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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7
    옛생활에서 새생활로
    목동

옛생활에서 새생활로

에베소서 2:1-10 예수님 믿기 전에의 삶은 세상의 원하는 방식대로 따르는 불신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 세계는 공중의 권세 잡은 세력에 의해 이끌리는 세상이다. 그 세계는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역사하는 영에 의해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 영은 악한 영으로 사단입니다. 불신의 세계는 사단의 지배를 받는 사회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그 권위에 도전하여 죄의 길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크리스천 공동체의 전 몸을 채우십니다. 본문은 믿는 자들이 믿기 전에 허물로 죽은 상태를 언급합니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불행한 상태를 묘사합니다. 여기서의 죽음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인하여 비참한 상태에 빠졌었습니다. 허물이라는 파라프토마이는 도덕성 악과 덕을 구별하는 거룩한 의미로서의 가벼운 위반을 의미합니다. 하말티아는 습관적인 허물로, 알면서 대담하게 죄를 범합니다. 에베소교인들은 우연히 죄를 범하지 않고, 허물과 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곳의 일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같은 범죄에 빠진 것입니다. 세상의 풍속이란 지속되는 상태로,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으로, 인생의 삶 전체는 죄의 티슈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명목상의 크리스천도 이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공중의 군세의 왕자는 이미 주님에 의해 현저히 그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그러나 아직도 불의의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 그것은 사단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공중이란 악한 영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사단의 영향을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사탄은 악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을 합니다. 그는 조직적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법을 무너뜨립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그들의 아비이며, 불순종이 그들의 어미입니다. 악한 자의 자식이며, 마태13: 38, 요8:44, 불순종의 자식은 불신, 고집 센, 핍박자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말씀을 거부하고, 공중권세를 잡은 악의 영에게로 이끌림을 받습니다. 한 때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으며, 육체의 본성은 타락하여 죄에 오염이 되었습니 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것은 주님의 진노를 살 뿐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행태에 빠져, 육체의 욕심에 이끌립니다. 불신의 인간 생활은 인간 육체의 소욕으로, 마음의 왜곡으로, 불의의 산물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저주의 자식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자연적인 이성과 양심, 또한 인간의 관습과 습관에 의한 기질, 그것은 인간의 원죄, 마음의 육체의 소욕, 타락한 본성입니다. 그리고 불의의 산물인 저주의 자식은 연옥이나 죽음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의 미워하심에 노출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이 풍성하셔서, 그의 크신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사랑으로 그의 크신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그의 자비하심은 그의 사랑을 통해 나타나며, 그의 자비는 그의 사랑의 속성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풍부한 자비하심은 타락한 인간에게 충분한 구원으로 임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였기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자비하심이 요구될 뿐입니다. 그의 크신 사랑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구원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비의 형태로 나타나, 그 자비는 구세주 주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이들에게 가져 오십니다. 비록 허물로 죽은 우리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허물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길은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본성에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옛사람의 본성이 죽고 새사람의 속성이 살아나,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는 아직 죄에 쌓여있는 자연적이며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된 상태입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없는 상태입니다. 몸의 죽음을 넘어 영원한 죽음은 의식적인 고통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단절된 상태입니다. 이것을 두 번째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비록 죄 안에서 죽었습니다. 영혼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율법에 대해서도 영원한 죽음조차도 노출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심은 먼저 주님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완전함을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거듭남으로 그분과 함께 사는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것으로 타당하게 여기는 것으로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의 자리에 앉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사, 주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의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우리를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케 하므로 하늘의 세계로 올렸습니다. 주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사,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그가 온전한 구속으로 그의 피로 의롭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에게 그의 구속을 받도록 그를 의의 생명으로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죄의 죽음에서 의의 생명으로 옮겨져,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그리고 이 영광을 받은 이 구원의 소유를 행복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 있습니다. 오는 세대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친절하심 안에 있는 그의 넘치는 풍성한 은혜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친절하심은 그의 은혜를 통해 그의 구원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은 영혼을 살리심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여러분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의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의 구원은 은혜를 통해 얻습니다. 그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 구원은 우리의 죄가 씻음 받고, 성령에 참여하여, 불멸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대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에 의한 것이며, 구원의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사람의 수고로 이루어 지지 않아, 자랑할 수 없으며, 그의 은혜로서, 그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그의 솜씨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선한 일을 하는 것 안에서 우리를 준비케 하십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의 솜씨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인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빛에게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놓으신 구원입니다. 거룩의 성령의 역사에 참여하여, 우리 마음 안에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거룩을 사모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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