐기다든지, 가을에는 숲속이나 깊은 산속에 가서 저물어 가는 단풍이나, 산의 색깔이 변화해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활을 음미하는 일등)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끝으로 자신의 자아상(이메지)관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통해서 일것이다. 그 생각의 출처나 영향의 범위를 통해 4가지 정도의 생각패턴을 생각해 볼수 있다.

첫번째는 육체적인 본능이나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고 싶고, 혹은 자녀를 멀리 떠나 보낸 어머니가 느끼는 모성애적인 생각이 있으며,
두번째는 자신의 두뇌의 이성기능에서 나오는 정신이나,
사고에 영향을 주는 생각(흔히 우리가 말하는 생각)이라 할수 있는 생각(이생각에서 주로 우리의 자아상에 계속적인 영향을 주기쉽다)이며,
세번째는 영적인세계에서 오는 생각등일 것이다.
기를 모으는 일과 도를 닦는 것, 영적인 현상을 통해 마음의 집중력을 기르는 것(이런 생각들은 방향성이나 도덕성에 있어 인간의 상대적인 한계나, 인간적인 제한에 머문다)등,

그리고 네번째는 인간의 생각속에 가장 고귀하며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신과 나누는 생각이다.
이생각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만한 권세와 능력이 있다.
가령 자신이 신을 믿고 신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기도하면,
신은 자신의 생각으로 혹은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그 범주안에서 세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인간이 그 신의 영향력아래에 있는 신의 세계에 들어가는길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을 바꿀수 있으며,
자신의 자아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자신이 신의소생이며, 신의 자녀라는 의식은 세상에 그 어떤 생각이나 의식보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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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치료에 대해(1)

단기적이며 역동적 정신치료요법는 감정의 두려움을 다루는 데 촛점이 있다.
짧은 시간안에 감정치료에 촛점을 맞추어,
효과적으로 통합된 방법으로 환자를 다루며,
환자의 지속된 감정문제의 성격과 중요한 증상을 다루는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인 치료는
장기치료를 행하는 일반적인 정신분석치료를 의미하지 않고,
환자의 정서갈등이나 변화기피를 하는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정서변화와 행동변화 촛점을 목표로 하는
자발적이며, 협력적인 치료방법이다.

병적인 감정의 요법은 역동적 정신치료적 갈등의 개념으로부터
증상을 이해하는 언어이론과 행동주의 치료로
환자들의 병적인 감정과 증상들을 재해석을 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환자들의 병적인 감정들은 대부분 슬픔이나, 분노, 폐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억압된 감정들을 통해 노출된다.
그리고 이 병적인 감정들을 다루는 것이 감정요법의 주된 과제이다.

병적인 감정과 염려조절의 요법은 환자들에게
너무 자주 직면하는 병적인 감정을 치료하는 데 촛점이 맞추어 있다.
병적인 감정의 치료적인 암시는
병적인 두려움을 다루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조직적인 감정조절로 치료하는 것이다.

정서를 경험하게 하는 목적의 치료는
환자의 신경증적인 현상을 나타나는 갈등된 감정을 노출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감정표현요법은 적응적인 표현으로
환자가 대인 관계안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원함이나, 필요성에
잘 적응시키는 치료적인 훈련이다.

이 감정치료법안에 있는 재구성요법에는
자기방어기제에 대한 재구성요법과 정서의 재구성요법,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적인 자아재구성요법으로 나눈다.

재구성요법은 환자의 관점, 경험,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하는 방법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자기방어를 유동적이게 하고,
억압된 정서를 자유하게 하며,
지나친 염려를 가진 환자자신이 적응할수 있는 레벨로 감소시키며,
그래서 자기자신에 대한 이메지나 타인과의 접촉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역동적인 정신치료의 전반적인 목표는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병적인 감정들을 감정둔화의 방법으로
정신적인 갈등등을 해소하며,
환자의 지나친 자기방어를 포기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갈등있는 감정을
자신들의 적응적인 정서로 바꾸어 주는데 있다.

건강한 인간관계접촉은 자율성과 상호독립성을 가진 인간관계를 의미하며,
건강한 상호의존성을 용인하는 상호 친밀함과 참된 인간관 계를 추구한다.

자신과 건강한 접촉을 갖고 있는 사람은 타인과의 접촉도 원만하게 할수 있다.
그 감정치료의 과정안에서 환자가 겪었던 자신이나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얻은 변이된 일그러진 현상들이
치료사와 환자자신의 건강한 접촉관계를 통해 치유되어 가기를 꾀한다.

-Treating Affect Phobia 라는 책에서-

일반일들도 자신의 왜곡된 감정문제나, 주변사람들의 정서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원함으로 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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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자신)을 치유하려면

사람이병들었을때에, 병의 원인을 알고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몸이 어디가 아픈지,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는 것이 필요하다.
친척중의 한 아이가 중병에 걸렸을때에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데, 한달이상 걸린다.
사실, 의학의 가장중요한 단계는
그 병이 정확히 무슨병인지를 알아내는 진단하는 과정이다.
예방도 필요하고 치료도 필요하지만,
병의 징후가 있을때가 정확히 병을 알아맞추는 의사가 실력있는 의사이며,
그 의사를 신뢰할수 있을 것이다.

의료사고도 오진으로 인한것이 거의 대부분이다라고 할수 있다.
정확히 보지 못한 병에 대해 다른 병에 대한 처방으로 고치려고 하지만,
병명을 잘못알고 있으면,
그 병을 정확히 고칠수 없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며,
자신의 문제의 해결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문제진단이나, 해결은
인간을 만든 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생이 처음부터 이세상에 살때부터
인간사회가 그인간의 문제로 인하여,
문제가 일어나고, 갈등과 싸움의 연속적인 역사를 겪어왔으며,
아직도 사실 인간자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 문제를 안고 세상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에게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때에,
그 문제를 정확히 보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며,
해결책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단계이다.
더우기 자신에게서 그문제의 출발이 있고, 원인이 있다면,
자신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하겠다.
그래서, 인간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는 것이 자신을 고치는 데 중요한 단계이며,
과정이다.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
대개 자기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몇가지있는데,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가지고 있는 자기 편견이 있고,
그리고 과거의 잘못된 교육의 결과로 인한 자기아집이 있으며,
잘못된 조언이나, 지도를 통해 갖고 있는 그릇된 자기이해가 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정확하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내 얼굴에 점심때 먹은 밥풀이 묻어있다고 가정했을때에,
남들은 밥풀이 묻은 자신의 얼굴을 언제든 잘 볼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나자신은 거울을 가지고 가서,
그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아야
자신의 얼굴에 묻은 밥풀을 보고, 그것을 떼어낼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때에나,
어느 문제든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달라질수 있는데,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는
문제를 판단하는 자신이 문제에 휩쌓여 있을 경우에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보지 못하므로 객관적인 판단을 따르게 된다.
우리가 어느 문제가 있을때에,
남의 조언을 듣는다든지,
그리고 전문인으로부터 상담을 받으므로 훨씬 자신의 문제를 빨리 해결할수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병들었을때에,
병의 원인을 잘 알게되는 것을 통해,
그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수 있겠다.
마음의 병이 먼저인지, 아니면 육체의 병으로 인하여 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악해지거나,
상처가 있어서 그것이 몸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는지,
혹은 자신이 받은 영적인 혼란속에 있어서,
자신의 몸이 병들어 있거나,
삶이 뒤죽박죽이 되어있는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병적인 원인을 분변하고 판단하기위해서
사람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몸은 유기적인 존재이다.
이말은 모든 인간의 몸은 몸안에 있는 각지체나,
장기의 각기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 생명체안에 있는 유기적인 조직안에 있는 본성이나, 지체나,
혹은 기능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은 영혼과 마음과 몸의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다.
몸의 상태가 마음에 영향을 주는데,
몸이 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약해지기 쉬워, 무슨일에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대하기가 쉽지 않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 몸의 이치라고 할수 있겠다.
그렇지만, 반면에, 몸이 약하고 지체가 부자유해도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도 있다.
(예를들어 강영우박사같은 경우일것이다.
시력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한국인으로 가장 높은 직급의 미국의 공무원이 되었다)

마음의 상태가 몸의 컨디션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운동경기를 하는 선수가,
기술적으로는 잘 준비를 하였는데,
시합장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하지 못해 경기를 질수도 있으며,
실력이 모자라도 시합때에 정신적인 무장으로 실력이상 발휘하므로 시합에 이기기도 한다.
또한 이런 경우도 어느 나이든 여자분이 있는데, 이분을 늘 신경통으로 고생을 한다.
아무리 약을 써도 신경통이 낫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정신적인 상담인으로부터 상담을 받다가,
과거에 자신과 원수관계를 맺었던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 증오하고, 용서치 않는 마음의 상태가
그 여인에게 그렇게 몸에 질병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생각의 집이다.
자신안에 품은 생각에 의해 마음이 영향을 받고,
그 마음이 몸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더나아가, 사람의 몸이 무엇에 영향을 받으면
사람의 깊은 영혼까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들면, 마약을 복용하는 경우는
사람의 정신세계뿐 아니라 영적인세계에 까지 영향을 주어,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져,
악한 영적인 존재의 영향에 의해 쉽게 자신를 파괴하는 쪽으로 몰고간다.

더 깊은 단계에서의 사람의유기적인 관계안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영혼의 그릇들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영혼이 담는 대로 만들어진 그릇에 불과하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듯이
인간의 영혼속에 무엇을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그의 몸이나, 생각의 집인 마음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사람의 인생자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나, 도덕률의 가르침은
사람의 영혼에 담아지는 영적인 말이며,
마음에 영향을 주는 생각이며,
인생을 만들어내는 이념이다.
사람의 영혼이 무슨 가르침을 받든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나 사람이 인생의 삶을 살아 나가는 방향에 영향을 준다.

인간사회에 보내준 신의 말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으로 사람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의 근본적인 병을 치료한다.
그 병은 인간속에 있는 악의 씨이며,
인간의 본성안에 있는 죄성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인간현실의 병적인 상태이다.
거기에 대해. 신이 인간에게 제시한 말은
사람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주는 처방전이며,
사람의 모든 병을 치료하는 기본적인 약(많은 약의 발명의 배후에는 성경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였다)을 제공하며, 사람의 병적인 상태를 원상회복케 하는 치료제이다.
고로 그것이 사람의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며, 회복케 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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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이라는 단어를 나의 인생사전에서 없애려면

우리사회에 실업인구의 증가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되었다.
국민적인 인구의 자산의 비율이 다른 어떤 국가적인 재산보다
높은 비율의 국가들중에 하나인 대한민국에게 있어,
인구의 자산은 유일한 국가적인 자산의 소망이며, 가치이다.

그렇지만 좁은 땅어리에 계속해서 번져가는
인구의 증가는 우리가 사는 좁은 땅어리를 더욱 좁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하는 사회에서
실업인구의 증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반면에 아이러니칼 한 우리가 바라고 싶지않은 현상이 또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앞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의 감퇴로 인하여,
유효 노동력인구의 확보의 문제가 얼마안있으면, 대두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이세대의 우리사회는 넘쳐나는 취업휴업의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사회구석구석이 좌절과 한숨의 소리가 베어나온다.
노동력인구의 취업휴업인구의 증가는
국가적인 손실이며, 가정적인 손실이며, 또한 실업하는 자신에게 있어서의 개인적인 손실이다.

넘쳐나는 실업의 증가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전체사회적인 노동력배치를 보면,
한쪽에서 특히 3D 직종에서는 노동력 인구가 없어,
외국인 노동인구의 증가가 되는 반면에,
평범한 한국인의 그들의 원하는 직종에,
노동하는 기회가 경쟁으로 인하여, 적어지고 있다.

실업의 문제가 국가나 정부나 사회단체나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너무 사회가 복잡해졌으며,
특히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어느 국가나 사회에서도,
실업인구와 무숙자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더나아가 사회보장제도가 잘된 나라 일수록 무취업인구가 증가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기본적인 것들을 정부가 제공하다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손에서 놓고 있기에 쉬워지며,
자기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사회에 경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좋은 도전을 주는 자극제가 될수 있다.
그런 상황은 오히려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자기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너무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다보면,
오히려 자신을 도태시키는 역작용의 역활을 하기도 한다.

실업하는 사람에게 있어 정해진 취업이나 직업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자신안에 있는 실업이라는 의식이 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업이란 자기가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고 살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하는데,
봉급을 받고 안받는 사람이 취업휴업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휴업을 하는 본인자신이 아무 할 일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 더 실업적인 문제라고 할수 있다.

인생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업하는 그/그녀는 지금 잠시 휴식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시기는 자신을 재창조할수 있는 좋은 기회인것이다.
그 기간이 길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보다나은 자신의 미래의 장기적인 준비로 생각하고,
더 친밀하게 그 휴업의 시간들을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준비하는 것 만큼,
인생의 시간이나 기회는 자신에게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세상은 신이 인간이 살 인간세계와 사회를 모든 만물을 만들때에,
인간의 노동이나 도움의 필요없이
전적인 신의 전능한 손길로 온우주가 완성이 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 신이 인간에게 에덴의 낙원이라는 세계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만물의 관리자로 살도록 하였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고,
휴식이나, 안식가운데에 일을 취미정도로 즐겼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관리인으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월권을하여,
이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벌로,주어진 것이 땀을 흘리며,
땅을 가꾸고, 노동을 해야 먹고 살수 있도록 되어졌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준 그 노동도 축복으로 주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있어 일이란,
자신의 숙명과 같은 자신이 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자기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인생이 생각하는 취업이라는 것은 평생직업인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인생 취업하는 직업을 놓고 살수는 없다.
만일 인생직업을 놓은 경우는 단지 자신의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때 일것이다.
사람의 몸이 계속해서 변화해가며, 생존하듯,
인간의 삶은 계속적인 일을 통해, 자신이 생존하게 된다.
그러면 인생직업에서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의 명제가 있다.
이것은 신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신성한 자기사명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과 자신의 미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자신을 몰두해야 한다.
이것은 보통생각하는 직업이라는 세계를 떠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직업인으로서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자신의 일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의 직업적인 일이 그 인생직업의 일들을 도울수 있다.

만일 지금이 자신을 실업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시간이라면,
그기회야말로 인생직업에서해야 할일들을 부지런히 찾아 해야 할 것이다.
보통 평범한 직장을 갖고 자신의 인생직업에 대한 일을 충실히 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일들은 자신이 실업이라고 생각하는 기간이 자신에게 더욱 좋은 기간이되며,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 기간에 자기자신을 열심히 연마하고,
자기 발전이나 성장에 시간을 투자하면,
오히려, 긴인생의 노정에 전체적인 관점을 갖고 볼때에,
그 실업하는 기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며,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있어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느끼고 사는것만큼
정신적으로 고되고, 힘든 일이 없다.
인생자신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느끼는 감정은 가장 비참한 감정중에하나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란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자라는 것이 그들의 일이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리고 장성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할일을 하여야 할것이다.

실업의 문제는 사실의 문제라기 보다,
의식적인 문제가 더 문제가 된다고 할수 있겠다.
취업휴업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에서 실업이라는 단어를 아예 생각하지 않고
오리려 그 시간에,
자신의 전체인생의 직업에서 해야할일들을 생각하고
그일에 충실하여 가다가보면,
자신에게도 직업취업이라는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인생에 있어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따라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인생살기가 편한다.
아무일도 안하고 지내는 것은 너무 힘든 인생의 경험이다.
그런 경우는 실업이라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의식속에는 실업에 대한 잘못된 태도에 기인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 집사람이 말하는 것은 돈문제가 인생의 문제들중에 가장 작은 문제라는 것을 명심하기를…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다라는 말을 항상 명심하기를…).

그러므로 그렇게 아무일도 안하고 산다고 결심을 해도,
인생직업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있어 꼭 해야 할일들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업의 문제중에 하나가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은퇴
(조기은퇴라는말은 직장인들을 더 주눅들게 하는 말이지만)를 통해
자신을 실업으로여기는 경우이다.
은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일들을 찾아 새로운 삶의 기회로 생각하고,
전통적인 직업의식에서 떠나,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일들을 찾아,
자신의 삶의 시간들을 투자해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어느 직장에 머물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휴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피곤하고 지쳐도 직장에 다녀야 한다.
그리고 자기 성장이나 발전을 위해 재창조
(레크레이션: 휴식하면서 자기 발전을 위한 자기충전을 위해 창조적인 사역을 하는 것)
할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흔히 두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의 보이는 환경안에서 사는 현실의 세계가 있고,
또하나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가 있다.
환경의 현실세계보다 인터넷의 가상세계가
사람들에게 훨씬 더 인생의 삶의 기회와 경험들의 폭을 확장해 나가며,
인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공간을 초월하여 가상세계에서 우리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수 있으며,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의 기회들을 얻고 있으며,
그리고 더나아가 직업의 세계를 무한대로 활짝 제공하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자신의 아이디나,
혹은 자신의 인터넷활동을 통해
언제든지 자신의 비지니스를 열수가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환경세계의 직업의 기회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앞으로 가상세계의 현실이 환경세계의 현실보다,
훨씬 우리의 삶의 부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직업의 보다 넓은 영역으로나 보다 확장된 경험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가정에 머물면서 해야 할일들이 점점 더 많아 질것이다.
몸으로 환경의 현실세게에서 움직이는 활동보다,
인터넷으로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삶의 시간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인터넷의 가상세계의 무한대의 직업기회은
모든 자기자신을 실업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기존 전통적인 직업관이나 형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취업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인구의 전체인구의 비율로 볼때,
가장 높은 비율의 나라들 중에 하나이다.
이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모두에게 일이라는 기회를 열어준다.

가상세계(인터넷: 사이버의 세계)에 계속해서
수많은 직종의 직업이나 자영업이나,
기회를 좇아 새로운 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전에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인터넷 비지니스의
인노베이션의 서비스를 제공을 하는 것으로 몇사람들이 수만달러의 돈을 번다고 한다.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그들은 가상세계의 직업세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중의 몇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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