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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3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
    목동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

마가 1:1-8)

강림절은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절기이다.
강림절에 주시는 메시지로 세례요한의 선구자에 대한 삶과 그의 메시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세례요한이 외친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메시지중에
선포된 주님의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은 어떤 길인가?
주님의 길은 은혜와 진리의 길이다.
저주받은 인생들이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어둠에 처해있는 인생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알려주셨다.

주님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미움과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에 그는 사랑으로 오셔서,
친히 자신의 몸을 버리시며, 희생을 통해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그의 사랑의 정신이며, 삶이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길을 배운다.

주님의 길은 생명과 구원의 길이다.
그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의 길은 인간구원의 길이다. 그를 통해 인간 구원을 이루며,
죄 있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을 주셨다.

그러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란?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주님을 오심은 준비하여, 주님이 우리의 삶에 행하실 길을 또한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예수님의 선구자로 있지만, 그 선구자는 앞섰지만, 뒤에 오시는 이를 위해 사는 삶이다.
세례요한은 사명자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예수님보다 앞서지 않았고,
예수님의 신발끈도 풀기 힘들다는 철저히 겸손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나는 망하고 주님은 흥하여야 하리라는 원칙으로 살았다.

그는 마지막 예언자였다. 오랫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예언자였다.
마지막 구약성경의 예언자 말라기를 통해 들었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수 백년간, 하늘로부터 들려오지 않아,
백성들이 갈 바를 모르고, 희망이 없는 막연한 세월을 살고 있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나에게 하나님이 주어지지 않는 세월들은 방황하며 무의미한 삶이다.
그런 가운데에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곳이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곳인 광야에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소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얻었다.

세상의 복잡한 곳에서 우리의 영혼은 혼란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서 분주하게 쏟아내는 여러가지 소리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때로는 실망을 주고, 자신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며,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관심을 세상에 빠지도록 하는 소리들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영혼이 답답해 하며, 때로는 죽어 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인생이 복이 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주일날이라도 교회에 와서,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내 영혼이 산다.
주일날 듣는 메시지는 자신의 영혼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중대한 메시지이다.
이것을 한귀로 듣고 흘릴수 없는 고귀한 하늘의 소리인 것이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이란?
먼저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구별된 삶을 살았다.
그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힘썼다.
요즘 사람들은 케이블 텔레비전과 인터넷등,각종 게임등 엔터테이트먼트의 도구들로
모두의 관심을 빼앗는 세상의 소리로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그런데, 주일날 갖고 다니는 성경은 집 어느 한구석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성경을 들고 읽거나, 공부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의 사귐도 중요하지만,
그는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요즘은 기도하는 시간은 갖기 힘드는데,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으며,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아이들을 돌보고, 사업을 해야지, 공부를 해야지,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일들이 널려있다.
이세상은 너무 우리의 마음의 관심을 빼앗가는 일들이 너무 많다.
옛날에는 6일을 일을 해도, 보통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주 5일 하고도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어 버린다.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에, 토요일이 은근히 즐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생의 진지한 일들,
즉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몸의 건강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이란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구별된 삶이란, 거룩한 생활이다.
과거 속담에 백로야 까마귀노는 곳에 가지말라, 까마귀의 구린내나는 것들에 영향을 받을 까한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정체감을 살아갈 때에
오히려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라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세상에 안 좋은 세태에 노출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영성은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윤리적으로 더러운 것과 어두운 것은 비슷하다.
어둠 속에서 죄를 짓기 쉬우며,
사람들이 아무도 못 본다고 할 때에 죄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백일하에 드러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시지 않겠지 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내 의식에서 사라지고, 내 눈에 안 보이면,
그때부터 악이 들어오는 것이며, 죄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세상과 구별되며,
자신에게 더러운 일을 하게 하는 죄를 짓는 생활에서 구별되며,
사단의 속임수로 빠져가는 악한 생활에서 구별되며,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세상의 타락과 구별되어야 한다.

준비하는 삶은 사명있는 삶이다.
세례 요한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었다. 그래서 그는 목적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주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목적을 이루는 일을 하였다.
그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백성들에게 주님을 맞을 준비를 시켰다.
회개는 인간의 죄를 고치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마음을 고치고, 주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방법대로 사는 데서 하나님의 길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다.

사명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생활이다.
열심으로 사는 것이다. 세례요한 은 열심으로 외쳤다.
온 유대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요단강에서 외쳤는데, 온 곳에서 백성들이 그에게로 나왔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사명을 따라 사는 생활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인생의 가치는 자기본분을 찾아 살 때에, 이루어 진다.
가문을 빛낼, 자신을 빛낼, 가치는 인생을 고귀하게 한다.
이 일을 하는 데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냐 하는 질문도 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일,
요즘은 나의 필요에 의해 부모를 모시는 경우가 많으나,
과거에는 자식의 도리,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자녀로서의 도리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예를 들자면 우리의 선배들이 과거 일제 침략시대에는
애국하는 일, 즉 특별히 독립 운동하는 명분이나
사명에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얻고 살아갔었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하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례요한 그는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광야의 소리가 되기 위해
그는 주님과 함께 하는 광야의 생활을 마다 하지 않고,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또한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였다.
그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을 통해 백성들을 준비시켜,
앞으로 오실 주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일을 듣는 무리들에게 맞이하게 하였다.
물로 세례를 베풀며,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케 한다.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사람의 마음을 고쳐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자세를 갖게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쳐 먹어야 그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내 마음이 주님에게 열려있어야 주님을 맞이한다.
내 마음이 변하므로, 은혜에 열려있고, 말씀에 열려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특별하게 역사하시는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회개는 주님을 맞이하는 마음의 변화이다.
우리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시도록
우리는 마음의 준비와 생활에서 주님을 모실 생각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의 도움을 구해야 하며,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시도록 하려면 자리를 마련해드려야 한다.
모든 계획가운데에 우리의 지도자, 선생님,
그리고 우리의 일에 대해 주관자, 혹은 능력자로 모셔야 한다.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님에 대해, 다음가 같은 고백적인 내용을 선포하였다.
그는 나 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신다고 외치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였다.
주님은 나(인간) 보다 위대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위대해 지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통치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마음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는 내 마음의 주인이며,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서 나의 주님이시기를 원하신다.

세례요한은 오시는 주님에 대해 그분의 신발끈도 푸는 일조차
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진 분라고 고백한다.
그 주님은 나의 삶의 중심에서 높임을 받아야 할 만물의 주인이시며,
만인의 구주이이시다라는 의미가 있다.

평소에 준비하는 삶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의미하지 않다.
시간을 준비하고 (시간약속에 대해)
일을 준비하고 (일의 추진과 성취를 위해)
장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의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현재에 준비를 잘하는 삶은 미래가 보장된다.
이렇게 사는 태도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일이다.

세가지 중요한 준비하는 것들이란,
바로 자신이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고,
또한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사는 것이다.

고로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준비의 삶은
1, 영혼을 위해서 사는 삶
2. 내일을 위해 사는 삶
3. 주님을 위해 사는 삶 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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