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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1/25
    부끄러운 역사 -> 박정희(7)
    낑깡

부끄러운 역사 -> 박정희

박정희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지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손만대에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는 우익의 정통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민족의 반역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바른 우익인사가 민족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부르짖다가 친일파의 대부가 되면서 민족의 해방을 가로 챈 이승만 극우반동매판세력에 의해 모두 암살되었거나 국가보안법에 의해 비명에 사라졌기 때문에, 사실상 우익의 올바른 정통성은 이승만 정권에서의 조봉암을 거쳐 박정희 정권에서의 장준하 선생을 마지막으로 1975년 우리네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장준하 선생의 일생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와 또 우리가 어떤 문제를 우리의 의식 속에 갖고 있는가를 뚜렷하게 알게 됩니다!!! 장준하 선생의 삶을 쫓는 기회는 다음으로 하고 여기서는 박정희를 쫓아가 보고 박정희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이 왜 문제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이승만은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외세에 의지하여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는 그나마 독립협회에서의 항일운동에 의한 투옥 7년으로 독립투사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1913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외세에 의지한 독립만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에 집착합니다!!! 그에 붙여진 외교의 귀신이란 수사는 그가 미국에서 끊임없이 저지른 폭압적 언행을 바탕으로 한 여론조작의 다름 아닙니다!!! 심지어 임정에서 탄핵까지 받았던 인물로 신채호 선생은 아예 이승만과 같은 자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선언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승만은 그나마 젊었을 때의 이력으로 해방에 대한 원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일본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전형적인 일본 엘리트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그가 또다시 불타는 출세욕으로 공산당으로 변신했다가 급기야 4월 혁명을 맞습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끓어오르는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4월 혁명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고 나라를 암흑 속에 빠뜨립니다!!!

그가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서 맨 처음 한 짓을 볼까요?
박정희는 먼저 자신의 약점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 이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법적인 근거부터 마련합니다!!! 마치 이승만과 그 하수인인 친일파들이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생각이 다른 사람들 모두를 싹쓸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듯이 말입니다.

1961년 장준하의 주선으로 군부 쿠데타 세력들은 미국과 화해할 기회를 창경원에서 갖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장도영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참석하였고, 박정희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날, 박정희는 스스로 최고회의의장의 자리에 오르며, 권력에 대한 불타는 욕심을 숨기지 않고 전면에 드러냅니다!!! 물론 장도영은 체포되었죠!!!

이 날, 박정희는 자신의 집권을 위한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 반공법과 인신구속특례법을 공포하여 혁신계 인사들을 대거 잡아들이고 이후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한 ‘여론 길들이기’ 작업에 착수합니다!!! 뿐만 아니라 중앙정보부를 설치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이 될 극우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왜 박정희는 4월 혁명을 계기로 터져 나온 민족통일에 대한 열망을 무참히 짓밟고 극우반공이데올로기 강화에 이승만 정권보다도 더욱 열을 올렸을까요?

그 자신이 이승만과 견줄 수조차 없는 친일행적의 결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서 목숨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연명해 온 친일파들의 기반을 속내를 역시 잘 읽고 있었고, 국가기구를 이용한 학살정치로 피해의식의 한 형태로 거의 모든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그네들의 지배이데올로기인 ‘극우반공이데올로기’를 심어놓았기 때문에 이를 더욱 활용하여 자신의 결함을 포장하고 끓어오르기 시작한 통일에 대한 열망(이는 곧바로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를 일으키기 때문에 반드시 친일파의 청산문제가 나오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되면 군부에서 주장했던 ‘우국쿠데타’의 명분은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정이양이라는 허울로 국민과 그나마 나름의 민족의식을 갖고 있던 정치세력들을 기만하는 사이, 극우반공체제의 강화를 통하여 공포적 국가주의체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곧바로 나라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는, 4월혁명으로 흐트러진 ‘극우반공체제’를 정비하여 강화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자행한 만행은 이루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만 좀더 새롭게 일반국민들, 즉 민초들의 입장에서 박정희 정권의 성격을 실제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박정희의 실체를 알려주는 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키고서 권력을 잡자 마자...
유족회 사건을 일으킵니다... 즉 억울한 집단학살에 대한 신원회복문제를, 4월 혁명과 이승만의 하야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하여 활동해 오던 유족들의 집단적 노력을 일거에 짓밟아 버립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우리네 전통적 관념으로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무덤 훼손까지 저지릅니다. 도대체 이 박정희는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던 자라고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죠!!!

한국전쟁을 전후로 해서 일어났던 법의 무시는...
역시 박정희 정권 아래서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적법한 절차도 따르지 않고 재판을 진행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느낄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긴 아미 죽은 사람의 시신을 또 꺼내서 죽이는 짓을 저지르는 자들이 어찌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겠습니까?

나라를 구한다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자들이...
미국과의 더러운 거래로 살아남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천인공노할 생체실험을 저지른 일제의 극우세력들과 다시금 손을 맞잡고 나라를 팔아먹습니다. 박정희는 유일한 논리는 ‘잘 살아 보세’였습니다. 잘 살아보자고 그렇게 외쳐대고 노력했던 결과물이 지금도 빚더미에 허덕대는 농촌의 모습입니까? 아마도 재벌들은 박정희의 ‘은공’을 하해와 같이 생각하겠지요!!! 대우의 김우중은 아마도 옛날 박정희 시대를 머릿속에 그리며 김대중 정권 때에 자신의 망가짐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정희가 가졌던 나라와 국민에 대한 생각을 잠깐 엿보기 위해 제가 썼던 ‘국가보안법의 기원’이란 글의 일부를 다시금 인용해 보죠!!!

>>> 김재규는 1979년 12월 8일 비공개로 진행된 군사법정에서 부산에 계엄이 선포되고 나서(부마사태는 10월 17일 발생하였고, 18일 0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음) 현지에 다녀와 박정희에게 부산사태의 심각함을 보고하였을 때, 박정희와 차지철이 주고받은 말을 털어 놓았다... (중략)

자신의 부사사태 보고에 대하여 박정희가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명령을 하겠다. 자유당 말에는 최인규라는 사람과 곽영주라는 사람이 발포명령을 하였으니까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명령을 하는 데 누가 날 총살하겠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증언하였다.

그러자 차지철 경호실장은 박정희의 말에 한 술 더 떠서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가 100만~200만 명 희생시키는 것쯤이야, 뭐 문제냐"고 거들었다는 것이다... <<<

(인용출처: "조봉암과 1950년대 <하>", 서중석)

그에게 나라와 겨레, 나아가 나라의 실체인 국민들은 다 죽인다고 해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죠!!!

어쩌면 극우반공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찌든 우리 의식의 발전과정에 대한 가장 올바른 자화상이라고 할 만한 장준하 선생의 얘기를 살펴보죠!!!

장준하는 “사상계” 1961년 7월호에서 “긴급을 요하는 혁명과업의 완수와 민주정치에로의 복귀”라는 제목의 권두언에서 “공산당의 전체주의 세력을 분쇄할 수 있는 최대의 사상적 무기는 민주주의적 자유의 선용에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장준하 선생은 사실상 박정희와 숙명적인 대결적 관계에 있으며 계속적으로 의식이 발전해 갑니다… 결국 70년대에 들어서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 ’74 남북공동성명’을 겪으며 참된 역사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1973년에 장준하 선생이 쓴 글을 보면, 그는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잘못 인식했던 바들에 대한 바로잡음을 나타납니다… 결국 그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 겨레의 ‘궁극적 선’임을 주장합니다.) 심지어 나라의 발전이라는 대의적 견지에서 박정희의 쿠데타를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지지해 주던 장준하마저 나타낸 박정희의 권력욕에 비판을 가하고 나선 것이죠!!!

결국 극우반공이데올리그의 입장에서 원칙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박정희의 행동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게는 이승만처럼 그 자신이 곧 극우반공이데올로기였으며, 절대선이었습니다!!! 결국 ‘절대선’은 자신이 키운 분신에 의해 부질없이 사라집니다. 스스로도 자기합치가 되지 않는 논리와 가치기준은 자기 안에서의 분열로 끝을 맺고 만 것입니다.

이런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나타난 소위 ‘박정희 신드롬’은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으며, 아직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은 우리나라와 겨레의 수치일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박정희에 견줄만한 아주 뛰어난(?) 독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프랑코, 대만의 장개석… 그러나 그들은 그네들 나라에서 이미 반면교사로서 있어서는 안될 독재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박정희처럼 나라를 배반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닐뿐더러, 그들의 집권기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독재를 보완시켜줄 가장된 ‘애국의지(?)’에 대한 집착으로 오히려 정경유착을 단절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럼에도 그들은 그들 나라에서 그들에 받아야 할 비판과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모습은 어떻습니까?
겨우 우리역사가 제 정신을 찾은 때가 엊그제여서인지는 모르지만, 나라를 팔아먹던 자가 대통령이 된 것도 모자라서 그를 현대사의 위인으로 추켜 세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박정희는 땅밑에서 코웃음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는 역사가 제자리를 찾게 될 그 어느 날을 두려워하여 아예 현대사를 얘기하지도, 연구하지도, 나아가 결국 아예 자손만대에 없어지도록(박정희가 바란 것은 아마도 이것이었지 않을까 합니다.) 하려 했기 때문에 지금에 우리들의 이 우스운 모습(박정희 신드롬)을 보며, “거봐, 내 말이 맞지?”하고 자족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나라를 팔았고...
그것도 모자라 국가권력을 장악해서는...
국민을 또 죽이고 또 팔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영구적인 집권으로 절대선이 되고자 했던...
박-정-희

그는 우리역사의 수치이자...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자기모순과 자기분열의 근원이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대사의 불행입니다!!!

우리 정말 정신 차립시다!!!
정통 우익들로부터도 비판 받고 비난 받았던 사람을 ‘민족의 영웅(?)’으로 착각하여 떠받들고 있음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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