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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7
    기도생활과 영성변화
    목동

기도생활과 영성변화

올해 새해 정초에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말씀이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믿는 자에게 주신 주님의 은총이다.
만물을 조성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의 심령에 부딪치는 커다란 반향이 된다.

그 동안 나의 기도 생활은 나의 영성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성은 영혼의 성품인가? 영혼이 향하는 영적인 경향성인가?
아니면 영혼의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이며,
경험되어지는 영적인 세계의 창문인가?
나는 기도를 통해 어릴 때에 가졌던 인생의 꿈들, 먼 미래에 다가올 새날들에 대한 기대를
바라보는 내일의 창문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자신은 기도를 하다 언제는 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싶은 간절할 때가 있다.
내 영혼이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에 흥분되는 그 무엇을 준다.
영음으로 들려오는 내면의 반응은 영혼의 감성을 자극하여
열린 영적인 세계에 대한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많은 나의 기도가 천상에 계시는 창조주에게 올려져 왔다.
나의 무수한 쏟아낸 간구들은 때로는 영혼의 절규가 되기도 하며,
고요하게 내면에 울려 퍼지는 묵상의 언어들,
혹은 하늘을 쳐다보면 나의 마음의 창문으로 들려오는 하늘의 소리들,
그리고 나의 꿈이나 비전을 통해 울려 퍼지는 내면의 마음의 소리들.....

그 동안 신앙생활에 있어서 나의 기도가 얼마나 달라졌는가?
처음에 은혜를 받을 때에는 주님께 대한 헌신과
구원받음에 대한 감격의 열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평신도로 사역을 할 때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할 때에 분반 아이들에 대한 어린 목자로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그어린 영혼들을 위해 순수한 목자의 열정을 담은 간구를 뜨겁게 올리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중 고등부 전담 담당 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전체 중 고등부의 부흥과 젊은 영혼들의 세상의 쉽게 노출된 유혹을 차단하고
그들을 신앙으로 키우기 위해 열정적인 간구를 드리곤 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영적인 생활은 보다 깊은 영적인 갈망이 솟구쳐 특별 기도나,
산 기도나, 금식 기도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그런 기도들은 주님을 찾는 영적인 갈망과
더불어 나의 장래를 부탁 드리는 기도를 드렸으며,
그러다가 나의 인생의 전체에 대한 간구를 드리기도 하며,
나의 삶을 드리는 헌신적인 기도가 드려졌다.

그런 기도를 드렸던 나의 영적 생활에 전환점이 되는 한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나의 영성을 순수의 열정에서 고뇌의 무감각의 영성으로 넘어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어느 주일날 젊은 교우의 군입대를 환송하는 곳에 갔는데,
당시 그 젊은 영혼은 세상과 교회의 사이에서
세속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환송은 동네 막걸리 집에서 있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거룩한 나의 몸과 영에 영향을 받게 되어
주님앞에서 나의 영성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은 그 후 주님께 회개를 드리는
10일간의 물만 먹고 하는 금식 기도를 드리는
나의 내면에의 영성에 변화를 가져와
나의 영성은 무감각해 진 영혼의 상태로 나아가
결국 영성의 순도는 무디어져 이어진 군생활 3년 동안의 기도 생활은
더 깊은 영적인 은혜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영적인 성장이 멈춘 상태로 지나게 되었다.
나의 기도도 신선함을 잃은 상태로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에 군 제대 후에 신학교에 복귀하여,
그 후로부터 교육 전도사로 있을 때에는
중 고등부 아이들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당시 사역자로 나선 처음의 사역시기에
자신의 영혼은 그래도 열렬히 불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심방 전도사로 성도들의 각 가정을 심방하면서
교우들의 가정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그리고 직업이나 사업에 대한 간구를 그들을 위해 드리고 하였다.
이렇듯이 사역자로 혹은 책임 있는 목회를 하면서
나의 기도는 인간적이며 세속적이며,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사역의 도구로서의 기도를 드렸다.
평신도 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기도는 점점 식으면서,
제도적이고 습관적인 기도의 언어들이 나의 영혼에 메아리 쳤다.

부목사로 있을 때에는 심방을 하면서 늘 교우들의 개인적인 문제나
혹은 교회의 공동체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였었다.
어느 때에는 하루에 심방을 하는데 거의 30가정을 다녔던 적도 있다.
심방 대원들과 함께, 잠시 가정에 머물며, 가정의 상황을 듣고는 바로 기도를 드린다.
같이 다니는 대원들에게 꼭 같이 들려지지 않는 기도를 드리려고 했으나,
그러나 나의 기도는 어느 새 공식처럼 가정의 가족들의 평안과
가족들의 축복된 삶과 그리고 그들의 대소사의 문제들을 간구 드렸다.

유학의 시기들을 포함하여 오랫동안 신학교의 신학적인 배움의 길에서는
영혼에의 메마른 상태에 있었고
기나긴 영혼의 고뇌의 시간들과 더불어
더 깊어진 영성의 변화와 함께 몇 번의 내면의 치유와
영적인 깨달음과 넓어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뿌리들을
이루게하는 영성과 경건신학의 배움은 자신의 영성의 형성과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의 영성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개인 경건의 시간들이 도움이 되나,
과거 처음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가졌던 순수함과 영적인 열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이렇듯이 자신의 기도의 생활의 변천사는
나의 영성의 변화와 맞물려 나의 신앙생활을 형성하여 왔던 것이다.
당시 주님께 드려지던 기도의 언어는 자신의 신앙에 영향을 주며,
자신의 영성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는 가운데에 특히 나의 신앙의 삶의 역사에는
메마른 영혼의 시기였던 신앙의 암흑기와 영적인 굴곡의 나래에서도 기도는
언제나 주님께 드려졌다.
기도의 언어나 내용은 나의 영성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할 수 있겠다.
목양을 하는 요즘은 교회의 목회와
교우들의 목양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역자의 기도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자신의 영성을 깨우치는 기도에의 헌신에 몰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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