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 애가 1:15-20
15. 여호와께서 나의 모든 용사들을 짓밟으시고 큰 군대를 모아 나의 젊은이들을
부수시며 내 백성을 포도즙틀의 포도처럼 밟으셨다.
16. 그래서 내가 울지 않을 수 없으니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구나.
나를 위로할 자가 내 곁에 없고 내 영혼을 소생시킬자가 멀리 떠나고 말았네.
원수들이 나를 이겼으므로 내 자녀들이 처량하게 되었구나.
17. “내가 손을 내밀어도 나를 도와주는 자가 없다. 여호와께서 내 주변에 있는
자들을 내 대적이 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나를 더러운 물건으로 취급하는구나.
18. “여호와는 의로우신 분이신데도 나는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말을 듣고 나의 고통을 보아라. 나의 처녀들과 청년들이 다
사로잡혀갔단다.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이 나를 배신했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목숨을 이으려고 먹을 것을 구하다가 성 안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20. “여호와여, 나의 고통을 보소서 내가 주를 거역한 죄 때문에 이처럼
번민하며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칼이 사람을 기다리고
집안에는 질병과 죽음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가지 노래가 있다. 인생의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표현하는기쁨의 노래가 있다.
그 기쁨의 노래는 인생의 일들중에 축하와 감격이 있는 때에 영혼속에서 기쁨이 솟아난다.
기쁨은 감격과 벅찬 감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환하게 밝게 피어나게 한다.
반면에 인생에는 슬픔의 노래도 있다.
슬픔의 노래는 삶의 절망과 좌절속에서 나오는 고백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인간의 마음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은 고통의 울부짖음과 같은 멸망을 바라보는 시인의 고백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주변 강대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전쟁의 도탄에 빠져있는 것을 바라보며,
예레미야는 자신의 조국이 파멸되어가는 것을 비애의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유다 국가는 온국민이 죄악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전쟁을 통해
모든 나라의 요소인 사람들과 땅과 그들의 재산들이 모두가 다 쑥밭이 되었다.
고통스럽고, 암울한 처지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기비애에 빠지는 경우 일 것이다.
자기연민, 자기애증, 자기 탄식, 자기번민등 인생을 살아갈때에,
깨닫게 되는 자신에 대한 느낌들이다.
고통의 노래는 인간영혼의 신음하는 소리이며, 깊은 내면의 절규와 같이 내뱉는 탄식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물으시고 그민족을 주변의 강대국을 들어, 심판하여,
그들의 나라에 속한 군대들을 패배시키신다.
나라를 지키는 용사들인 젊은이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죽어가며,
백성들은 보호와 방패막이가 없어져,
전쟁의 패전으로 인하여 약탈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마치 이렇게 전쟁에서 패전하여 무참히 짓밟히는 처지와 같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앞을 보아도 갈길이 막막하고 옆을 보아도 소망이 없는 경우가 아닌가?
마구 짓밟히는 듯한 경우라도 결코 자신의 삶이나 처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운데에서라도 우리의 생은 살아야 할 순간들임을 잊지말며,
그런 속에서 값진 교훈들을 발견할수 있다.
예레미야는 조국의 형편이 암담해지며, 동포들이 당하는 어려운 처지를 바라보며
동족들의 아픔에 대한 애끓는 심정이다.
자신의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비통한 심정을 위로받을 길이 없으며,
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의 중심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동족들의 어두운 현실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자신이나 동족들의 처지를 회복시킬 만한 요소는 없고,
심판으로 인해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만이 놓여 있다.
자신들의 원수들인 악한 강대국의 침략으로 패배의 쓴 잔을 마시며,
패전의 처지에서 온갖 약탈과 잔악한 행위의 희생양으로
당하는 민족의 처지에 마음깊은 곳에서 고통의 탄식을 울부짖고 있다.
사방이 꽉막힌 듯한 처지에 있는 자신의 생활을 두고 울고 싶은 심정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있을 때에,
주변에 도움을 얻을 수 없다면 참담함이 극심할 것이다.
그때에는 비통의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지만,
비록 자신을 위로할 자가 없어도 자기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연약하고 병든 자신을 돌보아 줄수 있는 존재를 찾을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려울 때에 우리를 사람을 알아볼수 있다.
자신의 친척이나 혹은 친구들이나 우인들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보고
나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교훈을 오히려 힘든 일을 만났을 때에 더 값진 것을 배우게 된다.
더 나아가 어려운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항상 남을 돕는 자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레미야의 처지는 자신의 민족인 유다민족의 처지와 비슷하다.
유다민족은 강대국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처지이듯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동족들,
특히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전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치 않으며, 자기의 고집이나 주장대로 살아간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인 예레미야를 핍박하며,
그를 더러운 물건 취급하듯 그를 괴롭히며, 고통을 준다.
유다나라도 주변의 침략국에게 힘없는 자들처럼 침략의 약탈에 방치되어
패전국의 당하는 갖은 수모를 겪는다.
자신의 어려움을 당할때에 특히 마땅히 도와 주어야 할 사람이
자신을 외면하게 될 때에 배신감도 들고, 모멸감이나 허탈한 심정이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을 버림 받은 존재로 혹은 죄지은 사람모양 죄인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에는 참을 수 밖에 없으나, 그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더불어 주변인들에게
다시 재기하는 오뚜기 인생의 진면목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일들은 업보로 인하여 생겨나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사람들은 흔히들 생각한다.
인생의 당하는 고민이나 고통의 경험은 인생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가운데에서 비롯 어려운 가운데에 있지만, 인생의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자신의 고통을 통해 그 당시에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감이나 가치를 알아가게 된다.
인생에서 겪는 고통은 인생의 다른 어떤경험보다도 인생에 교훈이나 가치를 주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자신이 당하는 민족이나 개인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그는 비록 힘든 일이라도 그 가운데에서 신실한 주변의 사람들을 찾았으나,
그런 사람들을 없을 뿐 아니라, 찾아도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들 뿐이다.
왜 사람들사이에 서로 배신하는 일들이 일어날까?
그것은 인간속에 서로에게 신뢰를 줄 만한 신실한 모습이 없기에 그렇지 않을까?
타락된 인간성속에서 자신에게도 신뢰를 얻을 만한 요소가 없는 것이 인간의 딜레마이다.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거북하지만
사람은 사실 그런 존재의 상태라는 것을 부인할수 없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그런 불신이나 배신의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그런 와중에서 사람들은 서로 저마다 제 살길을 찾으며,
자기 생존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자기 인생의 생존에 대한 노력은 자기 생명에 대한 가치추구이상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실상은 인생에 있어서 자기 생명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인생의 생존에 관심이나 염려에 집중하는 것이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인간생명에 대한 의미와 가치발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인간의 번민이나 고통은 신앞에 범죄한 인간의 버림받은 상태에서 오는
필요악으로서 인간의 생활에 자주 등장하는 삶의 고통이며, 인생의 딜레마이다.
이런 곤고하고 답답한 인생의 길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길은 보이지 않고,
자신을 점점 나약하게 하며, 병들어 가는 자신의 절망속에 빠져들 뿐이다.
이런 자신에 대한 자각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조의 시작이 된다.
그때부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문제의 해결자이신 신에 대한 목마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로 사람은 기쁨의 노래가 있는 결혼식에 가서 보다는
서글픔의 노래가 있는 초상집에 가서 더 많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의 교훈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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