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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6
    하나님의 날은 어떤 날인가?
    목동

하나님의 날은 어떤 날인가?

말라기 4:1-6

1.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용광로의 불과 같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그날에는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처럼 타서 없어 질 것이다.
    그들 중에는 하나도 살아 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2.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며
    너희는 나가 외양간에서 풀려나온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3.내가 이것을 행하는 날에 너희가 악인을 짓밟을 것이며 그들은 너희 발밑에 있는 재와
    같을 것이다.
4.“너희는 내가 시내산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내 종 모세에게 준 법과 규정을 기억하라.”
5. 보라! 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를

   보내겠다.
6.그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들에게 돌아서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돌아서게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그들의 땅을 저주로 치겠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선포하신다.
그의 날이 심판을 행하는 날로 임하리라는 것을…그리고 심판가운데에서
하나님은 또한 구원의 역사를 행하신다는 것을 알수 있다.

만일 불순물이 끼어있는 쇠덩어리가 용광로에 들어가면
그속에 타오르는 불이 모든 더러운 것을 사르고,
모든 찌꺼기들을 불로 태워 버리며, 하나도 건지지 못하게 된다.
용광로의 제련되는 쇠덩어리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불같은 역사가
사람들 속에 붙어있는 죄와 악과 같은 불순물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용광로의 불로 비유한 것은
그의 심판이 인간의 모든 더러운 요소들을
불로 태워 없애버리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죄악을 행하는 인생들은 거기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이
다 타서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 예언한 대로 주님의 심판을 받은 존재들은
지옥불의 감옥에 들어가,
그들은 시련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지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는 장소로
하나님에게 대적하며,
그의 심판을 받을 것을 자초하는 인생들은 모두가 다 거기에 가게 될 것이다.

주님의 심판은 악을 행하는 자, 그리고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들에게 임한다.
그의 심판은 엄격하고 정확하게 시행될 것이다.
주님이 돌리시는 심판의 멧돌은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움직이지만,
반드시 모든 악의 요소들을 다 갈아버리는 심판을 행하신다.
콩을 넣어 멧돌을 돌리면 콩이 다 바스러져서 콩물이 흘러내리게 된다.
그것처럼 인간의 죄악도 그의 심판의 멧돌에 모두가 갈아버리게 된다.

주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시행되는 것과 같이
또한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의 심판을 피하고 면하는 길은 그가 행하신 그의 구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들을 살리는 역사로 나타나,
상한 영혼들을 치료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며, 병든 영혼들을 고친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의 태양이 나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사람들이 그빛에 쬐이면 치료받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지으셨기에 그는 인간의 문제와 질병을 치료하실수 있다.
그의 손길은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데 촛점이 모아지고 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온전하게 창조되었으나,
불순종과 범죄이후에 사람들에게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성의 좋은 성품이 변질되어,
그들속에 죄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 육체의 본성으로
저주와 절망적인 상황하에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는
사람들의 죄로 인한 절망적인 상태를 새롭게 하여
소망적인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가능하게 한다.
저주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그들을 주님이 주시는 은혜안에서 축복의 삶으로 살아가게 한다.
고통받는 상태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와 죽음의 상태를 벗어난 평안과 상쾌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치료는 영혼과 육체의 치료로 사람들의 몸의 질병을 치유하며,
그리고 마음의 병과 정신적인 질환에 대해 새롭게 하신다.

하나님의 치료는 그의 보편적인 방편으로서의 은혜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모든 의료기술과 인간적인 치유수단을 통해 이루어지며,
특별하신 은총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질병에 대해,
치유의 기적과 혹은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부으심과 만져주심으로 치료하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은
사람들을 고치고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치료를 의미하며,
그의 은혜의 빛은 해가 비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비쳐주는 생명의 빛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들을 밝히신다.
그리고 죽음의 상태에서 생명의 환희의 은총의 능력안에서 살게 하신다.

어린 송아지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를 좋아하지만,
그 송아지가 어딘가에 매여있으면 그얽매임에 의해 억압이 되어있다.
송아지가 억압되었다 풀려나 마음 껏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사람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다.
하나님의 품안을 떠난 인생들은
그의 품을 떠나는 때부터 모든 것에 억매여지낼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고리를 풀어 죄의 사슬에 매인 인생은
모든 죄의 영향력의 속박에 매이게 된다.
질병, 상처, 고통, 저주, 불행, 좌절, 절망, 멸망당함등
인간을 억압하고 죽이는 모든 것에서 매여 지내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살고 죽이지 않는 법을 주셨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법을 지키지 못하여
법에서 정한 규정을 어겨서,
그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죄로 인한 저주와 고통이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모든 삶의 문제는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른 결과로 인한 원인으로 인하여 생겨났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태어나면서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그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부모의 죄도 아니고 자신의 죄도 아니었다라고 하셨지만,
사람이 그렇게 태어날수도 있는 것자체가
인간현실의 모순과 고통의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고통받는 인간의 현실을 외면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시고,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면서 까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신다.
인간에게 고통이 있은 즉 하나님의 위로와 나음이 있고,
상처가 있은 즉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를 통해 그것을 아물게 하신다.
시련과 역경속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이 있는 인생의 눈물을 씻기시는 주님의 자비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때에
그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되어 자신들을 괴롭혔던 악인들을 대적하여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과 허물을 심판하고
그들을 벌하기 위해 주변의 강대국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 백성들을 괴롭히고 상하게 하게 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죄와 허물이 그런 일들을 자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의 허물을 사면하며, 그들을 다시 축복하게 될때에
그들은 주변에 있는 원수인 나라들을 대적하여 싸우고,
그리고 그것을 정복하고 지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반복되는 역사였다.

사람의 일생도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반복된다고 할수가 있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든 날들이 있는 가하면 기쁘고 형통한 날들이 있다.
상하고 병들고 힘들어 질때가 있으면 치료하고 회복하고 나아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살아가는 일생을 통해
자기들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간다.

하나님의 예언자이며 메시야의 선구자인 엘리야의 사명은
아버지와 자녀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케하는 데 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기전에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준비인 사람들의 죄와
회개의 촉구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그 선구자는 회개하고 메시야를 맞이할수 있도록
즉 마음을 고쳐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는 일을 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날, 축복의 날은 사람들에게 화합과 일치를 가져와
가족이나 사회를 새롭게 하여 회복케 하신다.
하나님의 은총은 특별히 가족간의 문제에 개입하여,
사람들의 망가진 관계들을 치료하신다.
가정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역사는 가족들이 하나가 되는 때이다.

가정안에 가장 연약하고 취약한 인간관계는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고로 보통 가정마다 아버지와 자녀들의 마음이 갈라지기 쉽다.
아버지와 자녀들의 관계가 상하기쉬운 관계이다.
부모중에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빠, 자녀들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기 쉽다.
가정의 문제에서 아버지의 역활의 중요성의 강조와
그 아버지와 가족간의 관계의 회복을 통해
가정문제의 많은 경우에 해결되는 일들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몸으로 낳아서
자녀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돌봄의 마음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해 애뜻한 애정이나 관심의 돌봄을 주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역활을 잘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모든 사회의 문제의 발단은 통치자 혹은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 할때에 일어난다.
지도자혹은 지배자는 남을 돕는 위치에 있을때에 제 역활을 할수 있다.
그러나 남을 지배하려고만 하는 자세는 남을 상하게 하기 쉽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주기 쉽다.

사람이 사는 땅이 저주받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죄와 악한 것들 때문이다.
그들이 죄인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죄악을 자행하고 있어서
특히 사람들이 자신들이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으면
그들의 삶에 저주스러운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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